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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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바타 에이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50년부터 1960년까지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1952년에 71구 완봉승을 기록하며 NPB 최소 투구수 완봉 기록을 세웠고, 1952년부터 1956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등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한큐 브레이브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1999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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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에이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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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선수명 | 시바타 에이지 |
원어명 | 柴田 英治 |
로마자 표기 | Eiji Shibata |
출생일 | 1930년 11월 11일 |
사망일 | 1999년 8월 19일 (향년 68세) |
출신지 | 기후현 다지미시 |
신장 | 175 |
체중 | 68 |
수비 위치 | 투수 |
투구 | 우 |
타석 | 우 |
프로 입단 정보 | |
프로 입단 연도 | 1950년 |
첫 출장 | 1950년 |
마지막 경기 | 1960년 |
선수 경력 | |
소속 구단 | 한큐 브레이브스(1950 ~ 1960) |
코치 경력 | |
소속 구단 | 한큐 브레이브스(1970) |
2. 선수 경력
기후현립 다지미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1950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 1952년부터 1956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등[1]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으며, 1960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 1.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 (1950년 ~ 1960년)
기후 현립 다지미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1950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인 1950년에는 14경기에 등판하여 2승 4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1951년에는 33경기에 등판하여 6승 13패를 기록하며 경험을 쌓았다.1952년에는 28경기에 등판하여 10승 11패,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투수로 성장했다. 특히 같은 해 5월 11일 긴테쓰 펄스전에서는 71개의 공만 던지며 완봉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소 투구 수 완봉 기록이다.
1953년에는 17승 13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했고, 올스타전에도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1954년에는 17승 16패, 평균자책점 2.57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다. 1955년 17승, 1956년 12승을 거두며 1952년부터 1956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 1957년부터 1960년까지는 다소 하락세를 보였지만, 팀의 베테랑 투수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1960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코치 퇴임 후에는 카네하마 도기의 사장을 역임했다.[1] 1999년 8월 19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2][4] 향년 68세였다.
4. 상세 정보
(내용 없음)
4. 1. 개인 기록
- 올스타전 출장 : 1회(1953년)
- 9이닝 완봉 경기 최소 투구 수 : 71구 (1952년 5월 11일, 대 긴테쓰 펄스 4차전, 오사카 구장) ※ 완봉으로서는 NPB 최소 기록, 완투로서는 NPB 최소 타이 기록[5][3]
4. 2. 연도별 투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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