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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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건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위청 휘하의 교위로 흉노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평릉후에 봉해졌으며, 삭방에 성채를 쌓고 유격장군으로 위청과 함께 출병했다. 원삭 6년, 우장군이 되어 조신과 함께 흉노와 싸웠으나 패배하여 홀로 살아남았고, 이후 서인이 되었다가 대군태수를 지내다 죽었다. 그의 아들 소무는 전속국을 지냈다. 소건은 사마천에게 위청에게 사대부를 불러 모을 것을 권유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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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소건은 전한의 장군으로, 흉노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나 패전의 책임을 지고 몰락했다가 복직한 인물이다.

대장군 위청 휘하에서 교위로 흉노 정벌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평릉에 봉해졌다. 장군이 되어 삭방에 성채를 쌓았고, 위위 신분으로 유격장군(游擊將軍)이 되어 위청과 함께 삭방으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이지사선우가 이끄는 군세와 조우하여 홀로 살아남아 달아났고, 함께 싸운 조신은 흉노로 투항하였다. 이 일로 인해 서인이 되었다가 훗날 다시 부름을 받아 대군태수를 지내다가 죽었다.

장남 소가(蘇嘉)는 봉거도위를, 차남 소무는 전속국을, 삼남 소현(蘇賢)은 기도위를 지냈는데, 이 중 소무의 명성이 가장 높았다.

소건은 위청에게 사대부들을 불러모을 것을 권했으나, 위청은 무제의 노여움을 살 것을 우려하여 사양하였다. 소건은 훗날 이 일을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게 이야기해주었다.

2.1. 초기 활동과 흉노 정벌

대장군 위청 휘하의 교위흉노 정벌에 참전하였고, 공을 세워 평릉(平陵侯)에 봉해졌다. 장군이 되어 삭방에 성채를 쌓았고, 위위 신분으로 유격장군(游擊將軍)이 되어 위청과 함께 삭방으로 출병하였다.

원삭 6년(기원전 123년), 우장군이 되어 다시 위청의 휘하로 배속되었고, 전장군 조신과 함께 기병 3천여 명을 이끌고 정양으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이지사선우가 이끄는 군세와 조우하였고, 하루 남짓을 맞서 싸웠으나 결국 홀로 살아남아 달아났다. 함께 싸운 조신은 흉노로 투항하였다.

의랑(議郞) 주패(周霸)는 위청에게 소건을 죽여 위엄을 보이라고 하였으나, 위청의 참모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위청은 결정하지 못하고 조정에 해결을 청원하였고, 결국 소건은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속죄금을 내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2.2. 패전과 몰락

원삭 6년(기원전 123년), 우장군이 되어 다시 위청의 휘하로 배속되었고, 전장군 조신과 함께 기병 3천여 명을 이끌고 정양으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이지사선우가 이끄는 군세와 조우하였고, 하루 남짓을 맞서 싸웠으나 결국 홀로 살아남아 달아났다. 함께 싸운 조신은 흉노로 투항하였다.

의랑(議郞) 주패(周霸)는 위청에게 소건을 죽여 위엄을 보이라고 하였으나, 위청의 참모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위청은 결정하지 못하고 조정에 해결을 청원하였고, 결국 소건은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속죄금을 내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2.3. 복직과 죽음

훗날 다시 부름을 받아 대군태수를 지내다가 죽었다. 소건의 장남 소가(蘇嘉)는 봉거도위를, 차남 소무는 전속국을, 삼남 소현(蘇賢)은 기도위를 지냈는데, 이 중 소무의 명성이 가장 높았다.

소건은 예전에 위청에게 사대부들을 불러모을 것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위청은 예전에 두영과 전분이 빈객을 많이 거느려 무제의 노여움을 산 일을 언급하며 이를 사양하였다. 소건은 훗날 이 일을 《사기》의 저자 사마천에게 이야기해주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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