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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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달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17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이후 복직하여 외교 분야에서 활약했다. 아들 심전이 광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영조 때 기묘명현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심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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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계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심회(沈澮)의 증손이자, 영의정에 증직된 심순문(沈順門)의 차남이다.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며, 돈녕부사 심봉원(沈逢源), 좌의정을 지낸 심통원(沈通源)의 형이다.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윤희인(尹希仁)의 사위이기도 하다. 7촌 아저씨이자 금천현감 심형의 양자가 되었다.

* 아버지 : 심순문(沈順門)
* 어머니 : 평산 신씨 - 신영석(申永錫)의 딸
* 부인 : 파평 윤씨 - 이조참판 윤희인(尹希仁)의 딸

2.1.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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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비고
증조부심회(沈澮)영의정
할아버지심원(沈湲)
아버지심순문(沈順門)영의정 증직
어머니평산 신씨신영석(申永錫)의 딸
심연원(沈蓮源)영의정
남동생심봉원(沈逢源)돈녕부
남동생심통원(沈通源)좌의정
부인파평 윤씨윤희인(尹希仁)의 딸
장녀심난봉(沈鸞鳯)
사위황양정(荒壤正) 이수린(李壽麟)
장남심진(沈搢)
며느리고령 신씨신석윤(申石澗)의 딸
(첩)며느리미상
차남심자(沈鎡)
며느리능성 구씨구사겸(具思謙)의 딸
3남심전(沈銓)
며느리전의 이씨이한(李翰)의 딸
(첩)며느리우옥(友玉)양민 출신
4남심수(沈鐩)심순경의 차남 심흥원에게 출계
며느리죽산 박씨박종호(朴宗豪)의 딸

3. 관력

151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된 뒤 예문관검열, 홍문관 저작, 승정원주서 등을 지냈다. 1519년 홍문관부수찬, 이조좌랑으로 재직 중에는 중국어를 잘 하여 승정원의 직책을 겸직하였다. 그해 홍문관 수찬 겸 경연관 검토관을 거쳐,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으로 숙직하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의 당이라 하여, 제1착으로 투옥된 후,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이조좌랑을 거쳐, 1522년 성균관 직강을 지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1528년 명나라에 가는 성절사(聖節使)를 질정관으로 수행했다. 1523년)중종 18년) 개성부도사, 1528년 훈련원부정이 되고, 1531년 성균관사성, 장악원정, 군기시정을 역임했다. 이후 승문원판교에 임명됐다가 파직당했다.

이후, 호군(護軍)·승문원 판교(判校)를 거쳐, 1534년 장악원정으로 복직했다. 1534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다. 1535년 통례원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그해 통례원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뒤에 아들 심전이 광국 원종공신 2등이 되자 그의 영귀로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홍문관제학(吏曹參判兼 同知經筵事 弘文館提學)에 추증되었다. 영조 때,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에 책록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1. 기묘사화와 유배

1519년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으로 숙직하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의 일파로 몰려 첫 번째로 투옥된 후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이조좌랑을 거쳐 1522년 성균관 직강을 지냈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1528년 명나라에 가는 성절사(聖節使)를 질정관으로 수행했다.

3.2. 복직과 외교 활동

1534년 장악원정으로 복직하고, 같은 해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다. 1535년 통례원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그해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아들 심전이 광국 원종공신 2등이 되자,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홍문관제학(吏曹參判兼 同知經筵事 弘文館提學)에 추증되었다. 영조 때,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책록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3. 파직과 재등용

1519년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으로 숙직하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의 당이라 하여, 제1착으로 투옥된 후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이조좌랑을 거쳐, 1522년 성균관 직강을 지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1528년 명나라에 가는 성절사(聖節使)를 질정관으로 수행했다. 1523년(중종 18년) 개성부도사, 1528년 훈련원부정이 되고, 1531년 성균관사성, 장악원정, 군기시정을 역임했다. 이후 승문원판교에 임명됐다가 파직당했다.

이후 호군(護軍)·승문원 판교(判校)를 거쳐, 1534년 장악원정으로 복직했다. 같은 해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다. 1535년 통례원 우통례(右通禮)를 거쳐 그해 통례원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뒤에 아들 심전이 광국 원종공신 2등이 되자 그의 영귀로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홍문관제학(吏曹參判兼 同知經筵事 弘文館提學)에 추증되었다. 영조 때,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책록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