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 요시카게
1. 개요
아다치 요시카게는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으로, 호조 씨의 집권을 보좌하며 막부 내에서 호조 씨, 미우라 씨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다. 호조 요시토키 사후 호조 야스토키, 호조 쓰네토키, 호조 도키요리 3대에 걸쳐 평정중으로 중용되었으며, 쇼군 후지와라 요리쓰네를 가까이 섬겼다. 그는 미우라 씨와 대립했으며, 호지 합전에서 미우라 씨를 멸망시키는 데 기여했다. 호조 도키요리의 득종 전제 체제를 지지하며, 호조 씨와 폭넓은 인척 관계를 맺었다. 겐초 5년에 출가하여 이듬해 44세로 사망했다.
| 씨명 | 아다치 씨 (安達氏) |
|---|---|
| 시대 |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중기 |
| 출생 | 조겐(承元) 4년 (1210년) |
| 사망 | 겐초(建長) 5년 6월 3일 (1253년6월 30일) |
| 개명 | 요시카게(義景) → 간치(願智) (법명) |
| 이명 | 다로(太郎) (가명(仮名)) 시로 다로(城太郎) (통칭) |
| 계명 | 해당사항 없음 |
| 묘소 | 해당사항 없음 |
| 관위 | 아키타 성개(秋田城介) 종5위하 종5위상 |
| 막부 |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평정중(評定衆) 인부두인(引付頭人) |
| 주군 | 미나모토노 사네토모(源実朝)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 후지와라노 요리쓰구(藤原頼嗣) 무네타카 친왕(宗尊親王) |
| 씨족 | 아다치 씨(安達氏) |
| 부모 | 아버지: 아다치 가게모리(安達景盛) 어머니: 무토 요리쓰네(武藤頼佐)의 딸 |
| 형제자매 | 마쓰시타 젠니(松下禅尼) 요시카게(義景) |
| 배우자 | 정실: 호조 도키후사(北条時房)의 딸 오가사와라 도키나가(小笠原時長)의 딸 아스카이 마스쓰네(飛鳥井雅経)의 딸 |
| 자녀 | 요리카게(頼景) 오무로 사부로(大室三郎) 야스모리(泰盛) 도키모리(時盛) 시게카게(重景) 아키모리(顕盛) 나가카게(長景) 도키카게(時景) 공의(公義) 가쿠산니(覚山尼) 나가이 도키히데(長井時秀)의 처 우쓰노미야 가케쓰나(宇都宮景綱)의 처 호조 도모나오(北条朝直)의 처 |
| 전임 | 아다치 가게모리(安達景盛) |
|---|---|
| 후임 | 아다치 야스모리(安達泰盛) |
| 직책 | 아다치 씨(安達氏) 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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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효조슈 -
미우라 요시무라
미우라 요시무라는 가마쿠라 막부 초기의 무장으로, 주요 권력 투쟁에서 막부 측에 서서 활약하며 막부 안정에 기여했으나, 와다 요시모리의 난에서 배신, 미나모토노 사네토모 암살 연루설, 쇼큐의 난 진압, 숙로 임명 등 정치적 수완과 교활한 면모를 동시에 보인 인물이다. -
가마쿠라 막부 효조슈 -
미우라 야스무라
미우라 야스무라는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도와 공을 세우고 조큐의 난에서 활약했으며, 호조 씨와의 갈등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자결했다. -
아다치씨 -
아다치 가게모리
아다치 가게모리는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와 호조 마사코의 신임을 받아 막부의 주요 고케닌으로 활동하며 조큐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셋츠국 슈고가 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다치 씨의 권세를 강화했다. -
아다치씨 -
아다치 지요노
아다치 지요노는 가마쿠라 시대 시모츠키 소동으로 가족을 잃고 출가하여 무가쿠 소겐의 제자가 되어 선승이 되었으며, '무챠쿠'라는 법명으로 선 수행에 정진하고 교토에 시쥬인을 창건한 여성이다. -
1210년 출생 -
아폰수 3세 (포르투갈)
아폰수 3세는 1248년부터 1279년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한 국왕으로, 평민의 정치 참여를 이끌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수도를 리스본으로 이전하고 카스티야와의 국경을 확정했다. -
1210년 출생 -
교황 호노리오 4세
교황 호노리오 4세는 사벨리 가문 출신으로 추기경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1285년부터 1287년까지 재임하며 시칠리아 왕국 문제 개입, 신성 로마 제국과의 관계 개선, 교황령 내 평화 유지, 학문 및 수도회 활동 지원에 힘쓴 제190대 교황이다.
2. 생애
아다치 요시카게는 호조 씨[득종가] 당주이자 가마쿠라 막부 제2대 집권인 호조 요시토키로부터 배령받은 '의' 자를 사용, 요시토키 만년에 원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가게모리가 출가하고 17년 후, 쇼군 요리쓰네가 상경한 해에 29세로 아키타 성개를 계승했다.
