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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웅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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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라웅파야는 1752년 몬족에 의해 멸망한 따웅우 왕조 이후 등장하여 미얀마를 통일한 인물이다. 뭇소보 마을의 수장이었던 아웅 제야는 주변 마을을 통합하고 알라웅파야로 칭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잉와를 탈환하고 양곤을 건설했으며, 샨족을 복속시키면서 미얀마를 통일했다. 이후 마니푸르를 공격하고 아유타야를 포위했으나, 우기와 역병으로 인해 원정에 실패했다. 아유타야 원정 중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에 대한 상반된 기록이 존재한다. 그는 영국과 통상을 시도했으며, 조지 2세에게 보낸 황금 편지는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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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웅파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삔우륀 알라웅파야의 동상
삔우륀 알라웅파야의 동상
존호
()
아웅•제•야() → 알라웅파야()
출생일1714년 8월 24일 (구력 1714년 8월 13일)
출생지쉐보
사망일1760년 5월 11일
사망지못따마
종교상좌부 불교
왕조 정보
재위1752년 2월 29일 ~ 1760년 5월 11일
작위제1대 꼰바웅 국왕
전임-
후임나웅도지
배우자융•쌍
아버지밍•뇨•쌍
어머니서•녜잉•우
문장State seal of the Konbaung dynasty.svg
문장 설명꼰바웅 왕국의 국장

2. 생애

알라웅파야는 1752년 몬족따웅우 왕조를 멸망시키자 뭇소보 마을의 수장 아웅제야로서 주변 46개 마을을 통합하고 스스로를 알라웅파야라 칭했다.[1] 몬족은 이에 반발하여 공격했으나 격퇴되었고, 이후 아유타야 왕조의 공격으로 몬족의 위협은 중앙부에서 사라졌다.

1754년, 알라웅파야는 몬족에게 점령당했던 잉와를 되찾고 버마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1] 이듬해 다곤을 함락, 양곤으로 개칭하고, 1756년에는 바고(항따와디 왕국)를 함락시켰다.[1] 그러나 1757년 몬족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알라웅파야는 이를 진압하고 샨족 토후들의 귀순을 받아 국내 통일을 완료했다.[1]

1758년, 마니푸르를 공격해 임팔을 점령했다.(이는 훗날 임팔 작전에서 일본군과 유사한 경로였다.) 이후 아유타야 왕조를 공격, 1760년 4월까지 포위했으나 우기로 인한 역병으로 패배했다. 알라웅파야는 아유타야 원정 중 사망했는데, 아유타야 측 기록에는 대포에 맞아 사망했다고, 버마 측 기록에는 열대성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알라웅파야는 영국에 접근하여 1756년 조지 2세에게 통상을 요구하는 황금 편지를 보냈고, 이는 2015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버마 통일

1752년 3월, 부흥 따웅우 왕조몬족에 의해 멸망하자 뭇소보 마을의 수장이었던 아웅 제야가 주변 46개 마을을 통합하여 '''알라웅파야'''(보살)라고 칭했다.[1] 몬족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다음 달 알라웅파야를 공격했지만 격퇴당했다.[1] 몬족 원군도 큰 타격을 입고 후퇴했다.[1] 이후 몬족은 현재의 태국에 있던 아유타야 왕조의 공격을 받기 시작해 하버마로 이동했기 때문에 중앙부에서 몬족의 위협은 사라지게 되었다.[1]

알라웅파야는 1754년 몬족에게 점령되었던 잉와를 되찾고, 버마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1] 이듬해 알라웅파야는 다곤을 함락시켜 양곤(숙적 전멸)으로 개칭했다.[1] 1756년에는 몬족의 중심지 바고(항따와디 왕국)를 함락시켰지만, 이듬해인 1757년 몬족의 철저 항전파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다.[1] 알라웅파야는 이 반란을 진압하고, 같은 해까지 샨족 각지의 토후들이 알라웅파야에게 귀순하여 국내 통일을 완수했다.[1]

2. 2. 대외 원정과 사망

1758년, 알라웅파야는 마니푸르를 공격하여 임팔을 점령했다. 이는 약 200년 후 임팔 작전 당시 일본군과 거의 같은 진군 경로였다. 그 후, 군대를 동쪽으로 이동시켜 아유타야 왕조를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아유타야를 공격했다. 알라웅파야의 군대는 1760년 4월까지 아유타야를 포위했지만, 아유타야 군은 성벽을 닫고 방어했다. 한 달 후, 우기가 시작되면서 알라웅파야 군대에 역병이 퍼져 패배했다.

알라웅파야는 아유타야 원정 도중 사망했는데,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유타야 측 기록과 버마 측 기록이 다르다. 아유타야 연대기에서는 아유타야가 쏜 대포에 맞아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버마 측 자료에서는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열대성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3. 영국과의 관계

알라웅파야는 동남아시아에서 미얀마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영국에 접근을 시도했다. 1756년 조지 2세에게 통상을 요구하는 황금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미얀마, 영국, 독일의 공동 신청으로 2015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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