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릉
1. 개요
신문왕릉은 신라 제31대 왕인 신문왕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 반란을 진압하고 국학 설립, 9주 5소경 제도 설치, 9서당 완성 등 정치,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전제 왕권을 강화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낭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7년 황복사지 인근 발굴 조사 결과, 해당 무덤은 8세기 가릉으로 효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었고, 현재는 진평왕릉을 신문왕의 능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지고 있다.
| 이름 |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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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유형 | 사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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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181 |
| 지정일 | 1969년 8월 27일 |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번지 |
| 시대 | 남북국 시대 |
| 면적 | 15,463m2 |
| 지도 | 대한민국 |
| 꼬리표 | 경주 신문왕릉 |
| 문화재청 | 13,01810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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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 -
경주 감은사지
경주 감은사지는 삼국 통일 후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신문왕 때 완공된 사찰 터로, 금당 바닥 아래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특이한 구조와 쌍탑식 가람 배치, 신라 석탑 양식의 초기 형태를 보이는 동·서 삼층석탑이 특징이다. -
경주시의 사적 -
불국사
불국사는 김대성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중창을 시작하여 신라시대에 완공된 경주시 토함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신라 불교 건축의 정수이자 한국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경주시의 사적 -
대릉원
신라시대 고분군인 대릉원은 경주 황남동 일대에 위치하며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등의 고분이 있고, 특히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었다. -
신라의 왕릉 -
문무왕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국왕으로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불교 장려 등의 정책을 통해 신라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군주이다. -
신라의 왕릉 -
통일신라
통일신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부터 고려에 병합된 935년까지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며 왕권 강화와 불교 문화 번성, 해상 무역 장악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9세기 이후 쇠퇴하여 후삼국 시대를 거쳐 멸망한 시대를 말한다.
2.1. 정치 제도 정비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 통치를 위해 9주 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으며, 고구려, 백제, 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 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2.2. 군사 제도 정비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신라 중대 전제왕권을 확고히 하였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다.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시킨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전제왕권을 다졌다.
3. 신문왕릉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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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은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근 원형 봉토분으로, 전형적인 신라 왕릉의 형태를 보여준다. 둘레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았고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3.1. 둘레돌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아 올린 둘레돌은 봉분을 보호하고, 무덤의 외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44개의 삼각형 받침돌이 둘레돌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어, 오랜 세월 동안 무덤의 원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