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테시아스
1. 개요
크테시아스는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시의였다. 그는 쿠낙사 전투에 참전하여 왕을 수행하고 부상 치료를 지원했으며, 전투 후 그리스인과의 협상에 참여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페르시아 왕립 문서고를 바탕으로 쓴 23권의 역사서인 《페르시카》와 인도를 기록한 《인디카》가 있다. 《페르시카》는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역사,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부터 기원전 398년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으며, 고대와 현대 모두에서 역사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인디카》는 페르시아인의 시각에서 본 인도를 묘사하며, 신화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
물라주 출신 -
에우독소스
에우독소스는 크니도스 출신의 고대 그리스 학자로, 천문학에서 동심구 모델을 통해 행성 운동을 설명하고 수학에서 비례 이론을 발전시켜 무리수 문제를 해결했으며, 윤리학에서는 쾌락주의를 옹호했다. -
기원전 4세기 역사가 -
크세노폰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고대 아테네 출신의 군인이자 역사가, 작가, 철학자로, 《아나바시스》를 통해 페르시아 원정에서의 용병 지휘 경험을, 《헬레니카》를 통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그리스 역사를 기록했으며, 《키로파에디아》에서는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쳐 역사, 정치, 철학, 군사 분야에 걸쳐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4세기 역사가 -
메가스테네스
메가스테네스는 헬레니즘 시대 이오니아 출신 그리스인으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대사로서 마우리아 왕조에 파견되어 《인디카》를 저술했으며, 이 책은 현재 소실되어 후대 인용을 통해서만 내용을 알 수 있고 고대 인도 사회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지만 신뢰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고대 그리스의 의사 -
갈레노스
갈레노스는 로마 제국의 의사이자 철학자, 문헌학자로, 그의 방대한 저술은 서구 및 이슬람 의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해부학적 관찰과 동물 실험을 통해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발전시키고 인체의 기능과 질병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여 의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
고대 그리스의 의사 -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경에서 370년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 의사로,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4체액설에 기반한 자연치유 의학 이론을 정립하고 임상 의학과 의학 윤리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이름이 붙은 문서집과 선서는 그가 직접 저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의 의학적 업적은 현대 의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생애와 활동
크테시아스는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인물로, 아케메네스 제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그리스인 시의였다. 그는 기원전 401년 왕의 동생 키루스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원정에 왕을 수행했으며, 쿠낙사 전투에도 참전했다. 전투 후의 협상 과정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테시아스는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강과 페르시아의 수입에 관한 논문, 인도의 지리와 풍속을 다룬 인디카(Ἰνδικά고대 그리스어), 그리고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역사를 23권으로 서술한 페르시카(Περσικά고대 그리스어)가 있다. 특히 페르시카는 페르시아 왕궁의 기록 보관소 자료를 참고하여 저술되었으며,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이오니아 방언으로 쓰였다.
2.1. 쿠낙사 전투 참전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한 크테시아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시의였다. 그는 기원전 401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그의 동생 키루스에 맞서 벌인 원정에 동행했다. 크테시아스는 키루스와 그의 그리스 용병 부대인 만 명에 대항한 쿠낙사 전투 당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곁을 지켰으며, 전투 중 왕이 입은 부상을 직접 치료하는 등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그리스인들과의 협상 과정에 참여했으며, 바빌론 왕궁에서 처형되기 전 스파르타 장군 클레아르코스를 도왔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3. 주요 저작
크테시아스의 주요 저작으로는 페르시아의 역사를 다룬 《페르시카》(Persica)와 인도에 대해 기록한 《인디카》(Indica)가 있다. 《페르시카》는 앗시리아와 바빌론 시대부터 기원전 398년까지의 페르시아 관련 역사를 다루었으며, 《인디카》는 페르시아인의 관점에서 본 인도에 대한 기록이다.
두 저작 모두 원본은 소실되었고, 포티오스의 요약이나 다른 고대 작가들의 인용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내용이 전해진다. 특히 《페르시카》의 역사적 신뢰성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논란이 있었으며,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크테시아스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인디카》는 당시 페르시아인들이 가졌던 인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3.1. 《페르시카》
《페르시카》(Persica)는 총 2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6권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역사부터 키루스 2세에 의한 페르시아 제국 건국(기원전 550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 17권은 그 이후부터 기원전 398년까지의 페르시아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페르시카》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포티오스가 남긴 요약본과 아테나이오스, 플루타르코스, 니콜라오스 다마스케노스, 그리고 특히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의 저작 속에 인용된 단편들을 통해서만 내용을 알 수 있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저서 제2권은 크테시아스의 내용을 상당 부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카》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일부 고대 학자들은 《페르시카》를 높이 평가하며, 이를 근거로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페르시카》의 역사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크테시아스가 기록한 앗시리아 왕들에 대한 설명은 현존하는 설형문자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한 현대 작가는 "(크테시아스의) 신뢰할 수 없음은 헤로도토스를 정확성의 모델처럼 보이게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크테시아스의 기록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진실된 이야기》(Ἀληθῶν διηγημάτωνell)에서 크테시아스를 '거짓 역사를 쓴 인물'로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풍자했다.
큰 벌을 받는 사람은 살아있을 때 거짓말을 하고, 거짓 역사를 쓴 사람이다. 그 중에는 크니도스의 크테시아스, 헤로도토스 등이 포함된다. (2.31)
한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크테시아스는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다리우스 1세의 무덤이 절벽 면에 위치하며, 밧줄 장치를 이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3.2. 《인디카》
《인디카》(Indica)는 크테시아스가 페르시아인의 관점에서 인도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 철학자, 예술가 등에 대한 묘사와 함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황금과 부, 그리고 온갖 경이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디카》는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인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후대 작가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단편적인 내용만 알 수 있다. 책에는 외다리 종족처럼 발이 거대하여 우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다소 황당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4. 평가 및 영향
크테시아스의 저술, 특히 《Περσικά고대 그리스어》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페르시카》는 총 23권으로, 첫 6권은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역사부터 키루스 2세에 의한 페르시아 제국 건국(기원전 550년)까지를, 나머지 17권은 그 이후부터 기원전 398년까지의 페르시아 역사를 다루었다. 그러나 현재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포티오스가 남긴 요약본과 아테나이오스, 플루타르코스, 니콜라오스 다마스케노스, 그리고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의 저작에 인용된 단편들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특히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역사서 제2권은 상당 부분 크테시아스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고대의 일부 학자들은 《페르시카》를 높이 평가하며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크테시아스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보았다. 특히 그가 서술한 앗시리아 왕들에 대한 내용은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설형문자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 현대 작가는 "크테시아스의 신뢰할 수 없음은 헤로도토스를 정확성의 모델처럼 보이게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크테시아스의 역사 서술을 매우 불신하여, 자신의 풍자 소설 《진실된 이야기》(Ἀληθῶν διηγημάτων고대 그리스어)에서 크테시아스를 '거짓 역사를 쓴 죄'로 벌받는 인물로 묘사했다. 루키아노스는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거짓말을 하고 거짓된 역사를 쓴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에는 크니도스의 크테시아스, 헤로도토스 등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크테시아스는 페르시아인의 관점에서 인도를 기록한 《Ἰνδικά고대 그리스어》라는 저술도 남겼다. 이 책에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 철학자, 장인들에 대한 묘사와 함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황금과 부, 온갖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록 내용의 신뢰성은 낮지만, 당시 페르시아인들이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인디카》 역시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후대 작가들의 저술에 인용된 단편들을 통해서만 내용을 알 수 있다.
한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크테시아스는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다리우스 1세의 무덤이 밧줄 장치를 이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절벽 면에 위치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