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토클레스 (리시마코스의 아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가토클레스는 기원전 4세기 후반 헬레니즘 시대의 인물로, 리시마코스의 아들이다. 기원전 292년 게타이에 맞서 싸우다 포로로 잡혔지만, 드로미케테스에 의해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졌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1세를 격파하며 아버지의 영토를 지켰으나, 기원전 284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의 죽음에는 계모 아르시노에 2세의 모함 또는 아버지 리시마코스의 의심이 작용했다는 상반된 기록이 존재한다. 아가토클레스의 미망인 리산드라는 셀레우코스 1세에게 도망쳤고, 셀레우코스는 이를 빌미로 리시마코스에게 선전포고했다. 미시아의 도시 아가토클레이아에서 아가토클레스의 이름이 새겨진 동전이 발견되었다.

아가토클레스 (리시마코스의 아들)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아가토클레스의 무덤
출생기원전 317년경
사망기원전 284년
아버지리시마코스
어머니니카이아
배우자리산드라
자녀프톨레마이오스 에피고노스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 (추정)
군 경력
복무리시마코스
계급장군
주요 전투코루페디온 전투
추가 정보
참고그의 아내 리산드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딸이었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284년 사망 - 제 민왕
    제 민왕은 기원전 300년 제나라 왕으로 즉위하여 팽창 정책을 펼쳤지만, 주변국 연합군의 공격으로 몰락하고 초나라 장수에게 살해당하였다.
  •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 필레타이로스
    필레타이로스는 기원전 4세기 아나톨리아 출신으로, 디아도코이 전쟁 속에서 리시마코스의 신임을 얻어 페르가몬 통치자가 되었고, 셀레우코스 1세에게 투항하여 리시마코스를 몰락시키는 데 기여하며 약 40년간 페르가몬을 통치하며 도시를 발전시키고 영향력을 확대, 자녀가 없어 조카 에우메네스 1세를 후계자로 삼았으며 아탈로스 왕조는 그를 기려 동전에 흉상을 새겼다.
  •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 카산드로스
    카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헬레니즘 도시 발전에 기여했으나, 수종으로 사망하며 그의 왕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아가토클레스는 리시마코스의 후계자로 지명되었고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기원전 284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의 계모인 아르시노에 2세가 자신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리시마코스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아가토클레스를 모함했다는 자료가 있는 반면, 리시마코스가 아들이 자신을 배신하려 한다는 믿음 하에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상반된 자료도 존재한다.

2.1. 초기 활동

기원전 292년, 아가토클레스는 아버지의 명으로 게타이에 대항하여 파견되었지만,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 게타이의 왕 드로미케테스는 호의의 표시로 그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시마코스는 게타이를 공격했지만, 결국 자신이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여러 귀족 인질과 리시마코스의 딸과의 결혼을 약속받고 드로미케테스에 의해 풀려났다. 일부 고대 역사가들은 아가토클레스만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하고, 다른 이들은 리시마코스만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하는 등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상반된 기록이 존재한다.

기원전 287년, 아가토클레스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를 공격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리시마코스에게서 리디아카리아를 빼앗기 위해 아나톨리아로 진격해 들어왔었다. 이 원정에서 그는 성공하여 데메트리오스를 격파하고 아버지의 영토에서 몰아냈다.

2.2. 죽음

아가토클레스는 리시마코스의 후계자로 지명되었고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기원전 284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의 계모인 아르시노에 2세가 자신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리시마코스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아가토클레스를 모함했다는 자료가 있는 반면, 리시마코스가 아들이 자신을 배신하려 한다는 믿음 하에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상반된 자료도 존재한다. 아가토클레스의 미망인 리산드라는 자녀들과 아가토클레스의 이복 형제인 알렉산더와 함께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통치하는 시리아로 도망쳤고, 셀레우코스 1세는 아들 살해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리시마코스에게 선전포고했다.

3. 주화

역사학자 루이 로베르는 'ΑΓΑΘ' 문자가 새겨진 300년대 시대 동전이 아가토클레스에 의해 세워진 미시아의 도시 아가토클레이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