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
1. 개요
엘리자베트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는 프랑스의 왕족으로, 파리 룩셈부르크 궁전에서 태어났다. 르미르몽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형식적으로 물려받아 수도원에서 양육되었으며, 1667년 기즈 공작 루이 조제프와 결혼했다. 남편의 사망 후 아들과 함께 룩셈부르크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아들 또한 요절했다. 루이 14세의 위그노 탄압을 지지하며, 낭트 칙령 폐지 후 자신의 영지에서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1696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재산은 유일한 자매에게 상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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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
|---|---|
| 칭호 | 기즈 공작부인 |
| 작위 | 알랑송 여공작 |
|---|---|
| 재임 시작 | 1660년 |
| 재임 종료 | 1696년 |
| 작위 | 앙굴렘 여공작 |
| 재임 시작 | 1675년 |
| 재임 종료 | 1696년 |
| 출생일 | 1646년 12월 26일 |
|---|---|
| 출생지 | 룩셈부르크 궁전, 파리, 프랑스 |
| 사망일 | 1696년 3월 17일 |
| 사망지 |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 |
| 매장지 | 파리, 포부르 생자크 카르멜회 |
| 배우자 | 루이 조제프 드 기즈 |
|---|---|
| 자녀 | 프랑수아 조제프 드 기즈 |
| 아버지 | 가스통 도를레앙 |
| 어머니 | 마르그리트 드 로렌 |
| 가문 | 오를레앙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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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가 -
프랑수아 드 기즈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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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공작 -
샤를 9세
샤를 9세는 형 프랑수아 2세의 뒤를 이어 10세에 프랑스 왕이 되었으나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영향 아래 있었고,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사건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23세에 사망했으며 동생 앙리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
앙굴렘 공작 -
앙리 3세
앙리 3세는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프랑스 국왕이자 폴란드 국왕이었으며, 위그노 전쟁 등 혼란한 시기에 프랑스를 통치하다 가톨릭 동맹과의 갈등 끝에 암살당해 발루아 왕조를 마감했다. -
1696년 사망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1696년 사망 -
메이쇼 천황
2. 생애
엘리자베트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는 파리 뤽상부르 궁전에서 태어났다. 이 궁전은 1642년 그의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가 사망한 후 그녀의 아버지에게 주어졌다. 엘리자베트는 "엘리자베트"로 알려졌지만, 항상 "이사벨"이라고 서명했다. 세례명은 엘리자베트였지만, 본인은 이자벨(Isabelle d'Orléans)이라고 서명하는 것을 선호했다.
엘리자베트는 르미르몽 여자 수도원(Abbaye de Remiremont)의 원장을 형식적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부모 곁을 떠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다. 1648년, 불과 2세의 나이에 외가 쪽의 고모 할머니인 카트린 드 로렌(Catherine de Lorraine)으로부터 르미르몽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형식적으로 물려받았다.
1667년 5월 15일 생제르맹앙레에서 기즈 가문의 수장인 루이 조제프 드 기즈와 결혼했다. 그는 엘리자베트보다 네 살 어렸고 신분도 엘리자베트에 못 미쳤다. 1671년 루이 조제프는 찰스 1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다. 1672년 엘리자베트는 아들과 함께 뤽상부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녀의 아들 프랑수아 조제프는 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머리를 다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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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는 루이 14세의 위그노 탄압을 지지했으며 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자 자신의 영지에 개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지역의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1696년 루이 14세가 새로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죽었으며 그녀의 재산은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자매 마르그리트 루이즈에게 상속되었다.
2.1. 어린 시절
엘리자베트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는 파리 뤽상부르 궁전에서 태어났다. 이 궁전은 1642년 그의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가 사망한 후 그녀의 아버지에게 주어졌다. 엘리자베트는 "엘리자베트"로 알려졌지만, 항상 "이사벨"이라고 서명했다. 세례명은 엘리자베트였지만, 본인은 이자벨(Isabelle d'Orléans)이라고 서명하는 것을 선호했다.
엘리자베트는 르미르몽 여자 수도원(Abbaye de Remiremont)의 원장을 형식적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부모 곁을 떠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다. 1648년, 불과 2세의 나이에 외가 쪽의 고모 할머니인 카트린 드 로렌(Catherine de Lorraine)으로부터 르미르몽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형식적으로 물려받았다.
2.2. 결혼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는 마리 드 메디시스 사후 아버지에게 주어진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에서 태어났다. 르미르몽의 수녀원장이 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수녀원에서 자랐다.
