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궁주
1. 개요
수령궁주는 고려 명종의 손녀이자 강종과 사평왕후의 딸로, 1174년 말 또는 1175년 무렵에 태어났다. 1212년 궁주에 책봉되었으며, 하원공 왕춘과 혼인하여 아들 왕전을 낳았다. 왕전은 가순궁주와 결혼했으며, 이들의 딸 경창궁주는 고려 원종과 혼인하였다. 수령궁주는 경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사망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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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족 -
왕우 (고려 왕족)
왕우는 고려 신종의 7대손이자 공양왕의 친형으로, 공양왕 즉위 후 정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딸이 태조의 며느리가 되어 고려 왕실의 제사를 맡게 되었다. -
고려의 왕족 -
왕면
왕면은 고려 의종의 사위로, 수사공 등의 관작을 받았으며, 순후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의술에 정통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등 헌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무신정권 -
원종 (고려)
원종은 고려 고종의 장남으로 몽골과의 강화 조약을 위해 원나라에 갔다가 즉위하여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으며, 임연의 쿠데타와 삼별초의 항쟁을 겪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 1274년에 사망했다. -
무신정권 -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항쟁은 최씨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원종의 친몽 정책과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1270년 강화도에서 시작,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며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고려-원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1273년 진압되어 고려의 몽골 지배 강화와 원의 제주도 직접 통치를 가져왔으며, 민족적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무신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다.
2. 생애
수령궁주는 고려 강종과 사평왕후의 딸이다. 어머니 사평왕후는 무신정권의 집권자 이의방의 딸이었으나, 이의방이 정균이 일으킨 정변으로 주살되면서 폐태자비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고려사》에는 어머니 사평왕후가 태자비가 되어 수령궁주를 낳고 이의방이 죽은 뒤에 쫓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평왕후가 태자비에 책봉된 것은 1174년 3월이고, 이의방이 주살된 것은 같은 해 12월의 일이므로, 수령궁주는 1174년 말 혹은 1175년 무렵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강종 원년,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종실 하원공 왕춘과 혼인하였다. 하원공은 현종과 원혜왕후의 아들인 평양공 왕기의 후손이다. 수령궁주는 이후 시호를 '경렬'(敬烈)이라 받았다.
2.1. 가계 및 초기 생애
강종과 사평왕후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사평왕후는 무신정권의 집권자 이의방의 딸로, 강종이 태자로 있던 시절 결혼하여 태자비가 되었다. 그러나 이의방이 정균이 일으킨 정변으로 주살되면서 사평왕후는 폐태자비가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사》 열전 권88에는 어머니 사평왕후가 태자비가 되어 수령궁주를 낳고 이의방이 죽은 뒤에 쫓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평왕후가 태자비에 책봉된 것은 1174년 3월이고, 이의방이 주살된 것은 같은 해 12월의 일이므로, 1174년 말 혹은 1175년 무렵에 태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어머니의 폐위와 행방불명에도 불구하고, 족보에는 왕씨 부인이 1178년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2.2. 공주 시절과 혼인
1212년(강종 원년)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었으며, 이후 종실 하원공 왕춘과 혼인하였다. 하원공은 현종과 원혜왕후의 아들인 평양공 왕기의 후손이다. 하원공은 이미 신종과 선정태후의 딸 효회공주와 혼인한 상태였으나, 1199년(신종 2년) 효회공주가 불과 17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수령궁주와 재혼하였다.
수령궁주는 1210년에 아들 왕전(王佺)을 낳았는데, 그는 나중에 성평왕후와 희종의 넷째 딸인 가순궁주와 결혼했다. 수령궁주의 딸 경창궁주는 1244년에 원종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