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뱅트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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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드레 뱅트루아는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추기경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리세 앙리 4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 쉴피스 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윤리학 학위를 받았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본당 보좌 신부, 신학교 교장, 파리 총대리를 역임했다. 1988년 파리 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고, 1999년 투르 대교구장, 2005년 파리 대교구장을 거쳐 2007년 추기경이 되었다.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2013년 교황 선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에 참여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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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뱅트루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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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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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 | 추기경, 파리 대교구 명예 대주교 |
출생 이름 | 앙드레 아르망 뱅트루아 |
출생일 | 1942년 11월 7일 |
출생지 | 파리, 프랑스 |
국적 | 프랑스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거주지 | 해당사항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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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
사제 수품 | 1969년 6월 28일 |
주교 서임 | 1988년 10월 14일 |
추기경 서임 | 2007년 11월 24일 |
임명 | 2005년 2월 11일 |
착좌 | 2005년 3월 5일 |
임기 시작 | 해당사항 없음 |
임기 종료 | 2017년 12월 7일 |
선임자 | 장마리 뤼스티제 |
후임자 | 미셸 오프티 |
기타 직책 |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추기경 사제 프랑스 동방 전례 신자들의 관할 구역의 관구장 |
이전 직책 | 투르 대주교 (1999년–2005년) 파리의 보좌 주교 (1988년–1999년) 티빌리스의 명의 주교 (1988년–1999년) |
추가 정보 | |
서품자 | 프랑수아 마르티 |
축성자 | 장마리 뤼스티제 |
추기경 임명자 | 베네딕토 16세 |
계급 | 추기경 사제 |
모토 | Sic enim Deus Dilexit Mundum |
모토 (번역) |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
2. 약력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앙드레 뱅트루아는 프랑스 파리에서 아르망과 폴레트 뱅트루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뱅트루아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23이라는 숫자인데, 옛날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 조상은 어린아이 혹은 유아 시절에 버려져서 그 달의 23일째 되는 날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뱅트루아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1] 뱅트루아는 리세 앙리 4세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1962년 이시레물리노에 있는 생 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윤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965년까지 뱅트루아는 독일에서 군 복무를 수행했다. 그는 1968년 10월 주교 다니엘 페제릴에 의해 부제 서품을 받았고, 1969년 6월 28일 추기경 프랑수아 마르티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2. 2. 사제 서품과 사목 활동
앙드레 뱅트루아는 프랑스 파리에서 아르망과 폴레트 뱅트루아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의 이름 뱅트루아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23인데, 어린 시절 버려졌다가 그 달의 23일에 발견된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1] 뱅트루아는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윤리 신학 강의 자격증을 받았다.[1] 1968년 10월 부제 서품을 받았으며, 1969년 6월 28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1]사제 수품 후 그는 본당의 교리 교육과 평신도 양성에 힘썼다.[1] 1974년부터 1981년까지 파리의 생 잔 드 샹탈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활동했다.[1] 이후 1988년까지 모교인 생 쉴피스 신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도덕 신학과 가톨릭교회의 성사를 가르쳤다.[1] 가톨릭 결혼 준비 센터 및 사제 연수 등 다양한 사목 활동에 참여했다.[1] 이후 파리의 총대리로 임명되어, 교구의 교육 (교구 성당 학교 및 교구 신학교), 언론 (노트르담 라디오, 파리 노트르담, 정보 센터), 가정 사목, 공립 학교 사제, 교리 교육을 담당했다.[1]
2. 3. 주교와 추기경 서임
1988년 6월 25일 뱅트루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파리 대교구 보좌주교와 티빌리스의 명의주교로 임명되었다.[1] 그의 주교 서품식은 그해 10월 14일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장마리 뤼스티제 추기경이 주례하고 페제릴 주교와 가브리엘 바넬 주교가 공동 서임자로 참여했다.[1] 1999년 4월 21일 투르 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2005년 1월 11일 파리 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1] 그는 같은 해 3월 5일 파리 대교구장으로 정식으로 착좌하였고, 3월 14일 프랑스 동방 가톨릭 교회의 관구장으로 추가 임명되었다.[1] 2007년 11월 5일 뱅트루아는 3년 임기의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의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1]
2007년 11월 24일 뱅트루아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1] 2008년 6월 12일 뱅트루아는 교황청 가정평의회 소속 주교위원회원이 되었으며, 2010년 1월 2일에는 교황청 성직자성의 위원이 되었다.[1] 2012년 3월 7일에는 동방 교회성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3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출했다. 뱅트루아는 2022년 11월 7일에 80세가 되면서 더 이상 교황 선거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2. 4. 주요 활동 및 임명
앙드레 뱅트루아는 2007년 11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2008년 6월 12일 뱅트루아는 교황청 가정평의회 소속 주교위원회원이 되었으며, 2010년 1월 2일에는 교황청 성직자성의 위원이 되었다.2012년 3월 7일에는 동방 교회성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2년 10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노드 아버지로 임명된 후,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파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제13차 주교 시노드 정기 총회에 참여했다.
그는 2013년 교황 선거의 추기경 선거인 중 한 명으로, 2013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출했다. 뱅트루아는 2022년 11월 7일에 80세가 되면서 더 이상 교황 선거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프란치스코는 2017년 12월 7일 그의 파리 대주교직 사임을 수락했다.
3. 사회적 입장
3. 1. 동성 결혼 반대
앙드레 뱅트루아 추기경은 프랑스에서 동성 결혼을 도입하려는 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2013년 그는 동성 결혼이 프랑스 사회에 폭력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것이 폭력적인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사회는 통합 능력을 잃었고, 특히 공통의 프로젝트에서 차이점을 융합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프랑스 시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더 많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7]4. 참고: 가톨릭 교회의 입장 (삭제됨)
참조
[1]
웹사이트
Vingt-Trois Card. André
https://press.vatica[...]
Holy See Press Office
2017-12-03
[2]
간행물
Rinunce e nomine, 12.06.2008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8-06-12
[3]
간행물
Rinunce e nomine, 02.02.2010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0-02-02
[4]
간행물
Rinunce e nomine, 07.03.2012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2-03-07
[5]
간행물
Rinunce e nomine, 18.09.2012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2-03-07
[6]
간행물
Rinunce e nomine, 07.12.2017
http://press.vatican[...]
Holy See Press Office
2017-12-07
[7]
웹사이트
France: Archbishop of Paris warns that equal marriage will lead to a more violent society
http://www.pinknews.[...]
201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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