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수 (사람)
1. 개요
숙수는 신나라에서 후한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풍이의 천거를 받아 광무제에게 등용되었다. 그는 요기, 단건, 좌륭과 함께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으로 갔으며, 왕랑 토벌에 참여한 공로로 파로대장군에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25년 12월, 곡량에서 오교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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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사망 -
한 경시제
한 경시제 유현은 왕망의 신나라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녹림군의 지지를 받아 잠시 한나라를 재건했으나, 유약한 성격과 지도력 부재로 빠르게 몰락한 황제이다. -
25년 사망 -
유자 영
유자 영은 전한 평제의 후계자로 옹립되었으나 왕망의 섭정 하에 실권 없이 지내다 신나라 건국 후 공으로 강등되었고, 왕망 패망 후 한나라 부흥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다가 진압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
쉬창시 출신 -
마은
마은은 목수 출신으로 당나라 말 혼란기에 무안군 절도사를 거쳐 초왕에 봉해진 후, 후량에 복속 외교 및 차 무역 장려로 초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킨 오대십국 시대 초나라의 창건자이자 초대 왕이다. -
쉬창시 출신 -
전령자
전령자는 당나라 말기 환관으로 의종과 희종 시기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당나라 쇠퇴에 영향을 미쳤으며, 희종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좌지우지했으나 황소의 난을 거치며 민심을 잃고 몰락하여 그의 권력 남용과 횡포는 당나라 혼란을 심화시킨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
후한의 장군 -
동탁
동탁은 후한 말 군벌로, 폭정과 권력 찬탈을 시도했으며,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상국에 올랐으나 여포에게 암살당했으며, 독재와 폭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후한의 장군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2. 생애
요기·단건(段建)·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되었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2.1. 초기 생애와 등용
요기·단건(段建)·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되었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무 원년(25년) 12월, 숙수는 곡량(위군)에서 오교(하북 지방민군)를 토벌했지만, 이 때 전사했다.
2.2. 파로대장군 임명과 최후
요기, 단건(段建), 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처음에는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된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부성의 장인 묘맹도 종사로 등용되었다.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