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일 (1910년)
1. 개요
양병일은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 광주 변호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제2대와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52년 재무부 장관 백두진의 재정 정책을 비판했다. 1962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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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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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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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 대학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
강진군 출신 -
김영랑
김영랑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활동한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서정시와 민족주의적 저항 의식을 담은 시를 동시에 선보였으며, 1935년에 시집 『영랑시집』을 발간했다. -
강진군 출신 -
박윤종
박윤종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승주군수, 나주군수, 광주광역시장을 역임했으며, 전라남도 기획관리실장, 교육위원, 도정 자문위원장, 대한체육회 상임부회장 등을 지냈고, 제11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 생애
그는 전라남도강진군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도쿄 변호사회에 소속되었다. 귀국 후 광주 변호사회 회장, 조선변호사협회 전라남도 지부장, 대동청년단 광주 지단 부단장, 대한청년단 광주시 단장, 한국청년단 광주시 단장,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0년 제2대 총선에서 강진군 선거구에서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같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2년 9월 5일 성모병원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2.1. 학력 및 변호사 활동
일본 주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6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에서 행정학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도쿄 변호사회에 소속되었으며, 귀국 후 광주 변호사회 회장, 조선변호사협회 전라남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2.2. 정치 활동
양병일은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도쿄 변호사회에 소속되었다. 귀국 후에는 광주 변호사회 회장, 조선변호사협회 전라남도 지부장, 대동청년단 광주 지단 부단장, 대한청년단 광주시 단장, 한국청년단 광주시 단장,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총선에서는 전라남도 강진군 선거구에서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0년 제5대 총선에서는 같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3. 백두진 재정 정책 비판 논란
1952년 3월 7일 제12회 제28차 국회 본회의에서 재무부 장관 백두진을 향해 '오늘날의 재정 정책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있으며, 어떤 사람은 '이적 재정'이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규탄하여 물의를 빚었다. 1953년 4월 29일 제15회 제64차 국회 본회의에서 앞서 언급한 건에 대해 "물의를 빚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라는 취지로 말하며, 그 평판을 다시 인용하여 연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