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요스트
1. 개요
에디 요스트는 1944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962년까지 18시즌 동안 선수로 활동했으며, 이후 코치로 23시즌을 보냈다.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14시즌을 뛰며 829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1956년에는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으며, 통산 1,614개의 볼넷을 기록하여 역대 11위에 올랐다. 코치로서는 1969년 뉴욕 메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과 1973년 내셔널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4년 은퇴할 때까지 40년간 프로 야구계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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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3루수 |
|---|---|
| 타석 | 우타 |
| 송구 | 우투 |
| 출생일 | 1926년 10월 13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 브루클린 |
| 사망일 | 2012년 10월 16일 |
| 사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스턴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 일자 | 1944년 8월 16일 |
| 데뷔 팀 | 워싱턴 세너터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일자 | 1962년 7월 28일 |
| 마지막 팀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
| 타율 | .254 |
|---|---|
| 홈런 | 139 |
| 타점 | 683 |
| 팀 | 워싱턴 세너터스 (1944, 1946–1958)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59–1960)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61–1962) |
|---|
| 팀 | 워싱턴 세너터스 (1963) |
|---|
| 올스타 | 1952년 |
|---|---|
| 월드 시리즈 우승 | 1969년 |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1988년부터 2009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통산 3,000탈삼진을 달성하고 은퇴 후에는 ESPN 해설가로 활동했으나 해고되었고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
팀 웨이크필드
팀 웨이크필드는 플로리다 공과대학교 출신으로 MLB에서 19시즌 동안 너클볼 투수로 활약하며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통산 200승을 기록했으며, 은퇴 후 해설가로 활동하다 2023년 뇌암으로 사망했다. -
2012년 사망 -
시아오시 투포우 5세
시아오시 투포우 5세는 통가의 제23대 국왕으로,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다 2006년 즉위 후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등 통가의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결혼하지 않아 왕위 계승권이 있는 자녀는 없었다. -
2012년 사망 -
에릭 홉스봄
에릭 홉스봄은 영국 출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저술을 통해 근대와 20세기를 분석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옹호적 시각과 소련의 범죄에 대한 침묵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2. 선수 경력
브루클린, 뉴욕 출신인 요스트는 뉴욕 대학교(NYU)에서 야구와 농구를 했으며, 1944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워싱턴 세네터스와 계약했다. 그는 마이너 리그를 거치지 않고 1944년 8월 16일, 17세의 나이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45년 시즌은 미국 해군에서 복무한 뒤 1946년 세네터스로 복귀했다.
1947년부터 세네터스의 주전 3루수로 자리매김하여 1958년까지 활약했으며, 특히 1949년 8월 30일부터 1955년 5월 11일까지 829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당시 메이저 리그 역사상 9번째로 긴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었다. 1950년에는 개인 최고인 .295의 타율과 .440의 출루율을 기록했고, 1951년에는 36개의 2루타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차지했으며, 1952년에는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요스트는 높은 타율이나 많은 홈런을 기록하는 타자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선구안으로 '걷는 사람(The Walking Man)'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볼넷을 얻어냈다. 그는 통산 6번이나 아메리칸 리그 볼넷 1위를 차지했으며, 통산 1,614개의 볼넷은 역대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특히 1956년에는 타율이 .231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151개의 볼넷을 얻어내 .412라는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40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낮은 타율 기록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는 또한 28개의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바비 본즈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최다 기록이었다.
수비에서도 뛰어난 3루수로 평가받았다. 아메리칸 리그 3루수로서 8번이나 최다 아웃, 7번이나 최다 병살타, 3번이나 최다 보살을 기록했으며, 2번이나 수비율 1위를 차지했다. 그가 기록한 2,356개의 아웃, 3,659개의 보살, 6,285개의 총 찬스는 모두 아메리칸 리그 3루수 통산 기록이다. 그의 통산 2,356 아웃은 브룩스 로빈슨과 지미 콜린스에 이어 3루수 역대 3위에 해당한다. 요스트는 역사상 2,000경기 이상 출전한 최초의 3루수이기도 하다.
1958년 시즌 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고, 타자 친화적인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1959년 개인 최다인 21개의 홈런을 기록했으며, 2년 연속(1959, 1960) 리그 볼넷 및 출루율 1위를 차지했다. 이후 1961년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신생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이적하여 팀의 첫 메이저 리그 경기에 1번 타자로 출전하는 등 두 시즌을 더 뛰고 1962년 은퇴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타석에서도 볼넷을 얻어냈다.
