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홍씨
1. 개요
숙빈 홍씨는 조선 문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남양 홍씨이며, 한성부윤 홍심의 딸이다. 1431년 문종의 세자 시절 후궁으로 간택되어 승휘가 되었고, 문종 즉위 후 귀인으로 진급했다. 단종 즉위 후 숙빈으로 봉해졌으며, 단종비 간택에 참여했다. 1441년 공주를 낳았으나 4세에 사망했고, 사망 시기나 묘소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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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종 -
세조 (조선)
세조는 조선의 제7대 왕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육조직계제를 실시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했다. -
조선 문종 -
현덕왕후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의 후궁이자 단종의 어머니로,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 후 왕후로 추존, 세조 즉위 후 폐위되었다가 중종 때 복위되어 명예를 회복한 인물이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나씨 (중종)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는 나주 나씨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26세에 출산 중 사망하여 경빈 박씨와의 관계 속에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묘는 이천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조선의 후궁 -
숙의 방씨
숙의 방씨는 철종의 후궁으로 두 딸을 낳았으나 모두 요절하였고, 사후 조귀인의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으며 묘는 서삼릉 후궁 묘역으로 이장, 해당 묘역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드라마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조선 문종의 후궁이다. 남양 홍씨(南陽 洪氏)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성부윤을 지낸 홍심(洪深)이며 남동생은 좌의정을 지낸 홍응(洪應)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418년생인 현덕왕후 권씨보다 조금 어렸다는 기록을 통해 1418년 이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431년(세종 13년) 세자였던 문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고, 종4품 승휘에 봉해졌다. 이후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폐출되자 현덕왕후 권씨와 함께 새로운 세자빈 후보로 거론되었다. 문종은 홍씨를 더 마음에 들어 했으나, 세종은 딸(경혜공주)을 낳았고 나이가 더 많은 권씨를 세자빈으로 결정하였다. 홍씨는 문종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으나 4살에 요절하였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종1품 귀인에 봉해졌으며, 당시 정비 현덕왕후가 이미 사망하여 중전 자리가 비어 있었으므로 홍씨가 내명부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며 내전을 다스렸다. 1452년(단종 즉위년) 단종이 즉위한 후에는 정1품 빈으로 진봉되어 숙빈(肅嬪)이 되었다. 이후 정순왕후가 왕비로 책봉되면서 내명부 수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숙빈 홍씨가 언제 사망했는지, 무덤이 어디 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2.1. 가계
명문가의 딸로, 아버지는 한성부윤을 지낸 홍심(洪深)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 부인이었다. 할아버지는 홍덕보(洪德보)이다. 남동생은 좌의정을 지내고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진 홍응(洪應)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문종의 세자빈을 다시 정할 때 1418년에 태어난 현덕왕후 권씨보다 나이가 조금 어리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를 통해 1418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2.2. 후궁 시절
1431년(세종 13년) 음력 1월 19일,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권전의 딸 권씨, 정갑손의 딸 정씨와 함께 세자의 후궁으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이후 세 후궁의 아버지들은 음력 2월 12일 동궁에 딸을 바친 공으로 쌀과 콩 각각 30석을 하사받았다. 세 후궁은 음력 3월 13일 동궁에 정식으로 바쳐졌으며, 음력 3월 15일 모두 종4품 승휘에 봉해졌다.
이후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가 연달아 폐출되면서 권씨와 홍씨가 새 세자빈의 물망에 올랐다. 이때 문종은 홍씨를 조금 더 낫게 여겼으나, 세종은 당시 권씨가 홍씨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고 이미 딸(경혜공주)을 낳았다는 이유로 권씨를 세자빈으로 결정하였다.
홍씨는 1441년(세종 23년) 세자의 딸을 낳았으나, 이 딸은 1444년(세종 27년) 음력 12월 4일 4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즉위하자 종1품 귀인에 책봉되었다. 당시 문종의 정비 현덕왕후는 1441년 단종을 낳고 이미 사망하여 중전 자리가 비어 있었으므로, 홍씨가 내명부를 총괄하며 내전을 다스렸다.
단종 즉위 후인 1452년(단종 즉위년) 음력 8월 7일, 정1품 빈(嬪)에 책봉되어 숙빈(肅嬪)이 되었다. '숙(肅)'은 "존경스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1453년(단종 1년)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사된 후에는 안평대군의 작은 집을 하사받아 거처로 삼았다. 1454년(단종 2년)에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를 간택하는 자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정순왕후가 왕비로 책봉되면서 홍씨는 내명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3. 사망과 후손
숙빈 홍씨가 언제 사망했는지, 무덤이 어디 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호는 숙빈(肅嬪)이다. 남편 문종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으나, 이 딸은 4살의 어린 나이로 요절하였다.
남동생 홍응의 아들이자 숙빈 홍씨의 조카인 홍상(洪裳)은 1466년(세조 12년)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딸인 명숙공주와 결혼하여 당양위(當陽尉)에 봉해졌다.
3. 가족 관계
본관은 남양 홍씨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 홍심(洪深)이고 어머니는 정부인 파평 윤씨이다. 남동생으로는 의정부 좌의정을 지낸 홍응(洪應) 등이 있다.
남편은 제5대 국왕 문종이며, 1441년 딸인 옹주를 낳았으나 1444년 일찍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