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1. 개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954년 문선명에 의해 창립된 종교 단체이다. 문선명은 1951년 부산에서 원리 원본을 집필하고, 1952년부터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1958년 일본에, 1959년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해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며, 1960년대에는 공산주의 극복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국 기반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데 주력했으며, 2012년 문선명 사망 이후에는 교리 정리 사업이 진행되었다. 현재 한학자가 실권을 잡고 있으며, 문선명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문형진은 별도의 세력화를 선언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정치, 기업, 교육,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활동하고 있으며, 교리적으로는 성경을 해석하고 문선명이 주장하는 원리를 중심으로 한다. 다만,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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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FFWPU, UC |
|---|---|
| 주요 분류 | 신흥 종교 |
| 창립자 | 문선명 |
| 설립일 | 1954년 5월 1일 |
| 설립 장소 | 서울, 대한민국 |
| 지도자 직함 | 총재 |
| 지도자 이름 | 한학자 |
| 주요 경전 | 성경 원리강론 |
| 기타 명칭 | 통일 운동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인 문선명교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한국어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
| 한자 | 世界平和統一家庭聯合 |
| 로마자 표기 | Segye Pyeonghwa Tongil Gajeong Yeonhap |
| 이전 명칭 (한글) |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
| 이전 명칭 (한자) | 世界基督教統一神靈協會 |
| 약칭 (한국어) | 가정연합, 구 통일교 |
| 일본어 | 世界平和統一家庭連合 |
|---|---|
| 히라가나 | せかいへいわとういつかていれんごう |
| 가타카나 | セゲピョンファトンイルガジョンヨナプ |
| 대한민국 설립일 | 1954년 5월 1일 |
|---|---|
| 일본 설립일 | 1964년 7월 16일 |
| 본부 (대한민국)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로 267-33 |
| 본부 (일본) | 東京都 渋谷区松濤1-1-2 |
| 관련 조직 | 원리연구회 국제승공연합 승공UNITE 세계평화종교연합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세계평화연합 세계평화여성연합 세계평화청년연합 평화대사협의회 참가정운동추진협의회 일본순결동맹 세계일보사 평화통일연합 광언사 일심병원 세일관광 일화 일신석재 통일산업 동화티탄 트루월드푸드 뉴스월드커뮤니케이션 세일클럽 워싱턴 타임스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화예술고등학교 선문대학교 청심신학대학원 |
|---|
| 주요 목표 | 교회 통일 통일 한국 세계 평화 만물 복귀 |
|---|---|
| 주요 활동 | 북한 지원 정치 활동 |
| 일본 교회 회장 | 田中富広 |
| 관련 문제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정계와의 관계 구 통일교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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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종교 단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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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종교 단체 -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에 의해 1958년 시작되어 교세 확장을 거쳐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했으며,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
서울특별시의 문화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양한 전시를 제공하며, 총 31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사 및 아시아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최첨단 시설을 갖춘 박물관입니다. -
서울특별시의 문화 -
경기 방언
경기 방언은 한강을 기준으로 북부와 남부로 나뉘며, 표준어의 근간인 서울 방언을 포함하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지역별 차이가 희석되었으며, 젊은 세대는 서울 방언의 음운 변화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
일본의 신흥 종교 -
창가학회
창가학회는 1930년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창립한 니치렌 불교 기반의 국제적인 종교 단체로, 교육 혁신에서 시작하여 사상 운동으로 발전, 전후 급성장하여 현재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으나,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
일본의 신흥 종교 -
옴진리교
옴진리교는 아사하라 쇼코가 1987년 설립한 일본 신흥종교로, 종말론적 사상과 폭력적인 테러 행위, 다양한 종교 사상을 혼합한 교리, 교주에 대한 절대적 충성 강요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해산 후에도 여러 후계 단체가 남아있다.
2. 역사
199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HSA-UWC) 창립 40주년을 맞아 문선명은 HSA-UWC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단체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을 출범시켰다. FFWPU는 HSA-UWC 회원들과 더불어 다른 종교 단체 회원들도 포함하여, 성적 도덕성, 종교, 국가, 인종 간 화해 등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이전에는 HSA-UWC 회원에게만 주어졌던 결혼 축복식을 다른 교회 및 종교의 수천 쌍에게도 확대하여 공동 주관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교회의 사업이 크게 확장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원 수는 감소했다. 1991년 문선명은 회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사도적 활동을 할 것을 발표했는데, 이는 전임 회원이 더 이상 교회 회원들에게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1994년, 뉴욕 타임스는 이 운동을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 해외 자금을 쏟아붓는 신권적 강국"으로 묘사하며 그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했다. 1998년, 이집트 신문 알아흐람은 문선명의 "극우 성향"을 비판하고, 보수적인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언급했다.
1995년, 전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와 그의 부인 바버라 부시는 도쿄돔에서 열린 FFWPU 행사에서 연설했다. 한학자는 남편 문선명이 공산주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미국을 "가정 파괴와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 창립과 초기 발전 (1950년대 - 1960년대)
문선명은 1951년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원리〉원본을 집필했고, 1952년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1954년 5월 서울로 교단의 기반을 옮기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창립하였다. 1958년에는 전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같은 해 일본에, 1959년에는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1965년에는 문선명이 직접 세계 40개국을 순방하였고, 1972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선교활동을 지휘하는 등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활동을 전개했다.
초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은 '연대·이대 사건'이다. 1955년 연세대학교 교수 박상래와 일부 학생,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양윤영을 비롯한 일부 교수들과 학생들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입교하거나 개종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김영운은 총장 지시로 진상조사에 나섰다가 개종하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교수 5명과 학생 14명을 제적시켰고, 연세대학교는 교수 1명을 면직하고 학생 2명을 제적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기존 개신교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이단 논쟁으로 번졌다.
1960년대에는 승공활동 등을 통해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사상적인 활동을 벌였다.
2.2. 국제적 확장과 사회적 논란 (1970년대 - 1990년대)
1958년에는 일본에, 1959년에는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였으며, 1965년에 문선명이 직접 세계 40개국을 순방하였고, 1972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선교활동을 지휘하는 등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활동을 전개해왔다.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교수 5명과 학생 14명을 제적시켰고, 연세대학교는 교수 1명을 면직하고 학생 2명을 제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기존 개신교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이단시비로 비화되었다.
1960년대에는 승공활동 등을 통하여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사상적인 활동을 벌였다. 1970년대 이후에도 이 활동은 계속 이어졌으며, 외국으로의 진출과 함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교류도 이어졌다. UN 활동이나 네팔에서의 정치 활동, 한국에서의 평화통일가정당을 통한 출마 등 다양한 대외 활동이 이어졌다.
1954년 5월 1일 서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성령협회(HSA-UWC, Holy Spirit Association for the Unification of World Christianity영어)(1954년–1994년)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한국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1955년 말까지 전국에 30개의 센터를 설립했다. HSA-UWC는 전 세계로 확장되었으며, 대부분의 회원들은 한국, 일본, 필리핀 및 기타 동아시아 국가들에 거주했다. 1970년대에는 미국 HSA-UWC 회원들이 통일교 사업을 위해 자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5년 HSA-UWC는 대학원리연구회(CARP, Collegiate Association for the Research of Principles영어)를 설립했다.
HSA-UWC는 또한 유럽으로 선교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출하여 1990년대까지 지하 활동을 했다. 남미에서의 통일교 운동은 1970년대 선교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HSA-UWC는 국제적인 신문을 포함하여 시민 단체와 사업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1990년대부터 HSA-UWC는 러시아와 다른 옛 공산권 국가들로 확장되었다. 문선명의 아내 한학자는 크렘린 궁전에서 전국에 라디오 방송을 했다. 1994년 현재 HSA-UWC는 러시아에 약 5,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었다.
문선명은 1971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다. 1970년대 그는 미국에서 일련의 공개 연설을 했다. 1975년 HSA-UWC는 한국 여의도에서 120만 명이 참석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평화 집회 중 하나를 개최했다.
1970년대 통일교는 다른 일부 새로운 종교 운동과 함께 반(反) 사이비 종교 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1976년 미국 통일교 회장 닐 앨버트 살로넨(Neil Albert Salonen영어)은 일부 회원들의 부모를 포함한 비평가들의 비난으로부터 HSA-UWC를 옹호하기 위해 상원의원 밥 돌(Bob Dole영어)과 만났다.
통일교의 수산업 참여는 문선명의 "해양 섭리" 확장 지시에 따라 시작되었다. 1976년과 1977년 교회는 미국 수산업에 거의 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문선명은 1980년 "참치의 길"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우리가 배를 만들고, 물고기를 잡고,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가공하고, 유통망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설계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했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바다의 왕"이라고 선언했다.
1976년 통일교 회원들은 국제 뉴스 미디어 기업인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News World Communications영어)를 설립했다. 1982년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영어)는 뉴스월드를 "통일교의 신문 부문"으로 묘사했다. 문선명의 아들 문현진은 이사회 회장이다.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는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United Press International영어), 월드 앤드 아이(The World and I영어), 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 세계일보(한국), 세계일보(The Sekai Nippo)(일본), 잠베지 타임스(Zambezi Times영어)(남아프리카 공화국), 미들 이스트 타임스(The Middle East Times영어)(이집트)를 소유하고 있다. 2010년까지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영어)를 소유했다. 2010년 11월 2일 문선명과 전 타임스 편집자들은 뉴스월드로부터 신문을 매입했다.
1980년대부터 문선명은 HSA-UWC 회원들에게 이웃과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공 서비스를 통해 다가가는 "홈처치(Home Church영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
1990년 4월 문선명은 소련을 방문하여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영어) 대통령을 만났다. 문선명은 소련에서 진행 중인 정치 및 경제 개혁을 지지했다. 동시에 이 운동은 옛 공산권 국가들로 확장되고 있었다.
세계평화여성연합(Women's Federation for World Peace영어, WFWP)은 1992년 한학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목적은 여성들이 지역 사회와 사회의 평화 증진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143개국에 회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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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는 발족 직후부터 한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1957년 영어를 구사하는 4명의 한국 육군 청년 장교가 통일교회에 입교했다. 즉 박보희, 한상국(다른 이름 부도 한), 김상인(스티브 김), 한상길 4명이다. 이들은 모두 1961년 5월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한국 정부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교단에 제공했다. 박보희는 같은 해 육군 무관 보좌관으로 주미 한국 대사관에 부임했고, 한상국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 초대 국장 김종필의 개인 보좌관이 되었으며, 김상인은 김종필의 통역을 거쳐 KCIA 멕시코시티 지국장이 되었고, 한상길은 1960년대 말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 무관이 되었다. 통일교회는 김종필에 의해 재편되었고,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확립함에 따라 무기 산업 등의 사업에도 진출하여 확장 발전해 나갔다.
1976년 한국 정부의 미국 의회 및 미국 정부에 대한 매수 공작(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발각되었다. 통일교회는 정부 및 KCIA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 요청에 따라 워싱턴에 있는 관련 단체인 한국자유문화재단이나 동시에 있는 디플로맷 내셔널 은행 등을 통해 비밀 활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 명확해졌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불법으로 조달하여 국경을 넘어 이동시키고, 미국 내에서 반일 데모를 조직하는 등 한국의 국익을 증진시키고, 한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공작을 벌였다.