18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요스트는 2,109경기에 출전하여 7,346타수 1,863안타(통산 타율 .254), 139홈런, 683타점, .394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통산 수비율은 .957이었다. 야구 역사가 빌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역사적 야구 개요에서 요스트를 역대 3루수 중 24위로 평가했다.
2.1. 워싱턴 세네터스 (1944-1958)
요스트는 브루클린, 뉴욕 출신으로, 뉴욕 대학교(NYU)에서 야구와 농구를 한 경력이 있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선수 부족 상황에서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워싱턴 세네터스와 계약했다. 그는 별도의 마이너 리그 경험 없이 1944년 8월 16일, 17세의 어린 나이에 세네터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그 해 7경기에 출전했다. 1945년 시즌은 미국 해군에서 복무하며 보냈고, 1946년에 다시 세네터스로 복귀했다.
1947년부터 세네터스의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았으며, 1957년까지 11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뛰어난 내구성을 보여주었으며, 1949년 8월 30일부터 1955년 5월 11일까지 829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당시 메이저 리그 역사상 9번째로 긴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었다.
타격 면에서는 1950년에 개인 최고 기록인 .295의 타율과 .440의 출루율을 기록했으며, 1951년에는 36개의 2루타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차지하고 개인 최다인 65타점을 올렸다. 1952년에는 올스타전에 아메리칸 리그 팀의 예비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고타율 타자나 장타자는 아니었다. 특히 홈 구장이었던 그리피스 스타디움은 규모가 커서 그의 홈런 생산에 제약이 되었다. 실제로 1944년부터 1953년까지 홈 구장에서는 단 3개의 홈런만을 기록한 반면, 원정 경기에서는 52개의 홈런을 쳤다.
요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이었다. 1950년 141개의 볼넷으로 리그 1위를 기록한 이후, 거의 매년 100개 이상의 볼넷을 얻어내며 통산 6번이나 리그 최다 볼넷을 기록했다. 특히 1956년에 기록한 151볼넷은 당시 베이브 루스(170개)와 테드 윌리엄스(162개, 156개)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수비에서는 3루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리그 최다 보살을 8번이나 기록했고, 리그 최다 병살 참여 2회, 최고 수비율 3회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14시즌 동안 세네터스에서 활약한 후, 1958년 12월 6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팀이 유망주였던 하먼 킬브루에게 3루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조치였다.
워싱턴 세네터스 시절 연도별 타격 성적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44 | 워싱턴 세네터스 | 7 | 14 | 3 | 2 | 0 | 0 | 0 | 0 | 0 | 0 | 1 | 2 | .143 | .200 | .143 | .343 |
| 1946 | 8 | 25 | 2 | 2 | 1 | 0 | 0 | 1 | 2 | 1 | 5 | 5 | .080 | .233 | .120 | .353 | |
| 1947 | 115 | 428 | 52 | 102 | 17 | 3 | 0 | 14 | 3 | 5 | 45 | 57 | .238 | .314 | .292 | .606 | |
| 1948 | 145 | 555 | 74 | 138 | 32 | 11 | 2 | 50 | 4 | 3 | 82 | 51 | .249 | .349 | .357 | .706 | |
| 1949 | 124 | 435 | 57 | 110 | 19 | 7 | 9 | 45 | 3 | 3 | 91 | 41 | .253 | .383 | .391 | .774 | |
| 1950 | 155 | 573 | 114 | 169 | 26 | 2 | 11 | 58 | 6 | 6 | 141 | 63 | .295 | .440 | .405 | .845 | |
| 1951 | 154 | 568 | 109 | 161 | 36 | 4 | 12 | 65 | 6 | 4 | 126 | 55 | .283 | .423 | .424 | .847 | |
| 1952 | 157 | 587 | 92 | 137 | 32 | 3 | 12 | 49 | 4 | 3 | 129 | 73 | .233 | .378 | .359 | .738 | |
| 1953 | 152 | 577 | 107 | 157 | 30 | 7 | 9 | 45 | 7 | 4 | 123 | 59 | .272 | .403 | .395 | .799 | |
| 1954 | 155 | 539 | 101 | 138 | 26 | 4 | 11 | 47 | 7 | 3 | 131 | 71 | .256 | .405 | .380 | .786 | |
| 1955 | 122 | 375 | 64 | 91 | 17 | 5 | 7 | 48 | 4 | 3 | 95 | 54 | .243 | .407 | .371 | .778 | |
| 1956 | 152 | 515 | 94 | 119 | 17 | 2 | 11 | 53 | 8 | 5 | 151 | 82 | .231 | .412 | .336 | .748 | |
| 1957 | 110 | 414 | 47 | 104 | 13 | 5 | 9 | 38 | 1 | 11 | 73 | 49 | .251 | .370 | .372 | .742 | |
| 1958 | 134 | 406 | 55 | 91 | 16 | 0 | 8 | 37 | 3 | 6 | 81 | 43 | .224 | .361 | .323 | .683 |
2.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59-1960)
1958년 12월 6일, 워싱턴 세네터스는 유망주 하먼 킬브루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14시즌 동안 팀에 몸담았던 요스트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했다.
