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즈레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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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쓰레즈레구사는 14세기 일본의 가인(歌人)이자 승려였던 요시다 겐코가 쓴 수필집으로, 243개의 짧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겐코가 직접 편집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들을 적어 벽에 붙여 놓은 종이 조각들을 친구가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주요 내용은 불교적 진리, 자연의 아름다움, 유머러스한 일화 등을 담고 있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일관된 주제로 다룬다. 쓰레즈레구사는 무로마치 시대 이후 널리 읽히며 일본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고전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어 번역본도 존재한다.
《쓰레즈레구사》는 17세기 이후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으며 고전으로 여겨졌지만, 작품의 구성과 출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추측만 무성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 중 하나는 산조니시 사네에다(1511-1579)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요시다 겐코가 작품의 243개 단락을 직접 편집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흩어진 종이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오두막 벽에 붙여 놓은 것을 겐코의 친구이자 시인이자 장군이었던 이마가와 료슌이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료슌은 겐코의 전 하인이 소유하고 있던 겐코의 다른 에세이들을 합쳐 현재와 같은 순서로 정리했다고도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쓰레즈레구사》 텍스트가 료슌의 제자 쇼테츠를 통해 전해진다는 점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겐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책을 편집했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며, 이 설명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5]
요시다 겐코를 작가로 보는 것은 승려 쇼테쓰 이래 정설이 되었다.
2. 성립 배경 및 저자
승려 쇼테쓰 이래 겐코를 작가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무로마치 막부의 규슈 탄다이였던 이마가와 사다요(료슌, 겐코의 제자인 메이쇼마루와 친교가 있었다)가 겐코 사후 초암에 남아 있던 원고를 편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5] 국문학자 다치바나 준이치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1330년 8월부터 1331년 9월경에 작품이 정리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설은 오랫동안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5] 이 설에 따르면, 남북조의 난 이전 중년기의 겐코가 저술한 것이 된다.
2. 1. 저자 요시다 겐코
《쓰레즈레구사》의 저자는 승려 쇼테쓰(후술) 이래 겐코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마가와 사다요(료슌, 겐코의 제자인 메이쇼마루와 친분이 있었다)가 겐코 사후 초암에 남아 있던 원고를 편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5] 국문학자 다치바나 준이치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1330년 8월부터 1331년 9월경에 정리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설은 오랫동안 유력하게 여겨져 왔다.[5] 이 설에 따르면, 겐코는 남북조의 난 이전에 중년기에 이 책을 저술한 것이 된다.
2. 2. 성립 시기 및 배경
산조니시 사네에다(1511-1579)는 요시다 겐코가 《쓰레즈레구사》의 243개 단락을 직접 편집한 것이 아니라, 흩어진 종이에 생각을 적어 오두막 벽에 붙여 놓은 것을 겐코의 친구이자 시인, 장군이었던 이마가와 료슌이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료슌은 겐코의 전 하인이 소유했던 다른 에세이들을 합쳐 현재와 같은 순서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쓰레즈레구사》 텍스트가 료슌의 제자 쇼테츠를 통해 전해진다는 점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겐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책을 편집했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며, 이 설명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5]
겐코를 작가로 보는 것은 승려 쇼테쓰 이래 정설로 여겨진다.
무로마치 막부의 규슈 탄다이였던 이마가와 사다요(료슌, 겐코의 제자인 메이쇼마루와 친교가 있었다)가 겐코 사후 초암에 남아 있던 원고를 편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5] 다치바나 준이치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1330년 8월부터 1331년 9월경에 작품이 정리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설은 오랫동안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5] 이 설에 따르면, 남북조의 난 이전 중년기의 겐코가 저술한 것이 된다.
3. 구성 및 내용
무로마치 막부의 규슈 탄다이인 이마가와 사다요(료슌)는 요시다 겐코의 제자인 메이쇼마루와 친교가 있었는데, 겐코 사후 초암에 남아 있던 원고를 편찬했다고 전해졌지만, 의심스럽다.[5] 국문학자 다치바나 준이치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인 1330년 8월부터 1331년 9월경에 정리되었다고 보았으며, 오랫동안 유력한 설로 여겨져 왔다.[5] 이 설에 따르면 남북조의 난 이전, 중년기의 겐코가 저술한 것이 된다.
