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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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가동산 사건은 김기순이 창시한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아가동산은 삭발교에서 파생되었으며, 김기순은 교주 이교부의 체포 이후 자신을 구세주로 칭하며 신도들에게 종말론을 주입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1996년 아가동산의 신도 살해 및 암매장 의혹이 제기되어 수사가 시작되었고, 김기순은 살인 혐의는 무죄, 조세 포탈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023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관련자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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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동산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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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아가동산 사건 |
로마자 표기 | Agadongsan sageon |
한자 표기 | 아가동산 事件 |
사건 개요 | |
발생 시기 | 1980년대 ~ 1990년대 |
발생 장소 |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
관련 인물 | 김기순 |
관련 단체 | 아가동산 |
주요 내용 | 신흥 종교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의 횡령, 폭행, 살인 등의 범죄 행위 신도들에 대한 강제 노동 및 폭력 착취 |
사건 전개 | |
시작 | 김기순이 오대양 사건 이후 신도들을 데리고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으로 이주 |
확대 | 아가동산의 사업 확장 및 신도 증가 |
폭로 | 아가동산의 비리가 언론을 통해 폭로됨 |
수사 | 경찰 및 검찰 수사 진행 |
재판 | 김기순을 비롯한 아가동산 관계자들 재판 진행 |
주요 쟁점 | |
교주 김기순의 역할 | 신도들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 행사, 자금 횡령, 폭력 및 살인 교사 |
신도들의 생활 | 강제 노동, 폭력, 외부와의 단절 |
재산 규모 | 아가동산의 거액의 재산 형성 과정 및 용처 불투명 |
결과 및 영향 | |
법적 처벌 | 김기순 등 아가동산 관계자들 법적 처벌 |
사회적 영향 | 사이비 종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고조 유사 종교 집단의 위험성 인식 확산 종교 단체의 투명성 및 감시 필요성 대두 |
기타 | |
관련 사건 | 오대양 사건 |
관련 영화 |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
2. 삭발교와 아가동산의 기원
김기순[6]이 창시한 아가동산은 '삭발교'에서 파생되었다. 삭발교는 이교부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로, 이교부는 1969년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당시 이리시)에 주현교회를 개척하였으나 이후 사이비로 변질되었다. '식발교'라 불린 것은 이교부가 삭발한 채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는 검소하고 금욕적이었던 김현봉 목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파했다. 1978년 말 '나체댄스사건'이 폭로되었고[7] 이교부는 항의하는 이들에게 강제삭발과 폭력을 행사해 투옥되었다. 김기순은 당시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으나 투옥된 이교부와 갈등하다가 조직을 이탈하였다.
2. 1. 삭발교의 등장과 이교부
김기순(金己順)[6]이 창시한 아가동산은 '삭발교'에서 파생되었다. 삭발교는 이교부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로, 교주 이교부는 1969년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에 독립교회인 주현교회를 개척하였으나 이후 사이비로 변질되었다. '식발교'라 불린 것은 이교부가 삭발한 채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각에 대해 검소하고 금욕적이었던 김현봉 목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파했다. 금욕적인 삶을 강조한 덕에 교세가 크게 성장했으나 1978년 말 '나체댄스사건'이 폭로되며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7] 이교부는 항의하는 이들에게 강제삭발과 폭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투옥되었다. 이때 김기순은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었으나 투옥된 이교부와 갈등하다가 조직을 이탈하였다.2. 2. 김기순과 아가동산의 설립
김기순은 삭발교에서 이탈한 신도 300여 명과 함께 서울 묵동에서 독자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자금이 어느 정도 모이자 1982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에 있던 약 13200m2의 임야를 구입해 아가농장을 세웠다.[8] 1985년 김기순은 이곳을 "신나라"로 선포했고, 1989년에는 "아가동산"의 창시자가 되었다. 목동 시절에는 삭발교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었으나, 이천으로 이주한 후에는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교리를 만들어갔다. 김기순은 자신을 '아가야'라고 부르게 했으며, 아가동산의 각종 행사와 종교 의식은 김기순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3. 아가동산의 교리와 운영 방식
아가동산에서 신도들은 이교부를 세례 요한으로, 김기순을 재림 예수로 믿도록 세뇌당했다. 이들은 아가농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강제 노동과 집단 성폭행에 시달렸다. 1년에 단 4일만 휴식이 허용되었고, TV 시청, 신문 구독, 외출, 면회 등이 금지되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금욕 생활을 강요받았으며,[4]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조직을 이탈하면 강제로 이혼당했다. 신도들의 재산은 헌납되어[9] 교단의 공동 재산이 되었고, 노동력 착취로 아가동산은 430000m2로 커졌다. 또한 신나라레코드를 서울에 설립하여 레코드 유통사업을 하였다.[4]
3. 1. 운영 방식
세뇌당한 신자들은 이교부를 세례 요한, 김기순을 재림 예수라고 믿었다. 아가농장에서 공동생활을 한 신도들은 강제 노동과 집단 성폭행에 시달렸다. 1년에 단 4일만 쉴 수 있었으며, TV 시청과 신문 구독은 물론 외출과 면회가 금지되어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다. 금욕 생활을 강요당해 부부간 동침이 금지되었고,[4] 부부 중 한 사람만 조직에서 이탈해도 강제 이혼당했다. 신도들의 사유 재산은 헌납되어[9] 교단의 공동 재산으로 귀속되었고 노동력은 착취당했으며, 그 결과 불과 6년 만에 아가동산은 430000m2로 늘어났다. 또한, 서울에 신나라레코드를 설립하여 레코드 유통사업으로 세력을 넓혀갔다.[4]4. 아가동산 사건