타자 친화적인 홈 구장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뛰게 된 1959년, 요스트의 홈런 수는 개인 최고 기록인 21개로 증가했다. 그는 또한 115득점, 135볼넷, .435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이 세 부문에서 아메리칸 리그 1위에 올랐다. 비록 타율은 .270 전후였지만, 많은 볼넷을 얻어내며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다. 1960년에도 요스트는 볼넷과 출루율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유지했다.
요스트는 타이거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1960년 시즌 종료 후 열린 1961년 아메리칸 리그 확장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 지명되어 팀을 옮겼다.
2.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61-1962)
요스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1960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아메리칸 리그 익스팬션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 지명되었다.
1961년 4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치른 에인절스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 리그 경기에서 요스트는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며,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에인절스에서 2년간(1961-1962) 활약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선수로서 마지막 타석에서는 볼넷을 기록했다.
3. 코치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요스트는 코치로서 23시즌 동안 활동했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 선수 겸 코치로 잠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워싱턴 세네터스(1963-1967), 뉴욕 메츠(1968-1976), 보스턴 레드삭스(1977-1984)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1984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할 때까지, 선수와 코치를 합쳐 프로 야구에서 총 40년간 활동했다.
3.1. 워싱턴 세네터스/텍사스 레인저스 (1963-1967)
선수로서 오랜 경력을 마친 요스트는 코치로 23시즌 동안 활동했다. 1962년 에인절스에서 선수 겸 코치로 잠시 활동한 후, 요스트는 옛 팀 동료이자 감독인 미키 버논 밑에서 세네터스의 3루 코치로 1963년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워싱턴이 시즌 초반 40경기 중 26경기를 패배하자 버논은 길 호지스로 교체되었다. 요스트는 이 짧은 전환 기간 동안 임시 감독을 맡아, 1963년 5월 2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9-3으로 패배하며 감독으로서 유일한 경기를 치렀다. 이후 요스트는 1967년까지 호지스 감독의 워싱턴 코칭 스태프에서 계속 활동했다.
3.2. 뉴욕 메츠 (1968-1976)
1968년, 워싱턴 세네터스 시절 함께했던 길 호지스가 뉴욕 메츠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요스트 역시 코치로 메츠에 합류했다. 메츠의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은 요스트가 오프 시즌 동안 머물던 사우스 오존 파크, 퀸스의 집에서 불과 약 12.87km 거리에 있었다.
요스트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 9시즌 동안 메츠의 3루 코치를 맡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969년, 기적적인 우승을 일궈낸 "[[미라클 메츠]]"의 일원으로 1969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73년에는 메츠의 내셔널 리그 우승을 함께 했으나, 1973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7경기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다.
3.3. 보스턴 레드삭스 (1977-1984)
뉴욕 메츠에서의 코치 생활을 마친 후, 요스트는 1977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여 코치 경력을 이어갔다. 그는 돈 짐머와 랄프 호크 감독 아래에서 1984년까지 8시즌 동안 3루 코치를 담당했다. 1984년 시즌 종료와 함께 프로 야구에서 40년간 활동한 후 은퇴했다.
4. 개인 생활
요스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수 시절 구단 프런트 오피스에서 홍보 업무를 하던 패트리샤 힐리와 결혼했다. 부부는 두 딸 펠리타 요스트 카와 알렉시스, 아들 마이크, 그리고 두 손자 에드워드와 조셉을 두었다. 아내 패트리샤는 2007년 1월 6일에 사망했다.
딸 펠리타는 1997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아이스 댄싱 종목에 출전했으며, 선수 생활 이후 현재 피겨 스케이팅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아들 마이클은 보스턴 칼리지 실내 장대높이뛰기 기록 보유자이다.
