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만도 디아츠
1. 개요
아르만도 디아츠는 이탈리아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군의 참모총장을 역임하며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장교로 복무했으며,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 참전했다. 카포레토 전투 패배 이후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어 몬테 그라파 전투와 피아베강 전투에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전쟁 후에는 '승리의 공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무솔리니 내각에서 전쟁 장관을 지냈다. 1928년 사망하여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교회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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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861년 12월 5일 |
|---|---|
| 출생지 | 나폴리, 이탈리아 왕국 |
| 사망일 | 1928년 2월 28일 |
| 사망지 | 로마, 이탈리아 왕국 |
| 배우자 | 1895년 결혼, 1928년 사망한 사라 데 로사-미라벨리 |
| 국적 | 이탈리아 |
| 직업 | 군인 |
| 소속 | 이탈리아 육군 |
|---|---|
| 복무 기간 | 1884년–1924년 |
| 최종 계급 | 이탈리아 원수, 장군 |
| 참전 |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잔주르 전투 제1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전선 제1차 몬테 그라파 전투 피아베 강 전투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
| 직책 | 이탈리아 육군 참모총장 |
|---|---|
| 임기 시작 | 1917년 11월 9일 |
| 임기 종료 | 1919년 8월 13일 |
| 이전 | 루이지 카도르나 |
| 이후 | 피에트로 바돌리오 |
| 직책 | 이탈리아 전쟁부 장관 |
| 임기 시작 | 1922년 10월 30일 |
| 임기 종료 | 1924년 4월 30일 |
| 총리 | 베니토 무솔리니 |
| 이전 | 마르첼로 솔레리 |
| 이후 | 안토니노 디 조르조 |
| 훈장 | OSSA OSML OMS OC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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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계 이탈리아인 -
크리스티안 다니엘 레데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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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계 이탈리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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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럽 사람 -
조르조 나폴리타노
조르조 나폴리타노는 이탈리아 공산당 출신의 정치인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탈리아 최초의 공산당 출신 대통령이자 재선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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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로, 파시스트 운동을 창시하여 총리에 오른 뒤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팽창주의적 외교 정책을 추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실각 후 처형되었다. -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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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로 톨리아티
팔미로 톨리아티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장기간 서기장으로, 안토니오 그람시와 함께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에 기여하고 무솔리니 정권 하 망명 생활과 스페인 내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탈리아 공산당 재건, 그리고 "이탈리아식 사회주의" 노선 추구 등의 활동을 펼친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이다.
2.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1861년 12월 5일, 나폴리에서 해군 장교인 아버지 루도비코와 스페인계 혈통의 작은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 아이린 체코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폴리의 육군 사관학교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여 토리노의 육군 사관학교로 옮겨가 1884년 포병 장교로 졸업했다.
처음에는 제10 야전 포병 연대에 배속되었고, 1890년 대위로 진급하여 제1 포병 연대로 옮겼다. 1894년에는 전쟁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육군 참모부로 이동하여 알베르토 폴리오 장군의 사무실에서 2년간 근무했다.
1899년 보병 소령으로 진급하여 1년 반 동안 제26 보병 연대 대대장을 맡았다. 1905년 중령으로 진급하여 피렌체 군사 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했다. 1910년 대령으로 진급하여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에 참전했다. 처음에는 제21 보병 연대를 지휘했으며, 연대장 사망 후에는 제93 보병 연대를 지휘했다. 리비아에서 복무하던 중 1912년 잔주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시 디아츠는 루이지 카도르나 장군 휘하에서 사령부 작전 부서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했다. 1916년 6월, 그는 투스타 장군으로 진급하여 제49사단과 이후 제23군단을 지휘했다.
1917년 10월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이 참패를 겪은 후, 1917년 11월 9일 디아츠는 루이지 카도르나의 후임으로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패배로 인해 와해된 군대를 수습하고 재편성하는 데 주력했으며, 이후 이탈리아군을 이끌고 피아베강 전투와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등에서 승리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 종결 후 빌라 주스티 휴전 협정 체결을 통해 최종적인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승리를 알리는 유명한 승리 선언(Bollettino della Vittoria)을 발표했다.
3.1. 카포레토 전투와 디아츠의 임명
1917년 10월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참패를 겪었고, 이로 인해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루이지 카도르나는 가혹하고 무능하다는 평가 속에 1917년 11월 8일 해임되었다. 다음 날인 11월 9일, 아르만도 디아츠가 후임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디아츠는 즉시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몬테 그라파 산괴와 피아베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는 등 저항을 조직했다. 이러한 노력은 몬테 그라파 전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3.2. 디아츠의 전략과 전술
1917년 10월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이 큰 패배를 겪자, 기존 참모총장이었던 루이지 카도르나의 지휘 능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1917년 11월 8일, 아르만도 디아츠는 카도르나를 대신하여 11월 9일부로 이탈리아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참모총장이 된 디아츠는 우선 카포레토 전투 패배 이후 흩어진 이탈리아군 병력을 수습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몬테 그라파 산악 지대와 피아베강을 따라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여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 방어선은 1917년 말 벌어진 몬테 그라파 전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기반이 되었다.
