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디아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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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그디아노스는 마네토와 디오도로스 시쿨루스에 의해 불린 이름이며, 크세르크세스 2세가 살해된 후 페르시아 제국의 왕위를 차지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사후 크세르크세스 2세, 다리우스 2세와 함께 왕위를 주장했으며, 6개월 15일 동안 통치했다. 이후 이복 형제인 다리우스 2세에게 체포되어 재 속에서 질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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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2세는 기원전 423년부터 404년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제국 안정과 국력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지방 총독들의 반발, 왕실 내부 권력 다툼, 잦은 전쟁 등으로 제국은 쇠퇴했다.
소그디아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칭호 | 페르시아의 왕 |
별칭 | 이집트의 파라오 |
재위 | 기원전 424년 - 기원전 423년 |
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
종교 | 조로아스터교 |
아버지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
어머니 | 알로기네 (바빌로니아 출신) |
인물 정보 | |
출생지 | 알 수 없음 |
사망지 |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 |
통치 | |
이전 통치자 | 크세르크세스 2세 |
다음 통치자 | 다리우스 2세 |
같이 통치한 왕조 | 아케메네스 제국 |
2. 이름
그는 마네토와 디오도로스 시쿨루스에 의해 Σογδιανός|소그디아노스grc라고 불렸으며, 크테시아스에 의해 Σεκυνδιανός|세퀸디아노스grc라고 불렸다.[6]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기원전 424년 12월 24일에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 세 명이 왕중왕 자리를 두고 경쟁하였다. 소그디아노스는 이들 중 한 명으로, 엘람 지역에서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즉위 배경
3. 1.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죽음과 권력 투쟁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생존해 있었음을 언급하는 마지막 비문은 기원전 424년 12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죽음으로 최소한 그의 아들 셋이 스스로를 왕중왕이라고 선언하였다. 첫 번째는 크세르크세스 2세였는데, 그는 왕비 다마스피아가 낳은 유일한 적자였으며 이전에는 후계자였다고 전해진다. 크세르크세스 2세의 통치는 페르시아의 중심 지역에서만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소그디아노스 자신이었으며, 그는 처음에는 엘람에서만 인정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와 첩 코스마르티데네(Cosmartiden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자 히르카니아의 사트라프였던 오쿠스였다. 오쿠스는 또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와 그의 첩 안디아(Andia)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의 이복 누이 파뤼사티스와 결혼했다. 오쿠스가 다리우스 2세로서의 첫 번째 비문은 기원전 423년 1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메디아, 바빌로니아, 이집트에서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세 사람이 모두 동시에 왕을 자처했다면, 아케메네스 제국은 잠시 동안 세 명의 왕중왕을 두었던 셈이다.[1]
4. 즉위와 몰락
크세르크세스 2세는 45일 동안만 통치했다. 그는 술에 취한 채로 환관 파르나키아스와 메노스타네스에게 살해당했는데, 이들은 소그디아누스의 지시를 받고 공모한 것이었다.[3]
소그디아누스는 여러 지역에서 지지를 얻어 6개월 15일 동안 통치했지만, 이복 형제 오쿠스에게 반란을 일으켜 체포되었다. 오쿠스는 소그디아누스보다 서열이 높았음에도 소그디아누스가 왕위에 오른 것에 불명예를 느꼈다.
소그디아누스는 오쿠스가 칼, 독, 굶주림으로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항복하였으나, 잿더미 속에서 질식하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파르나키아스는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받았다.[4] 메노스타네스는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5]
오쿠스는 이후 다리우스 2세로 즉위하여 아케메네스 왕조를 다스렸고, 기원전 404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로 군림했다.[2]
참조
[1]
서적
Persica
[2]
논문
The Circumstances of Darius II's Accession
1995–1996
[3]
서적
Persica
[4]
서적
Persica
[5]
서적
Persica
[6]
서적
FGrH 3C1, pp. 50, 468
https://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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