일본 진출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1958년 5월 문선명의 명을 받은 선교사 최봉춘(니시카와 마사루)이 부산에서 밀항선으로 일본에 밀입국했다. 1959년 10월 2일 신주쿠구 도쓰카정(현재 신주쿠구 니시와세다)의 시계점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일본 통일교회가 발족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교단계 학생 단체인 원리연구회에 의한 가정 파탄, 학업 포기가 사회 문제가 되어 피해자 단체인 원리운동대책전국부모회가 결성되었고, 영감 상법이 사회 문제가 된 1980년대 이후 아사히 신문사와 주간문춘에 의해 대대적인 비판 캠페인이 전개되었지만, 교단 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신자들의 데모 등이 이루어졌다. 1984년에는 세계일보 편집장 후쿠시마 요시카즈가 교단의 반일 사상 등의 실태에 대해 내부 고발을 한 후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외에도 교단을 비판한 인물·매스미디어에 대한 괴롭힘이나 교단과 관련된 불가사의한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반대파에 “공산주의자”, “사탄”이라는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등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을 가장한 글쓰기를 하는 것 등이 지적되고 있다.
통일교회는 원리연구회에 의한 가정 파괴 및 학업 포기 등의 문제, 영감 상법과 마인드 컨트롤을 응용한 고액의 물건 판매와 헌금, 권유·교화 수법에 관한 문제, 교단이 배우자를 정하는 합동 결혼식, 신자 간의 입양, 마약 관련 자금 세탁과 밀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와 연계한 국제적인 정치 공작 활동, 반공주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 김일성 시대부터의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 역사 수정주의, 문화 공산주의론의 유포, 반부부 별성, 반LGBT 운동, 세계 각국의 보수파·극우 세력과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통일교회는 일반적으로 컬트로 간주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세크트법에 의해, 러시아에서는 대테러법에 의해 규제와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중국에서는 1997년에 ‘사교’로 인정되어 활동이 금지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강경파나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 시대의 국민전선, 니카라과의 반공 게릴라·콘트라 등 세계 각국의 보수 강경파 또는 극우 세력을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기시 노부스케와 접점을 가지고, 이후부터 반공주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정계에 침투해 갔다. 교단은 현재까지 국제승공연합 등의 관련 단체 또는 더미 단체를 통해 자유민주당 등의 보수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자민당과 교단계 국제승공연합과의 협력 관계는 1978년 당시 후쿠다 다케오 내각 총리대신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승공연합으로부터 자민당에 다액의 정치 헌금이 이루어졌던 것, 승공연합으로부터의 차입금의 존재가 당시 자치성의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영감 상법에 의한 경제적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으며,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밝혀진 것만으로도 1987년부터 2021년까지의 피해 건수는 3만 4537건으로, 피해 총액은 약 123700에 달한다. 영감 상법의 상품에는 관련 기업에서 제조된 항아리·인감·다보탑·인삼 농축액 등이 사용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에 걸쳐 교단 신자에 대한 특상법·약사법 위반에 의한 적발이 총 13건이나 잇따랐고, 2009년 2월의 신세 사건에서는 교단의 시부야 교회 및 고토쿠지 교회도 강제 수사 대상이 되어 특상법 위반(협박·혼란)으로 5명이 벌금형, 2명이 집행유예부의 징역형 및 벌금형에 처해졌다.
영감 상법 등의 문제의 배경에는 문선명을 비롯한 한국인 간부의 일본에 대한 한(恨)의 감정이 지적되고 있다. 문선명은 대일본제국 통치하의 한국에서 태어나, 그 유년기를 “강대국에 짓밟히는 약소 민족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골수에 스며들도록 체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 유학 중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와 협력, 항일 지하 운동에 참가했던 것도 공언하고 있었다. 교단의 교리는 일본은 “에바 국가”로 “사탄(악마) 쪽의 나라”라고 되어 있다. 또한, 교단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범 안중근과 항일 운동의 영웅으로 불리는 유관순을 기리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가르침(교리)의 하나로, 문교조의 한(恨)을 푸는 것은 “에바 국가 일본을 아담 국가 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 “천황을 자신(문선명)에게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신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이 전환되어, 객관적으로는 악이라고 하는 행위도, 신을 위해서라면 선이라고 믿는 것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신자는 영감 상법이나 무언 전화, 불법적인 선거 운동 등의 반사회적인 행위를 평온하게 행한다고 한다. 통일교회 신자의 특징의 하나로 “정체를 숨기는”것이 알려져 있으며, 신자인지 질문받아도 “신자가 아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교단 내부에는 “천적인 거짓말”이라고 하는 방편이 있어, 정체를 숨기고의 권유나 모금, 선전 활동 등 교단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교단 외부의 인간을 속이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단은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는 일본인 신자를 이용해 수산회사를 일으켜, 전미의 중·고급 스시집을 위한 생선 유통의 8할을 점유하여 스시를 널리 알리는 등 다각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 조직의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 거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국제적인 정치력도 획득하고 있지만, 교단의 운영 자금의 7할은 일본이 담당하고 있으며, 그 원자금은 일본에서의 영감 상법이나 신자로부터의 경제적 착취로 얻어진 돈이라고 한다.
신자는 교단의 경제 활동을 위해 혹사당하고, 해외의 위험 지역 등에 보내져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또한, 통일교회에서는 “아벨과 카인의 원리”라고 불리는 상하 관계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신자는 재림의 메시아인 문선명을 정점으로 교단 내부의 상사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요구되고 있으며, 아벨에 대한 “보·연·상(보고·연락·상담)”도 지도되고 있다. 그 대상은 사무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관한 것이나 심정적인 내용까지도 요구된다. 또한, 일본의 교단은 “한국 지배”의 체제가 되어 있으며, 방침을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없고, 한국인 간부가 일본의 교회를 통제하고, 지방 레벨에서도 한국인이 지배하는 체제가 깔려 있다.
1978년 11월 1일에 공표된 미국 하원의 프레이저 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가진 국제 정당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교단의 최종 목표를 교조 문선명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적인 정교일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교조 문선명 본인은 “현인신인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국 정치를 만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 세대가 통일교회 신자인 “2세 신자”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유년기부터 신앙을 강요당하는 등, 가정 폭력(DV) 상태에 있었던 당시의 아이들은 신자나 교회로부터의 특정을 두려워하여 숨을 죽이고 생활하지 않을 수 없는 등의 이유에 의해 산재 상태가 되어 있으며, 변호사단이 구제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2012년 9월 3일에 문선명이 사망하자, 문선명과 한학자의 7남인 문형진은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2013년 2월에 미국 회장을 해임되었다. 2015년 1월, 문형진은 분가 조직인 세계평화통일성전(일명: 샌추어리 교회)을 미국 통일교회와는 별도로 미국 국내에서 설립했다. 통일교회는 현재 문형진의 샌추어리 교회를 “탈회 조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문형진은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AR-15를 중시하는 “Rod of Iron Ministries영어”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1년 미국 의사당 습격 사건에도 참가했다.
2023년 10월 13일, 문부과학성은 종교법인법에 근거한 통일교회의 해산 명령을 도쿄 지방법원에 청구했다.
교단의 교리는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풍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사용되는 용어에도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교단 내에서 신자는 한국어로 “가족”에 해당하는 “식구(식구)”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본인 신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지시받았다. 의식의 복장과 예배에도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며, 인사 면에서도 한국인이 우대되었다.
전 일본통일교 본부 홍보국장이자 교단 계열 언론인 『세계일보』 전 편집장인 부도 요시카즈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는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에 우월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한국 중심주의”가 설파되고 있다.
교단의 경전인 『원리강론』의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사탄” 쪽 나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숭배하며 한국 기독교를 가혹하게 박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나라로 되어 있다. 이는 교조인 문선명이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교단이 “사대명절”이라고 부르는 기념일에는,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 대해, 천황의 대리로 일본통일교 회장인 쿠보키 마사미가 예배를 올리는 의식이 행해지며, 그 외에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로 분장한 교단 간부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는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주요 종교의 창시자로 분장한 인물도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게 엎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교가 하는 종교 활동과 국제승공연합이 하는 정치 활동은, 이러한 문선명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이 내부 고발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신우익 단체인 일수회 회장인 스즈키 쿠니오는 천황으로 분장한 쿠보키가 문선명에게 엎드리는 의식에 대해, “국민의 상징으로서 천황을 위에 모시는 일본 국민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광경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문선명을 도경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또한, 교단의 포교 활동을 “세뇌”라고 하며, 신자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제한받고 교단에 따르게 하는 실태를 “공산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공산주의화되어 있지 않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공 활동을 구실로 교단이 자민당과 체제파 문화인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공’조차도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며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처음부터 이용하기 위해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단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도 “합법, 불법을 묻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연간 24000의 자금이 일본에서 문선명에게 송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는 일본의 전쟁에 대한 한국 측의 복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인 회원에게는 그렇게 함으로써 ‘침략 전쟁’의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본질은, 극좌반일 테러 조직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마찬가지로, 굴욕적인 속죄 사관을 짙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단 신자 청년의 선거 지원 등에 대해서도, 그 이면에는 교단의 일본 정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야심이 있다고 하며, 경계를 촉구하고 있었다.
2.3. 2000년대 이후의 변화와 과제
2000년대 이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주로 외국에서 구축한 기반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2012년 9월 3일,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사망한 후, 교리와 사상 정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세계회장은 문선진이지만, '참어머님'으로 불리는 한학자가 실권을 쥐고 있다. 문선명 사망 전 유일한 후계자로 지명받았던 전 세계회장 문형진은 별도 세력화를 선언했다.
2000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은 이스라엘 민족(Nation of Islam)과 공동으로 워싱턴 D.C.(Washington, D.C.)에서 백만 가족 행진(Million Family March)을 주최하여 가족 단결과 인종 및 종교 화합을 기념했다. 루이스 퍼러칸(Louis Farrakhan)이 주요 연설자로 나섰으며, FFWPU 지도자 댄 페퍼먼(Dan Fefferman)은 퍼러칸과 문선명의 견해가 여러 문제에서 다르지만 "하나님 중심의 가족"이라는 견해를 공유한다고 인정했다.
2003년, 한국 FFWPU 회원들은 한국 통일(Korean reunification) 준비를 위한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했다. FFWPU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정당이 창당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부터 FFWPU 관련 세계평화연합의 중동 평화 이니셔티브는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간의 이해 증진을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State of Palestine) 단체 여행을 조직했다.
2000년 문선명은 세계비정부기구협회(WANGO, World Association of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를 설립했다. WANGO는 NGO 간 연결, 파트너십, 문제 해결 기여를 위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일부 이상과 대조되는 보수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2년 문선명 사망 후, 7남 문형진은 2015년 분가 조직인 세계평화통일성전(샌추어리 교회)을 미국에서 설립했다. 통일교회는 현재 문형진의 샌추어리 교회를 “탈회 조직”으로 간주한다. 문형진은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2021년 미국 의사당 습격 사건에도 참가했다.
2023년 10월 13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종교법인법에 근거한 통일교회 해산 명령을 도쿄 지방법원에 청구했다.
