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만
1. 개요
심상만은 조선 시대 명문가 출신으로, 187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고종 시기에 한림, 동부승지, 이조참의, 대사성 등을 역임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성천부사로 파직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태복사장, 경모궁 제조, 경효전 제조, 영희전 제조 등을 거쳐 칙임관 3등까지 올랐다. 191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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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이조참의 -
이광좌
숙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영의정에 오른 소론의 중진 이광좌는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고 영조 초 대리집정을 맡았으나, 사후 노론의 탄핵으로 추탈되었다가 순종 때 복권되었으며, 저서로는 《운곡실기》가 있다. -
조선의 이조참의 -
이경억
이경억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44년 문과 장원 급제 후 효종과 현종 시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올라 국정을 총괄했고, 시호는 문익이다. -
대한제국 순종 -
순정효황후
순정효황후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황후로, 황태자비 책봉 후 순종 즉위와 함께 황후가 되었으나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이왕비로 격하되었고, 순종 사후에는 대비로 불리다 한국 전쟁 중 창덕궁을 지키고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낙선재에서 지내다 심장마비로 사망 후 유릉에 합장되었다. -
대한제국 순종 -
대한제국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은 갑오개혁으로 설립되어 의회적 성격을 갖추었으나, 공화정 수립 루머로 황제의 견제를 받았으며, 독립협회 폐지 이후 자문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되다가 1907년 기능이 종식되었다. -
1846년 출생 -
찰스 스튜어트 파넬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19세기 후반 아일랜드의 국민주의 지도자였으며, 아일랜드 의회에서 토지 개혁과 자치 운동을 이끌었으나, 피곳 사건과 오셰이 부인과의 불륜으로 인해 정치적 몰락을 겪었다. -
1846년 출생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헨리크 시엔키에비치는 폴란드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역사소설 삼부작과 《쿠오 바디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19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폴란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가계
2.1. 친가
* 14대조 : 심연원 - 영의정 · 청천부원군
* 13대조 : 심강 - 명종의 국구 영돈녕부사 · 청릉부원군 · 증 영의정
* 12대조 : 심의겸 - 서인의 초대 영수, 병조판서
* 11대조 : 심엄 - 옥과현감 · 증 영의정 · 청송부원군
* 10대조 : 심광세 - 홍문관 응교 · 증 이조참판
* 9대조 : 심총 - 경기도 광주부윤
* 8대조 : 심약하(돈녕부 판관) - 선조 왕자 경창군의 사위
* 7대조 : 심장
* 6대조 : 심우현
* 5대조 : 심박
* 고조부 : 심휘지
* 증조부 : 심능호
* 조부 : 심의동 - 돈녕부 도정
* 아버지 : 심성택
2.2. 양가
| 구분 | 관계 | 성명 | 비고 |
|---|---|---|---|
| 친가 | 14대조 | 심연원 | 영의정 · 청천부원군 |
| 13대조 | 심강 | 명종의 국구 영돈녕부사 · 청릉부원군 · 증 영의정 | |
| 12대조 | 심의겸 | 서인의 초대 영수, 병조판서 | |
| 11대조 | 심엄 | 옥과현감 · 증 영의정 · 청송부원군 | |
| 10대조 | 심광세 | 홍문관 응교 · 증 이조참판 | |
| 9대조 | 심총 | 경기도 광주부윤 | |
| 8대조 | 심약하 | 돈녕부 판관, 선조 왕자 경창군의 사위 | |
| 7대조 | 심장 | ||
| 6대조 | 심우현 | ||
| 5대조 | 심박 | ||
| 고조부 | 심휘지 | ||
| 증조부 | 심능호 | ||
| 조부 | 심의동 | 돈녕부 도정 | |
| 아버지 | 심성택 | ||
| 심상만은 심연원 - 심광세 - 심총 - 심약하 - 심장 - 심우현의 후손인 심성택(沈星澤)의 아들로 태어나, 심희순에게 양자로 갔다. | |||
| 양가 | 14대조 | 심달원 | 기묘명현 · 승문원 판교 · 증 이조판서 |
| 13대조 | 심자 | 선공감 첨정 · 증 좌찬성 | |
| 12대조 | 심우정 | 여주목사 · 증 이조판서 | |
| 11대조 | 심집 | 정사공신 좌의정 청원부원군(靑原府院君) 심기원의 당숙, 형조판서 · 예조판서 | |
| 10대조 | 심동귀 | 홍문관 응교 · 증 대사헌 | |
| 9대조 | 심유 | 홍문관 부제학 · 대사성 | |
| 8대조 | 심한주 | 고양군수 · 증 이조참의 | |
| 7대조 | 심봉휘 | 능주목사 · 증 이조참판 | |
| 6대조 | 심성희 | 이조참판 · 증 이조판서 | |
| 5대조 | 심공헌 | 증 좌찬성 | |
| 고조부 | 심염조 | 규장각 직제학 · 황해도 관찰사 · 증 영의정 | |
| 증조부 | 심상규 | 초계문신 · 규장각 제학 · 육조판서 · 문형(홍문관·예문관 대제학) · 영의정 · 원상 | |
| 조부 | 심정우 | 증 비서승(비서원 승지) | |
| 아버지 | 심희순 | 양자, 심연원 - 심광세 - 심은 - 심약명 - 심속 - 심득현의 후손인 심의필(沈宜弼)의 아들, 이조참의 · 대사성 · 증 홍문관 제학 | |
| 양가 | 장인 | 완림군 이재원 | 내무독판 · 종정경 · 판돈녕부사, 청송 심씨 심우영(沈愚永,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의 고손, 영의정 심지원의 5대손)의 사위 |
| 양가 | 부인 | 전주 이씨 | 완림군 이재원의 딸 |
3. 생애
심상만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관료이다. 1872년(고종 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1873년 한림(翰林)이 되었고, 1879년에는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1884년 이조참의, 1890년 대사성을 역임했다.
1894년 평안도 성천부사로 부임했으나, 동학농민운동 발생 시 관청을 비운 죄로 잠시 파직되기도 했다. 1897년 비서승 겸 장례에 제수되었고, 이후 궁내부 특진관에 올라 칙임관 4등이 되었다.
1916년 (순종 9년) 사망하였고, 순종은 그의 상에 특별히 100KRW을 하사하였다.
3.1. 조선 고종 시기
1872년(고종 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3년 한림(翰林)이 되었다.
1879년 특별히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884년 이조참의, 1890년 대사성을 지냈다.
1894년 관서지방(평안도) 성천부사로 나아갔을 때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관부(官府, 관청)를 비운 죄로 잠시 파직되었다.
1897년 비서승 겸 장례에 제수되었다. 얼마 뒤, 시종원 시종(侍從院 侍從)을 거쳐, 궁내부 특진관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3.2. 대한제국 고종 시기
1898년(고종 35년) 심상만은 태복사장(太僕司長) · 경모궁 제조(景慕宮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899년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 영희전 제조(永禧殿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1년 종묘서 제조(宗廟署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3년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4년 장례원 소경(掌隷院少卿) · 홍릉 제조(洪陵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7년 영희전 제조(永禧殿提調) · 기로소 비서장(耆老所祕書長) · 홍릉 제조(洪陵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3등에 올랐다.
3.3. 일제강점기
1916년 (순종 9년) 순종이 전 장례원 소경(掌禮院少卿) 심상만의 상(喪)에 특별히 100KRW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