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박
1. 개요
에스더 박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의사로, 1877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미국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900년 의학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여성 병원인 보구녀관에서 진료를 시작했으며, 10개월 만에 3천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다. 콜레라 유행 시기에는 무료 순회 진료를 펼치고 여성 교육에도 힘썼으며, 고종으로부터 은메달을 수여받았다. 1910년 폐결핵으로 3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한국 여성 의료 및 교육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 이름 | 에스더 박 |
|---|---|
| 원어 이름 | Esther Kim Pak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 이름 | 김점동 |
|---|---|
| 로마자 표기 | Gim Jeomdong |
| 출생일 | 1876년 3월 16일 |
| 출생지 | 서울, 조선 |
| 사망일 | 1910년 4월 13일 |
| 국적 | 한국 |
| 다른 이름 | 김, 점동, 에스터 김 박 |
| 직업 | 의사, 선교사 |
| 활동 기간 | 1895년–1910년 |
| 배우자 | 박여선 |
| 한글 | 에스더 박 |
|---|---|
| 로마자 표기 | Eseudeo Bak |
| 문화관광부 표기 | Esŭdŏ Pak |
| 한글 (출생 시) | 김점동 |
| 한자 (출생 시) | 金點童 |
| 로마자 표기 (출생 시) | Gim Jeomdong |
| 문화관광부 표기 (출생 시) | Kim Chŏmdong |
| 이름 | 에스더 박 |
|---|---|
| 원어 이름 | Esther Kim Pa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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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사 -
함석태
함석태는 1914년 한국 최초로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한성 치과의원을 개원, 한성치과의사회 설립 및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치과의사의 권익 보호와 지위 향상, 그리고 치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기여한 인물이다. -
1909년 사망 -
김요협
김요협은 1833년에 태어나 여러 관직을 거쳐 최종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른 인물이다. -
1909년 사망 -
이인영 (1868년)
이인영은 1868년 출생하여 을미사변 이후 의병을 일으켰고,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
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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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김활란
김활란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여성 교육에 기여했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로 비판받았다.
2. 학력
* 이화학당
*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
3. 생애
1877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점동은 아버지 김홍택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외국인 선교사들과 가깝게 지냈다. 김홍택은 개신교 감리교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집에서 일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후 프랭클린 올링거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김점동은 메리 F. 스크랜턴 부인이 고종의 윤허를 받아 설립한 이화학당에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했다.
11세에 이화학당에 입학한 김점동은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으며, 특히 영어를 잘하여 보구녀관(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에서 외국 의사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를 돕고 환자를 간호하며 의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여성 의사 로제타 홀은 수술이 있을 때마다 김점동을 불러 통역과 보조 역할을 맡겼다. 김점동은 로제타 셔우드 홀의 입술갈림증(언청이) 환자 수술 보조를 하면서 의사의 꿈을 꾸게 되었다. 1893년 로제타 홀의 주선으로 윌리엄 홀의 조수였던 박여선과 한국 최초의 서양식 결혼을 했다.
19세에 남편 박여선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김점동은 1896년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영어)에 입학했다. 남편은 식당에서 일하며 아내의 학업을 뒷바라지했으나, 김점동이 졸업하기 3주 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1900년 김점동은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에서 의학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보구녀관에서 일했다. 한국인 최초의 서양 의사는 서재필이었으나, 실제로 의사로서 활동한 한국인 의사는 김점동이 처음이다. 10개월 동안 3,0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으나, 1910년 4월 13일 폐결핵으로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3.1. 초기 생애 (1876년 ~ 1895년)
1876년(혹은 1877년) 서울 정동에서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홍택은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의 집에서 일했다. 김홍택은 개신교 선교 초기 기독교로 개종하여 프랭클린 올링거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1886년, 메리 F.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에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했다. 김점동의 부모는 딸이 미국으로 가지 않고, 결혼 전에 학교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두 가지 조건 하에 학업을 허락했다.
이화학당 재학 중, 보구녀관(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에서 외국 의사들의 통역을 맡을 만큼 영어를 잘했다. 이때 통역을 하면서 의사를 돕고 환자를 간호하며 약을 지었고,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입술갈림증(언청이) 환자 수술 보조를 한 것을 계기로 의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893년, 로제타 홀의 주선으로 17세에 윌리엄 홀의 조수였던 박여선과 한국 최초의 서양식 결혼을 했다.
3.2. 미국 유학 (1896년 ~ 1900년)
1896년, 에스더 박은 남편 박여선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서 1년간 학교를 다니며 라틴어, 물리학, 수학을 공부했다. 1900년에는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영어)을 졸업하여 한국 여성 최초로 미국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에스더 박의 유학은 미국 기독교 선교 여의사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남편 박여선은 볼티모어 식당에서 일하며 아내의 학업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에스더 박이 졸업하기 3주 전(또는 반년 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3.3. 한국에서의 의료 활동 (1900년 ~ 1910년)
1900년 박에스더는 미국에서 의학 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 여성이 되어 볼티모어 여성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서울 정동에 있는 최초의 여성 병원인 보구녀관에서 일했다. 한국인 최초의 서양 의사는 서재필이었으나, 실제로 의사로서 활동한 한국인 의사는 박에스더가 처음이다. 귀국 후 10개월 동안 3,0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1901년, 로제타 셔우드 홀이 평양에 새 병원을 설립하면서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콜레라 유행 기간을 포함하여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료로 환자들을 치료했다. 본업 외에도 교육 활동을 수행하며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들을 가르쳤다. 또한 공개 강연을 통해 건강 교육 및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독교를 전파했다.
1910년 4월 13일 폐결핵으로 3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4. 업적 및 평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의사로서, 여성 의료 및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의료 취약 계층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를 실천하였다.
1909년 4월 28일, 하란사(미국 대학에서 문학 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윤정원(일본 메이지 대학(음악)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과 함께 여성 선구자로서 기념식을 통해 축하받았다. 이 행사에는 7,800명이 참석했다. 고종은 박에스더에게 은메달을 수여했다.
200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박에스더를 한국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동창회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여성들의 공로를 기리는 '박에스더 메달'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