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노르 데 메디치
1. 개요
엘레오노르 데 메디치는 156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요하나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다. 1584년 만토바 공작 빈첸초 1세 곤차가와 결혼하여 만토바 공작부인이 되었으며,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1602년 남편이 플랑드르로 떠나자 섭정을 하였으며, 1611년 사망하여 산탄드레아 대성당에 장례되었다.
| 칭호 | 만토바 공비 겸 몽페라토 후작 부인 |
|---|---|
| 전체 이름 | 엘레오노라 디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 |
| 출생일 | 1567년 2월 28일 |
| 출생지 | 피렌체, 피렌체 공화국 (현재의 이탈리아) |
| 사망일 | 1611년 9월 9일 |
| 사망지 | 카브리아나, 만토바 공국 (현재의 이탈리아) |
| 배우자 | 빈첸초 1세 곤차가 |
| 자녀 | 프란체스코 4세 곤차가 페르디난도 마르게리타 빈첸초 2세 곤차가 엘레오노라, 신성 로마 황후 |
| 가문 | 메디치 가문 |
| 아버지 |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 토스카나 대공 |
| 어머니 | 요안나 폰 외스터라이히 |
| 재위 | 1587년 8월 14일 ~ 1611년 9월 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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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출생 -
사나다 노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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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출생 -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며 센다이 번의 초대 번주로, '독안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슈 지역을 장악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속, 임진왜란과 오사카 전투에 참전, 센다이 번 건설과 스페인과의 통상 추진, 문화 예술에도 힘썼다. -
16세기 이탈리아 귀족 -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는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사생아로 피렌체의 첫 번째 세습 공작(1532-1537)이었으며, 어두운 피부색으로 "일 모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1530년 권력을 되찾아 피렌체 공작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촌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의해 암살당했다. -
16세기 이탈리아 귀족 -
에르콜레 1세 데스테
에르콜레 1세 데스테는 1471년 페라라 공작이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전쟁, 이탈리아 전쟁 등에 연루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후원하고 도시 개발에 힘쓴 인물이다. -
메디치가 -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는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사생아로 피렌체의 첫 번째 세습 공작(1532-1537)이었으며, 어두운 피부색으로 "일 모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1530년 권력을 되찾아 피렌체 공작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촌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의해 암살당했다. -
메디치가 -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토스카나 대공 코지모 3세의 딸이자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팔츠 선제후와의 결혼 후 남편 사후 피렌체로 돌아와 자선 활동에 헌신했으며, 메디치 가문의 미술품 컬렉션을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하여 피렌체의 문화적 유산을 영구히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2. 일생
엘레오노라는 1567년 2월 28일 이탈리아 피렌체 토스카나에서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요하나 대공비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교황 율리우스 3세의 양조카인 추기경 인노첸초 치오키 델 몬테가 세례식에 참석했고, 추기경 스피넬로 데 벤치가 교황 비오 5세를 대신하여 세례를 집전했다. 세례식은 사냥 여행과 파티로 축하되었다.
엘레오노라는 프랑스 앙리 2세와 카트린 드 메디시의 아들인 앙주 공작 프랑수아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1570년 엘레오노라는 천연두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었으나, 실제로는 열병이었고 곧 회복되었다. 부모와 할아버지 코시모 1세 데 메디치는 그녀의 회복을 기원하며 성수를 보냈다.
1574년 할아버지 코시모가 사망하여 아버지가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다. 1578년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비앙카 카펠로와 재혼했다. 엘레오노라의 자매 마리 드 메디치는 프랑스 왕비가 되었고 루이 13세의 어머니였다. 또 다른 자매 안나는 14세에 사망했는데, 엘레오노라는 죽어가는 안나를 대신하여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지만, 안나는 같은 날 사망했다. 엘레오노라와 마리의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유년기에 사망했다.
1584년 엘레오노라는 빈첸초 1세 곤차가와 결혼하여 만토바 공작 부인이 되었다. 1600년 여동생 마리 데 메디시스가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결혼할 때 결혼식에 참석했고, 1601년 마리 왕비의 아들 루이 13세의 대모가 되었다. 1602년 남편 빈첸초 1세가 치료를 위해 플랑드르로 떠나자 엘레오노르는 공국을 통치했다.