3. 주요 교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은 1994년 5월 1일 문선명에 의해 창설되었다. 이는 기존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HSA-UWC) 시대를 마감하고, 더 넓은 범위의 종교 단체 회원들을 포함하여 성적 도덕성, 종교, 국가, 인종 간 화해 문제에 중점을 둔 새로운 단체였다. FFWPU는 이전에는 HSA-UWC 회원에게만 주어졌던 축복식을 다른 종교의 부부들에게도 확대하여 공동 주관하였다.
1990년대에 이 운동은 미국의 보수 운동에 해외 자금을 지원하는 "신권적 강국"으로 묘사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1995년에는 전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부부가 도쿄돔에서 열린 FFWPU 행사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2000년, FFWPU는 워싱턴 D.C.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공동으로 백만 가족 행진을 주관하여 가족 단결과 인종 및 종교 조화를 기념했다. 같은 해 문선명은 국제연합의 일부 이상과 대조적으로 보수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세계비정부기구협회(WANGO)를 설립했다.
2003년 한국 FFWPU 회원들은 한국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 평화, 통일, 가정당"을 창당했다. FFWPU 관련 단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단체 여행을 조직하여 종교 간 이해와 화해를 증진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문선명은 자신의 저서 원리(The Divine Principle)를 통해 통일교 신학의 핵심을 제시했다. 이 책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인간의 타락, 회복의 과정 등을 다루며, 신자들에게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원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창조의 원리: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든 현실은 이원성(성상과 형상, 음과 양)으로 구성된다.
* 인간의 타락: 아담과 하와는 사탄과의 관계로 인해 타락했으며, 그 결과 모든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었다.
* 회복의 원리: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고 원래의 죄 없는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역사 속에서 노력해 오셨다.
신자들은 기독교의 성경을 진리의 출발점으로 삼지만, 원리를 통해 더 깊은 해석과 "완성"을 추구한다. 문선명은 자신을 메시아로 칭하며, 예수의 사명을 이어받아 인류를 구원할 인물로 여겨졌다.
통일교는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며, 축복 결혼식을 통해 부부가 죄 많은 인류의 계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죄 없는 계보로 회복된다고 믿는다.
통일교는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추구하며, 과학의 통일 국제회의(ICUS)를 후원하여 이 개념을 홍보했다.
통일교 신학에서 탕감(Indemnity)은 인간과 세계가 하나님의 이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탕감 조건에는 동등한 탕감 조건, 소 탕감 조건, 대 탕감 조건이 있다.
3.1. 원리강론
《원리강론》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핵심 경전이며, 1952년에 문선명 총재가 《원리해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었다. 1966년에는 유효원 회장을 중심으로 안창성, 유광열, 장영창 등이 참여하여 《원리강론》으로 증보 간행되었다. 《원리강론》은 총 556페이지로, 전편과 후편으로 나뉜다.
전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룬다.
* 천지 창조의 원리
* 인간 타락의 진실
* 종말의 의미
* 메시아 강림과 재림의 목적
* 부활의 의의와 부활 섭리
* 예정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
* 그리스도에 관한 것 (하늘부모님을 중심한 예수와 성신과의 관계, 예수와 성신과 타락인간과의 관계, 중생과 삼위일체에 관한 문제들)
후편은 아담 가정과 노아 가정, 모세와 예수를 중심으로 한 복귀 섭리, 섭리 역사의 각 시대 등에 관한 것을 다룬다. 인류 역사 과정을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로 나누는데, 각각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에 해당된다고 가르친다. 각 시대에는 중심 종교가 있는데, 소생기에는 유대교, 장성기에는 기독교, 완성기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해 구원 역사가 펼쳐진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소생기에는 구약성서, 장성기에는 신약성서, 완성기에는 원리강론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한다. 타락을 성적인 간음 문제로 보면서 복귀는 제사의 형식이나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타락과 복귀의 연결 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원리강론》에 대한 표절 논란도 있다. 문선명 총재는 1943년 개신교 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배척받던 이스라엘수도원교회의 서울 상도동 집회소 인도자로 파견된 적이 있다. 이 교회의 책임자 김백문이 1954년 《성신신학(聖神神學)》, 1958년 《기독교 근본원리》를 저술했을 당시 문선명 총재는 김백문의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현재 《원리강론》의 구조, 용어, 내용이 김백문의 저서와 유사하므로 표절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원리강론》이 1952년의 〈원리〉 원본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저술 시기가 앞서고, 세부 구조와 내용은 전혀 다르므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독립된 경서라는 입장이다. 현대종교라는 기독교계 잡지에서는 김백문과 문선명 총재의 사상적 관련성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문선명의 첫 저서인 《원리원본(原理原本)》(1952년 발행)은 김백문의 저작 《기독교 근본원리》 (1946년 3월 2일 기초, 1958년 3월 2일 발행) 집필 중에 문선명이 표절했다는 증언이 있다. 문선명은 김백문이 1952년 부산 동래에서 피난 중 집필하던 원고 '타락, 복귀원리'를 보고 원고 교정을 봐 드리겠다고 가져가서 6개월 이상 가져오지 않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기독교 근본원리》의 '타락원리'는 《원리원본》, 《원리강론》의 '타락론'과 매우 유사하고 상세하다. 또 '체휼(体恤)'의 오용 등 공통의 실수가 있기 때문에 《원리원본》, 《원리강론》이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3.2. 성주교와의 유사성
문선명의 배우자 한학자의 친어머니 홍순애와 그 어머니는 김성도가 창시한 성주교 출신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통일교의 교리 중 많은 부분이 성주교의 주요 교리와 유사하다.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의 증언에 따르면, 김성도의 메시지는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 첫째, 죄의 뿌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잘못된 남녀 관계, 즉 음란 행위가 타락의 원인이다.
* 둘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뜻을 이루었어야 했다.
* 셋째,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을 보면서 간섭하지 못한 슬픔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는 슬픔, 두 가지 슬픔을 가지고 있다.
* 넷째, 재림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을 통해 온다.
* 다섯째, 재림 주님은 한국으로 오며, 만인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
3.3. 창조 과학
통일교는 문선명의 가르침에 따라 조너선 웰스를 비롯한 지적 설계 옹호자들이 진화론의 약점을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이는 현재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이며, 사실상 창조과학의 반진화 관련 주장은 통일교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 기독교에 대한 무지
통일교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인 '용서'라는 단어 대신 '속죄'를 의미하는 '탕감(蕩減)'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탕감'은 성경에서 '용서'를 의미하는 말로 10번 등장하지만, 통일교는 이를 모르고 금융 용어로만 이해하는 듯하다. 이는 통일교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통일교는 성경에 나오는 '불쌍함'을 뜻하는 '체휼(體恤)'이라는 단어도 모른다. 김백문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심지어 통일교는 기독교의 핵심 용어인 '수육(受肉)'도 모르고, 내부 교재에서는 '체휼'과 동의어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
4. 활동 및 사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종교 사업 외에도 정치, 기업, 교육, 의료, 예술,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195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성령협회(HSA-UWC)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설립되었으며, 1955년 대학원리연구회(CARP)를 설립하여 통일교 세계관을 통해 문화 간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다. 1970년대 남미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고 시민 단체와 사업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며, 1990년대부터 러시아와 옛 공산권 국가들로 확장되었다. 1992년 한학자는 세계평화여성연합(WFWP)을 설립하여 여성들의 평화 증진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1976년 국제 뉴스 미디어 기업인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를 설립하여 뉴욕시 트리뷴(뉴스월드), 노티시아스 델 문도 등 여러 신문을 발행했다. 문현진은 이사회 회장을 맡았으며,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 월드 앤드 아이, 티엠포스 델 문도, 세계일보(한국), 세계일보(일본), 잠베지 타임스(남아프리카 공화국), 미들 이스트 타임스(이집트) 등을 소유하고 있다. 2010년까지 워싱턴 타임스를 소유했으나, 이후 문선명과 전 편집자들이 뉴스월드로부터 신문을 매입했다.
문선명의 "해양 섭리"에 따라 수산업에도 참여했다. 1980년 "참치의 길" 연설에서 자신을 "바다의 왕"이라고 선언하며 수산업 확장을 주장했다.
통일교는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코리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영감 상법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문제시되었으며, 문선명 등 한국인 간부의 일본에 대한 한(恨)의 감정이 영감 상법 문제의 배경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컬트로 간주되며, 프랑스와 러시아에서는 규제 대상이고, 중국에서는 활동이 금지되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보수·극우 세력을 후원하고, 일본에서는 자유민주당 등 보수 정치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안중근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며,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등을 통해 학계 침투를 시도했다.
4.1. 정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대한민국에서 평화통일가정당 설립, 국제승공연합, 아벨유엔 등을 통해 국제적인 정치 활동을 전개해 왔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닉슨 대통령을 지원했고, 냉전 시대 반공주의자들을 지원했다. 미국 워싱턴, 대한민국, 일본, 남아메리카에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다.
1994년, 뉴욕 타임스는 통일교의 정치적 영향력을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 해외 자금을 쏟아붓는 신권적 강국"이라고 평가했다. 1998년 이집트 신문 알아흐람은 문선명의 극우 성향과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관계를 비판했다.
1995년,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부는 도쿄돔에서 열린 통일교 행사에서 연설했다. 한학자는 남편 문선명이 공산주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2000년, 통일교는 세계비정부기구협회(WANGO)를 설립했다. WANGO는 NGO 지원을 목표로 하지만, 국제연합의 일부 이상과 대조적인 보수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이스라엘 민족과 백만 가족 행진을 공동 주관했다.
2003년, 한국 통일교 회원들은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했다. 통일교는 한국 통일을 준비하며, 일본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정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이후, 통일교 관련 단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이해 증진을 위한 단체 여행을 조직했다.
1940년대 문선명은 조선공산당과 협력하여 대한독립운동을 통해 일본 제국에 맞섰다. 한국 전쟁 이후 반공주의자가 되었으며, 냉전을 하느님과 사탄의 갈등으로 보았다. 통일교는 세계자유민주연맹, 한국문화자유재단 등 반공주의 단체를 지원했다.
통일교의 반공 활동은 주류 언론과 대안 언론으로부터 제3차 세계 대전과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사카와 료이치가 재정 지원을 했다.
1972년 문선명은 원리강론에 근거하여 공산주의 몰락을 예언했다. 1973년에는 "자동적인 신정"을 요구했다. 1975년 서울 여의도에서 북한의 군사 공격에 반대하는 정부 주최 집회에서 연설했다.
1976년 문선명은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를 설립하여 워싱턴 타임스를 발행하고, 한국, 일본, 남미에서 신문을 발행했다. 워싱턴 타임스는 친이스라엘 편집 정책으로 유명하다.
1980년, 회원들은 CAUSA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1980년대에는 21개국에서 활동하며, 복음주의 및 근본주의 기독교 지도자, 미국 상원 직원, 히스패닉 미국인, 보수 활동가들을 위한 컨퍼런스를 후원했다. 1986년, 니카라과 정부의 박해에 관한 다큐멘터리 니카라과가 우리의 고향이었다를 후원했다.
