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모토 히로토모
1. 개요
아키모토 히로토모는 도토미 가케가와 번의 번주 오타 스케모토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다테바야시 번주 아키모토 무네토모의 양자가 된 인물이다. 1864년 가독을 이어받았으며,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을 지원하여 상전록 1만 석을 가증받았다. 1869년 판적봉환으로 다테바야시 번지사가 되었으나, 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관된 후 은거했다. 1883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1915년 정4위가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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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아키모토 히로토모 (秋元 礼朝) |
|---|---|
| 출생 | 1848년 5월 16일 |
| 사망 | 1883년 6월 13일 (35세) |
| 출생지 | 에도, 일본 |
| 국적 | 일본 |
| 신분 | 자작 |
| 묘소 | 도쿄도다이토구야나카의 덴노지 군마현마에바시시소자마치 소자의 고겐지 |
| 관직 | 다테바야시 번 번주 |
|---|---|
| 재임 기간 | 1864년 ~ 1871년 |
| 이전 | 아키모토 유키토모 |
| 이후 | 폐지 |
| 씨족 | 오타 씨 → 아키모토 씨 |
|---|---|
| 아버지 | 오타 스케모토 |
| 어머니 | 료 ( 우에스기 나리아키라의 여섯째 딸, 첩의 자식이라고도 함) |
| 양아버지 | 아키모토 시모토모 |
| 형제 | 오타 스케요시 아키모토 히로토모 나이토 마사타카 오타 스케미 |
| 배우자 | 정실: 아야 ( 도다 다다아쓰의 열한 번째 딸) |
| 자녀 | 양자: 오키토모 |
| 어린 시절 이름 | 이소타치바나 |
|---|---|
| 관위 | 종5위 하, 다지마노카미 종4위 추증 정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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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다테바야시번 사람 -
아키모토 유키토모
아키모토 유키토모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로, 모리 히로시게의 아들이었으나 아키모토 히사토모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이었고, 다테바야시 번 이봉 후 번정 개혁을 추진, 조시 서원을 창설했으며, 금문의 변 이후 조슈 정벌에서 막부와 천황, 모리 가문 사이를 중재했다. -
화족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화족 -
이와쿠라 도모미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일본의 궁정 귀족이자 정치가인 이와쿠라 도모미는 궁정 개혁, 신정부 수립, 이와쿠라 사절단 활동 등 메이지 정부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일본 근대화에 기여했다. -
도토미국 사람 -
유키 히데야스
유키 히데야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남으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보내졌으며, 유키 가문의 가독을 잇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치젠의 영주가 되었다. -
도토미국 사람 -
이치키 기토쿠로
이치키 기토쿠로는 일본의 법학자, 관료, 정치인으로,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내무대신, 문부대신 등을 역임하고 추밀원 의장과 궁내대신을 지냈으며, 일본 행정법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아키모토 히로토모는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활동한 다이묘이자 화족이다. 1848년 도토미 가케가와 번주 오타 스케모토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다테바야시 번주 아키모토 무네토모의 양자가 되었다. 1864년 양부의 은거로 가독을 이어받아 다테바야시 번주가 되었다.
보신 전쟁 시기에는 신정부군에 협력하였으며, 이러한 공적으로 1869년 상전록을 받았다. 같은 해 판적봉환으로 다테바야시 지번사가 되었으나, 1871년 폐번치현으로 면직되었다. 이후 은거하여 양자인 아키모토 오키토모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1883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1915년 정4위에 추증되었다.
2.1. 초기 생애
가에이(嘉永) 원년(1848년) 5월 16일, 도토미 가케가와 번의 제5대 번주 오타 스케모토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안세이 6년(1859년)에 다테바야시 번주 아키모토 무네토모의 양자가 되었다. 겐지 원년(1864년) 10월, 양부 아키모토 무네토모가 금문의 변으로 막부로부터 은거 명령을 받자, 그 뒤를 이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2.2. 다테바야시 번주 시대
겐지 원년(1864년) 10월, 양부 아키모토 무네토모가 금문의 변에 연루되어 막부로부터 은거 명령을 받자, 그의 뒤를 이어 가독을 상속받아 다테바야시 번주가 되었다. 게이오 2년(1866년)에는 주자번에 임명되었다.
게이오 4년(1868년)에 시작된 보신 전쟁에서는 자신의 영지가 아닌 가와치 국에서 신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고, 군자금 2만 냥을 헌납하는 등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메이지 2년(1869년)에는 상전록 1만 석을 추가로 받았다. 같은 해 판적봉환이 이루어지면서 다테바야시 번지사로 임명되었다.
2.3. 보신 전쟁과 메이지 유신
게이오 4년(1868년)에 발발한 보신 전쟁에서, 아키모토 히로토모는 자신의 영지가 아닌 가와치 지역에서 신정부군에게 병력을 파견하고, 군자금 2만 냥을 지원하며 적극 협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메이지 2년(1869년)에는 상전록 1만 석을 추가로 받았다.
같은 해인 메이지 2년(1869년), 메이지 유신의 일환으로 시행된 판적봉환에 따라 다테바야시 번지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4년(1871년) 7월, 폐번치현이 단행되면서 번지사 직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4. 메이지 시대
게이오 4년(1868년)의 보신 전쟁에서는 신정부군에게 협력하여, 가와치 지역에 병사를 파견하고 군자금 2만 냥을 지원했다. 이 공로로 메이지 2년(1869년)에 상전록 1만 석을 추가로 받았다.
같은 해 메이지 2년(1869년), 판적봉환이 실시되면서 다테바야시 번의 지번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4년(1871년) 7월 폐번치현으로 인해 면직되었다. 같은 해 9월에 은거하여 양자인 아키모토 오키토모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메이지 16년(1883년) 6월 13일에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후 다이쇼 4년(1915년)에 정4위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