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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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소롤주는 팔라우의 주이며, 손소롤 섬, 파나 섬, 풀로 안나 섬, 메리르 섬 등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1522년 스페인 선박에 의해 발견된 이후, 스페인, 독일, 일본의 지배를 거쳐 미국 통치를 받다가 팔라우가 독립하면서 팔라우의 주로 편입되었다. 2012년 태풍 보파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는 손소롤 섬에만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행정 중심지인 동고사루가 위치하며, 2015년 기준 인구는 40명이다. 손소롤은 자체 헌법과 주지사, 입법부를 갖춘 자치 정부를 운영하며, 교육 시설로는 초등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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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롤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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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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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명칭 | 손소롤 |
원어 명칭 | Sonsorol |
유형 | 주 |
국가 | 팔라우 |
주도 | 동고사루 |
행정 | |
정부 형태 | 손소롤 주 의회 |
주지사 | 루시 페드로 |
지리 | |
면적 (총 면적) | 3.12 km² |
면적 (육지) | 3.12 km² |
면적 (물) | 0 km² |
인구 | |
총 인구 (2015년 기준) | 40명 |
인구 밀도 | auto |
공식 언어 | 팔라우어 영어 손소롤어 |
기타 정보 | |
ISO 코드 | PW-370 |
2. 역사
손소롤 제도에 대한 유럽인들의 첫 번째 기록은 1522년 5월 6일, 곤살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박 ''트리니다드''호가 손소롤과 파나 섬을 발견한 것이다.[2][3] 이 두 섬은 발견된 축일의 이름을 따 ''산 후안''(St. John, 성 요한) 섬으로 지도에 기록되었다. 1710년 11월 30일, 사르젠토 마요르 프란시스코 파디야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교 탐험대가 마닐라에서 출발한 파타체 ''산티시마 트리니다드''호를 타고 손소롤에 도착했다.[4] 1712년에는 스페인 해군 장교 베르나르도 데 에고이가 이 섬들을 탐험했다.[4]
1899년 스페인은 이 섬들을 독일 제국에 매각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독일은 통제권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팔라우가 독립할 때까지 통치했다.
2012년 12월, 태풍 보파로 인해 손소롤 주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코로르의 아라카베상으로 대피했다. 이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손소롤 섬만 다시 거주하게 되었으며, 2014년 현재 이 섬은 손소롤 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다.
2. 1. 초기 역사와 유럽인과의 접촉
손소롤 제도에 대한 유럽인들의 첫 번째 기록은 1522년 5월 6일, 곤살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박 ''트리니다드''호가 손소롤과 파나 섬을 발견한 것이다.[2][3] 이 두 섬은 발견된 축일의 이름을 따 ''산 후안''(St. John, 성 요한) 섬으로 지도에 기록되었다. 1710년 11월 30일, 사르젠토 마요르 프란시스코 파디야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교 탐험대가 마닐라에서 출발한 파타체 ''산티시마 트리니다드''호를 타고 손소롤에 도착했다.[4] 1712년에는 스페인 해군 장교 베르나르도 데 에고이가 이 섬들을 탐험했다.[4]1899년 스페인은 이 섬들을 독일 제국에 매각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독일은 통제권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팔라우가 독립할 때까지 통치했다.
2012년 12월, 태풍 보파로 인해 손소롤 주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코로르의 아라카베상으로 대피했다. 이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손소롤 섬만 다시 거주하게 되었으며, 2014년 현재 이 섬은 손소롤 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다.
2. 2. 외세의 지배
유럽인들이 손소롤 제도를 처음 목격한 것은 1522년 5월 6일 스페인 선박 ''트리니다드''호에 의해서였다.[2][3] 곤잘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가 지휘한 ''트리니다드''호는 손소롤과 파나 섬을 발견했다. 이 두 섬은 축일날 발견되었기에 통틀어 ''산 후안''(St. John, 성 요한) 섬으로 지도에 기록되었다. 1710년 11월 30일에는 사르젠토 마요르 프란시스코 파디야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교 탐험대가 마닐라에서 파타체 ''산티시마 트리니다드''호를 타고 손소롤에 도착했다.[4] 1712년에는 스페인 해군 장교 베르나르도 데 에고이가 지휘하는 탐험대가 이 섬들을 탐험했다.[4]1899년 스페인은 이 섬들을 독일 제국에 매각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독일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미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팔라우가 독립할 때까지 통치했다.
2012년 12월, 손소롤 주는 태풍 보파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코로르의 아라카베상으로 대피했다. 이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손소롤만 다시 거주하게 되었는데, 이는 물자를 조달하고 보내는 데 더 저렴하고 가깝기 때문이었다. 2014년 현재 이 섬은 이 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다.
2. 3. 팔라우 독립 이후
손소롤 제도에 대한 유럽인들의 첫 번째 목격은 1522년 5월 6일 곤잘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박 ''트리니다드''호에 의해 손소롤과 파나 섬이 발견된 것이다.[2][3] 이 두 섬은 축일날 발견되었기에 통틀어 ''산 후안''(St. John, 성 요한) 섬으로 지도에 기록되었다. 사르젠토 마요르 프란시스코 파디야가 지휘하는 스페인 선교 탐험대는 1710년 11월 30일 마닐라에서 파타체 ''산티시마 트리니다드''호를 타고 손소롤에 도착했다. 1712년에는 스페인 해군 장교 베르나르도 데 에고이가 지휘하는 탐험대가 이 섬들을 탐험했다.[4]1899년 스페인은 이 섬들을 독일 제국에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독일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미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팔라우가 독립할 때까지 통치했다.
2012년 12월, 손소롤 주는 태풍 보파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코로르의 아라카베상으로 대피했다. 손소롤, 풀로 안나, 메리르에서 주민들이 대피했다. 몇 달 후,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손소롤만 다시 거주하게 되었는데, 이는 물자를 조달하고 보내는 데 더 저렴하고 가깝기 때문이었다. 42명이 섬으로 돌아왔고, 2014년 현재 이 섬은 이 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다.
3. 지리
(km²)
(2000년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