《쓰레즈레구사》는 서두를 포함하여 24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심심한 대로" 썼다는 서두의 언급처럼, 각 단락에서는 겐코의 사색과 잡감, 일화를 장단이나 순서에 관계없이 이야기하며, 은자 문학으로 분류된다. 겐코가 가인, 고전학자, 명필가였음을 보여주듯, 닌나지가 있는 소가오카에 거처를 마련했기 때문인지 닌나지에 관한 설화가 많다. 또한, 《쓰레즈레구사》가 전하는 설화 중에는 동시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료가 되는 기술이 산견되어, 역사 사료로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헤이케 이야기》의 작가에 관한 기술 (226단)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 이름의 유래가 되는 첫머리의 "쓰레즈레"(徒然)는 "해야 할 일이 없어, 할 일 없이 지내는 모양"[8]을 의미한다. "쓰레즈레나리", "요시나시고토", "쓰기에 붓을 대다"는 선행 문학에도 사용된 조합이며, 작품 및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다.[9]
3. 1. 문체
''쓰레즈레구사''는 서문과, 한 줄에서 몇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길이의 변화가 다양한 243개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3] 불교 승려였던 켄코는 불교적 진리, 죽음, 무상과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썼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 그리고 유머러스한 일화들도 담겨 있다. 원본은 분할되거나 번호가 매겨지지 않았으며, 이러한 구분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품은 서문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 나는 이 먹통 앞에서, 더 나은 일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생각들을 무작위로 적어내면서 온종일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얼마나 이상하고, 정신 나간 기분이 드는지.[4]
켄코가 죽은 지 백 년 후에 살았던 시인 쇼테츠는 ''쓰레즈레구사''가 세이 쇼나곤의 ''베개책''과 형식 면에서 유사하며, 일화, 회상, 불교 설교로 구성되었다고 언급했다. 켄코에게 또 다른 영향을 준 것은 가모노 초메이의 ''방장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은둔자 전통이었다.[2]
3. 2. 주요 내용
《쓰레즈레구사》는 서문과, 한 줄에서 몇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이의 243개 구절로 구성되어 있다.[3] 요시다 겐코는 불교 승려였기에, 불교적 진리, 죽음, 무상과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썼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 유머러스한 일화들도 담겨 있다. 원본은 분할되거나 번호가 매겨지지 않았으며, 이러한 구분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품은 서문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겐코는 서문에서 "나는 이 먹통 앞에서, 더 나은 일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생각들을 무작위로 적어내면서 온종일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얼마나 이상하고, 정신 나간 기분이 드는지."라고 적었다.[4]
겐코 사후 백 년 뒤에 살았던 시인 쇼테츠는 《쓰레즈레구사》가 세이 쇼나곤의 《베개책》과 형식 면에서 유사하며, 일화, 회상, 불교 설교로 구성되었다고 언급했다. 겐코에게 또 다른 영향을 준 것은 가모노 초메이의 《방장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은둔자 전통이었다.[2]
《쓰레즈레구사》 전반에 걸쳐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일관된 주제는 겐코의 작품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언급된다. 이 개념은 작품의 일부 장에서 언급된 노골적인 불교적 신념과 함께 세속적인 면을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겐코는 삶의 무상함을 자연의 아름다움과 통찰력 있게 연결한다. 겐코는 아름다움의 미학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데, 즉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상함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작품에서 겐코는 시인 톤아의 말을 인용한다. "비단 포장이 위아래로 닳아 떨어지고, 진주가 두루마리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야 두루마리가 아름다워 보인다."[4]
이 말에 동의하며 겐코는 사물의 불확실한 본질에 대한 감사를 지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감사에 대한 동기가 된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겐코는 "만약 인간이 아다시노의 이슬처럼 사라지지 않고, 토리베야마의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문다면, 어떻게 사물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을 잃겠는가!"라고 말한다.[4]
겐코는 삶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밝히며, 사물의 소멸성을 감동적이라고 여긴다. 무상함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그의 작품은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것, 사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애정을 연결한다. 겐코는 "모든 것을 완전한 세트로 맞추려고 고집하는 것은 지능이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불완전한 세트가 더 낫다."라고 말한다.[4]