아가동산 사건은 1996년 사이비 종교 집단 아가동산에서 발생한 살인 및 암매장 의혹 사건이다. 아가동산은 교주 김기순이 "아가야"라는 이름으로 신격화되어 신도들에게 종말론을 주입하고 재산을 갈취하며 가혹한 노동을 강요한 곳이었다.[1]
1996년, 피해자들의 진정으로 1987년과 1988년에 걸쳐 발생한 세 건의 살인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다.[2] 1987년에는 5세 남자아이가 교리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1988년에는 44세 남성이 배신 행위로, 그리고 같은 해 21세 여성은 김기순 아들의 구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
경찰은 김기순과 교단 간부들을 체포했고, 검찰은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해 김기순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횡령, 조세 포탈 등 다른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56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다.[2]
아가동산은 현재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김기순이 유명 레코드 유통 회사인 신나라레코드 회장을 역임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3]
4. 1. 사건의 발단과 검찰 수사
1996년 12월 1일 아가동산 피해자들이 "사이비 종교 집단인 아가동산에서 1987년과 1988년에 신도 3명이 살해당했으며 이 중 한 명은 암매장되었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아가동산 간부 5명이 구속되었고,[4] 도피 중이던 김기순은 12월 16일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은 후 구속되었다.검찰 수사 결과, 1987년 8월 14일 밤 9시에 7세 최낙원 군이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돼지우리에 격리되어 1주일 동안 굶은 후 폭행당해 사망했고,[10] 1988년 1월 2일에는 과수원 관리책임자 윤 모 씨가 교주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11월에는 21세 여성 강 모 씨가 '교주의 아들을 현혹시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유족들의 비협조와 부실한 사체 검안 등으로 인해 수년간 은폐되었다.[11]
'아가동산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자 아가동산 측은 피해자들을 협박, 회유했다. 이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회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아가동산 피해자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개설했고, 피해자 101명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는 추가 피해 사례 접수, 법적 대응 등의 활동을 했다.[12]
1997년 4월 29일 검찰은 김기순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중형을 구형했다. 1998년 3월 4일 항소심 공판에서 김기순의 살인, 사기 등 주요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선고받았으나, 원심은 유지되어 법정 구속되었다. 김기순의 지시로 주민들을 살해,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최경란 씨 등 5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종업원 임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나라유통 강활모 대표는 징역 2년 6월,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5월 20일 대법원 선고 공판에서 김기순은 조세 포탈, 횡령, 폭행 등 6가지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으나, 폭행, 살해, 암매장 혐의는 무혐의 처분받았다. 같은 해 10월 김기순은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신나라 유통 정문교 부사장과 관리인 김호웅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경리담당 심옥희, 조재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4. 2. 살인 및 암매장 의혹
1996년 12월 1일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30여 명이 "사이비 종교 집단인 아가동산에서는 1987년과 1988년에 신도 3명이 무참히 살해당했으며 이 중 한 명은 암매장되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수사가 진행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아가동산 간부 5명이 구속되었고[4] 도피 중이던 김기순은 12월 16일 검찰에 출두하여 신도 살인 및 암매장 등 모든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은 후 구속되었다.검찰은 수사 결과 김기순의 지시로 신도 3명이 살해 당했다고 발표하였다. 1987년 8월 14일 밤 9시에는 7세 아동 최낙원 군이 교주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돼지우리에 격리된 채 1주일 동안 굶은 후 폭행 당해 죽었다.[10] 1988년 1월 2일에는 과수원 관리책임자이던 윤모 씨가 교주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 같은 해 11월 21세 여성 강모 씨는 '교주의 아들을 현혹시켜 교리를 어지렵혔다'는 명목으로 창고로 끌려가 각목에 맞아 타살당했다. 사건 발생 당시에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유족들의 비협조와 부실한 사체 검안 등이 원인이 되어 수년간 사건이 은폐되었다.[11]
1996년 여러 건의 고발로 아가동산에서 1987~1988년 사이에 세 명의 신도를 살해한 혐의가 제기되었다.[2] 고발에 따르면 첫 번째 피해자인 당시 5세 남자아이는 교리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돼지 우리에 감금되어 1주일 동안 음식을 주지 않고 폭행당해 사망했고,[1] 그 다음 과수원 관리 책임자인 당시 44세 남성은 배신 행위 때문에 살해되었으며, 세 번째 피해자인 당시 21세 여성은 김기순의 아들이 그녀에게 구애한 죄를 뒤집어쓰는 형태로, 그녀의 부모를 포함한 신도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고 한다.[1]