1980년 워싱턴 D.C. 회원들은 징병 반대 시위를 방해했다. 1981년 뉴욕주 대법원 항소부는 통일교가 정치적 목적이 주된 목적이기에 재산세 면세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1982년 뉴욕주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었다.
1983년, 미국 회원들은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소련에 대한 시위에 참여했다. 1984년, 워싱턴 가치 공공정책 연구소를 설립했다. 같은 해, 댄 페퍼먼은 국제 종교 자유 연합을 설립했다.
1985년 8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제네바에서 회의를 후원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통일교는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1991년, 문선명은 북한 김일성과 만나 한반도 평화, 국제 관계, 관광 등을 논의했다. 1994년, 문선명은 김일성 장례식에 초청받았다.
1998년, 통일운동 관련 기업들이 북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 통일그룹은 북한 남포항에 평화자동차를 설립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동문주는 미국과 북한 관계 개선을 위해 비공식 외교 활동을 했다.
2003년, 한국 통일교 회원들은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했다. 문선명은 대한민국 통일부 명예위원이었다. 교회 회원 이재정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0년, 김영남은 문형진을 관저에서 만났다. 문형진은 정주 어린이들을 위해 밀가루 600톤을 기증했다.
2012년, 문선명은 사후 북한 국가 통일상을 받았다. 김정은은 한학자와 유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2017년, 통일교는 국제평화의원연합(IAPP)의 평양 방문을 후원했다. 2020년, 통일운동은 한국 통일을 위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한학자는 운동의 지도자 및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2019년, 일본 집회에서 환태평양 국가 간의 협력을 촉구했다. 2020년, 한국 통일을 위한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했다. 2020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선학평화상을 수상했다.
2021년, 도널드 트럼프와 아베 신조는 통일교 계열 단체 행사에서 연설했다. 2022년 8월 기준, 일본 내각 장관 5명이 통일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과 통일교는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57년 통일교에 입교한 박보희, 한상국, 김상인, 한상길 4명의 한국 육군 장교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한국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박보희는 주미 한국 대사관 무관 보좌관, 한상국은 김종필 개인 보좌관, 김상인은 KCIA 멕시코시티 지국장, 한상길은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 무관이 되었다. 통일교는 김종필에 의해 재편되었고, 박정희 정권과 함께 무기 산업 등에 진출했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에서 통일교는 한국 정부 및 KCIA와 협력하여 한국자유문화재단, 디플로맷 내셔널 은행 등을 통해 비밀 활동을 했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불법 조달하고, 미국 내 반일 데모를 조직하는 등 한국의 국익을 증진했다.
일본 진출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최봉춘(니시카와 마사루)이 일본에 밀입국, 1959년 일본 통일교회가 발족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원리연구회에 의한 가정 파탄, 학업 포기가 사회 문제가 되었고, 원리운동대책전국부모회가 결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아사히 신문과 주간 문춘의 비판 캠페인이 있었지만, 교단은 반발했다. 1984년 세계일보 편집장 후쿠시마 요시카즈가 내부 고발 후 습격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통일교는 원리연구회 문제, 영감 상법, 마인드 컨트롤, 합동 결혼식, 입양, 마약 관련 문제, KCIA와의 정치 공작, 반공주의, 북한과의 관계, 역사 수정주의, 문화 공산주의론, 반부부 별성, 반LGBT 운동, 각국 보수·극우 세력과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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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는 컬트로 간주된다. 프랑스에서는 반세크트법, 러시아에서는 대테러법으로 규제 대상이며, 중국에서는 1997년 사교로 인정되어 활동이 금지되었다.
통일교는 이스라엘 강경파, 장-마리 르펜 시대 국민전선, 니카라과 콘트라 등 보수·극우 세력을 후원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기시 노부스케와 접점을 가졌고, 국제승공연합 등을 통해 자유민주당 등 보수 정치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후쿠다 다케오 내각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승공연합과 자민당의 협력 관계를 인정했다.
일본에서는 영감 상법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다.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21년까지 피해 건수는 3만 4537건, 피해 총액은 약 1237이다. 영감 상법 상품에는 항아리, 인감, 다보탑, 인삼 농축액 등이 사용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교단 신자에 대한 특상법·약사법 위반 적발이 13건 발생했고, 2009년 신세 사건에서는 교단 시부야 교회 및 고토쿠지 교회도 강제 수사 대상이 되었다.
영감 상법 문제 배경에는 문선명 등 한국인 간부의 일본에 대한 한(恨)의 감정이 지적된다. 문선명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약소 민족의 고통을 체험했고, 일본 유학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와 협력, 항일 지하 운동에 참가했다. 교리에서 일본은 “에바 국가”, “사탄(악마) 쪽 나라”이다. 교단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범 안중근과 유관순을 기리는 운동도 전개했다. 문선명은 일본을 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 천황을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향로 세이키 변호사에 따르면, 신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받아 영감 상법, 불법 선거 운동 등 반사회적 행위를 한다. 신자는 “정체를 숨기는” 경우가 많고, “천적인 거짓말”이라는 방편으로 교단 외부인을 속인다.
교단은 경제 활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일본인 신자를 통해 수산회사를 일으켜 전미 스시집 생선 유통의 8할을 점유했다. 한국에서는 재벌 조직으로 취급되며, 국제적 정치력도 획득했지만, 운영 자금의 7할은 일본에서 영감 상법 등으로 얻어진 돈이다. 사쿠라이 요시히데 홋카이도대학 교수는 통일교가 국가별 기능 특화 전략으로 종교적 경쟁력 부족을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신자는 경제 활동을 위해 혹사당하고, 해외 위험 지역에 보내져 범죄에 휘말리기도 한다. 변호사들은 “헌신”이 “헌금”이나 “영감 상법”보다 악질적인 피해를 낳는다고 한다. 통일교는 “아벨과 카인의 원리”라는 상하 관계가 철저하며, 신자는 교단 내부 상사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일본 교단은 한국인 간부가 통제하는 “한국 지배” 체제이다.
아리타 요시오는 통일교를 “다국적 기업을 능가하는 준군사적 국제 정당”, “종교라는 가면을 쓴 경제=정치 복합 조직”이라고 평가한다. 1978년 미국 하원 프레이저 위원회 보고서는 통일교를 “엄격한 규율을 가진 국제 정당”으로 평가하며, 최종 목표를 문선명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적인 정교일치 국가 건설”이라고 단정했다. 문선명은 “현인신인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국 정치를 만든다”고 말했다.
부모 세대가 통일교 신자인 “2세 신자” 문제도 심각하다. 유년기부터 신앙을 강요당하는 등 가정 폭력(DV) 상태에 놓인 아이들은 변호사단의 구제를 받고 있다
2012년 문선명 사망 후, 문형진은 세계평화통일성전(샌추어리 교회)을 설립했다. 통일교는 문형진의 샌추어리 교회를 “탈회 조직”으로 간주한다. 문형진은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로,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 참가했다.
2023년 10월 13일, 문부과학성은 종교법인법에 근거한 통일교 해산 명령을 도쿄 지방법원에 청구했다.
교리는 대한민국 전통 풍습을 반영하며, 한국어 유래 용어가 많다. 신자는 한국어로 “식구(식구)”라고 불리고, 한국어 교육도 지시받았다. 의식 복장과 예배에도 한국적 색채가 강하며, 한국인이 우대되었다.
부도 요시카즈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는 “한민족 우월주의”, “한국 중심주의”를 설파한다.
교단 경전 『원리강론』 한국어판에서 일본은 “사탄” 쪽 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한국을 통해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교단 기념일에는 문선명과 가족에게 천황 대리 쿠보키 마사미, 미국 대통령 등 각국 국가 원수로 분장한 간부가 무릎을 꿇는 의식이 행해진다.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종교 창시자로 분장한 인물도 문선명에게 엎드린다. 통일교 종교 활동과 국제승공연합 정치 활동은 문선명의 야망 실현을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스즈키 쿠니오는 천황으로 분장한 쿠보키 마사미가 문선명에게 엎드리는 의식을 비판했다. 문선명을 도경에 비유하며, 포교 활동을 “세뇌”라고 지적했다. 교단의 경제 활동을 “합법, 불법을 묻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이라고 비판하며,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처럼 굴욕적인 속죄사관을 짙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2년, 문선명 지시에 따라 세계일보는 안중근 기념 사업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 사업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도 찬동했다. 세계일보는 약 1800을 모금했지만, 사업 시작이 늦어져 비판받았다. 여순 주변 군사 지역 분류, 중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부지 확보에 실패했다.
교단은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등을 통해 학계 침투를 시도했다.
문선명은 1972년부터 “과학의 통일 관련 국제회의”(ICUS)를 개최했다. 목적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학자 집단 결성, 대안적 활동 기반 모색, 서구 학자들에게 동양 가치관 교육이었다. 1973년 회의에서 존 C. 에클스가 문선명을 극찬했다. 리처드 루벤스도 초청 연사로 참석, 1976년 합동결혼식에서 축사를 요청받았다.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초대 회장 마쓰시타 마사토시는 “가짜 학자”(좌익 계열 학자)에 대한 대항을 밝혔다.
후쿠다 노부유키는 1974년 임피리얼호텔 “희망의 날 만찬”에서 문선명과 처음 만났다. 쓰쿠바대학교 총장 미와 토모오와 함께 초청받았다. 학생운동 대책으로 도쿄교육대학의 쓰쿠바 이전을 주도했고, 공산주의에 대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1976년 중의원 문교위원회에서 후쿠다 노부유키의 교단 관계가 문제시되었다. 1983년 문선명 주재 오찬 참석, 문선명 탈세 체포 비난 담화, 댄버리 교도소 면회 등을 했다. “동아시아 종합 연구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1984년 쓰쿠바대학교 “국제관계학과”는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회원, 개헌·핵무장론자가 많아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고 문제시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후쿠다 노부유키가 우경화·자유민주당 노선에 기여하려는 의도가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4.2. 교육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대한민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선문대학교(충청남도 천안시, 아산시), 선학유피대학원대학교와 청심국제중학교·청심국제고등학교(경기도 가평군), 선화예술고등학교, 선화예술중학교, 경복초등학교(서울특별시 광진구),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선정고등학교, 선정중학교(서울특별시 은평구) 등이 있다.
미국에는 통일신학대학원(UTS)과 브리지포트대학교가 있었으나, 2019년 5월 브리지포트대학교는 통일교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4.3. 학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학술 단체로 '국제문화재단(ICF)'과 교수 단체인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크리스천교수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 각 대학 내에는 '원리연구회', '국제기독학생회', '남북통일 전국학생총연합' 등의 종교 동아리를 조직했다. 또한, '국제과학통일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통일교는 과학과 종교의 통합 개념을 홍보하기 위해 과학의 통일 국제회의(ICUS)를 후원했다. 미국 뉴스 매체는 이 회의가 종종 논란이 되는 교회의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고 제안했다. 1972년에 열린 첫 번째 회의에는 20명이 참가했고, 1982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가장 큰 회의에는 100개국 이상에서 808명이 참가했다. 한 번 이상 회의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존 에클스(1963년 생리학 또는 의학상, 1976년 회의 의장) 와 유진 위그너(1963년 물리학상)가 있다.
