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김씨 (중종)
1. 개요
숙의 김씨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다. 인종 때 종3품 숙용이었으며, 명종 때 종2품 숙의로 진봉되었다. 중종의 명으로 숙원 이씨의 소생인 덕양군을 길렀으며, 1562년 이전에 사망했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묘가 있으며, 덕양군의 후손들이 봉사하고 전주 이씨 덕양군파에서 관리하고 있다. 묘에는 묘표, 문인석 등 석물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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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한국 사람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
조선 중종 -
숙의 나씨 (중종)
조선 중종의 후궁인 숙의 나씨는 나주 나씨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26세에 출산 중 사망하여 경빈 박씨와의 관계 속에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그녀의 묘는 이천시의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조선 중종 -
임꺽정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기에 양주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빈민을 구제한 의적으로, 관군에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힌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중종의 후궁이다. 인종 때 종3품 숙용이었으며, 1566년(명종 21년) 기록에 종2품 숙의로 칭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진봉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종의 또다른 후궁 숙원 이씨가 덕양군을 낳고 5일만에 산고로 사망하자, 중종의 명으로 덕양군을 대신 길렀다. 김씨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묘표 건립이 1562년(명종 17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임은 확실하다.
3. 숙의 김씨 묘
숙의 김씨의 묘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의 북동쪽 구릉에 있으며, 원래 고양에 있던 것을 196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한 것이다. 김씨의 묘는 덕양군을 키워 낸 인연으로 덕양군의 후손들이 봉사하였으며, 지금도 전주 이씨 덕양군파에서 관리하고 있다. 봉분은 활개를 갖춘 높이 150cm, 직경 520cm의 원형 형태이며, 묘역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 등의 석물이 갖춰져 있다.
대개 같은 모양의 문인석이 묘소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김씨의 묘는 좌우 문인석의 형태가 다르다. 우측의 문인석은 오른손을 왼손 위로 올린 상태로 홀을 잡은 형태이고, 좌측의 문인석은 양손을 포개서 홀을 잡은 형태이며, 얼굴 형태 등도 서로 다르다. 이는 1965년 이장 때 문인석 1기가 파괴된 까닭에 한쪽만 새로 들여왔을 수도 있다. 향로석은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봉분 앞에는 방부원수 양식으로 된 144.5cm 크기의 묘표가 세워져 있으며, 해서체로 "숙의김씨지묘(淑儀金氏之墓)"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