1997년 4월 29일 검찰은 김기순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중형을 구형했다. 1998년 3월 4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김기순의 살인이나 사기 등 주요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선고했으나 원심판결을 유지해 법정구속했다. 또한 김기순의 지시를 받고 주민들을 살해해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경란 씨 등 5명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며 종업원들의 임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나라유통 강활모 대표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벌금 56억원을 선고했다.
1997년 5월 20일 대법원 선고 공판에서 조세 포탈과 횡령, 폭행 등 6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으나 폭행, 살해, 암매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 김기순은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경찰은 살인죄로 김기순과 교단 간부들을 체포했고, 검찰은 그들의 사망에 대한 목격자 진술을 다수 확보했으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김기순은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2]
4. 3. 재판 과정과 결과
1996년 12월 1일, 아가동산 피해자 30여 명은 1987년과 1988년에 신도 3명이 살해당하고 암매장되었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4] 같은 해 12월 12일, 아가동산 간부 5명이 구속되었고,[4] 도피 중이던 김기순은 12월 16일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검찰 수사 결과, 김기순의 지시로 1987년 8월 14일 7세 최낙원 군이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돼지우리에 갇혀 1주일 동안 굶고 폭행당해 사망했고,[10] 1988년 1월 2일에는 과수원 관리책임자 윤 씨가, 11월에는 21세 여성 강 씨가 살해당했다.[11]
'아가동산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자 아가동산 측은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회유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회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피해자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개설했다. 피해자 101명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는 추가 피해 사례 접수, 법적 대응 등의 활동을 했다.[12]
1997년 4월 29일, 검찰은 김기순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중형을 구형했다. 1998년 3월 4일 항소심에서 김기순의 살인 및 사기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선고받았으나, 원심은 유지되어 법정 구속되었다. 김기순의 지시로 주민들을 살해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5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종업원 임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나라유통 강활모 대표는 징역 2년 6월,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5월 20일, 대법원은 김기순에게 조세 포탈, 횡령, 폭행 등 6가지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56억원을 선고했으나, 폭행, 살해, 암매장 혐의는 무혐의 처분했다. 김기순은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신나라 유통 정문교 부사장과 관리인 김호웅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경리담당 심옥희, 조재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김기순과 교단 간부들을 살인죄로 체포했고, 검찰은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으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김기순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횡령과 조세 포탈 등 다른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2]
4. 4. 사건 이후의 논란
아가동산의 전신인 삭발교(주현교회) 교주 이교부는 아가동산 이탈자들을 돕기 위해 변호사 선임과 탄원서 작성 및 제출에 앞장섰다. 그는 1996년 1월 '주현교부'라는 종교단체를 설립하고, 아가동산 이탈자들과 과거 자신을 추종하던 400여 명을 모아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13] 이교부는 아가동산을 와해시키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1997년 10월 김기순이 보석으로 석방되면서 조직을 다시 추스르는 데 성공하여 끝내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사건 발생 5년 후인 2001년, 일부 신도들이 행방불명된 강모 씨의 암매장 장소를 지목하면서 경찰이 발굴 작업에 나섰다. 아가동산에서 중장비 운전기사로 일했던 윤방수 씨는 "1988년 강 씨를 신도 2명과 함께 사무소 인근에 묻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방송이 취소되었다.[14] 2002년 4월에는 암매장 시신에 대한 발굴 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큰 소득 없이 작업이 종료되었다.[15]
2003년 8월, 사건을 담당했던 강민구 검사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실화소설 <뽕나무와 돼지똥>을 출판했다.[16] 이에 김기순은 저자 강민구를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걸어 10억 원 가량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한편,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발행처인 해우출판사를 상대로 '출판물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2003년 11월 19일, 법원은 김 씨가 낸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을 수용했고, 2004년에 서울서부지법은 김기순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17]
