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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따와디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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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항따와디 왕국은 1384년부터 1538년까지 존재했던 몬족의 왕국으로, 현재의 미얀마 남부에 위치했다. 라자다리트 왕의 통치 하에 잉와 왕국과의 40년 전쟁에서 승리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1420년대부터 1530년대까지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 항따와디는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러나 1530년대부터 따웅우 왕조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고, 1740년 몬족의 반란으로 부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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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따와디 왕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현지 이름ဍုင်ဟံသာဝတဳ (몬어)
버마의 황금 힌타 깃발
깃발
지위왕국
존속 기간 시작1287년
존속 기간 끝1552년
이전 국가바간 왕국
이후 국가제1차 따웅우 왕조
수도무떠마 (1287년 ~ 1364년)
똔웅 (1364년 ~ 1369년)
버고 (1369년 ~ 1538년, 1550년 ~ 1552년)
공용어몬어
버마어
종교상좌부 불교
라미냐홍사르와토이 왕국 c. 1450년 지도
라미냐홍사르와토이 왕국 c. 1450년

2. 역사

1293년 수코타이 왕국의 봉신으로서 항사워디 왕국 (홍사와디)


라자다리트(재위 1384년~1421년)는 몬족의 세 지역을 통합하고, 북부 버마족의 잉와 왕국과 40년 전쟁(1385~1424)에서 승리하여 왕국의 기틀을 다졌다. 전쟁은 교착 상태로 끝났지만, 잉와 왕국이 이교도 제국 복원의 꿈을 포기하면서 사실상 항따와디의 승리로 평가된다. 전쟁 이후 프롬과 따웅우의 반란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전면전은 피했다.[3]

1420년대부터 1530년대까지 빈냐란 1세, 신소부, 담마세디, 빈냐란 2세 등 유능한 군주들의 통치 아래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항따와디는 인도양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스리랑카와 관계를 강화하고 불교 개혁을 이끌었다.[3]

그러나 1534년 이후 상미얀마따웅우 왕조가 지속적으로 침략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따까윳피 왕은 떠빈슈웨티와 그의 부사령관 바인나웅이 이끄는 따웅우 군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1538년에서 1541년 사이 버고, 이라와디 삼각주, 무떠마를 빼앗기며 멸망했다.[4]

1550년 떠빈슈웨티 암살 후 항따와디 왕국은 잠시 부활했으나, 버고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1552년 바인나웅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 따웅우 왕조가 하미얀마 지역을 통치했지만, 항따와디 왕국의 황금기는 몬족에게 잊혀지지 않았고, 1740년 몬족은 따웅우 왕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복원된 항사워디 왕국을 세웠다.

2. 1. 몬족의 부흥과 독립

라자다리트(재위 1384년~1421년)의 활기찬 통치는 왕국의 존재를 굳건히 했다. 라자다리트는 몬어를 사용하는 세 지역을 확고히 통합했다. 40년 전쟁(1385~1424)에서 북부 버마어를 사용하는 잉와 왕국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이 과정에서 서부 여카잉 왕국은 1413년부터 1421년까지 조공을 바쳤다.[3] 전쟁은 교착 상태로 끝났지만, 잉와가 이교도 제국을 회복하려는 꿈을 포기하면서 항따와디의 승리였다. 전쟁이 끝난 후 몇 년 동안 버고는 잉와의 남부 속주인 프롬과 따웅우의 반란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전면전은 피했다.

2. 2. 황금기

잉와가 점차 쇠퇴하는 동안, 항따와디는 1420년대부터 1530년대까지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빈냐란 1세, 신소부, 담마세디, 빈냐란 2세 등 유능한 군주들의 통치 아래, 항따와디는 후기 바간 왕국들 중 가장 강력하고 번영한 왕국이 되었다. 왕국의 상인들은 인도양을 건너 온 무역업자들과 교역하며 금, 은, 비단, 향신료 등 다양한 물품을 거래하여 왕실 재정을 풍족하게 하였다.[3] 또한 항따와디는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로 부상하였으며, 스리랑카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스리랑카 전역으로 확산된 불교 개혁을 장려하였다.[3]

2. 3. 따웅우 왕조의 침략과 멸망

16세기 중반(1534년 이후), 따웅우 왕조의 지속적인 침략을 받았다. 따까윳피 왕은 떠빈슈웨티 왕과 그의 부사령관 바인나웅이 이끄는 따웅우에 맞서 왕국의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 따웅우는 1538년에서 1539년 사이에 버고와 이라와디 삼각주를 점령했고, 1541년에는 무떠마를 점령했다.[4] 이로써 항따와디 왕국은 멸망하였다.

1550년 떠빈슈웨티가 암살되자 왕국은 잠시 부활했지만, 버고 시 외곽으로 크게 확장되지는 못했다. 1552년 3월, 바인나웅은 반란을 빠르게 진압했다. 따웅우 왕조는 하미얀마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2. 4. 복원 시도와 실패

따웅우 왕조의 왕들이 18세기 중반까지 하미얀마 전체를 통치했지만, 한타와디의 황금기는 하미얀마의 몬족들에게 소중하게 기억되었다. 1550년 떠빈슈웨티 왕이 암살당하자 왕국은 잠시 부활했지만, 버고 시 외곽으로 크게 확장되지 않았다. 1552년 3월, 바인나웅은 빠르게 반란을 진압했다.[4] 1740년, 몬족은 약해진 따웅우 왕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복원된 항사워디 왕국을 세웠다.

참조

[1] 서적 The Indianized States of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2] 서적
[3] 서적
[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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