신통일사상은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요구한다. "종교와 과학은 각자의 영역에서 무지를 극복하고 지식을 얻기 위한 진리 탐구의 방법이었습니다. 결국 종교의 길과 과학의 길은 통합되어야 하며, 그 문제는 하나의 통합된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내적이고 외적인 진리의 두 측면은 완벽한 조화 속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통일교와 과학의 관계는 2002년 통일교 신자 조너선 웰스(지적 설계 옹호자)가 집필한 진화론 교육을 비판하는 대중적인 책인 진화의 아이콘이 출판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웰스는 통일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디스커버리 연구소에서 지적 설계 옹호자로 활동해왔다.
4.4. 기업
통일그룹 산하의 일화, 선원건설, 일신석재, 용평리조트, 세계일보, 세일여행사, 청심국제병원 등을 경영한다.
평화자동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자동차 공장을 세워 '휘파람'이라는 자동차를 생산 및 시판했다. 하지만 2012년 9월 3일 문선명 총재 사망 이후 평화자동차는 북한에 경영권을 넘겼다.
4.5. 언론
세계 4대 통신사 중 하나인 UPI를 인수하여 경영하는 한편, 미국에서는 1977년 뉴스 월드(News World), 1982년 워싱턴 타임스(Washington Times)를, 대한민국에서는 1989년 세계일보, 2005년 스포츠월드를, 일본에서는 세카이닛포를, 중동에서는 미들 이스트 타임스(Middle East Times)를, 중남미에서는 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를 창간하였다.
1976년 통일교 회원들은 국제 뉴스 미디어 기업인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News World Communications)를 설립했다. 처음 두 신문인 뉴스월드(나중에 뉴욕시 트리뷴(New York City Tribune)으로 이름이 바뀜)와 스페인어판 노티시아스 델 문도(Noticias del Mundo)는 1976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뉴욕에서 발행되었다. 1982년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뉴스월드를 "통일교의 신문 부문"으로 묘사했다. 문선명의 아들 문현진은 이사회 회장을 맡았다.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스는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United Press International), 월드 앤드 아이(The World and I), 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라틴 아메리카), 세계일보(한국), 세계일보(The Sekai Nippo)(일본), 잠베지 타임스(Zambezi Times)(남아프리카 공화국), 미들 이스트 타임스(The Middle East Times)(이집트)를 소유하고 있다. 2008년까지 워싱턴 D.C.에 본사를 둔 뉴스 매거진 인사이트 온 더 뉴스(Insight on the News)를 발행했다. 2010년까지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를 소유했다. 2010년 11월 2일 문선명과 전 타임스 편집자들은 뉴스월드로부터 신문을 매입했다.
5. 가문 구성원
문선명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3세대 이후 자손들에 대한 서술은 추가가 필요하다.
| 관계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제1대 총재 | 문선명 | 1920년 2월 25일 | 2012년 9월 3일 | |
| 1처 | 최선길 | |||
| 장남 | 문성진 | 1946년 4월 2일 | ||
| 2처 | ||||
| 차남 | 문희진 | 1955년 8월 17일 | 1969년 8월 1일 | |
| 본처 | 한학자 | 1943년 2월 10일 | 제4대 총재 | |
| 장녀 | 문예진 | 1961년 1월 27일 | ||
| 3남 | 문효진 | 1962년 | 2008년 | |
| 차녀 | 문혜진 | 1964년 | ||
| 3녀 | 문인진 | 1965년 | ||
| 5남 | 문흥진 | 1966년 10월 23일 | 1984년 1월 20일 | |
| 4녀 | 문은진 | 1967년 | ||
| 6남 | 문현진 | 1969년 5월 25일 | ||
| 7남 | 문국진 | 1970년 7월 17일 | ||
| 8남 | 문권진 | 1975년 | ||
| 5녀 | 문선진 | 1976년 | 제3대 총재 | |
| 9남 | 문영진 | 1978년 | 1999년 | |
| 10남 | 문형진 | 1979년 9월 26일 | 제2대 총재 | |
| 6녀 | 문연진 | 1981년 | ||
| 7녀 | 문정진 | 1982년 | ||
| 내연녀 | 최씨 | |||
| 4남 | 박사무엘 | 1966년 1월 26일 |
6. 다른 종교의 입장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교리의 기초로 삼는 등 기독교와 유사하지만, 다른 행보로 초기부터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계는 1979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성명을 통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기독교가 아니며 이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창조과학회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는 교황청 비그리스도교 사무국의 권고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지만, 2010년 '통일교 세계본부교회(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천복궁가정교회)' 봉헌식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불교와의 소통과 화합을 기대한다."라고 축사했고,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 스님이 참석해 앞날을 기원했다.
1994년 5월 1일, 문선명은 HSA-UWC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을 출범시켰다. 2003년 한국 FFWPU 회원들은 "하나님, 평화, 통일, 가정당"을 창당, 한국 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FFWPU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정당이 창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통일교는 한국보다 일본의 이익을 지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언론은 통일교와 일본 보수 세력 간의 연관성을 보도하며 "친일" 또는 "신친일"이라고 지칭했다. 일부 언론은 윤석열의 친일 외교 정책과 통일교의 연관성을 보도했다.
교리에는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풍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사용되는 용어에도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교단 내 신자는 “식구”라고 불리고, 일본인 신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지시받았다. 의식 복장과 예배에도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며, 인사 면에서도 한국인이 우대되었다.
전 일본통일교 본부 홍보국장이자 교단 계열 언론인 『세계일보』 전 편집장인 부도 요시카즈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는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에 우월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한국 중심주의”가 설파되고 있다.
교단 경전인 『원리강론』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사탄” 쪽 나라로, 대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숭배하며 한국 기독교를 박해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나라로, 이는 문선명이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단 “사대명절”에는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 대해 천황 대리인 일본통일교 회장 쿠보키 마사미가 예배를 올리고,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 국가 원수로 분장한 교단 간부가 무릎을 꿇는다.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주요 종교 창시자로 분장한 인물도 문선명 가족에게 엎드린다. 통일교 종교 활동과 국제승공연합 정치 활동은 문선명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이 내부 고발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신우익 단체 일수회 회장 스즈키 쿠니오는 쿠보키 마사미가 문선명에게 엎드리는 의식을 비판했다. 문선명을 도경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교단 포교 활동을 “세뇌”라 하며, 신자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제한받고 교단에 따르는 실태를 “공산주의적”이라 지적했다.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공산주의화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반공 활동을 구실로 교단이 자민당과 체제파 문화인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 “‘반공’조차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며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처음부터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단 경제 활동에 대해 “합법, 불법을 묻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연간 240억 엔 자금이 일본에서 문선명에게 송금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본의 전쟁에 대한 한국 측 복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인 회원에게는 ‘침략 전쟁’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본질은 극좌반일 테러 조직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처럼 굴욕적인 속죄 사관을 짙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단 신자 청년의 선거 지원 등 이면에는 교단의 일본 정계 영향력 강화 야심이 있다고 경계했다.
초기 문선명은 전투적인 반공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를 신의 섭리에 기반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악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을 바라는 서방 국가들, 특히 서방 국가들의 반공 세력(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으로부터 상호 지지를 얻어 통일교는 규모를 확장했다.
교단은 공산주의 혁명 방지를 주 목적으로, 일본에서 기시 노부스케, 고다마 요시오, 사사카와 료이치 등이 중심이 되어 1968년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단체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했다. 미노베 료키치 도정 탄생 등 좌파 세력 신장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우파 세력이 야마나시 혼바시호에서 “제1회 아시아 반공 연맹 결성 준비회”를 열고 반공·애국 민족 통일 전선을 결성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이 운동 흐름을 이어받아 국제승공연합이 결성되었다. 국제승공연합은 “공산주의는 잘못되었다”고 외치며 반공 운동을 전개했다. 후에 “승공운동을 응원하는 모임”을 결성, 키우치 노부타네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76년 제78회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타에다 히데오가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관계자 증언을 인용하는 형태로 언급하고 있다.
국제승공연합은 1969년 자유옹호연맹에 접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자유민주연맹(WACL, 세계반공연맹) 대회 참가를 실현했다. 자유옹호연맹은 기시 노부스케와 관계가 깊은 조직으로, 당시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타나베 테츠조가 회장이었다.
1970년 9월 상순 기시 노부스케 소개장으로 일본 통일교 회장 쿠보키 슈키와 한국 대통령 박정희 회담이 실현되었다. 쿠보키 슈키는 일본 조선총련 우려를 이야기하고, 양자는 반공 운동 공투를 약속했다. 같은 해 9월 20일, 국제승공연합은 일본무도관에서 개최된 세계반공연맹(WACL)을 지원했다. 미 상원 의원 스트롬 서먼드, 쿠바 피델 카스트로 의장 여동생 후아니타 카스트로를 게스트로, 사토 에이사쿠 총리, 박정희 대통령 메시지를 받았다.
북한 위협을 염두에 두고 1958년 인천광역시에 총기 제조 회사 ‘통일산업’ 주안 공장을 설립했다. 1970년 제주도에서 제2회 한일 사냥 대회가 개최되어, 일본인, 한국인 교단 신자가 참가했다. 문선명은 “통일교 청년들은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왔을 때, 총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승공연합은 반공주의를 철저히 지키며, 공산주의는 신을 부정하는 사탄 사상이라 설파하는 “승공사상(승공이론)” 계몽을 운동 방침 제일의로 내걸었다. “국제승공연합”은 공산주의를 “신에 대한 반역 사상”으로 규정, 그 근원은 중세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이라 주장한다. 르네상스는 중세 기독교 권위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목표, 인간 자유로운 창조성을 중시하는 운동이지만, 프랑스 계몽사상가에게 계승되어 프랑스 혁명에 이르렀고, 카를 마르크스 공산주의는 이 흐름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교단, 승공연합은 국가기밀 관련 스파이 행위 등 방지 법률안, 청소년 유해 사회 환경 대책 기본 법률안 제정 운동, 일본국 헌법, 교육기본법 개정 추진, 성교육 교과서 문제, 자궁경부암 백신 퇴치 캠페인 등에 임하며,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젠더 프리, 인권옹호법안,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반대했다. 전수방위·비핵3원칙·무기수출3원칙 파기 등을 제창했다.
교단에서는 LGBT, 동성결혼, 부부별성을 교리 안에서 공산주의가 모습을 바꾼 “문화공산주의”라 부르며,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일본에서 일본공산당을 타겟으로 여러 방해 공작을 꾸몄다. 1972년 가을 총선거에서 자민당 패배, 일본공산당 40석 획득 후, 공산당을 타겟으로 한 “구국의 예언” 캠페인을 전개했다. 아리타 요시오가 우익 하타 토시오에게서 얻은 증언으로, 하카마다 사토미 부위원장이 공산당 제명 직후인 1978년, 통일교 쿠보키 슈키 회장, 국제승공연합 카지구리 겐타로 이사장이 교토시 호텔에서 하카마다 사토미와 면식 있던 하타 토시오와 면회, “돈은 얼마가 들더라도 하카마다를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없는가. 공산당 공격 재료가 생긴다”고 상담했다는 내용이 있다.