겐코는 삶의 균형과 무상함의 관계를 보여준다. 시작과 끝은 사물의 무상함과 관련이 있으며, 시작과 끝이 흥미롭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상함 때문이다. 겐코는 "꽃이 피어나려는 가지나 시든 꽃이 흩어진 정원이 우리의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 모든 것에서 시작과 끝이 흥미롭다."라고 언급한다.[4]
겐코의 작품은 이러한 주제를 주로 드러내며,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그의 무상함에 대한 개념은 개인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개념을 제공하며, 오늘날 일본 고등학교 교육 과정 전체에 걸쳐 중요한 고전 문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겐코를 작가로 보는 것은 승려 쇼테쓰 이래 정설이 되었다. 무로마치 막부의 규슈 탄다이인 이마가와 사다요는 겐코 사후, 초암에 남아 있던 원고를 편찬했다고 전해졌지만, 의심스럽다.[5] 국문학자 다치바나 준이치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 1330년 8월부터 1331년 9월경에 정리되었다고 보았으며, 오랫동안 유력한 설로 여겨져 왔다.[5]
《쓰레즈레구사》는 서두를 포함하여 24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체는 화한혼효문과 가나 문자가 중심인 일본어가 혼재되어 있다.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서두에는 "심심한 대로" 썼다고 언급하고, 그 후 각 단락에서는 겐코의 사색과 잡감, 일화를 장단, 순서에 관계없이 이야기하며, 은자학에 위치한다. 겐코가 가인, 고전학자, 명필가 등이었던 것을 반영하고 있으며, 닌나지가 있는 소가오카에 거처를 마련했기 때문인지, 닌나지에 관한 설화가 많다. 또한, 《쓰레즈레구사》가 전하는 설화 중에는 동시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료가 되는 기술이 산견되어, 역사 사료로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헤이케 이야기》의 작가에 관한 기술 (226단)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이름의 유래가 되는 첫머리의 "쓰레즈레"(徒然)는 "해야 할 일이 없어, 할 일 없이 지내는 모양"[8]을 의미한다.
4. 주제
徒然草|쓰레즈레구사일본어는 무상(無常)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켄코는 작품에서 무상함, 불규칙성, 불완전함, 시작과 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의 개인적인 믿음에 기초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일본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된 중요한 고전 문학으로 자리 잡았다.[4]
4. 1. 무상(無常)
徒然草|쓰레즈레구사일본어 전반에 걸쳐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일관된 주제는 켄코의 작품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언급된다. 이 개념은 쓰레즈레구사 전체에 포함되어 있으며, 작품의 일부 장에서 언급된 노골적인 불교적 신념과 함께 세속적인 면을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켄코는 삶의 무상함을 자연의 아름다움과 통찰력 있게 연결한다. 켄코는 아름다움의 미학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즉,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무상함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켄코는 시인 톤아의 말을 인용한다. "비단 포장이 위아래로 닳아 떨어지고, 진주가 두루마리에서 떨어져 나간 후에야 두루마리가 아름다워 보인다."[4]
이 말에 동의하며 켄코는 사물의 불확실한 본질에 대한 감사를 지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감사에 대한 동기가 된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켄코는 그의 작품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인간이 아다시노의 이슬처럼 사라지지 않고, 토리베야마의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문다면, 어떻게 사물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을 잃겠는가!"[4]
켄코는 삶의 사물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밝히며, 사물의 소멸성을 감동적이라고 여긴다. 무상함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그의 작품은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것, 사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애정을 연결한다. 켄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을 완전한 세트로 맞추려고 고집하는 것은 지능이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불완전한 세트가 더 낫다."[4]
그의 작품에서 켄코는 삶의 균형과 무상함의 관계를 보여준다. 시작과 끝은 사물의 무상함과 관련이 있으며, 시작과 끝이 흥미롭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상함 때문이다. 컬렉션과 작품의 불규칙성과 불완전성은 성장과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상태의 무상함은 삶에 대한 감사를 향한 감동적인 틀을 제공한다. 켄코는 "꽃이 피어나려는 가지나 시든 꽃이 흩어진 정원이 우리의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 모든 것에서 시작과 끝이 흥미롭다."[4]고 언급한다.