2023년 3월 3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라는 8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잊혀 가던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5부와 6부에서 아가동산에 대해 다루었는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발생했다. 아가동산 측에서는 즉시 이에 대해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2023년 5월 24일에 기각당했다.[18] 아가동산 측은 아가동산과 김기순에 관한 허위 자료를 포함하고 있고, 무죄 확정된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작에 관여한 MBC와 조성현 PD 및 넷플릭스 등을 상대로 방송금지가처분과 별개로 손해배상 청구도 신청하였는데, MBC 측은 고발성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라며 '공익성'을 내세우고 있어 법적 공방이 진행 중에 있다.[18]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신나라레코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김기순이 신나라 레코드의 실소유자이자 아가동산의 주요 자금원이기 때문이었다.[5]
5. 사건의 사회적 영향
아가동산 사건은 2023년 3월 3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사이비 종교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5]
5. 1. 신나라레코드 불매 운동
아가동산 사건이 2023년 3월 3일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김기순이 실소유주이자 아가동산의 주요 자금원인 신나라레코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5]6. 사건 일지
날짜 | 사건 내용 |
---|---|
1996년 7월 15일 | 이탈 주민들이 아가동산 비리 진정서를 경기도에 다시 제출했고, 이천경찰서가 재수사에 착수했다.[19] |
1996년 12월 1일 | 수원지검 여주지청이 이천경찰서로부터 아가동산 관련 수사자료를 넘겨받고 검.경 합동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1996년 12월 7일 | 검찰이 살해 및 사기 등 혐의로 설립자 김기순과 관련자 6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김기순만 영장이 발부되었다. |
1996년 12월 16일 | 설립자 김기순이 검찰에 자진 출두하여 살인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
1996년 12월 19일 | 1988년 실종된 강모(당시 21세.여)씨 사체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 |
1996년 12월 27일 | 김기순 등 아가동산 주민 살해 및 사기 혐의 관련자 10명이 기소되었다. |
1998년 6월 23일 | 대법원이 김기순에 대해 살인 혐의는 무죄로, 조세포탈죄는 유죄로 판단하여 징역 4년 및 벌금 56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2001년 7월 4일 | 실종된 강씨의 사체 발굴작업이 실패했다. |
2002년 4월 2일 | 김기순에 대한 위증교사 혐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강씨 사체 재발굴작업이 다시 실패했다.[15] |
2002년 4월 29일 | 공소시효 만료로 김기순에 대한 수배가 해제되고 사건 수사가 사실상 종료되었다. |
참조
[1]
블로그
나는 신이다 아가동산 실체 기기순 폭행 최면 규탄 위키 신나라 레코드 넷플릭스 다큐
https://2ravelaround[...]
[2]
뉴스
덩치 커진 아가동산, 영농법인 세우고 음반 매출 700억 돌파
https://www.sisajour[...]
[3]
뉴스
韓流アイドルファンご用達のアルバム会社…実はカルト宗教の資金源
https://www.afpbb.co[...]
[4]
웹사이트
단체 정보, 이단정보, 아가야
http://www.hdjongkyo[...]
[5]
뉴스
‘아가동산’ 김기순 회장 신나라레코드 손절 나선 스타쉽
https://idsn.co.kr/n[...]
[6]
문서
1940년 11월 29일 부산출생
[7]
뉴스
아가동산은 어떤 종교집단인가...
https://n.news.naver[...]
[8]
웹사이트
이단정보, 아가야
http://www.hdjongkyo[...]
[9]
웹사이트
법정에 선 아가동산측 종교색체 벗기 노림수
http://www.ame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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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1주일간 굶기고, 돼지우리에서 몰매
https://newslibrary.[...]
199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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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경찰 수극수사, 유족비협조 1996.12.13
https://newslibrary.[...]
199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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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아가동산 피해고발 사무실 개설
https://n.new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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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무너지는 아가동산 위에 신축되는 이교부의 나라
http://www.amennews.[...]
[14]
뉴스
SBS‘아가동산, 그후5년’방송금지 판결
https://www.kha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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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아가동산' 사체발굴 추가 실시
https://n.new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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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아가동산' 검사 수사백서 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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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前수사검사 `아가동산 대표 명예훼손'" .. 법원 판결
https://www.ha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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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계속되는 넷플릭스·아가동산 법적 공방
https://www.news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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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아가동산 사건 일지
https://www.ha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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