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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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엽교미는 기원전 2세기 무렵 오손의 군주로, 흉노와 월지 사이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한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는 흉노의 공격을 받아 흉노에 망명했다가 세력을 키워 월지를 공격, 사카 땅을 차지했다. 엽교미는 흉노에 복종하지 않고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했으며, 한나라와의 동맹을 통해 세력을 강화했다. 한나라 공주 유세군을 아내로 맞이하고 흉노의 침략을 막았으며, 엽교미 사후 유세군은 그의 손자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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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교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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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작위 | 오손 곤미 |
원어 이름 | 곤모 엽교미 |
휘 | 엽교미 |
존호 | 곤미, 곤막 |
후임자 | 잠취 |
가족 관계 | |
배우자 | 흉노 선우의 딸 (좌부인) 유세군 (우부인) |
자녀 | 태자 (이름 미상) 대록강 |
2. 생애
엽교미는 흉노 서쪽 경계에 있던 작은 나라의 왕 난두미의 아들로 태어났다. 흉노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어린 엽교미는 들판에 버려졌으나,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날아다니고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1] 이를 신기하게 여긴 흉노 선우는 엽교미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거두어 길렀다. 엽교미는 성장하여 병사를 통솔하며 여러 차례 공을 세웠고, 선우는 엽교미에게 아버지의 백성을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엽교미는 주변의 작은 마을을 습격하여 세력을 키웠고, 선우가 죽자 흉노에 복종하지 않았다. 흉노는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엽교미를 신으로 숭배하며 멀리하게 되면서 복속 관계만 유지했다.
엽교미에게는 열 명 남짓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록은 백성을 이끄는 데 뛰어났다. 대록은 만여 명의 기병을 이끌며 엽교미와는 다른 땅에 살았다. 대록의 형인 태자는 잠추라는 아들을 남기고 일찍 죽었다. 태자는 임종 때 엽교미에게 잠추를 태자로 삼고, 다른 자가 그 지위를 빼앗지 못하게 해달라고 유언했다. 엽교미는 잠추를 태자로 세웠지만, 대록은 이에 분노하여 잠추와 엽교미를 공격하려 했다. 엽교미는 잠추에게 만여 명의 기병을 주어 다른 곳에 주둔하게 하고 자신도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며 대비했다. 이로 인해 오손은 엽교미, 대록, 잠추의 셋으로 나뉘었고, 대부분은 엽교미가 지배했다.
한나라의 장건은 무제에게 흉노와 오손을 분리하여 한나라에 복속시킬 것을 제안했다. 무제는 장건을 중랑장으로 임명하여 오손에 파견했다. 장건이 오손에 도착하자, 엽교미는 흉노 선우에게 하듯 한나라 사신과 면회하고 천자의 하사품에 배례했지만, 장건은 한나라식 배례를 요구했다. 엽교미는 일어나 하사품에 공손히 배례했다. 장건은 오손이 흉노 혼야왕의 옛 영토로 이주하면 한나라 공주를 엽교미 왕의 부인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엽교미는 노령이었고, 한나라를 잘 몰랐으며, 오손은 분열되어 있었고, 대신들은 흉노를 두려워하여 엽교미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이후 오손 사신들은 한나라가 부유하다고 보고했고, 오손 사람들은 한나라를 존경하게 되었다. 오손 등 서역 제국은 한나라와 교류를 시작했다. 흉노는 오손을 공격하려 했고, 엽교미는 한나라와 형제가 되기를 희망하며 공주를 요청했다. 오손은 천 필의 말을 예물로 보냈고, 한나라는 강도공주 유세군을 시집보냈다. 엽교미는 공주를 우부인, 흉노에서 온 며느리를 좌부인으로 삼았다. 엽교미는 노령이라며 공주를 손자 잠추에게 장가들게 했다. 그 후 엽교미는 사망했다.
2. 1. 엽교미의 정치적, 외교적 활동
엽교미는 흉노 서쪽 변경의 작은 나라의 군주였던 난두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엽교미의 부친은 흉노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였으나, 《한서》에 따르면 월지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엽교미는 흉노에 망명했다가 성장한 후 흉노의 지원을 받아 월지를 공격하여 복수하였다고 한다. 엽교미는 들판에 버려졌으나 까마귀와 늑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고, 이를 신성하게 여긴 흉노 선우가 거두어 길렀다.[1] 엽교미는 성장하여 군대를 이끌고 공을 세워 아버지의 백성을 받아 서쪽 변경을 지키게 되었다. 엽교미는 주변을 공격하여 세력을 키웠고, 선우가 죽자 흉노에 복종하지 않고 반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했다.장건은 무제에게 엽교미와 오손의 동맹을 제안했고,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오손에 사신을 보냈다. 엽교미는 아들들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나라가 삼분되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장건은 오손에 동쪽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으나, 오손의 대신들은 흉노를 두려워하여 반대했고, 엽교미는 이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오손의 답례 사신이 한나라의 부강함을 보고 돌아오면서 오손은 점차 한나라를 중시하게 되었다.
오손이 한나라와 관계를 맺자 흉노는 오손을 공격하려 했고, 엽교미는 한나라에 공주와의 혼인을 요청하여 강도공주 유세군을 우부인으로 맞이했다. 이는 대략 기원전 110년에서 기원전 107년 사이로 추정된다. 흉노도 선우의 딸을 보냈고, 엽교미는 그녀를 좌부인으로 삼았다. 늙어 죽을 무렵, 엽교미는 유목 민족의 풍습에 따라 유세군을 손자 잠취에게 아내로 주려 했다. 유세군은 거부했으나 한나라의 요구로 오손의 풍습을 따랐고, 엽교미 사후 잠취가 왕위를 계승하고 유세군은 잠취의 부인이 되었다.
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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