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사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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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림사 (칠곡군)는 544년 신라 진흥왕 때 명관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 삼천불전, 오층전탑 등이 있으며, 대웅전의 목조석가삼존불좌상과 삼천불전의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오층전탑이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오층전탑은 9세기 신라 시대의 건축물로, 상륜부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높은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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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사 (칠곡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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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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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연대 | 삼국시대 544년(신라 진흥왕 5년) |
창건자 | 명관(明觀) |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
문화재 | 송림사 오층전탑 등 |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송림길 73 |
2. 연혁
2. 1. 삼국시대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중국 진(晉)에서 귀국한 승려 명관(明觀)이 진(晉)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절을 창건하였다. 경내의 전탑도 이때 세워졌다.2. 2. 후삼국시대
909년(신라 효공왕 13년) 최치원이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를 썼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마정계사(摩頂溪寺)'는 송림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2. 3. 고려시대
1022년(선종 9년)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었다. 1235년(고종 22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1251년(고종 38년) ~ 1322년(충숙왕 9년)에는 보감국사가 주석하였다.2. 4.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1686년(숙종 12년) 승려 기성(箕城)이 중건하였다. 1858년(철종 9년) 영구 대사가 중창하였다.2. 5. 대한민국
1950년 이전 송림사에는 대웅전과 명부전, 그리고 전탑만이 있었고, 대웅전 앞에는 소가 매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사찰 근처에 살았던 현지 노인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1970년에는 황수영 박사가 송림사에서 나온 청동 향로(높이 24.1cm)의 명문을 조사했다. 이 향로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소재가 불분명하다. 조사 결과, 향로에는 '지정 2년명 송림사향(至正二年銘 松林寺香)'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1342년(고려)에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에는 대웅전을 전면 해체하여 보수하고, 선열당 보수 및 설법전 단청 공사를 완료하였다.
3. 주요 건물 및 유물
송림사의 건물에 관한 기록은 1657년(효종 8년) 중수 당시에 작성된 《팔공산송림사대웅전불상조성이필봉안기》(八空山松林寺大雄殿佛像造成已畢奉安記)와 1775년(영조 51년)의 《대웅전중수기》, 1850년 (철종 1년)에 제작된 《칠곡송림사대웅전중수상량문》(漆谷松林寺大雄殿重修上梁文) 등에 있다. 이 기록을 따르기로 한다.
송림사 대웅전은 1597년(선조 30년)에 소실된 것을 1657년 중창하였고, 그 후 1755년과 1850년에 중수하였다. 17세기 중후반의 한국 불교건축에서 맞배지붕에 다포식 주불전 건물이 일반화되었는데, 송림사 대웅전은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면적 139.44m2). 대웅전 안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木造釋迦三尊佛坐像)은 효종 8년에 조성된 것으로 2009년 3월 5일 보물 제1605호로 승격되었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어필로 알려져 있다.
삼천불전에는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2009년 보물 제1606호로 지정되었다. 복장 발원문을 통해 효종 6년(1655년) 조각승 도우가 조성한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2012년 12월 17일 새벽 삼천불전에 괴한이 들어와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가운데 아미타여래상 옆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을 고의로 넘어뜨렸다. 이로 인해 불상의 도금이 벗겨지고 관음보살상의 화관이 훼손되었다. CCTV 분석과 지문 대조 작업을 통해 범행 하루 만에 범인이 검거되었는데, 범인은 43세 남성으로 예비승려였다.
보물 제189호이다. 9세기 신라의 건축물로 전고 16.13m, 기단 폭 7.3m의 전 및 화강석으로 조영된 탑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륜부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경내에 있는 《팔공산 송림사 유적비》에는 1959년 송림사 전탑의 해체 복원 당시 현재보다 훨씬 좁은 폭 4.5m 정도의 기단 석축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외형이 많이 변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진신사리 4과가 청유리병에 봉안되어 있었고, 연꽃무늬를 새기고 순금을 상감한 진신사리감(龕)과 청자로 만든 진신사리감, 옥지금엽보리수, 침향 9개, 은귀걸이 17개, 나무 구슬 1개, 청옥, 백옥, 수정, 유리(琉璃), 등 옥구슬 26개가 나왔다.
유물은 현재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함께 나온 발원문은 햇빛을 보는 순간 탄산(炭散)되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합실 안에는 조선 시대 작품인 본불과 파손 석불, 동불이 각각 2구 있었다고 하며 2층의 옥개에는 금동방형 사리기를 비롯하여 유리배, 수목형 금구, 옥류 등 찬란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상륜부 전탑 내에는 화려한 고려청자 합자가 발견되는 등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이 각 층에서 발견되어, 적어도 고려 시대에 상륜부가 해체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목불과 진신사리 4과는 탑에 다시 봉안되었다.
3. 1. 대웅전
송림사 대웅전은 1597년(선조 30년)에 소실된 것을 1657년 중창하였고, 그 후 1755년과 1850년에 중수하였다. 17세기 중후반의 한국 불교건축에서 맞배지붕에 다포식 주불전 건물이 일반화되었는데, 송림사 대웅전은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면적 139.44m2). 대웅전 안에 봉안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木造釋迦三尊佛坐像)은 효종 8년에 조성된 것으로 2009년 3월 5일 보물 제1605호로 승격되었다. 대웅전의 현판은 숙종의 어필로 알려져 있다.
3. 2. 삼천불전
삼천불전에는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2009년 보물 제1606호로 지정되었다. 복장 발원문을 통해 효종 6년(1655년) 조각승 도우가 조성한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2012년 12월 17일 새벽 삼천불전에 괴한이 들어와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가운데 아미타여래상 옆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을 고의로 넘어뜨렸다. 이로 인해 불상의 도금이 벗겨지고 관음보살상의 화관이 훼손되었다. CCTV 분석과 지문 대조 작업을 통해 범행 하루 만에 범인이 검거되었는데, 범인은 43세 남성으로 예비승려였다.
3. 3. 송림사 오층전탑 (보물 제189호)
보물 제189호이다. 9세기 신라의 건축물로 전고 16.13m, 기단 폭 7.3m의 전 및 화강석으로 조영된 탑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륜부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경내에 있는 《팔공산 송림사 유적비》에는 1959년 송림사 전탑의 해체 복원 당시 현재보다 훨씬 좁은 폭 4.5m 정도의 기단 석축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외형이 많이 변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진신사리 4과가 청유리병에 봉안되어 있었고, 연꽃무늬를 새기고 순금을 상감한 진신사리감(龕)과 청자로 만든 진신사리감, 옥지금엽보리수, 침향 9개, 은귀걸이 17개, 나무 구슬 1개, 청옥, 백옥, 수정, 유리(琉璃), 등 옥구슬 26개가 나왔다.
유물은 현재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함께 나온 발원문은 햇빛을 보는 순간 탄산(炭散)되어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합실 안에는 조선 시대 작품인 본불과 파손 석불, 동불이 각각 2구 있었다고 하며 2층의 옥개에는 금동방형 사리기를 비롯하여 유리배, 수목형 금구, 옥류 등 찬란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상륜부 전탑 내에는 화려한 고려청자 합자가 발견되는 등 시대를 달리하는 유물이 각 층에서 발견되어, 적어도 고려 시대에 상륜부가 해체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목불과 진신사리 4과는 탑에 다시 봉안되었다.
3. 4. 나한전(응진전)
3. 5.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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