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군
1. 개요
양지군은 과거 양량, 양산, 추계 등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양량부곡으로 수원에 속했다. 1399년 양지현으로 독립하여 감무가 파견되었고, 1413년 현감이 설치되어 광주목의 추계향으로 치소를 이전하면서 안성 등과 함께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1895년 군으로 승격되어 충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경기도에 속했고, 1914년 일제에 의해 용인군에 합병되었다. 1995년 용인군 내사면이 양지면으로 개칭되면서 옛 지명을 되찾았다.
| 국가 | 대한민국 |
|---|---|
| 도 | 경기도 |
| 위치 | 북위 37°09′ 동경 127°18′ |
| 1895년 | 양지현에서 양지군으로 승격 |
|---|---|
| 1914년 | 용인군에 편입되어 폐지 |
| 면 | 고읍면 주북면 남일면 남이면 외사면 내사면 근동면 원일면 창곡면 대촌면 가곡면 북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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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법 | Yangji-g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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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의 역사 -
평택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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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의 행정 구역 -
서운면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서운면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여러 면이 통합되어 개칭되었으며, 교육기관과 바우덕이 묘, 서운산성, 청룡사, 청룡호수 등의 관광 명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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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동
안성동은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1914년 안성군 읍내면에서 시작하여 안성읍을 거쳐 1998년 안성시 승격과 함께 안성1동, 안성2동, 안성3동으로 개편되었으며 농심, 환인제약, 일동제약 등의 공장과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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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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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21일 원삼면 좌전고개에서 시작된 용인 독립만세운동은 용인군 전역으로 확산된 항일 독립운동으로, 용인시는 기념탑 건립, 학술 행사, 유적지 순례 등 선양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인수 의병장, 오광선 장군, 남정각 등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
2. 옛 이름
과거에는 양량(陽良), 양산(陽山), 추계(秋溪) 등으로 불렸다.
3. 역사
통일신라부터 고려 시대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고, 처인부곡과 함께 수주(水州)의 관할이었다. 1362년(고려 공양왕 11년) 안성으로 관할 관청이 변경되었다.
1399년(정종 원년) 안성에서 분리되어 양지현(陽智縣)이 되고, 감무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년) 양지현에 현감을 두게 되었고, 치소를 광주목(廣州)의 추계향으로 이전하였다. 안성 등 인근 고을과 함께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광주 관내의 4개 부곡을 병합하였다. 1899년에 편찬된 양지군읍지에는 다른 기록이 전해지는데, 고려 시대에 읍내면 등촌(현 양지면 양지4리)에 등원군수가 터를 열었고, 태조 대 개국 초기에 치소를 고삼면으로 옮겼다가 1470년(성종 1년) 다시 옮겨 현감을 두게 되었으며, 관할이 좁다는 이유로 죽산군의 4부곡을 편입하고 10개 면을 두었다고 한다. 1500년(연산군 6년) 이천과 합병하였다가 4년 후인 1504년에 복구되었다. 이때 정수산 아래에 치소를 두고 근방의 5개 마을을 통합하여 읍내면을 설치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23부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군(郡)으로 승격되어 충주부 관할의 양지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로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06년 9월 24일 남동부의 월경지 제촌면이 죽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용인군에 합병되고, 면이 대거 합병되었다. 1915년 6월 1일 고삼면의 19개리 중 3개리가 안성군 양성면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6개리도 통폐합되어 7개리가 되었다.
1963년 1월 1일 고삼면이 용인군에서 안성군(현 안성시)으로 이관되었다. 1995년 용인군 내사면이 일제 잔재 청산 및 지역 정통성 복원의 일환으로 옛 이름인 양지면으로 개칭하였다.
3.2. 조선
1399년(정종 원년) 안성에서 분리되어 양지현(陽智縣)이 되고, 감무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년) 양지현에 현감을 두게 되었고, 치소를 광주목(廣州)의 추계향으로 이전하였다. 안성 등 인근 고을과 함께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광주 관내의 고안(高安)·대곡(大谷)·목악(木岳)·제촌(蹄村)의 4개 부곡을 병합하였다. 1899년에 편찬된 양지군읍지에는 다른 기록이 전해지는데, 고려 시대에 읍내면 등촌(현 양지면 양지4리)에 등원군수가 터를 열었고, 태조 대 개국 초기에 치소를 고서면 주곡리(현 고삼면 신창리)에 이전했다가 1470년(성종 1년) 주동면 금박산 아래로 이전해 읍호를 추계라 하고 현감을 두게 되었으며, 1면이 5, 6동에 불과하여 관할이 좁다는 이유로 죽산군의 4부곡을 편입하고 10개 면을 두었다고 한다.
1500년(연산군 6년) 이천과 합병하였다가 4년 후인 1504년에 복구되었다. 이때 정수산 아래에 치소를 두고 근방의 5개 마을을 통합하여 읍내면을 설치했다. 당시 관할 면은 11개였다.
3.3. 일제강점기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23부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군(郡)으로 승격되어 충주부 관할의 양지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로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906년 9월 24일 남동부의 월경지 제촌면이 죽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용인군에 합병되고, 면이 대거 합병되었다.
| 구 양지군 | → | 용인군 |
|---|---|---|
| 읍내면, 주동면, 주북면, 주서면 일부 | 내사면 | |
| 주서면 일부 | 용인면 마평리 | |
| 고동면, 고서면, 고북면 | 고삼면 |
1915년 6월 1일 고삼면의 19개리 중 3개리가 안성군 양성면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16개리도 통폐합되어 7개리가 되었다.
3.4. 대한민국
* 1963년 1월 1일: 고삼면이 용인군에서 안성군(현 안성시)으로 이관되었다.
* 1995년: 용인군 내사면이 일제 잔재 청산 및 지역 정통성 복원의 일환으로 옛 이름인 양지면으로 개칭하였다.
4. 구역 대조
| 구한말 | 1914년 | 현재 | |
|---|---|---|---|
| 양지군 읍내면 | 용인군 내사면 |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 양지리, 남곡리 |
| 양지군 주동면 | 제일리, 평창리, 직금리, 추계리 | ||
| 양지군 주북면 | 정수리, 대대리, 주북리 | ||
| 양지군 주서면 | 송문리 | ||
| 용인군 수여면 | 용인시 처인구 | 마평동, 운학동, 해곡동 | |
| 양지군 고동면 | 용인군 고삼면 | 안성시 고삼면 | 쌍지리, 월향리, 봉산리, 삼은리 |
| 양지군 고서면 | 신창리, 대갈리 | ||
| 양지군 고북면 | 가유리 | ||
| 안성시 양성면 | 미산리·노곡리 각 일부 (1915년 이관) | ||
| 양지군 목악면 | 용인군 원삼면 |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 학일리, 목신리 |
| 양지군 박곡면 | 용인군 외사면 |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 박곡리 |
| 양지군 고안면 | 백봉리, 고안리 | ||
| 양지군→죽산군 제촌면 | 안성군 죽일면 | 안성시 일죽면 | 능국리, 당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