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 요조
1. 개요
아오키 요조는 1929년 4월 10일에 태어나 2014년 4월 23일에 사망한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지요다 생명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55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버마(미얀마)와의 경기에 출전했다. 1967년에는 와세다 대학 감독으로서 천황배를 제패하며 3관왕을 달성했다.
| 이름 | 아오키 요조 |
|---|---|
| 본명 | 아오키 요조 |
| 로마자 표기 | Aoki Yozo |
| 원어 이름 | 青木 要三 |
| 카타카나 표기 | 아오키 요우조우 |
| 출생일 | 1929년 4월 10일 |
| 사망일 | 2014년 4월 23일 |
| 사망 나이 | 85세 |
| 출생 국가 | 일본 |
| 사망 국가 | 일본 |
| 포지션 | 수비수 |
| 클럽 | 치요다 생명 보험 |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국가대표 데뷔 연도 | 1955년 |
| 국가대표 출장 횟수 | 1회 |
| 국가대표 득점 횟수 | 0회 |
| 감독 팀 | 해당 정보 없음 |
|---|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2014년 사망 -
모리스 뒤베르제
모리스 뒤베르제는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법학자로, 정당론 연구에 기여했으며 소선거구제가 양당제를 유도한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을 정립했다. -
2014년 사망 -
이맹희
이맹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제일비료 회장을 지냈고, 이건희와 상속 재산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다 폐암으로 별세했다. -
1929년 출생 -
찰스 틸리
찰스 틸리는 미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로, 역사 사회학, 사회 운동, 국가 형성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관계적, 과정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29년 출생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아오키는 지요다 생명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55년 축구 일본 대표팀에 소집되어 미얀마와 태국 원정에 참가, 1월 5일 양곤에서 열린 버마(체육협회장 팀)전과 방콕에서 열린 재태국 전체 화교팀과의 경기에 출전했다. 이 중 버마전은 2007년에 국제 A매치로 인정되었다.
2.1. 클럽 경력
아오키는 1929년 4월 10일에 태어났다. 그는 지요다 생명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아오키 요조는 1955년 1월 5일 버마와의 경기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는 그의 일본 대표팀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2007년에 국제 A매치로 인정된 이 경기는 1955년 미얀마와 태국 원정 당시 양곤에서 열린 버마(체육협회장 팀)전이며, 아오키는 방콕에서 열린 재태국 전체 화교팀과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3. 감독 경력
1967년 와세다 대학 축구부 감독으로 가마모토 구니시게, 모리 다카지 등을 이끌고 천황배 우승, 관동 대학 리그,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3관왕을 달성했다.
4.1. 국가대표팀 통계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55 | 1 | 0 |
| | 1 || 0 | ||
아오키 요조는 1955년 1월 5일 버마와의 경기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는 그의 일본 대표팀 첫 출전이자 마지막 출전이었다.
4.2.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아오키는 1955년 1월 5일 버마와의 경기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는 그의 일본 대표팀 첫 출전이자 마지막 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