켄코의 작품은 이러한 주제를 주로 드러내며,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비록 그의 무상함에 대한 개념은 그의 개인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개념을 제공하며, 오늘날 일본 고등학교 교육 과정 전체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고전 문학으로 만들고 있다.
5. 수용 및 영향
무로마치 중기에 승려 쇼테츠가 쓰레즈레구사를 주목하여, 자신이 직접 필사한 사본에 이 작품을 요시다 겐코의 것으로 하고 겐코의 약력도 함께 기록했다. 이것이 쇼테츠의 제자인 가인이나 렌가사들에게 퍼져나가, 오닌의 난 시대를 살았던 그들은 "무상관의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쓰레즈레구사』에 공감을 보였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판본이 간행되었고, 마쓰나가 테이토쿠의 『나구사미구사』, 하타 소하의 『쓰레즈레구사 주멘인초』, 하야시 라잔의 『노』, 가토 반사이의 『쓰레즈레구사초』(1661년, 간분 원년), 키타무라 키긴의 『쓰레즈레구사 문단초』(1667년, 간분 7년)와 같은 주석서도 쓰여졌다. 또한, 『쓰레즈레구사』에 기록된 교훈은 상인 등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 가까운 고전으로서 애독되었으며, "무의 무사 이것은 굴강한 공의 자"[11] 등의 센류가 만들어지는 등, 에도 시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1. 일본 문학사에서의 위상
동시대 사료에는 《쓰레즈레구사》에 대한 언급이 전해지지 않아, 집필 후 약 100년 동안은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무로마치 중기에 승려 쇼테츠가 주목하여, 스스로 필사한 사본에 이 작품을 요시다 겐코의 것으로 하고 겐코의 약력도 함께 기록했다. 이것이 쇼테츠의 제자인 가인이나 렌가사들에게 파급되어, 오닌의 난 시대를 살았던 그들은 "무상관의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쓰레즈레구사》에 공감을 보였다.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판본이 간행되었고, 마쓰나가 테이토쿠의 《나구사미구사》, 하타 소하의 《쓰레즈레구사 주멘인초》, 하야시 라잔의 《노》, 가토 반사이의 《쓰레즈레구사초》(1661년, 간분 원년), 키타무라 키긴의 《쓰레즈레구사 문단초》(1667년, 간분 7년)와 같은 주석서도 쓰여졌다. 또한, 《쓰레즈레구사》에 기록된 교훈은 상인 등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 가까운 고전으로서 애독되었으며, "무의 무사 이것은 굴강한 공의 자"[11] 등의 센류가 만들어지는 등, 에도 시대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리하여 《쓰레즈레구사》는 고전이 되었고, 문학사상의 위치가 확정되었다.
