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사와 쓰네타카
1. 개요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에도 칸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나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으로 요코테 성주가 되었고,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으며, 가이에서 에치고 구로카와로 이봉되었으나 32세에 사망했다. 후사가 없어 양자인 야나기사와 사토나리가 뒤를 이었으며, 법호는 지쓰잔 쇼기 텐큐인이다. 묘소는 도쿄도 신주쿠구의 쇼가쿠잔 겟케이지에 있다.
| 씨족 | 야나기사와 씨 |
|---|---|
| 시대 | 에도 시대 |
| 생몰 | 겐로쿠 7년 11월 16일 (1695년1월 1일) ~ 교호 10년 8월 23일 (1725년9월 29일) |
| 묘소 | 도쿄도신주쿠구 이치가야카와다마치 쇼가쿠산 겟케이지 |
| 다른 이름 | 야스미치, 이오리 → 쓰네타카 |
| 휘 | 쓰네타카 |
| 관위 | 종5위하, 형부소보 |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노부 → 이에쓰구 → 요시무네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가이고후 신덴 번 번주 → 에치고구로카와번 번주 |
| 부모 | 아버지: 야나기사와 요시야스, 어머니: 오기마치 마치코 (또는 다나카 씨) |
|---|---|
| 형제자매 | 요시사토, 나가노부, 야스모토, 쓰네타카, 도키치카, 요네쿠라 다다타카, 야스쓰네, 나이토 마사모리의 부인, 마쓰다이라 스케토모의 계계실 |
| 배우자 | 오기마치 사네토요의 딸, 오기마치 나오코 |
| 자녀 | 양자: 사토즈미 |
| 고후 신덴 번 | 2만 석 |
|---|---|
| 구로카와 번 | 1만 석 |
| 고후 신덴 번 번주 (야나기사와가) | 후임: 폐번 임기: 1709년 ~ 1724년 |
|---|---|
| 구로카와 번 번주 (야나기사와가) | 선임: 초대 후임: 야나기사와 사토즈미 임기: 1724년 ~ 172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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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국의 번주 -
야나기사와 도키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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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씨 -
구로카와번
에도 시대 야나기사와 가문이 다스린 구로카와번은 재정난 속에서도 번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으나, 보신 전쟁 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
야나기사와씨 -
미쓰카이치번
미쓰카이치번은 야나기사와 도키치카가 1724년에 세운 에도 시대 에치고국 간바라군의 번으로, 재정난과 시대착오적인 행보를 보이다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으며, 마지막 번주 야나기사와 노리타다는 메이지 유신 이후 자작 작위를 받았다. -
1695년 출생 -
심각
조선 후기 문신 심각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정조 즉위 후 홍인한과 정후겸을 토죄하는 데 참여했으며, 남인 명문 가문 출신으로 윤선도, 정약용 가문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1695년 출생 -
피에트로 로카텔리
피에트로 로카텔리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유럽 순회 연주 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여 작곡, 교습, 출판 활동을 했으며, 바이올린 기교를 극대화한 《바이올린의 예술》이 대표작이다.
2. 생애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칸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겐로쿠 8년(1695년) 6월 19일,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령으로 요코테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겐로쿠 14년(1701년) 11월 26일에는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호에이 6년(1709년) 6월 3일,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4월 7일에 원복했다.
교호 9년(1724년) 윤 4월 28일, 가이에서 에치고 구로카와로 이봉되었으나, 이듬해 8월 23일에 32세로 사망하였다. 자식이 없어 양자인 사토나리가 뒤를 이었다. 법호는 지쓰잔 쇼기 텐큐인(実山勝義天休院)이다. 묘소는 도쿄도신주쿠구 이치가야 가와다초의 쇼가쿠잔 겟케이지(正覚山月桂寺)에 있다.
2.1. 출생과 가계
2.2. 요코테 성주 시대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칸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겐로쿠 8년(1695년) 6월 19일,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령을 받아 요코테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겐로쿠 14년(1701년) 11월 26일에는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호에이 6년(1709년) 6월 3일,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4월 7일에 원복했다.
2.3. 마쓰다이라 성씨 사용
2.4. 고후 신덴 번주 시대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칸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겐로쿠 8년(1695년) 6월 19일,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령을 받아 요코테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그 후 겐로쿠 14년(1701년) 11월 26일,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호에이 6년(1709년) 6월 3일,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4월 7일에 원복했다.
2.5. 구로카와 번주 시대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간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겐로쿠 8년(1695년) 6월 19일,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령을 받아 요코테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그 후 겐로쿠 14년(1701년) 11월 26일,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호에이 6년(1709년) 6월 3일,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4월 7일에 원복했다.
교호 9년(1724년) 윤 4월 28일, 가이에서 에치고 구로카와로 이봉되었지만, 이듬해 8월 23일에 32세로 사망했다. 자식이 없어, 뒤를 양자인 사토나리가 이었다. 법호는 지쓰잔 쇼기 텐큐인(実山勝義天休院)이다. 묘소는 도쿄도신주쿠구 이치가야 가와다초의 쇼가쿠잔 겟케이지(正覚山月桂寺)에 있다.
2.6. 사망과 가문의 계승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에도 칸다바시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야스도, 이오리였다. 겐로쿠 8년(1695년) 6월 19일,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령을 받아 요코테 성으로 성을 바꾸었다. 겐로쿠 14년(1701년) 11월 26일,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호에이 6년(1709년) 6월 3일, 아버지로부터 1만 석을 분여받아 고후 신덴 번주가 되었다. 호에이 7년(1710년) 4월 7일에 원복했다.
교호 9년(1724년) 윤 4월 28일, 가이에서 에치고 구로카와로 이봉되었지만, 이듬해 8월 23일에 32세로 사망했다. 자식이 없어, 뒤를 양자인 사토나리가 이었다. 법호는 지쓰잔 쇼기 텐큐인(実山勝義天休院)이다. 묘소는 도쿄도신주쿠구 이치가야 가와다초의 쇼가쿠잔 겟케이지(正覚山月桂寺)에 있다.
3. 가계도
야나기사와 요시야스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어머니는 마사나리마치 나오코이다. 마사나리마치 킨미치의 딸 마사나리마치 나오코와 혼인하였다.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의 아들인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야나기사와 야스노리의 다섯째 아들인 야나기사와 사토미를 양자로 들였다.
3.1. 부모
야나기사와 요시야스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어머니는 마사나리마치 나오코이다.
3.3. 양자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의 아들인 야나기사와 쓰네타카는 야나기사와 야스노리의 다섯째 아들인 야나기사와 사토미를 양자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