1918년 여름, 디아츠는 피아베강 전투에서 다시 한번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공세를 저지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전세를 역전시켜 공세로 전환한 디아츠는 1918년 가을, 약 140만 명의 이탈리아군을 이끌고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를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제1차 세계 대전을 사실상 종결시켰다. 디아츠는 전투 후 유명한 Bollettino della Vittoria이탈리아어(승리 선언)를 발표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패배와 이탈리아군의 최종 승리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4. 전후 활동
전쟁이 끝난 후 아르만도 디아츠는 이탈리아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다. 1921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그에게 승리 칭호인 초대 '승리의 공작'(Duca della Vittoria이탈리아어) 작위를 수여했다.
1921년 11월 1일, 디아츠는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를 방문하여 자유 기념관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벨기에의 자크 남작, 영국의 데이비드 비티 제독,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 원수, 미국의 존 J. 퍼싱 장군 등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연합국 지휘관들이 함께했다. 1935년에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조각가 워커 핸콕의 부조가 기념관에 추가되었다. 같은 해 미국 방문 중 디아츠는 뉴올리언스를 방문하여 오듀본 공원에 기념 상록 참나무를 심었으며, 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레이크뷰 지역에 '디아츠 장군 거리'(General Diaz St.)라는 이름을 붙였다.
디아츠는 연합국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훈장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미국 육군 공로 훈장,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영국의 바스 훈장 등이 있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사보이 왕가로부터 사보이 군사 훈장을 받았으며, 몰타 기사단, 성 안눈치아타 기사단, 성 마우리치오와 라자로 기사단으로부터 기사 칭호를 받았다.
1922년 로마 진군 이후, 디아츠는 베니토 무솔리니 내각을 지지하며 전쟁 장관(군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24년 전쟁 장관직에서 사임하고 군에서 퇴역했으며, 퇴역과 동시에 육군 원수(Maresciallo d'Italia이탈리아어) 계급을 받았다.
1928년 로마에서 사망하여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948년 사망한 파올로 타온 디 레벨 제독 역시 디아츠 옆에 묻혔다.
5. 사망
1928년 로마에서 사망하여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교회에 묻혔다. 파올로 타온 디 레벨 제독은 1948년 사망 후 디아츠 옆에 안장되었다.
6. 서훈
* 이탈리아 왕국
성 안눈치아타 기사단 기사 (1919)
성 마우리치오 라자로 기사단 대십자 기사
사보이 군사 훈장 대십자 기사 (1918년 6월 26일): "매우 어려운 전쟁 상황에서 육군 참모총장 직을 맡아, 날카로운 조직력과 효과적인 지휘로 항상 국가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며, 적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수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전투의 시련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군대의 정신적, 군사적 준비 수준을 높였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됨.
무공 은성 훈장
전쟁 공로 십자 훈장 (2회)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기념 훈장
이탈리아-오스트리아 전쟁 1915-18 기념 훈장 (4년 참전)
이탈리아 통일 기념 훈장
이탈리아 승전 기념 훈장
전승공(Duca della Vittoria이탈리아어) 칭호 (사보이아 가문 수여)
* 외국
몰타 기사단 명예와 헌신의 대십자 기사
무공훈장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프랑스)
1914–1918 전쟁 십자 훈장 (프랑스)
미국 육군 공로 훈장 (미국)
1914–1918 전쟁 십자 훈장 (벨기에)
무공 훈장 (폴란드) 사령관 십자 훈장
바스 훈장
7. 평가
아르만도 디아츠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을 이끌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카포레토 전투의 참패 이후 혼란에 빠진 군을 수습하고 재편하여 피아베 강 전투와 몬테 그라파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공세를 막아냈으며,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어 전쟁을 종결시킨 공적이 크다. 이러한 공로로 국내외에서 높은 영예를 누렸으며, 사보이아 가문으로부터 Duca della Vittoria이탈리아어(전승공)이라는 귀족 칭호와 사보이 군사 훈장을 받았다. 또한 미국 육군 공로 훈장,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영국의 바스 훈장 등 연합국으로부터 다수의 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1922년 로마 진군 이후 들어선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지지하고 내각에 참여하여 군무 장관을 역임한 점은 그의 군사적 업적과는 별개로 비판받는 지점이다. 비록 군무 장관직을 1924년에 사임하고 군에서 퇴역했지만, 파시즘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협력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과오로 평가된다. 퇴역 후에는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