엘리자베트는 1667년 5월 15일 생제르맹앙레에서 기즈 가문의 수장인 루이 조제프 드 기즈와 결혼했다. 그는 엘리자베트보다 네 살 어렸고 신분도 엘리자베트에 못 미쳤다. 결혼 전에는 알랑송 양으로 알려졌다. 기즈 공작은 이자벨의 어머니가 속했던 로렌 가문의 방계인 기즈 가문의 명목상 수장이었다.
1671년 루이 조제프는 찰스 1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다. 1672년 엘리자베트는 아들과 함께 뤽상부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녀의 아들 프랑수아 조제프는 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머리를 다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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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는 루이 14세의 위그노 탄압을 지지했으며 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자 자신의 영지에 개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지역의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1696년 루이 14세가 새로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죽었으며 그녀의 재산은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자매 마르그리트 루이즈에게 상속되었다.
2.3. 과부 시절
엘리자베트는 1667년 5월 15일 생제르맹앙레에서 기즈 가문의 수장인 루이 조제프 드 기즈와 결혼했다. 그는 엘리자베트보다 네 살 어렸고 신분도 낮았다. 1671년 남편 루이 조제프는 찰스 1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다. 1672년 엘리자베트는 아들 프랑수아 조제프와 함께 뤽상부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아들은 네 살 때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아들이 죽은 후, 엘리자베트는 알랑송 공작부인과 앙굴렘 공작부인이 되었다.
엘리자베트는 매년 여름을 알랑송 공작령에서, 겨울 대부분은 왕실 궁정에서 보냈다. 파리에 있을 때는 1672년 어머니가 사망한 후 양도받은 뤽상부르 궁전에 머물렀다. 같은 해, 생 피에르 드 몽마르트르 수도원에 개인 아파트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기즈 양과 그녀의 여동생이자 수녀원장인 토스카나 대공녀 마르그리트 루이즈를 자주 만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엘리자베트는 마크-앙투안 샤르팡티에에게 종교 작품을 의뢰했으며, 루이 14세의 위그노 탄압을 지지했다. 1685년 낭트 칙령 폐지 이후, 자신의 영지에 개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지역의 위그노들을 개종시켰다.
1694년, 엘리자베트는 뤽상부르 궁전을 루이 14세에게 넘겨주었다. 1696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재산은 유일하게 생존한 자매 마르그리트 루이즈에게 상속되었다.
2.4. 죽음
엘리자베트는 1671년 남편 루이 조제프가 찰스 1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연두로 사망하자, 아들 프랑수아 조제프와 함께 뤽상부르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아들마저 1675년 유모의 실수로 머리를 다쳐 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엘리자베트는 루이 14세의 위그노 탄압을 지지했으며, 1685년 퐁텐블로 칙령이 발표된 후 자신의 영지에 개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 지역의 위그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1696년 루이 14세가 새로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재산은 유일하게 생존한 자매 마르그리트 루이즈에게 상속되었다.
3. 자녀
프랑수아 드 기즈 공작(1670~1675)
4. 가계
| 1.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 |
|---|
| 2. 가스통, 오를레앙 공작 |
| 3. 로렌의 마르그리트 |
| 4. 앙리 4세 |
| 5. 마리 드 메디치 |
| 6. 프랑수아 2세, 로렌 공작 |
| 7. 잘름의 크리스틴 |
| 8. 나바라의 앙투안 |
| 9. 잔 3세, 나바라 여왕 |
| 10.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 |
| 11. 오스트리아의 조안나 |
| 12. 샤를 3세, 로렌 공작 |
| 13. 발루아의 클로드 |
| 14. 잘름-브란덴부르크 파울 백작 |
| 15. 마리 르 브네르 드 틸리에르 |
4.1. 조상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의 가계는 부계로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오를레앙가, 모계로는 로렌 공가와 잘름 가문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이며, 어머니는 로렌의 마르그리트이다.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는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된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로렌 공작 프랑수아 2세와 잘름의 크리스틴이다.
나바라의 앙투안과 나바라 여왕 잔 3세는 엘리자베트 마르그리트 도를레앙 공녀의 부계 증조부모이다.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오스트리아의 조안나는 친가쪽 증조부모가 된다. 로렌 공작 샤를 3세와 발루아의 클로드는 외가쪽 증조부모이다. 잘름-브란덴부르크의 파울 백작과 마리 르 브네르 드 틸리에르는 외증조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