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정옹주 (중종)
1. 개요
숙정옹주는 조선 중종의 서녀로, 숙의 김씨의 딸이다. 1525년에 태어나 1534년 능성 구씨 구한과 혼인했으며, 구한은 능창위에 봉해졌다. 옹주는 토지 요구와 가옥 규모 초과 등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남편 사망 후 사위와 간통하여 1564년 문정왕후에 의해 사사되었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으며, 묘는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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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5년 출생 -
장거정
장거정은 명나라 만력제 시기의 정치가이자 개혁가로, 수보의 자리에 올라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여 명나라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525년 출생 -
다키가와 이치마스
다키가와 이치마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이세국 공략, 나가시마 포위전, 나가시노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다케다 가쓰요리 토벌에 공을 세우고 간토 어취차역에 임명되었으나, 혼노지의 변 이후 호조 씨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후 승려가 되어 은퇴하였다. -
1564년 사망 -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1세는 1556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1526년부터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1521년부터 오스트리아 대공을 지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 분가를 창시하고 헝가리와 보헤미아 왕위를 계승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의 기틀을 마련, 종교 갈등을 조정하여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이끌어냈고 중앙집권화와 가톨릭 부흥을 추진했다. -
1564년 사망 -
장 칼뱅
장 칼뱅은 프랑스 출신의 종교 개혁가로,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여 칼뱅주의를 확립하고 제네바에서 종교 개혁을 추진했으며, 개신교 신학과 서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숙정옹주는 중종의 서녀로, 숙의 김씨(淑儀 金氏)의 유일한 딸이다. 1525년(중종 20년)에 태어나 1534년(중종 29년) 능성 구씨 구한과 혼인하였고, 구한은 능창위(綾昌尉)에 봉해졌다. 옹주는 광주의 정금원 땅을 요구했다가 사헌부의 상소로 환납했고, 집 크기 문제로도 비판을 받았다. 남편 사후 사위와 간통하여 문정왕후에 의해 사사되었으며,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다. 구한과의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고, 장남 구사근은 벼슬을 받았다.
2.1. 출생과 혼인
중종의 서녀로, 숙의 김씨(淑儀 金氏)의 유일한 딸이다. 1525년(중종 20년)에 태어났으며, 10세 때인 1534년(중종 29년) 능성 구씨 구한과 혼인하였다. 이후 구한은 능창위(綾昌尉)에 봉해졌다.
2.2. 특권 요구와 논란
1534년(중종 29년) 음력 7월 20일, 숙정옹주는 약 100여 년간 훈련장으로 사용된 국유지인 광주의 정금원 땅을 요구하여 받았으나, 사헌부의 상소로 다시 국가에 환납하였다. 1538년(중종 33년)에는 옹주의 집 크기가 규정보다 6칸을 초과하여 중종의 명으로 헐게 되었는데, 규모만 줄이고 담장 등에 부리는 사치는 줄지 않아 계속 비판을 받았다.
2.3. 간통과 사사
숙정옹주는 남편 구한이 죽은 후 사위와 간통을 저질렀다. 이 일로 1564년(명종 19년) 문정왕후에 의해 40세의 나이로 사사되었다. 옹주의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다. 구한과의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으며, 장남 구사근은 명종에게 벼슬을 받았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 부왕 | 중종 | 1488년 | 1544년 | 조선 제11대 왕 |
| 생모 | 숙의 김씨 | ? | ? | |
| 시부 | 구신경(具信璟) | ? | ? | |
| 시모 | 고성 이씨 | ? | ? | 이균(李匀)의 딸 |
| 남편 | 구한(具澣) | 1524년 | 1558년 | 구완(具澣)이라고도 함 |
| 슬하 3남 3녀 | ||||
|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장남 | 구사근(具思謹) | 1542년 | 1562년 | |
| 며느리 | 광주 이씨 | ? | ? | 참판(參判) 이영현(李英賢)의 딸 |
| 양손자 | 구화(具崈) | 1570년 | ? | 차남 구사인(具思訒)의 친아들 |
| 장녀 | 구옥선(具玉善) | 1546년 | ? | |
| 사위 | 김정남(金正男) | ? | ? | |
| 외손자 | 김희(金憙) | 1567년 | ? | |
| 외손자 | 김지(金志) | 1569년 | ? | |
| 외손자 | 김억(金悥) | 1572년 | ? | |
| 차남 | 구사인(具思訒) | 1551년 | 1596년 | |
| 며느리 | 전주 이씨 | ? | ? | 이흠례(李欽禮)의 딸 |
| 손자 | 구옹(具㝘) | 1569년 | ? | |
| 손자 | 구화(具崈) | 1570년 | ? | |
| 손자 | 구밀(具密) | 1571년 | ? | |
| 손녀 | 구여정(具女貞) | 1573년 | ? | |
| 손녀 | 구말정(具末貞) | 1574년 | ? | |
| 손자 | 구연(具㝚) | 1577년 | ? | |
| 손자 | 구강(具㝩) | 1586년 | ? | |
| 차녀 | 구옥영(具玉英) | 1552년 | ? | |
| 사위 | 함평 이씨 이창(李瑒) | 1550년 | 1580년 | |
| 외손자 | 이경원(李敬元) | 1570년 | ? | |
| 외손자 | 이춘원(李春元) | 1571년 | ? | |
| 외손자 | 이충원(李忠元) | 1572년 | ? | |
| 외손자 | 이인원(李仁元) | 1574년 | ? | |
| 외손자 | 이필원(李弼元) | 1577년 | ? | |
| 3남 | 구사성(具思誠) | 1555년 | ? | 구사함(具思諴)이라고도 함 |
| 며느리 | 성주 이씨 | ? | ? | 별좌(別坐) 이미(李楣)의 딸 |
| 손녀 | 구여옥(具女玉) | 1569년 | ? | |
| 손녀 | 구여선(具女善) | 1571년 | ? | |
| 3녀 | 구효생(具孝生) | 1556년 | ? | |
| 사위 | 전주 이씨 이진(李瑱) | 1553년 | ? | |
| 외손자 | 이덕일(李德一) | 1577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