1611년 엘레오노라는 44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시신은 만토바의 산타 바르바라 궁전에 안치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엘레오노르는 1567년 2월 28일 이탈리아 피렌체 토스카나에서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요하나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세례식에는 교황 율리오 3세의 양조카인 추기경 인노첸초 치오키 델 몬테가 참석했고 추기경 스피넬로 데 벤치가 교황 비오 5세를 대신하여 세례를 집전하였다.
처음에는 엘레오노르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아들 앙주 공작 프랑수아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570년 엘레오노르가 열병을 앓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증상은 천연두로 의심되었으나, 실제로는 심한 열병만 앓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녀가 병에서 회복되자 부모님과 할아버지 코시모 1세 데 메디치는 축하의 의미로 성수가 담긴 플라스크를 보냈다.
엘레오노르에게는 6명의 형제가 있었으나 여동생 마리 드 메디시스만이 장성했다. 마리는 1600년에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결혼하여 두 번째 왕비가 되었으며, 훗날 그녀가 낳은 아들이 프랑스 왕 루이 13세로 즉위하자 모후가 되었다.
1574년, 엘레오노르가 7살이었을 때 할아버지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죽자 아버지가 2대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다. 1578년, 엘레오노르가 11살이었을 때 어머니가 임신 중 사고로 사망하자, 아버지는 애첩 비앙카 카펠로와 재혼했다.
2.2. 만토바 공작부인
1587년 엘레오노르의 남편 빈첸초 1세가 만토바 공작이 되면서, 엘레오노르는 만토바 공작부인이 되었다. 엘레오노르는 슬하에 여러 자녀를 두었다. 1586년 프란체스코 4세 곤차가를 낳았고, 이듬해에는 페르디난도 곤차가를 낳았다. 1589년에는 아들 굴리엘모 도메니코를 낳았으나 요절했고, 1591년에는 마르게리타 곤차가를, 1594년에는 빈첸초 2세 곤차가를, 1598년에는 엘레오노라 곤차가를 낳았다. 1596년에는 임신 4개월 만에 유산했다.
1600년 10월, 엘레오노르는 여동생 마리 데 메디시스가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결혼할 때 결혼식에 참석했다. 1601년, 마리 왕비는 장남 루이 13세를 낳았고, 엘레오노르는 루이 13세의 대모가 되었다.
1602년, 남편 빈첸초 1세가 치료를 위해 플랑드르로 떠나자 엘레오노르는 공국을 통치했다. 그녀는 숙부 페르디난도 1세 데 메디치에게 편지를 보내 남편의 부재를 알렸다. 1603년부터 1604년 겨울 동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만토바 궁전을 방문했다. 1606년, 엘레오노르는 딸 마르게리타를 로렌으로 데려가 앙리 공작과 결혼시켰다.
2.2.1. 결혼
1584년 4월 4일 만토바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불꽃놀이가 터지는 등 결혼 계약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8일 후, 예비 신랑 빈첸초 1세 곤차가는 엘레오노르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새어머니 비앙카 카펠로를 만나기 위해 피렌체로 왔다. 4월 10일 프란체스코 1세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게 엘레오노르와 빈첸초의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빈첸초 1세 곤차가와의 결혼식은 1584년 4월 29일에 진행되었다. 5월 3일, 엘레오노르는 만토바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도착한 엘레오노르는 밀리오레토(만토바에서 바로 하류로 내려오는 민시오 강변)에 내려 파르마 공작 오타비오 파르네세와 그녀의 남편 빈첸초, 피아첸차, 파르마, 만토바에서 온 많은 귀족들과 여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팔라초 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엘레오노르는 보석으로 장식된 은색 옷으로 갈아입고, 만토바 군대와 경기병, 귀족, 여성들과 함께 반쯤 덮인 금색 마차를 타고 도시로 들어갔다.
카스텔로 디 산 조르지오 성당에 도착한 후, 그녀는 산타 바르바라 궁전과 공작 부인인 굴리엘모 곤차가와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의 환영을 받았다. 식사 후 그녀는 잔프란체스코 감바라 추기경과 지오반니 빈첸초 곤차가 디 과스타야 추기경과 함께 팔라초 테로 가서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과 파르마 공작의 방문을 받았다.
