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 (후한)
1. 개요
염상(閻象)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원술 휘하의 주부였다. 195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려 하자, 염상은 주 문왕의 사례를 들며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사서에 등장하지 않으며, 원술은 197년 황제를 참칭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원술의 참칭을 반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엄상(嚴象)이라는 동명이인도 존재하는데, 그는 순욱의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어사중승을 지냈으며, 양주자사를 역임했다. 200년 여강 태수 이술에게 살해당했다.
| 이름 | 옌샹 |
|---|---|
| 원어 이름 | 嚴象 |
| 자(字) | 문칙(文則), Wenze |
| 출생 | 163년 |
| 출생지 | 시안, 산시 성(陝西省) |
| 사망 | 200년 (37세) |
| 사망지 | 안후이 성(安徽省) |
| 직업 | 관료 |
| 직위 | 양주(揚州) 자사(刺史) |
|---|---|
| 임기 시작 | 199년 |
| 임기 종료 | 200년 |
| 군주 | 헌제(獻帝) |
| 후임 | 유복(劉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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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2. 원술의 부하 염상 (閻象)
원술을 섬겼으며, 관직은 주부(主簿)였다. 《후한서》 원술전, 《삼국지》 위서 원술전에 등장한다.
흥평 2년(195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려 하자 염상은 주 문왕의 고사를 인용하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원술은 건안 2년(197년)에 황제를 참칭했다. 염상은 이후 사서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2.1. 원술의 참칭 반대
흥평(興平) 2년(195년) 겨울,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염상은 周중국어의 문왕은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도 은의 신하로 있었다.고 말하며, 한나라가 존재하는 이상 참칭은 시기상조라고 하였다. 염상은 기창의 사례를 인용했는데, 기창은 상 왕조 영토의 3분의 2를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왕에게서 왕위를 찬탈하려 하지 않았다. 원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불쾌한 표정을 보였으나, 염상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건안 2년(197년)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였다.
2.2.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도 원술의 황제 참칭을 반대한다. 그러나 원술은 화를 내며 더 이상 말을 계속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염상을 협박하고, 억지로 황제를 참칭하였다.
3. 동명이인 엄상 (嚴象)
엄상(嚴象)은 경조(현재의 시안시 부근, 산시성)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용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욱의 추천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지냈다. 197년 군독(督軍)을 겸임하여 헌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지는, 스스로 황제를 칭한 군벌 원술을 토벌하는 원술 토벌전에 참여했다. 199년 원술이 죽은 후, 엄상은 양주 자사(刺史)를 지냈다.
조조의 지시로 엄상은 손권을 모재(茂才)로 추천했다. 200년 여강군(廬江郡) 태수(太守) 이술(李術)이 엄상을 살해했는데, 사망 당시 엄상의 동아시아 나이는 38세였다. 엄상과 마찬가지로 경조 출신인 작가 조기(趙岐)는 《삼보결록(三輔決錄)》을 썼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하여 공개적으로 출판하지 않고 엄상에게만 보여주었다.
4. 평가
염상(閻象중국어)은 주군에게 직언할 수 있는 충신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원술을 섬기며 주부(主簿)를 지냈다. 195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려 하자, 염상은 주(周) 문왕(文王)이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도 은(殷)의 신하로 있었다는 고사를 들어 반대했다. 이는 한나라가 건재한 상황에서 황제 참칭은 시기상조라는 뜻이었다. 원술은 불쾌해했지만, 당시에는 염상의 의견을 따랐다.
그러나 염상의 간언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7년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한편, 동명이인 엄상(嚴象)은 조조 진영에서 원술 토벌전 등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나, 이술(李術)에게 살해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