전 공안조사청 간부 스가누마 미쓰히로는 다카하시 코스케 취재에 통일교에 논쟁을 펼친 민청 멤버가 포섭되어 입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소련 공산주의 쇠퇴 후, 서방에서 여러 신흥 종교가 진출했지만, 문선명도 소련인을 원조, 1990년 4월 모스크바 통일교 세계 미디어 회의 후,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사적 면회, 일본 경제계 협력, 대소 투자 조사를 약속했다.
쿠보키 슈키에 의하면, 국제승공연합 운동의 진정한 목적은 “반공” 자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승리, 공산주의 세계마저 구제, 인류 일가족 같은 세계 실현”이라는 종교적 관점이다. 국제승공연합은 갓디즘(신주의)을 기본 이념, 단순 정치 운동이 아닌, 종교적 이념을 베이스로 한 사회 계몽 운동, 국민 교육 운동이라고 한다.
6.1. 세계적인 관점
1985년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 비그리스도교 사무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기독교가 아닌 사교(邪敎)로 간주하여 "평신도와 수도자 그리고 특히 사제들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주관하거나 후원하는 단체에 일체 참여하지 말라"는 취지를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권고했다.
통일교의 『신본론(Divine Principle)』은 세계를 4대 주요 지역( 이슬람권, 동아시아, 힌두 지역, 그리스도교 세계)으로 나눈다. 1987년 교회 회원 리 샤피로(Lee Shapiro)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중 사망하면서 통일교의 이슬람주의 반공주의자 지지가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함께 여행했던 저항 세력은 소비에트 연방 또는 아프간 정부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 굴부딘 헤크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의 좋지 않은 평판 때문에 그 세부 사항은 의문을 제기받았다.
미국 이슬람 관계 위원회는 이슬람혐오적 주제를 규칙적으로 보여주거나 지지하는 언론 매체로 『워싱턴 타임스』를 언급했다. 1998년 이집트 신문 『알아흐람(Al-Ahram)』은 자사의 편집 방침이 "맹렬한 반아랍, 반이슬람, 친이스라엘"이라고 보도했다. 1997년 미국과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중동 문제에 대한 워싱턴 보고서(Washington Report on Middle East Affairs)』는 『워싱턴 타임스』와 『타임스』 자매지인 『미들 이스트 타임스(The Middle East Times)』(그리고 기독교 과학회(Church of Christ, Scientist)가 소유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와 함께)가 이슬람과 중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유익한 보도를 했다고 칭찬하면서, 『타임스』의 일반적인 친이스라엘 편집 방침을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종교 단체가 소유한 이 신문들이 미국의 친이스라엘 압력 단체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시사했다.
2000년 통일교는 가족의 단결과 인종 및 종교 화합을 기념하는 집회인 밀리언 패밀리 마치(Million Family March)를 이슬람 민족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공동 주최했다. 루이스 퍼러칸(Louis Farrakhan)이 이 행사의 주요 연설자였다. 통일교 지도자 댄 페퍼먼(Dan Fefferman)은 동료들에게 퍼러칸과 문선명의 견해가 여러 문제에서 다르지만 "하나님 중심의 가족"이라는 견해를 공유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편지를 썼다. 2007년 문선명 목사와 그의 부인은 퍼러칸이 암에서 회복 중일 때 "퍼러칸 목사님과 카디자 어머니께 사랑과 인사를 전합니다"라고 말하며 인사를 전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통일교는 무함마드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과 공자, 붓다, 예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과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레닌, 요셉 스탈린, 레온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 많은 정치 지도자들과의 교신을 주장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통일교를 이슬람뿐만 아니라 주류 기독교로부터도 멀어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통일교는 아메리칸 라이프 TV 네트워크(American Life TV Network)(현재 Youtoo TV로 알려짐)를 소유했는데, 2007년에는 조지 클루니의 다큐멘터리 『다르푸르로의 여정(A Journey to Darfur)』을 방영했고, 이 다큐멘터리는 수단 공화국 다르푸르의 이슬람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2008년 DVD로 출시되었고, 판매 수익금은 국제구호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에 기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선명은 2009년 자서전에서 이슬람을 칭찬하고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 간의 이해가 더욱 증진되기를 희망했다. 2011년 통일교 대표들은 무슬림 세계 연맹(Muslim World League)이 타이완에서 개최한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다. 2009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은 페루 공화국 의회(Congress of the Republic of Peru)에서 종교 간 행사를 개최했다. 전 의회 의장 마르시알 아야이포마(Marcial Ayaipoma)를 비롯한 저명한 정치인들이 통일교의 "평화 대사"로 임명되었다. 2010년에는 서울에 대규모 종교 간 사원을 건립했다. 작가 딥팍 초프라(Deepak Chopra)는 유엔과 공동 주최한 통일교의 종교 간 행사에서 기조연설자(keynote)를 맡았으며, 유엔 본부(headquarters of the United Nations)에서 열렸다. 2011년에는 태국 국회(National Assembly of Thailand)에서 종교 간 행사가 열렸으며, 태국 국회의장(President of the National Assembly of Thailand)이 참석했다.
2012년, 통일교 운동과 관련된 세계평화연합(Universal Peace Federation)은 유엔이 공동 후원한 이탈리아 종교 간 대화를 개최했다. 같은 해, 세계평화연합은 유엔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회의장에서 12개 종교 및 종파 대표를 위한 종교 간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유엔총회 의장(President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유엔 사무차장(Deputy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유엔 주재 교황청 상주관찰원(Permanent Observer of the Holy See to the United Nations) 등 유엔 관계자들이 연설했다.
6.2. 한국 내 관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교리의 기초로 삼는 등 기독교와 상당히 유사하였지만, 다른 행보로 초기부터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계는 이 종교를 명백히 배척하여 1979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이단이라고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 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창조과학회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에서는 교황청 비그리스도교 사무국의 권고에 따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지만, 2010년 열린 당시 '통일교 세계본부교회(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천복궁가정교회)'의 봉헌식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불교와의 소통과 화합을 기대한다."라고 축사를 했고,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 스님이 참석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앞날을 기원했다.
1994년 5월 1일, 문선명은 HSA-UWC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단체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을 출범시켰다.
2003년 한국 FFWPU 회원들은 한국에서 "하나님, 평화, 통일, 가정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창당 선언문은 새로운 정당이 하나님과 평화에 대한 대중 교육을 통해 한국 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FFWPU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정당이 창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통일교는 한국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을 지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언론은 통일교와 일본 보수 세력 간의 연관성을 보도하며 이들을 "친일파"(친일) 또는 "신친일파"(신친일)라고 지칭했다. 일부 한국 언론은 윤석열의 친일 외교 정책과 통일교 사이의 연관성을 보도했다.
교단의 교리는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풍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사용되는 용어에도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교단 내에서 신자는 한국어로 “가족”에 해당하는 “식구(식구)”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본인 신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지시받았다. 의식의 복장과 예배에도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며, 인사 면에서도 한국인이 우대되었다.
전 일본통일교 본부 홍보국장이자 교단 계열 언론인 『세계일보』 전 편집장인 부도 요시카즈(副島嘉和)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는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에 우월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한국 중심주의”가 설파되고 있다.
교단의 경전인 『원리강론』의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사탄” 쪽 나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숭배하며 한국 기독교를 가혹하게 박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나라로 되어 있다. 이는 교조인 문선명이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교단이 “사대명절”이라고 부르는 기념일에는,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 대해, 천황의 대리로 일본통일교 회장인 쿠보키 마사미(久保木修己)가 예배를 올리는 의식이 행해지며, 그 외에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로 분장한 교단 간부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는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주요 종교의 창시자로 분장한 인물도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게 엎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교가 하는 종교 활동과 국제승공연합이 하는 정치 활동은, 이러한 문선명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이 내부 고발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신우익 단체인 일수회 회장인 스즈키 쿠니오(鈴木邦男)는 천황으로 분장한 쿠보키가 문선명에게 엎드리는 의식에 대해 비판했다. 문선명을 도경(道鏡)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또한, 교단의 포교 활동을 “세뇌”라고 하며, 신자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제한받고 교단에 따르게 하는 실태를 “공산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공산주의화되어 있지 않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공 활동을 구실로 교단이 자민당과 체제파 문화인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공’조차도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며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처음부터 이용하기 위해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단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도 “합법, 불법을 묻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연간 240억 엔의 자금이 일본에서 문선명에게 송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는 일본의 전쟁에 대한 한국 측의 복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인 회원에게는 그렇게 함으로써 ‘침략 전쟁’의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본질은, 극좌반일 테러 조직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마찬가지로, 굴욕적인 속죄 사관을 짙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단 신자 청년의 선거 지원 등에 대해서도, 그 이면에는 교단의 일본 정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야심이 있다고 하며, 경계를 촉구하고 있었다.
초기 문선명은 전투적인 반공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를 신의 섭리에 기반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악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을 바라는 서방 국가들, 특히 서방 국가들의 반공 세력(미국에서는 공화당, 일본에서는 자민당에 해당)으로부터 상호 지지를 얻음으로써 통일교는 규모를 확장했다.
교단은 공산주의 혁명 방지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고, 일본에서는 기시 노부스케, 고다마 요시오, 사사카와 료이치 등이 중심이 되어 1968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단체인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했다. 단체 결성 경위로는 미노베 료키치 도정 탄생 등 좌파 세력의 신장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우파 세력이 야마나시의 혼바시호에서 “제1회 아시아 반공 연맹 결성 준비회”를 열고 반공·애국의 민족 통일 전선을 결성하려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후 이 운동의 흐름을 이어받는 형태로 국제승공연합이 결성되었다. 국제승공연합은 길거리에서 “공산주의는 잘못되었다”고 외치며 공공연하게 반공 운동을 전개했다. 후에 이에 동조하는 저명인사들이 “승공운동을 응원하는 모임”을 결성했고, 키우치 노부타네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경위에 대해서는 1976년 제78회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타에다 히데오가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하는 형태로 언급하고 있다.
국제승공연합은 세계의 반공 운동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1969년, 자유옹호연맹에 접근하여, 태국의 방콕에서 열린 세계자유민주연맹(WACL, 세계반공연맹) 대회 참가를 실현했다. 자유옹호연맹은 기시 노부스케와 관계가 깊은 조직으로, 당시 도쿄대학 명예교수인 와타나베 테츠조가 회장을 맡고 있었다.
1970년 9월 상순에는 기시 노부스케의 소개장에 의해, 일본 통일교 회장 쿠보키 슈키와 한국 대통령 박정희와의 회담이 실현되었다. 회담은 1시간 이상에 걸쳐, 쿠보키는 일본에서의 조선총련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고, 양자는 반공 운동에서의 공투를 약속했다. 같은 해 9월 20일, 국제승공연합은 일본무도관에서 개최된 세계반공연맹(WACL)을 전면적으로 지원했다. 미 상원 의원 스트롬 서먼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의 여동생 후아니타 카스트로를 게스트로 맞이했다. 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와 한국 대통령 박정희로부터도 메시지를 받았다.