2.2.2. 공작부인으로서의 삶
1586년 5월 7일, 엘레오노르는 첫 아이인 프란체스코를 낳았다. 이듬해 엘레오노르의 시아버지 굴리엘모가 사망하면서 남편 빈첸초 1세가 만토바 공작이 되었고, 엘레오노르는 만토바 공작부인이 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힘든 임신 끝에 둘째 아들 페르디난도를 낳았다. 이후 엘레오노르는 1589년 아들 굴리엘모 도메니코를 낳았고, 1591년에는 훗날 로렌 공작 앙리 2세와 혼인하는 딸 마르게리타를 낳았다. 1594년에는 아들 빈첸조가 태어났다. 1596년에는 임신 4개월 만에 유산을 하는 아픔을 겪었고, 1598년에는 둘째 딸 엘레오노르를 낳았다.
1600년 10월, 엘레오노르는 여동생인 마리가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결혼하자 결혼식에 참석했다. 1601년, 마리 왕비는 장남 루이 13세를 낳았는데, 마리의 요청에 의해 엘레오노르는 루이 13세의 대모가 되었다.
1602년, 남편 빈첸초 1세가 치료를 위해 플랑드르로 떠나자, 엘레오노르는 공국의 통치권을 행사하며 섭정을 하였다. 이때 그녀는 숙부이자 토스카나 대공인 페르디난도 1세에게 편지를 보내 남편의 부재 사실을 알렸다. 1603년부터 1604년까지의 겨울 동안 갈릴레오가 만토바 궁전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1606년 엘레오노르는 로렌으로 가서 딸 마르게리타를 앙리 공작과 결혼시켰다.
2.3. 죽음과 장례식
엘레오노르는 1611년 초 병에 걸려 오랫동안 앓았으나, 4월에 회복되는 듯 보였다. 그녀는 자연환경이 좋은 포르토 만토바노의 포르투 궁전에서 두 달 동안 요양했다. 날씨가 더워지자 엘레오노르는 북쪽 카브리아나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요새화된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1611년 9월 9일, 엘레오노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가 사망했을 당시, 남편 빈첸초 1세 공작은 카살레 몬페라토에 있었으며, 그 역시 이듬해인 1612년에 사망했다.
엘레오노르의 시신은 납으로 된 관에 안치되어 수많은 사제들에 의해 브리아나 교구 교회로 운구되어 이틀 동안 안치되었다. 이후 검은 천으로 덮인 수레에 실려 만토바로 옮겨졌다. 엘레오노르의 시신은 코르테 베키아(Corte Vecchia)에 안치된 후 남편 빈첸초 1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611년 10월 3일 빈첸초 1세가 만토바로 돌아와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례식은 카살레 주교가 집전했다.
3. 자녀
엘레오노르 데 메디치는 빈첸초 1세 곤차가와의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자녀를 두었다.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프란체스코 | 1586년 | 1612년 | 몬페라토 공작 |
| 페르디난도 | 1587년 | 1626년 | 1607년부터 추기경, 1612년부터 만토바 공작 겸 몬페라토 공작 |
| 굴리엘모 도메니코 | 1589년 8월 4일 | 1591년 5월 13일 | |
| 마르게리타 | 1591년 10월 2일 | 1632년 2월 7일 | 1606년 4월 24일 로렌 공작 앙리 2세와 결혼 |
| 빈첸초 | 1594년 | 1627년 | 1615년부터 추기경, 1626년부터 만토바 공작 겸 몬페라토 공작 |
| 엘레오노라 | 1598년 9월 23일 | 1655년 6월 27일 | 1622년 2월 4일 페르디난트 2세와 결혼 |
4. 가계도
Eleonora de' Medici이탈리아어의 가계도는 다음과 같다.
| 1. Eleonora de' Medici이탈리아어 | |
|---|---|
| 부친 | 2.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 |
| 모친 | 3. 오스트리아의 조안나 |
| 조부(부) | 4.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
| 조모(부) | 5. 톨레도의 레오노라 |
| 조부(모) | 6. 페르디난트 1세 |
| 조모(모) | 7.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안나 |
| 증조부(부) | 8. 조반니 달레 반데 네레 |
| 증조모(부) | 9. 마리아 살비아티 |
| 증조부(모) | 10. 페드로 알바레스 데 톨레도 |
| 증조모(모) | 11. 마리아 오소리오 |
| 고조부(부) | 12.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 |
| 고조모(부) | 13. 카스티야의 후아나 |
| 고조부(모) | 14.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블라디슬라프 2세 |
| 고조모(모) | 15. 푸아-캉달의 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