손자 에드워드는 캘리포니아의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에서 야구 선수(좌완 투수)로 활동했다. 그는 2015년 6월 6일 CIF 서던 섹션 디비전 1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 야구팀의 일원이었다. 에드워드 요스트는 이후 페퍼다인 대학교의 페퍼다인 웨이브스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요스트와 그의 가족은 레드삭스에서 활동하는 동안 보스턴 서부 교외로 이사했으며, 은퇴 후에도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2012년 10월 16일, 매사추세츠주 웨스턴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수상 및 기록
에디 요스트는 18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2,109경기에 출전하여 7,346타수에서 1,863안타를 기록, 통산 .254의 타율, 139개의 홈런, 683타점, .394의 출루율을 남겼다. 통산 수비율은 .957이었다.
요스트는 뛰어난 선구안으로 유명했으며, 통산 1,614개의 볼넷을 얻어 이 부문 역대 11위에 올라 있다. 그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6번이나 최다 볼넷을 기록했으며, 특히 1956년에는 .231의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412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40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낮은 타율 기록이다. 또한 1956년에 기록한 시즌 151볼넷은 당시 베이브 루스(170개), 테드 윌리엄스(162개, 156개)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1959년과 1960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으로 2년 연속 리그 출루율 1위를 차지했다. 요스트는 통산 28개의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1970년대 바비 본즈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3루수로서 요스트는 수비에서도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아메리칸 리그 3루수 부문에서 자살 8회, 병살타 2회, 보살 8회(기록 출처에 따라 3회라는 내용도 있음), 수비율 1위 3회를 기록했다. 그는 통산 2,356개의 자살, 3,659개의 보살, 6,285개의 총 찬스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통산 기록을 세웠다. 그의 통산 2,356 자살은 브룩스 로빈슨과 지미 콜린스에 이어 3루수 역대 3위에 해당한다. 요스트는 1949년 8월 30일부터 1955년 5월 11일까지 829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1960년에는 1,865경기에 출전하며 파이 트레이너가 보유했던 3루수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을 넘어섰다. 그는 역사상 2,000경기 이상 출전한 최초의 3루수이기도 했다.
야구 역사가 빌 제임스는 그의 저서 《역사적 야구 개요》(The Bill James Historical Baseball Abstract)에서 요스트를 역대 3루수 중 24위로 평가했다.
요스트는 1952년에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코치로 활동하며 1969년 뉴욕 메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주요 기록 및 수상
* 올스타 선출: 1회 (1952년)
* 아메리칸 리그 최다 볼넷: 6회 (1950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6년, 1959년, 1960년)
* 아메리칸 리그 출루율 1위: 2회 (1959년, 1960년)
* 아메리칸 리그 3루수 최다 자살: 8회 (1948년, 1950년–1954년, 1956년, 1959년)
* 아메리칸 리그 3루수 최다 병살타: 2회 (1950년, 1956년)
* 아메리칸 리그 3루수 최다 보살: 8회 (1950년–1954년, 1956년, 1958년, 1959년) (원문 기록과 일부 차이 있음)
* 아메리칸 리그 3루수 최고 수비율: 3회 (1954년, 1958년, 1959년)
* 시즌 볼넷 151개 (1956년, 당시 역대 3위, 현재 역대 9위)
* 통산 볼넷 1,614개 (역대 11위)
* 통산 3루수 자살 2,356개 (역대 3위)
* 통산 3루수 보살 3,659개 (AL 기록)
* 통산 3루수 총 찬스 6,285개 (AL 기록)
* 829경기 연속 출장 (1949년 8월 30일 ~ 1955년 5월 11일)
* 3루수 최초 2,000경기 이상 출전
* 월드 시리즈 우승 (코치): 1회 (1969년)
연도별 타격 성적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44 | WSH | 7 | 16 | 14 | 3 | 2 | 0 | 0 | 0 | 2 | 0 | 0 | 0 | 1 | - | 1 | - | 0 | 2 | 0 | .143 | .200 | .143 | .343 |