호조 요시토키 사후, 호조 야스토키, 쓰네토키, 도키요리 3대에 걸쳐 집권을 보좌하며 평정중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겐초 5년(1253년) 5월 출가하였으며, 이듬해 6월 44세로 사망했다.
2.1. 가마쿠라 막부에서의 역할
호조 요시토키 사후, 호조 야스토키, 쓰네토키, 도키요리 3대에 걸쳐 집권을 보좌하며 평정중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막부 내에서는 호조 씨, 미우라 씨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으며, 제4대 쇼군 후지와라 요리쓰네를 가까이 섬겼고, 쇼군 어소의 와카회 등에 참여했다.
닌지 3년(1242년), 호조 야스토키의 명을 받아 고사가 천황 옹립 공작을 펼쳐 신제 추거의 사절이 되었다. 간겐 4년(1246년) 궁 소동에서 호조 도키요리와 모의하여 반 득종파인 호조 미쓰토키 등을 추방하는 데 관여했다.
호지 원년(1247년) 호지 합전에서는 적자 야스모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싸워 미우라 씨를 멸망시켰다.
도키요리의 득종 전제 체제에 헌신한 요시카게는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으며, 도키요리의 적자 도키무네는 요시카게의 자매 마쓰시타 젠니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요시카게의 정실은 호조 도키후사의 딸이며,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가쿠잔니)은 도키무네의 정실이 되었다. 또한, 나가이 씨, 니카이도 씨, 무토 씨 등 유력 고케닌과의 사이에도 폭넓은 인척 관계를 구축했다.
2.2. 호조 씨와의 관계
호조득종가 당주이자 가마쿠라 막부 제2대 집권인 호조 요시토키가 원인 원년(1224년)에 사망했는데, 요시카게의 '의' 자는 이때 배령받은 것으로 보이며 요시토키 만년에 원복했다고 추정된다. 요시토키 사후에는 호조 야스토키(요시토키의 아들)로부터 쓰네토키, 도키요리 3대에 걸쳐 집권을 보좌했으며, 평정중의 한 사람으로서 중용되었다. 막부 내에서는 호조 씨, 미우라 씨 다음가는 지위에 있었으며, 제4대 쇼군인 후지와라 요리쓰네도 친밀하게 섬겼으며, 쇼군 어소의 와카회 등에 참여했다. 이때 쇼군가・호조・미우라・아다치의 관계는 미묘했으며, 미우라 씨는 친 쇼군파, 반득종의 입장이었던 반면, 요시카게는 호조 씨의 친척으로서 집권 정치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닌지 3년(1242년), 집권 호조 야스토키의 명을 받아 고사가 천황의 옹립 공작을 펼쳐 신제 추거의 사절이 되었다. 간겐 4년(1246년)의 궁 소동에서 집권 호조 도키요리와 모의하여 반 득종파인 호조 미쓰토키 등을 추방하는 데 관여했다. 쇼군가를 옹호하는 미우라 씨와 집권 호조 도키요리의 대립은 집권 호조 씨 외척의 지위를 둘러싼 미우라 야스무라와 요시카게의 패권 다툼이기도 했다. 호지 원년(1247년) 호지 합전에서는 적자 야스모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싸웠고, 미우라 씨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도키요리의 득종 전제 체제에 헌신한 요시카게는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으며, 도키요리의 적자 도키무네는 요시카게의 자매인 마쓰시타 젠니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요시카게의 정실은 호조 도키후사의 딸이며,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가쿠잔니)은 도키무네의 정실이 된다. 또한, 나가이 씨, 니카이도 씨, 무토 씨 등 유력 고케닌과의 사이에도 폭넓은 인척 관계를 구축했다.
2.3. 미우라 씨와의 대립
미우라 씨는 친 쇼군파이자 반득종의 입장이었던 반면, 요시카게는 호조 씨의 친척으로서 집권 정치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이때의 쇼군가, 호조, 미우라, 아다치 가문의 관계는 미묘했다.
쇼군가를 옹호하는 미우라 씨와 집권 호조 도키요리의 대립은 집권 호조 씨 외척의 지위를 둘러싼 미우라 야스무라와 요시카게의 패권 다툼이기도 했으며, 호지 원년(1247년) 호지 합전에서 요시카게는 적자 야스모리와 함께 선두에 서서 싸웠고, 미우라 씨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4. 득종 전제 체제에 대한 기여
호조 도키요리의 득종 전제 체제에 헌신한 아다치 요시카게는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으며, 도키요리의 적자 도키무네는 요시카게의 자매인 마쓰시타 젠니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요시카게의 정실은 호조 도키후사의 딸이며,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가쿠잔니)은 도키무네의 정실이 되었다. 또한, 나가이 씨, 니카이도 씨, 무토 씨 등 유력 고케닌과의 사이에도 폭넓은 인척 관계를 구축했다.
2.5. 폭넓은 인척 관계
요시카게는 호조 도키후사의 딸을 정실로 맞이했으며,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가쿠잔니)은 호조 도키무네의 정실이 되었다. 또한 나가이 씨, 니카이도 씨, 무토 씨 등 유력 고케닌과도 폭넓은 인척 관계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