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
1. 개요
심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의 장인이다. 1542년 딸이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었으며, 1543년 진사에 합격하여 활인서 별좌를 지냈다. 사위인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고 딸이 왕비가 되면서 청릉부원군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이량, 심통원과의 갈등 속에서 신진 사류를 보호했으며, 사후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신도비는 심수경이 짓고 심열이 글씨를 썼다. 그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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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심강 |
|---|---|
| 한자 이름 | 沈鋼 |
| 군호 |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
| 출생일 | 1514년 |
| 사망일 | 1567년 |
| 자 | 백유(伯柔) |
| 본관 | 청송(靑松) |
| 시호 | 익효(翼孝) |
| 사망지 | 조선 |
| 국적 | 조선 |
| 배우자 | 완산부부인 전주 이씨 |
| 자녀 | 8남 3녀 |
| 부친 | 심연원 |
|---|---|
| 모친 | 정경부인 경주 김씨 |
| 외조부 | 김당 |
| 장인 | 전성군 이대 |
| 처남 | 이량 |
| 처조카 | 이정빈 |
| 숙부 | 심달원 |
| 숙부 | 심봉원 |
| 숙부 | 심통원 |
| 사촌 | 심전 |
| 사촌 | 심건 |
| 사촌 | 심뇌 |
| 당질 | 심우승 |
| 당질 | 심희수 |
| 사돈 | 중종 |
| 사돈 | 이발 |
| 사돈 | 한흥서 |
| 사돈 | 정숙 |
| 사돈 | 이제 |
| 사돈 | 허탁 |
| 사돈 | 정인수 |
| 사돈 | 봉성군 |
| 사돈 | 남응서 |
| 사돈 | 이경 |
| 사돈 | 신사원 |
| 사돈 | 임열 |
| 사돈 | 수원군 이덕수 |
| 사위 | 명종 |
| 사위 | 임영로 |
| 사위 | 추계수 이벽 |
| 장녀 | 인순왕후 |
|---|---|
| 장남 | 심인겸 |
| 차남 | 심의겸 |
| 3남 | 심예겸 |
| 4남 | 심지겸 |
| 5남 | 심신겸 |
| 6남 | 심충겸 |
| 7남 | 심효겸 |
| 8남 | 심제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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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총관 -
김만기 (조선)
김만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1653년 문과 급제 후 효종과 숙종 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서인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딸이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가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서로는 《서석문집》이 있다. -
조선의 부총관 -
심각
조선 후기 문신 심각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정조 즉위 후 홍인한과 정후겸을 토죄하는 데 참여했으며, 남인 명문 가문 출신으로 윤선도, 정약용 가문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1567년 사망 -
황진이
황진이는 조선 시대 중종 때 활동한 기생이자 시인, 예술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용모로 당대 명사들과 교류하며 시조 작품을 통해 남녀 간의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여성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
1567년 사망 -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
헨리 스튜어트는 단리 경으로도 알려진 스코틀랜드 귀족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으나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 여왕과의 결혼 생활은 불화로 끝났고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아들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어 두 나라를 통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조선 명종 -
태강릉
태릉은 조선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단릉으로, 원래 중종의 정릉 옆에 묻히길 원했으나 침수 문제로 현재 위치에 안장되었으며, 제향은 태릉봉향회에서 주관하고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 인근에 강릉과 태릉선수촌이 있고 2014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
조선 명종 -
임꺽정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기에 양주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빈민을 구제한 의적으로, 관군에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힌다.
2. 생애
1542년 딸이 경원대군과 혼인하였고, 1545년 사위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면서 국구가 되어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아들 심충겸이 호성공신에 책록됨에 따라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으로 책록되었다. 신도비문은 좌의정 심수경이 짓고 손자 심열이 글씨를 썼다.
2.1. 가계와 초기 활동
1542년(중종 37년) 그의 딸이 경원대군의 부인(대군부인, 부부인)이 되었다. 1543년 진사에 합격하였고, 이후 음보로 활인서 별좌(活人署別座)에 임명되었다. 1545년 사위인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고, 그의 딸 역시 왕비가 되면서 국구(왕비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의 자리에 올랐다.
2.2. 명종 즉위 후
1545년 사위인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고, 그의 딸(인순왕후)이 왕비가 되자, 국구(왕비의 아버지)로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아들 심충겸이 호성공신에 책록됨에 따라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으로 책록되었다. 심강의 신도비문은 좌의정 심수경이 짓고, 손자인 영의정 심열이 글씨를 쓰고 전액하였다.
2.3. 이량, 심통원과의 갈등
자신의 처남이자 권신이었던 이량이 박소립, 심의겸 등 신진 사류들을 제거하려 하자,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기대항, 심의겸과 함께 이량의 세력을 제거하고 화를 입을 뻔했던 신진 사류들을 구하였다. 또한 숙부인 권신 심통원이 박순과 같은 신진 사류를 제거하려고 할 때에도 나서서 이들을 보호하였다.
3. 평가
명종의 장인이자 인순왕후의 아버지로서 왕실의 총애를 받았으나, 성품 자체는 남을 시기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평가가 있다. 일례로 박순 등이 임백령의 시호 문제로 윤원형의 노여움을 사 큰 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심통원을 통해 명종에게 뜻을 전달하여 박순 등이 화를 면하게 도왔다.
또한 자신의 처남인 이양이 권세를 이용하여 이감 등과 함께 명망 있는 선비들을 공격하자, 아들 심의겸과 함께 이를 바로잡으려 하였다. 심강은 이 문제를 조용히 궁중에 알리고 기대항을 시켜 이양 등을 탄핵하게 하여 결국 조정에서 몰아냈는데, 이 일로 당시 사림들로부터 고맙다는 평을 들었다.
3.1. 부정적 평가
명종의 장인이자 인순왕후의 아버지로서 왕실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재물을 탐했다는 비판이 있다. 뇌물을 받아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했으며, 많은 토지와 집을 부당하게 차지하고 다른 사람의 노비를 빼앗는 등 재산을 불법적으로 모았다는 기록이 명종실록 졸기에 남아있다.
4. 관련 문화재
* 심강 신도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