| 1946 | 8 | 31 | 25 | 2 | 2 | 1 | 0 | 0 | 3 | 1 | 2 | 1 | 1 | - | 5 | - | 0 | 5 | 1 | .080 | .233 | .120 | .353 | |
| 1947 | 115 | 485 | 428 | 52 | 102 | 17 | 3 | 0 | 125 | 14 | 3 | 5 | 10 | - | 45 | - | 2 | 57 | 8 | .238 | .314 | .292 | .606 | |
| 1948 | 145 | 648 | 555 | 74 | 138 | 32 | 11 | 2 | 198 | 50 | 4 | 3 | 7 | - | 82 | - | 4 | 51 | 15 | .249 | .349 | .357 | .706 | |
| 1949 | 124 | 532 | 435 | 57 | 110 | 19 | 7 | 9 | 170 | 45 | 3 | 3 | 4 | - | 91 | - | 1 | 41 | 11 | .253 | .383 | .391 | .774 | |
| 1950 | 155 | 730 | 573 | 114 | 169 | 26 | 2 | 11 | 232 | 58 | 6 | 6 | 9 | - | 141 | - | 8 | 63 | 13 | .295 | .440 | .405 | .845 | |
| 1951 | 154 | 716 | 568 | 109 | 161 | 36 | 4 | 12 | 241 | 65 | 6 | 4 | 11 | - | 126 | - | 11 | 55 | 7 | .283 | .423 | .424 | .847 | |
| 1952 | 157 | 734 | 587 | 92 | 137 | 32 | 3 | 12 | 211 | 49 | 4 | 3 | 10 | - | 129 | - | 8 | 73 | 9 | .233 | .378 | .359 | .738 | |
| 1953 | 152 | 713 | 577 | 107 | 157 | 30 | 7 | 9 | 228 | 45 | 7 | 4 | 9 | - | 123 | - | 4 | 59 | 12 | .272 | .403 | .395 | .799 | |
| 1954 | 155 | 686 | 539 | 101 | 138 | 26 | 4 | 11 | 205 | 47 | 7 | 3 | 11 | 1 | 131 | - | 5 | 71 | 5 | .256 | .405 | .380 | .786 | |
| 1955 | 122 | 490 | 375 | 64 | 91 | 17 | 5 | 7 | 139 | 48 | 4 | 3 | 6 | 3 | 95 | 0 | 11 | 54 | 7 | .243 | .407 | .371 | .778 | |
| 1956 | 152 | 684 | 515 | 94 | 119 | 17 | 2 | 11 | 173 | 53 | 8 | 5 | 9 | 1 | 151 | 9 | 8 | 82 | 8 | .231 | .412 | .336 | .748 | |
| 1957 | 110 | 492 | 414 | 47 | 104 | 13 | 5 | 9 | 154 | 38 | 1 | 11 | 0 | 0 | 73 | 2 | 5 | 49 | 6 | .251 | .370 | .372 | .742 | |
| 1958 | 134 | 503 | 406 | 55 | 91 | 16 | 0 | 8 | 131 | 37 | 3 | 6 | 1 | 6 | 81 | 2 | 9 | 43 | 9 | .224 | .361 | .323 | .683 | |
| 1959 | DET | 148 | 675 | 521 | 115 | 145 | 19 | 0 | 21 | 227 | 60 | 9 | 2 | 4 | 3 | 135 | 1 | 12 | 77 | 6 | .278 | .435 | .436 | .871 |
| 1960 | 143 | 636 | 497 | 78 | 129 | 23 | 2 | 14 | 198 | 47 | 5 | 4 | 3 | 3 | 125 | 1 | 8 | 69 | 11 | .260 | .414 | .398 | .812 | |
| 1961 | LAA | 76 | 267 | 213 | 29 | 43 | 4 | 0 | 3 | 56 | 15 | 0 | 1 | 2 | 0 | 50 | 0 | 2 | 48 | 2 | .202 | .358 | .263 | .621 |
| 1962 | 52 | 137 | 104 | 22 | 25 | 9 | 1 | 0 | 36 | 10 | 0 | 2 | 0 | 1 | 30 | 0 | 1 | 21 | 3 | .240 | .412 | .346 | .758 | |
| 통산: 18년 | 2109 | 9175 | 7346 | 1215 | 1863 | 337 | 56 | 139 | 2729 | 682 | 72 | 66 | 98 | *18 | 1614 | *15 | 99 | 920 | 133 | .254 | .394 | .371 | .765 | |
* 「-」는 기록 없음.
* 통산 성적의 「*숫자」는, 집계가 불명확한 연도가 있음을 나타냄.
*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기울임꼴은 리그 출루율 1위.
* 1945년은 출장 경기 없음.
등번호
| 기간 | 등번호 |
|---|---|
| 1944년 | 6 |
| 1946년 – 1948년 중반 | 28 |
| 1948년 중반 – 1949년 | 7 |
| 1950년 – 1951년 중반 | 45 |
| 1951년 중반 – 1960년 | 1 |
| 1961년 – 1962년 중반 | 10 |
| 1962년 중반 – 같은 해 |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