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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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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재연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미국은 1871년 5월, 군함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여 개항을 요구했으나, 어재연은 광성진에서 600명의 병력으로 맞서 싸웠다. 어재연은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했으며, 미군은 어재연의 기인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수자기는 2007년 대한민국으로 반환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신미양요 이후 일본의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체결,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이어졌다.

2. 신미양요

1871년 미국포함외교를 목적으로 군함 5척과 1,23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하였다(신미양요).[3] 이는 전면전보다는 무력시위를 통해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이 침략에 맞서 어재연은 광성진에서 600여 명의 병력으로 미군에 대항하였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하였다.[5]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240여 명 전사, 100여 명 익사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미군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미국은 군사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개항시키고 통상 조약을 맺으려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하였다.[4] 신미양요 당시 미 해병대가 약탈해 간 어재연 장군기는 136년 만인 2007년 10월 22일 한국으로 돌아와 공개되었다.[8]

2. 1. 미국의 조선 침략

1871년 5월 16일, 미국 군함 5척(기함 프리깃함 콜로라도호, 순양함 2척, 전함 2척)이 85문의 대포와 1,230명의 미 해병대 병력을 싣고 일본 제국 나가사키 항구를 출발하여 6월 1일 조선 강화도를 침략하였다.[3] 이는 전면전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무력시위를 통해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려는 포함외교(전함 외교)의 일환이었다.

미군의 침략 당시 어재연은 600여 명의 병력과 함께 광성진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맞서 고립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다. 미군이 상륙하여 공격해오자, 어재연은 직접 병사들을 독려하며 대포를 발사하는 등 치열하게 싸웠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어재연은 칼을 들고 적과 싸웠다. 칼이 부러지자, 그는 납탄을 던지며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나 결국 어재연은 적의 창에 찔려 죽었고, 적은 어재연의 머리를 가져갔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전투의 처절함을 보여준다.[5] 어재연을 사살한 미 해병 제임스 도허티는 이후 명예 훈장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포함하여 약 240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바다에 빠져 익사했으며, 20여 명이 포로로 잡히는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미 해병대의 피해는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러한 군사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로부터 난파된 선원 보호나 자유무역협정 체결 약속 등 본래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 함대는 별다른 소득 없이 중국으로 철수했다.[4]

2. 2. 미국의 철수와 조선의 상황

미국은 1871년 5월 16일 프리깃함 콜로라도호를 포함한 군함 5척에 85문의 대포와 1,230명의 미 해병대 병력을 싣고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출발하여 6월 1일 조선을 침략하였다.[3] 미국의 목적은 전면전이 아니라 군함의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는 포함외교였다. 이 침략으로 광성보 전투 등에서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비롯한 조선군 약 240명이 전사하고 100명이 익사했으며 20명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 미 해병대는 3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선을 개항시키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던 포함외교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시장 개방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중국으로 철수했다.[4]

미국의 포함외교는 실패했지만, 4년 뒤인 1875년 9월 20일 일본이 일으킨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 역시 군함을 동원한 포함외교를 시도했고, 이는 성공하여 1876년 2월 27일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국제법에 따라 체결된 근대적 조약이지만,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1882년에는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한편, 신미양요 당시 미 해병대에 빼앗겼던 어재연 장군기는 136년 만인 2007년 10월 22일 한국으로 돌아와 일반에 공개되었다.[8]

2. 3.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은 무력시위를 통해 조선의 개항을 유도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875년 9월 20일,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접근하여 조선 수비대와 충돌하는 운요호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에 개항을 압박하는 포함외교를 전개했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조선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의 성격을 띤 조약을 맺는 결과로 이어졌다. 1876년 2월 27일 체결된 강화도 조약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현대 국제법의 형식에 따라 외국과 맺은 조약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4. 조미수호통상조약

1871년 미국은 군함 5척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신미양요를 일으켰다. 이는 무력 시위를 통해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려는 포함외교의 일환이었다. 이 전투에서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이 전사하는 등 조선군의 피해가 컸으나, 미국은 조선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개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3. 어재연 장군기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해병대강화도 광성보를 점령하면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를 전리품으로 약탈해 갔다.[6] 이 역사적인 유물은 미국으로 옮겨져 130년 넘게 돌아오지 못하다가, 2007년 10월 22일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일반에 공개되었다.[8] 이는 외세의 침략으로 빼앗겼던 문화재가 오랜 노력 끝에 돌아온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어재연의 기, 수자기.

3. 1. 어재연 장군기와 수자기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는 삼 또는 면으로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약 4.15m, 세로 약 4.35m로 추정된다. 깃발에는 대장을 상징하는 '帥'(수) 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6] 이는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해병대가 강화도를 공격했을 때 광성보에서 미군에게 빼앗긴 것이다. 미군은 이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7]

이후 1913년에 한 차례 복원 작업을 거쳤으며, 130년 넘게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노력으로 10년 장기 대여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왔다. 현재 이 수자기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6][7]

3. 2. 어재연 장군기 반환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미국 해병대에게 빼앗겼던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가 136년 만인 2007년 10월 22일 고국으로 돌아와 일반에 공개되었다.[8]

이 장군기는 삼베 또는 면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가로 약 4.15m, 세로 약 4.35m로 추정된다. 깃발에는 '帥'(장수 수) 자가 새겨져 있으며,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이후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130년 넘게 보관해오다가 2007년 대한민국 문화재청에 10년 기한의 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었다. 1913년에 한 차례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6][7]

참조

[1] 웹사이트 Doopedia: 두산백과 / 어재연 http://terms.naver.c[...]
[2] 웹사이트 Korean Culture Encyclopedia: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어재연 http://terms.naver.c[...]
[3] 웹사이트 Korean Culture Encyclopedia: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신미양요 http://terms.naver.c[...]
[4] 웹사이트 Doopedia : 두산백과/ 신미양요 http://terms.naver.c[...]
[5] 웹사이트 Doopedia: 두산백과 / 어재연 http://terms.naver.c[...]
[6] 뉴스 General's Flag Returns Home From US https://www.koreatim[...] The Korea Times 2007-10-22
[7] 웹사이트 Korean flag to be returned on loan basis http://www.shinmiyan[...] Baltimore Sun 2007-10-11
[8] 뉴스 신미양요 때 빼앗긴 어재연 장군기 ‘10년 장기대여’ 귀환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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