북한의 위협을 염두에 두고 총기 제조도 시작하여, 1958년 인천광역시에 총기 제조 회사 ‘통일산업’ 주안 공장을 설립했다. 1970년에는 제주도에서 제2회 한일 사냥 대회가 개최되어, 일본인과 한국인 교단 신자가 다수 참가했다. 문선명은 대회 개최 이유로 “통일교의 청년들은 북한의 공산당이 쳐들어왔을 때, 총을 들고 그들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승공연합에서는 반공주의가 철저하게 지켜졌으며, 공산주의는 신을 부정하는 사탄의 사상이라고 설파하는 “승공사상(승공이론)”의 계몽을 운동 방침의 제일의로 내걸고 있다. 또한 “국제승공연합”은 공산주의를 “신에 대한 반역의 사상”으로 규정하고, 그 근원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르네상스 운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르네상스는 중세 기독교 권위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중시하는 운동이지만, 이것이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에게 계승되어 프랑스 혁명에 이르렀고,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이 흐름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단이나 승공연합은 국가기밀에 관한 스파이 행위 등의 방지에 관한 법률안이나 청소년 유해 사회 환경 대책 기본 법률안 제정 운동, 일본국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개정 추진, 성교육에 관한 교과서 문제나 자궁경부암 백신 퇴치 캠페인 등에 임하는 한편,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나 젠더 프리, 인권옹호법안,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는 반대했다. 또한 전수방위·비핵3원칙·무기수출3원칙의 파기 등을 제창했다.
교단에서는 LGBT, 동성결혼이나 부부별성을, 교리 안에서 공산주의가 모습을 바꾼 “문화공산주의”라고 부르며,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공산당을 타겟으로 하여 여러 가지 방해 공작을 꾸몄다. 1972년 가을,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고 일본공산당이 40석을 획득하자, 공산당을 타겟으로 한 “구국의 예언”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한, 아리타 요시오가 우익 하타 토시오로부터 얻은 증언으로, 하카마다 사토미 부위원장이 공산당에서 제명된 직후인 1978년에, 통일교의 쿠보키 슈키 회장과 국제승공연합의 카지구리 겐타로 이사장이 교토시내 호텔에서 하카마다와 면식이 있던 하타 토시오와 면회하여, “돈은 얼마가 들더라도 하카마다를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없는가. 공산당을 공격할 재료가 생긴다”고 상담했다는 내용이 있다.
전 공안조사청 간부 스가누마 미쓰히로는 다카하시 코스케의 취재에 대해, 통일교에 논전을 펼친 민청(일본민주청년동맹)의 멤버가 포섭되어 입신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공산주의가 쇠퇴한 후, 서방으로부터 여러 가지 신흥 종교가 진출하고 있었지만, 문선명도 소련인을 원조하고, 1990년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통일교의 세계 미디어 회의 후,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사적으로 면회하여, 일본의 경제계에 협력하여 대소 투자에 대해 조사하도록 약속했다.
쿠보키 슈키에 의하면, 국제승공연합 운동의 진정한 목적은 “반공” 그 자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승리함으로써 공산주의 세계마저 구제하고, 인류 일가족과 같은 세계를 실현하자”는 종교적 관점이라고 한다. 국제승공연합은 갓디즘(신주의)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단순한 정치 운동이 아니라, 종교적 이념을 베이스로 한 사회 계몽 운동이며, 국민 교육 운동이기도 하다고 한다.
7.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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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다양한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 초기 역사 및 명칭: 1954년 문선명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하기 전까지, 그의 추종자 그룹은 별도의 조직이나 교파를 설립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통일교'라는 비공식 명칭은 구성원, 대중,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 "무니"라는 용어: 구성원을 지칭하는 속어인 "무니"는 1974년 일부 미국 언론 매체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 통일교는 이 용어 사용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많은 통일교 신자들은 이 단어를 경멸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통일신학대학교 총장 김데이빗, 문선명의 보좌관 박보희, 문선명 자신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
* 한국 정부와의 관계: 통일교회는 발족 직후부터 한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76년 한국 정부의 미국 의회 및 정부에 대한 매수 공작(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통일교회는 정부 및 KCIA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비밀 활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 밝혀졌다.
* 정치적 활동: 통일교회는 가정 파괴, 학업 포기, 영감 상법, 마인드 컨트롤을 이용한 고액 물품 판매 및 헌금, 합동 결혼식, 신자 간 입양 등의 문제 외에도,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와 연계한 국제적인 정치 공작 활동, 반공주의, 한반도 통일 지지, 김일성 시대부터의 북한과의 관계, 역사 수정주의, 문화 공산주의론 유포, 반부부 별성, 반LGBT 운동, 세계 각국의 보수·극우 세력과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컬트 논란: 통일교회는 일반적으로 컬트로 간주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세크트법, 러시아에서는 대테러법에 의해 규제 및 감시 대상이다. 중국에서는 1997년에 ‘사교’로 인정되어 활동이 금지되었다.
* 국제적 후원: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강경파,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시대의 국민전선, 니카라과의 반공 게릴라·콘트라 등 세계 각국의 보수 강경파 또는 극우 세력을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과의 관계: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기시 노부스케와 접점을 가지고, 이후 반공주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정계에 침투했다. 교단은 현재까지 국제승공연합 등의 관련 단체를 통해 자유민주당 등의 보수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경제적 피해: 일본에서는 영감 상법에 의한 경제적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으며, 1987년부터 2021년까지 피해 건수는 34,537건, 피해 총액은 약 123700에 달한다.
* 교리 문제: 개신교 해설가들은 통일교 교리가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문선명의 메시아 및 그리스도 재림 주장은 유대교와 기독교 학자들 모두에게 거부당했다.
* "천국의 속임수": 통일교는 신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일부 교리를 비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심원주의적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관행은 "천국의 속임수"라고 불린다.
* "하나님을 위해 미치다": 문선명은 "우리 지도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미쳐버린 전통을 남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문선명 개인 관련 논란: 1982년 문선명은 허위 연방 소득세 신고 및 음모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미국에서 투옥되었다. 2004년 워싱턴 D.C. 더크슨 상원 사무실 건물에서 열린 행사에서 문선명은 자신에게 "평화의 왕관"을 씌웠다.
* 일본 통일교회 관련 논란: 일본 통일교회는 명칭 변경 문제, "영적 판매"를 통한 신도들의 재정적 파탄, 아베 신조 암살 사건 이후 일본 정부의 종교법인 지위 취소 시도, 일본 비판자 및 정부에 대한 민사 소송, 아동 입양 문제 등 여러 논란에 직면했다.
* 북한과의 관계: 1994년 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에 따르면 문선명은 1991년 북한 체류 기간 동안 김일성에게 45을 기증했다. 백승주 전 한국 국방부 차관은 일본 통일교 신자들의 기부금이 북한의 핵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고 분석했다.
* "친일" 논란: 대한민국에서 통일교는 한국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을 지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언론은 통일교와 일본 보수 세력 간의 연관성을 보도하며 이들을 "친일파"(친일) 또는 "신친일파"(신친일)라고 지칭했다.
* 천원궁 건설 관련 논란: 가평 통일교 단지 내 천원궁(천지선학원) 건설 현장에서 하도급 업체들이 미지급 공사비를 두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문선명 사후 분열: 2012년 문선명 사망 이후, 그의 아들들은 세계평화연합, 세계가정연합, 철장선교회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문형진이 이끄는 철장선교회는 총기 소유 옹호와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지지로 논란이 되었다.
* 2024년 시위: 2024년 7월 말부터 가평군 천정궁 앞에서 정원주 부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시작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전 통일교 재단 총재 측근, 특히 한학자 측근들의 비리 폭로로 확대되었다.
* 해외 입국 금지 및 추방: 1995년 독일 당국은 문선명과 한학자의 유럽 12개국 입국을 금지했다. 2000년 러시아는 패트릭 프랜시스 놀란의 러시아 재입국을 금지했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 러시아는 존 알폰서스 콜리와 이가라시 슈지를 강제 추방했다.
* 납치 및 "탈세뇌" 시도: 1979년 토마스 워드의 부모는 그를 납치하여 35일 동안 감금하고 종교적 신념을 "탈 프로그램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1982년 프랑스에서는 클레르 샤토가 납치되어 "탈세뇌" 시도를 당했다.
* "종교재판" 주장: 1991년 칼턴 셔우드는 저서 종교재판: 문선명 목사의 박해와 기소에서 의회, 법원, 주정부 기관, 언론이 교회, 지도자, 신도들을 대상으로 "최악의 종교적 편견과 인종적 광신"을 보이며 미국에서 교회를 없애려는 의도적인 시도를 했다고 비난했다.
* 한국 중심주의: 부도 요시카즈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는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에 우월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한국 중심주의”가 설파되고 있다.
* 반공주의: 초기 문선명은 전투적인 반공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를 신의 섭리에 기반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악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는 1968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단체인 국제승공연합(国際勝共連合)을 조직했다.
8. 관련 단체 및 분파
문선명은 199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HSA-UWC) 창립 40주년을 맞아 HSA-UWC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단체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 Family Federation for World Peace and Unification)을 출범시켰다. FFWPU는 HSA-UWC 회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단체 회원들도 포함하여, 성적 도덕성, 종교, 국가, 인종 간 화해 문제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FFWPU는 다른 종교의 수천 명의 부부가 결혼 축복을 받는 축복식을 공동 주관하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교회의 사업은 크게 확장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회원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부유해졌다. 1991년, 문선명은 회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사도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통일교 연구자인 마시모 인트로비뉴(Massimo Introvigne)는 이것이 더 이상 전임 회원이 교회 회원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고 말했다.
1994년,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이 운동을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 해외 자금을 쏟아붓는 신권적 강국"이라고 언급하며 그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했다. 1998년, 이집트 신문 알아흐람(Al-Ahram)은 문선명의 "극우 성향"을 비판하고 보수적인 이스라엘 총리 벤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시사했다.
1995년,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부인 바버라 부시(Barbara Bush)는 도쿄돔(Tokyo Dome)에서 열린 FFWPU 행사에서 연설했다. 한학자(Hak Ja Han)는 남편 문선명이 공산주의 붕괴(Fall of Communism)를 가져왔다고 말했고, 미국을 "가정의 파괴와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2000년, 문선명은 세계비정부기구협회(WANGO, World Association of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를 설립했다. WANGO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일부 이상과 대조적으로 보수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FFWPU는 가족(family) 단결과 인종 및 종교 조화를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 D.C.(Washington, D.C.)에서 열린 백만 가족 행진(Million Family March)을 이스라엘 민족(Nation of Islam)과 공동 주관했다. 루이스 퍼러칸(Louis Farrakhan)이 주요 연설자였으며, FFWPU 지도자 댄 페퍼먼(Dan Fefferman)은 퍼러칸과 문선명의 견해가 다르지만 "하나님 중심의 가족"이라는 견해를 공유한다는 서한을 썼다.
2003년, 한국 FFWPU 회원들은 "천주평화통일가정당"(천주평화통일가정당한국어)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창당 선언문에는 한국 통일(Korean reunification)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과 평화에 대한 대중 교육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FFWPU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정당이 창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이후 FFWPU 관련 세계평화연합의 중동 평화 이니셔티브는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들 간의 이해, 존중, 화해를 증진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State of Palestine)으로 단체 여행을 조직해 왔다.
