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신익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신익상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신숙주의 후손이다. 166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때 갑인예송으로 파직되었다가 경신환국으로 복직하여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며, 소론으로 활동하며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이후 기사환국으로 유배되었으나 갑술환국으로 복귀하여 공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697년 사망했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고 시호는 정간이다.

2. 생애

신익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 신숙주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초기에는 설서, 검열, 주서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대에 지평, 이조좌랑, 헌납 등을 지냈으나 1674년 갑인예송으로 파직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복직하여 대사간, 대사헌을 역임하며 소론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부제학, 이조참판, 전라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도승지 등 여러 요직을 거쳤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직하여 공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을 거쳐 마침내 우의정에 올랐다. 숙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말년에는 판중추부사를 지내다 169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2. 1. 가계


  • 증조부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벌(申橃, 1523 ~ 1616)
  • 조부 : 신응구(申應榘, 1553 ~ 1623)
  • 조모 : 오숙란(吳淑蘭, 1572 ~ ?)[1]
  • * '''부친''' : 신량(申湸, 1596 ~ 1663)
  • * '''모친''' : 성주 이씨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경(李坰)의 딸
  • ** 누나 : 신혜정(申惠貞, 1616 ~ ?)
  • ** 누나 : 신혜강(申惠姜, 1618 ~ ?)
  • ** 누나 : 신임강(申壬姜, 1622 ~ ?)
  • ** 형 : 신필상(申必相, 1626 ~ ?)
  • ** 누나 : 신필현(申必賢, 1630 ~ ?)
  • ** 누나 : 신창현(申昌賢, 1633 ~ ?)
  • ** 남동생 : 신우상(申遇相, 1636 ~ ?)
  • * 장인 : 박철(朴徹, 1585 ~ 1656)
  • * 장모 : 이정일(李靜一, 1585 ~ ?)
  • ** '''부인''' : 박오임(朴五任, 1631 ~ ?)

'''장남''' : 신숙(申潚, 1658 ~ 1713)
'''차남''' : 신제(申濟)
'''장녀''' : 청주 한씨 한세기(韓世箕)의 처
'''차녀''' : 전주 이씨 이한종(李漢宗)의 처

2. 2. 관직 생활

영의정 신숙주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설서, 검열, 겸설서, 주서, 봉교 등을 거쳐 설서와 부교리를 지냈다.

숙종 대에 들어 지평, 이조좌랑, 헌납을 역임했으나, 1674년 갑인예송의 여파로 파직되었다. 이후 1680년 경신환국으로 정계에 복귀하여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곧이어 대사헌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소론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복직 후 부제학, 이조참판을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부제학을 지냈고, 이후 대사성, 부제학, 대사헌, 평안도관찰사, 부제학, 대사헌, 도승지, 이조참판, 대사간, 대사성, 경기도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 등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강화유수와 예조참판을 지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면서 다시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다. 5년 뒤인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직하여 공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이후 우참찬좌참찬으로 경연 지경연사를 겸임하였다. 곧 예조판서로 승진하였고, 판의금부사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마침내 우의정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신익상은 숙종의 깊은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9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정간(貞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3. 숙종의 신임

신익상은 숙종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능력을 인정받아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갑인예송의 여파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경신환국 이후 복직하여 대사간과 대사헌 같은 중요한 언관직을 맡았다.

이후 소론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부제학, 이조참판, 전라도관찰사, 대사성, 평안도관찰사, 도승지 등 중앙과 지방의 핵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러한 경력은 그가 숙종의 두터운 신임 아래 다양한 국정 경험을 쌓았음을 보여준다.

기사환국 때는 다시 정치적 시련을 겪고 유배되었지만, 갑술환국을 통해 정계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공조판서를 시작으로 우참찬, 좌참찬,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 최고위직을 차례로 역임하며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섰다.

특히, 마침내 우의정의 자리에 오른 것은 숙종의 각별한 총애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로 평가된다. 이는 여러 차례의 환국 속에서도 신익상이 숙종에게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음을 시사한다. 말년에는 판중추부사를 지내다 1697년 세상을 떠났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 역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2. 4. 말년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해 유배되었으나, 1694년 갑술환국을 계기로 복직하여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후 우참찬좌참찬을 역임하며 지경연사를 겸하였고, 예조판서로 승진하였다. 판의금부사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이후 우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말년에는 판중추부사를 지내다가 169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정간(貞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가족 관계


  • 증조부 :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벌(申橃, 1523 ~ 1616)
  • 조부 : 신응구(申應榘, 1553 ~ 1623)
  • 조모 : 오숙란(吳淑蘭, 1572 ~ ?)[1]
  • '''부친''' : 신량(申湸, 1596 ~ 1663)
  • '''모친''' : 성주 이씨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경(李坰)의 딸
  • * 누나 : 신혜정(申惠貞, 1616 ~ ?)
  • * 누나 : 신혜강(申惠姜, 1618 ~ ?)
  • * 누나 : 신임강(申壬姜, 1622 ~ ?)
  • * 형 : 신필상(申必相, 1626 ~ ?)
  • * 누나 : 신필현(申必賢, 1630 ~ ?)
  • * 누나 : 신창현(申昌賢, 1633 ~ ?)
  • * 남동생 : 신우상(申遇相, 1636 ~ ?)
  • 장인 : 박철(朴徹, 1585 ~ 1656)
  • 장모 : 이정일(李靜一, 1585 ~ ?)
  • '''부인''' : 박오임(朴五任, 1631 ~ ?)
  • * '''장남''' : 신숙(申潚, 1658 ~ 1713)
  • * '''차남''' : 신제(申濟)
  • * '''장녀''' : 청주 한씨 한세기(韓世箕)의 처
  • * '''차녀''' : 전주 이씨 이한종(李漢宗)의 처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