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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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숙수는 신나라에서 후한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풍이의 천거를 받아 광무제에게 등용되었다. 그는 요기, 단건, 좌륭과 함께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으로 갔으며, 왕랑 토벌에 참여한 공로로 파로대장군에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25년 12월, 곡량에서 오교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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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요기·단건(段建)·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되었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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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
시대신나라 - 후한 시대
생몰년생년 미상 - 25년 (건무 1년)
본관·출신지예주영천군
직관연사〔유수〕→파로대장군〔후한〕
진영·소속광무제(유수)

2.1. 초기 생애와 등용

요기·단건(段建)·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되었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무 원년(25년) 12월, 숙수는 곡량(위군)에서 오교(하북 지방민군)를 토벌했지만, 이 때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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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수
시대신나라 - 후한 시대
생몰년생년 미상 - 25년 (건무 1년)
본관·출신지예주영천군
직관연사〔유수〕→파로대장군〔후한〕
진영·소속광무제(유수)

2.2. 파로대장군 임명과 최후

요기, 단건(段建), 좌륭(左隆)과 함께 같은 군 사람 풍이의 천거를 받아, 당시 현한의 사례교위였던 광무제에게 임용되어 낙양으로 갔다.

건무 원년(25년) 12월, 파로대장군(破虜大將軍) 숙수는 곡량(曲梁)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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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숙수
시대 - 후한 시대
생몰년생년 미상 - 25년 (건무 1년)
자·별호〔불상〕
본관·출신지 등예주영천군
직관연사〔유수〕→파로대장군〔후한〕
작위·호칭 등-
진영·소속 등광무제(유수)
가족·일족〔불상〕


처음에는 신나라의 영천군 연사였던 풍이는 경시 원년(23년)에 유수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사촌 형제 풍효 등의 추천을 받아 유수에 등용된다. 그 후, 풍이는 자신이 지키던 부성(영천군)을 개성하고 유수의 주부로 임명되었으며, 부성의 장인 묘맹도 종사로 등용되었다. 이때 숙수는 요기, 단건(은건), 좌륭과 함께 풍이로부터 동향의 선비로 추천을 받아 모두 유수에게 연사로 등용되어 낙양까지 따랐다.

경시 2년(24년), 하북의 왕랑 멸망 후에 요기는 호아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며, 숙수도 아마 이때 파로대장군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적은 불명이지만, 이 승진을 보아 요기와 마찬가지로 왕랑 토벌에서 군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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