문선명은 종교적 목적이 아닌 단체를 포함한 여러 단체를 설립했다. 문선명은 자신이 간접적으로 감독하는 단체들의 일상적인 활동 관리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모든 단체들은 그들의 사업 뒤에 있는 영감을 그의 리더십과 가르침에 돌린다.
통일교회는 발족 직후부터 한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57년 통일교회에 입교한 박보희, 한상국, 김상인, 한상길 등 4명의 한국 육군 청년 장교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한국 정부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교단에 제공했다. 박보희는 주미 한국 대사관에 부임했고, 한상국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 초대 국장 김종필의 개인 보좌관, 김상인은 김종필의 통역을 거쳐 KCIA 멕시코시티 지국장, 한상길은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 무관이 되었다. 통일교회는 김종필에 의해 재편되었고,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확립함에 따라 무기 산업 등의 사업에도 진출하여 확장 발전했다.
1976년 한국 정부의 미국 의회 및 미국 정부에 대한 매수 공작(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발각되었다. 통일교회는 정부 및 KCIA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자유문화재단이나 디플로맷 내셔널 은행 등을 통해 비밀 활동을 했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불법으로 조달하여 국경을 넘어 이동시키고, 미국 내에서 반일 데모를 조직하는 등 한국의 국익을 증진시키고, 한국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공작을 벌였다.
일본에서는 1958년 문선명의 명을 받은 선교사 최봉춘(니시카와 마사루)이 밀항선으로 일본에 밀입국했다. 1959년 일본 통일교회가 발족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교단계 학생 단체인 원리연구회에 의한 가정 파탄, 학업 포기가 사회 문제가 되어 피해자 단체인 원리운동대책전국부모회가 결성되었고, 영감 상법이 사회 문제가 된 1980년대 이후 아사히 신문사와 주간 문춘에 의해 대대적인 비판 캠페인이 전개되었지만, 교단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1984년에는 세계일보 편집장 후쿠시마 요시카즈가 교단의 반일 사상 등의 실태에 대해 내부 고발을 한 후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외에도 교단을 비판한 인물·매스미디어에 대한 괴롭힘이나 교단과 관련된 불가사의한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반대파에 “공산주의자”, “사탄”이라는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등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을 가장한 글쓰기를 하는 것 등이 지적되고 있다.
통일교회는 원리연구회에 의한 가정 파괴 및 학업 포기 등의 문제, 영감 상법과 마인드 컨트롤을 응용한 고액의 물건 판매와 헌금, 권유·교화 수법에 관한 문제, 교단이 배우자를 정하는 합동 결혼식, 신자 간의 입양, 마약 관련 자금 세탁과 밀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KCIA)와 연계한 국제적인 정치 공작 활동, 반공주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 김일성 시대부터의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 역사 수정주의, 문화 공산주의론의 유포, 반부부 별성, 반LGBT 운동, 세계 각국의 보수파·극우 세력과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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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는 일반적으로 컬트로 간주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세크트법에 의해, 러시아에서는 대테러법에 의해 규제와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중국에서는 1997년에 ‘사교’로 인정되어 활동이 금지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강경파나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시대의 국민전선, 니카라과의 반공 게릴라·콘트라 등 세계 각국의 보수 강경파 또는 극우 세력을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기시 노부스케와 접점을 가지고, 이후부터 반공주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 정계에 침투해 갔다. 교단은 현재까지 국제승공연합 등의 관련 단체 또는 더미 단체를 통해 자유민주당 등의 보수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자민당과 교단계 국제승공연합과의 협력 관계는 1978년 당시 후쿠다 다케오 내각 총리대신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승공연합으로부터 자민당에 다액의 정치 헌금이 이루어졌던 것, 승공연합으로부터의 차입금의 존재가 당시 자치성의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영감 상법에 의한 경제적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으며,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21년까지의 피해 건수는 3만 4537건으로, 피해 총액은 약 123700에 달한다. 영감 상법의 상품에는 관련 기업에서 제조된 항아리·인감·다보탑·인삼 농축액 등이 사용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에 걸쳐 교단 신자에 대한 특상법·약사법 위반에 의한 적발이 총 13건이나 잇따랐고, 2009년 2월의 신세 사건에서는 교단의 시부야 교회 및 고토쿠지 교회도 강제 수사 대상이 되어 특상법 위반(협박·혼란)으로 5명이 벌금형, 2명이 집행유예부의 징역형 및 벌금형에 처해졌다.
영감 상법 등의 문제의 배경에는 문선명을 비롯한 한국인 간부의 일본에 대한 한(恨)의 감정이 지적되고 있다. 문은 대일본제국 통치하의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중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와 협력, 항일 지하 운동에 참가했던 것도 공언하고 있었다. 교단의 교리는 일본은 “에바 국가”로 “사탄(악마) 쪽의 나라”라고 되어 있다. 또한, 교단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범 안중근과 항일 운동의 영웅으로 불리는 유관순을 기리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가르침(교리)의 하나로, 문교조의 한(恨)을 푸는 것은 “에바 국가 일본을 아담 국가 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 “천황을 자신(문선명)에게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청춘을 돌려다오 재판 등의 관련 사건에 종사했던 변호사 향로 세이키에 따르면, 신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이 전환되어, 객관적으로는 악이라고 하는 행위도, 신을 위해서라면 선이라고 믿는 것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신자는 영감 상법이나 무언 전화, 불법적인 선거 운동 등의 반사회적인 행위를 평온하게 행한다고 한다. 통일교회 신자의 특징의 하나로 “정체를 숨기는”것이 알려져 있으며, 신자인지 질문받아도 “신자가 아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교단 내부에는 “천적인 거짓말”이라고 하는 방편이 있어, 정체를 숨기고의 권유나 모금, 선전 활동 등 교단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교단 외부의 인간을 속이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단은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는 일본인 신자를 이용해 수산회사를 일으켜, 전미의 중·고급 스시집을 위한 생선 유통의 8할을 점유하여 스시를 널리 알리는 등 다각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 조직의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 거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국제적인 정치력도 획득하고 있지만, 교단의 운영 자금의 7할은 일본이 담당하고 있으며, 그 원자금은 일본에서의 영감 상법이나 신자로부터의 경제적 착취로 얻어진 돈이라고 한다. 통일교회가 크게 성장한 최대 전략적 요인으로 종교학자이자 홋카이도대학 교수인 사쿠라이 요시히데는 통일교회가 국가별로 기능을 특화시키는 전략을 들고 있으며, “종교적 경쟁력의 부족을 정치·경제 부문의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한 사업 전개로 극복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자는 교단의 경제 활동을 위해 혹사당하고, 해외의 위험 지역 등에 보내져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들은 돈을 빼앗는 헌금이나 “영감 상법”보다 신자의 인생을 낭비시키는 “헌신”쪽이 더욱 악질적인 피해를 낳고 있다고 하고 있다. 또한, 통일교회에서는 “아벨과 카인의 원리”라고 불리는 상하 관계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신자는 재림의 메시아인 문선명을 정점으로 교단 내부의 상사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요구되고 있으며, 아벨에 대한 “보·연·상(보고·연락·상담)”도 지도되고 있다. 그 대상은 사무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관한 것이나 심정적인 내용까지도 요구된다. 또한, 일본의 교단은 “한국 지배”의 체제가 되어 있으며, 방침을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없고, 한국인 간부가 일본의 교회를 통제하고, 지방 레벨에서도 한국인이 지배하는 체제가 깔려 있다.
아리타 요시오는 통일교회의 본질에 대해 “다국적 기업을 능가하는 준군사적인 국제 정당”, “종교라는 가면을 쓴 경제=정치 복합 조직이다”라는 견해를 나타내고, 그 활동은 일본, 한국, 미국을 비롯해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1978년 11월 1일에 공표된 미국 하원의 프레이저 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가진 국제 정당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교단의 최종 목표를 교조 문선명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적인 정교일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교조 문선명 본인은 “현인신인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국 정치를 만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 세대가 통일교회 신자인 “2세 신자”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유년기부터 신앙을 강요당하는 등, 가정 폭력(DV) 상태에 있었던 당시의 아이들은 신자나 교회로부터의 특정을 두려워하여 숨을 죽이고 생활하지 않을 수 없는 등의 이유에 의해 산재 상태가 되어 있으며, 변호사단이 구제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2012년 9월 3일에 문선명이 사망하자, 문과 한학자의 7남인 문형진은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2013년 2월에 미국 회장을 해임되었다. 2015년 1월, 문형진은 분가 조직인 세계평화통일성전(일명: 샌추어리 교회)을 미국 통일교회와는 별도로 미국 국내에서 설립했다. 통일교회는 현재 문형진의 샌추어리 교회를 “탈회 조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문형진은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AR-15를 중시하는 “Rod of Iron Ministries”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도 참가했다.
2023년 10월 13일, 문부과학성은 종교법인법에 근거한 통일교회의 해산 명령을 도쿄 지방법원에 청구했다.
교단의 교리는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풍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사용되는 용어에도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교단 내에서 신자는 한국어로 “가족”에 해당하는 “식구”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본인 신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도 지시받았다. 의식의 복장과 예배에도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며, 인사 면에서도 한국인이 우대되었다.
전 일본통일교 본부 홍보국장이자 교단 계열 언론인 『세계일보』 전 편집장인 부도 요시카즈의 내부고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는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에 우월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라고 되어 있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한국 중심주의”가 설파되고 있다.
교단의 경전인 『원리강론』의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사탄” 쪽 나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숭배하며 한국 기독교를 가혹하게 박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나라로 되어 있다. 이는 교조인 문선명이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교단이 “사대명절”이라고 부르는 기념일에는,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 대해, 천황의 대리로 일본통일교 회장인 쿠보키 마사미가 예배를 올리는 의식이 행해지며, 그 외에도,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로 분장한 교단 간부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는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주요 종교의 창시자로 분장한 인물도 문선명과 그의 가족에게 엎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교가 하는 종교 활동과 국제승공연합이 하는 정치 활동은, 이러한 문선명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이 내부 고발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신우익 단체인 일수회 회장인 스즈키 쿠니오는 천황으로 분장한 쿠보키가 문선명에게 엎드리는 의식에 대해, “국민의 상징으로서 천황을 위에 모시는 일본 국민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광경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문선명을 도경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또한, 교단의 포교 활동을 “세뇌”라고 하며, 신자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유를 제한받고 교단에 따르게 하는 실태를 “공산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공산주의화되어 있지 않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공 활동을 구실로 교단이 자민당과 체제파 문화인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공’조차도 진짜인지 의심스럽다”며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처음부터 이용하기 위해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단의 경제 활동에 대해서도 “합법, 불법을 묻지 않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연간 24000의 자금이 일본에서 문선명에게 송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는 일본의 전쟁에 대한 한국 측의 복수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인 회원에게는 그렇게 함으로써 ‘침략 전쟁’의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 본질은, 극좌반일 테러 조직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마찬가지로, 굴욕적인 속죄 사관을 짙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단 신자 청년의 선거 지원 등에 대해서도, 그 이면에는 교단의 일본 정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야심이 있다고 하며, 경계를 촉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