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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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다 사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관료로,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조교수, 교수, 경성제국대학 총장,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장을 역임했다. 국제사법 권위자이자 한·프랑스 문화 교류에 기여했으며, 귀족원 의원, 문화공로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와 이웃으로 지내며 교류했다.

야마다 사부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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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학장 야마다 사부로
이름야마다 사부로
출생일1869년 12월 10일
출생지나라현
사망일1965년 12월 17일
학력
모교제국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소르본대학교
학위법학 박사
경력
직장도쿄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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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력

나라현 다카이치군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현재 도쿄대 법학부)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도쿄 제대 법학과 조교수, 교수, 경성제국대학 총장을 지냈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장, 국사편찬위원장, 문관고등시험 상임위원, 법제국 참사관, 제14대 일본학사원 원장, 제2대 학사회 이사장, 일불회관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3년 12월부터 1947년 5월까지 귀족원 의원(제국학사원 회원 의원)을 역임했다. 1954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2.1. 생애 초기

1869년 나라현 고시군 오치무라(현 다카토리정)에서 마을 수장 야마다 헤이자부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 전문학교(현 와세다대학교)를 거쳐, 1896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현재 도쿄대 법학부)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조교수에 취임하여, 문부성 외국 유학생으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3년간 국제법을 공부했다. 1901년 7월 19일 귀국.

2.2. 학자 및 관료 경력

1896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현재 도쿄대 법학부)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도쿄 제대 법학과 조교수, 교수, 경성제국대학 총장을 지냈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43년 12월에서 1947년 5월까지 일본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1954년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1901년 7월 19일 문부성 외국 유학생으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3년간 국제법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경성제국대학 총장, 도쿄제국대학교 법학부장 등을 역임했다. 문관고등시험 상임위원, 법제국 참사관, 제14대 일본학사원 원장, 제2대 학사회 이사장, 일불회관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3년 12월부터 1947년 5월까지 귀족원 의원(제국학사원 회원 의원)을 역임했다.

2.3. 경성제국대학 총장 재임

1931년 10월 31일부터 1936년 1월 16일까지 제7대 경성제국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3. 연구 내용 및 업적

국제사법 권위자이자 한·프랑스 문화 교류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법과 외국인의 법적 지위 문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의 일본계 미국인의 토지 소유권 문제 등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귀족원 의원 시절에는 일본국 헌법 제정에도 참여했으며, 대법관 국민심사 제도 도입에 헌신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제자로는 다나카 고타로 등이 있다.

4. 수상 및 영전

* 1921년(다이쇼 10년) 7월 1일 - 제1회 국세조사 기념장
* 1936년 (쇼와 11년) 1월 15일 - 정삼위 훈일등 수보장
* 1954년 - 문화공로자로 선출
* 학사회관 건설 공헌으로 1층 로비에 흉상이 장식되어 있다.

5. 가족 및 친족

* 장남: 야마다 준세이 (귀족원 고액납세자 의원)
* 차남: 하야시 헤이조 (다이와삭도, 다이와주조 각 사장)
* 아내: 시게코는 이즈 니라야마의 세습 대관 에가와 히데타카(담암)의 손녀이자 에가와 히데타케의 딸이다. 에가와 히데후미는 시누이다. 시게코의 여동생 쿠코가 다치노 킨고의 아들인 다치노 타카시와 결혼하여 다치노 타카시와도 친분이 있었다. 법화회 창립에 에가와 히데타케와 다치노 킨고가 공동 발기인으로 서명했다.

6. 야마다 사부로와 나쓰메 소세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와는 이웃이었고, 같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이가 좋았다. 소세키는 전화를 빌리기 위해 야마다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또한 야마다의 아내 시게코는 소세키에게 글쓰기 지도를 받았다. 1916년 소세키는 시게코의 부탁으로 다치노 타카시와 쿠코의 피로연에 참석했는데, 이때 먹은 땅콩으로 인해 위궤양이 재발하여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