5. 2. 현대적 의의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쓰레즈레구사』는 판본으로 간행되었고, 마쓰나가 테이토쿠의 『나구사미구사』, 하타 소하의 『쓰레즈레구사 주멘인초』, 하야시 라잔의 『노』, 가토 반사이의 『쓰레즈레구사초』(1661년), 키타무라 키긴의 『쓰레즈레구사 문단초』(1667년)와 같은 주석서도 쓰여졌다. 또한, 『쓰레즈레구사』에 기록된 교훈은 상인 등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 가까운 고전으로서 애독되었으며, 센류가 만들어지는 등 에도 시대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11]이리하여 『쓰레즈레구사』는 고전이 되었고, 문학사상 위치가 확정되었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주로 교훈서로 읽혔지만, 우쓰미 히로조는 "취미론자" 겐코에 의한 "일대 취미론"으로 파악하고 있다.[14][15] 겐코의 무상관, 사생관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 고바야시 히데오는 "쓰레즈레구사"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겐코의 "사물이 너무 잘 보이는 눈"을 지적하며, 이 책을 "전무후무한 비평가의 혼이 출현한 문학사상 큰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16]
- 가토 슈이치는 "쓰레즈레구사" 외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저한 특징으로, "마음이 옮겨가는 하찮은 일들"을 잇따라 적어내어, 다면적이고 종종 상반되는 사상을 한 권의 소저에 정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17]
- 시미즈 요시노리는 "쓰레즈레구사"를 "일본 지적 에세이의 기본형, 지식인 에세이의 원형"으로 평하며, "에세이는 '세상의 잘못을 꾸짖는' 형식으로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6. 번역
도널드 킨은 1967년에 쓴 서문에서 이전의 영어 및 독일어 번역본 중 G. B. 샌섬의 번역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샌섬의 번역본은 1911년 일본 아시아 학회에서 ''요시다노 카네요시의 쓰레즈레구사: 14세기의 은둔자의 묵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19]
- 도널드 킨 역, ''게으름 속의 에세이: 겐코의 ''쓰레즈레구사''''(1998),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출판사.
- 메러디스 맥키니 역, ''게으름 속의 에세이와 호조키''(2013), 런던: 펭귄.
- G. B. 샌섬 역, ''게으름 속의 에세이: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1998), 노엘 핀닝턴 편집, 스탠스테드: 워즈워스 에디션.
- G. B. Sansom 번역 및 주석, ''요시다의 가네요시의 쓰레즈레구사: 14세기의 은둔자의 묵상'' (일본 아시아 학회 논문, v. 39) Kelly and Walsh , Z.P. Maruya , Kegan Paul, Truebner , Otto Harrassowitz, 1911[19]
- Oscar Benl 번역, 해설 및 후기, ''침묵으로부터의 성찰; 쓰레즈레구사.'', Insel, [1978][20]
참조
[1]
서적
Formless in Form: Kenkō, Tsurezuregusa, and the Rhetoric of Japanese Fragmentary Pros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2]
서적
The Columbia Anthology of Japanese Essays: Zuihitsu from the Tenth to the Twenty-first Centur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4
[3]
서적
Traditional Japanese Literature: An Anthology, Beginnings to 1600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4]
서적
Essays in Idleness: The Tsurezuregusa of Kenkō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5]
서적
川瀬一馬校注『徒然草』解説
講談社文庫
[6]
서적
五味文彦『増補「徒然草」の歴史学』
角川ソフィア文庫
2014
[7]
문서
表記は新日本古典文学大系『方丈記・徒然草』(岩波書店、1989年)により、一部改変。
[8]
사전
「徒然」『[[日本国語大辞典]]』第二版
2000-2002
[9]
서적
新日本古典文学大系『方丈記・徒然草』
岩波書店
1989
[10]
논문
廣田哲通「徒然草常縁本系統の一考察―章段配列を中心に―」『文学史研究』13
1972
[11]
방송
『ふるさと再生 日本の昔ばなし』第58回第1話
2013-05-12
[12]
문서
他の「上杉屏風源氏物語」「[[洛中洛外図|洛中洛外図屏風上杉本]]」などと区別するため。
[13]
논문
島内裕子「徒然草屏風の研究―「熱田屏風」と「上杉屏風」を中心に―」『放送大学研究年報』23
2006
[14]
웹사이트
内海弘蔵「兼好が趣味論としての徒然草」
https://dl.ndl.go.jp[...]
『徒然草評釈』
1911
[15]
문서
[[三木紀人]]「徒然草研究史」『徒然草講座3』p33
[16]
서적
小林秀雄『モオツァルト・無常という事』
新潮文庫
1961
[17]
서적
加藤周一『日本文学史序説(上)』
[18]
서적
絵本徒然草
河出書房新社
[19]
웹사이트
Transactions of the Asiatic Society of Japan. 39;1911 -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https://dl.ndl.go.jp[...]
2022-10-10
[20]
웹사이트
"国立国会図書館オンライン {{!}} National Diet Library Online"
https://ndlonline.nd[...]
2022-10-10
[21]
문서
가모노 초메이의 수필, 121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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