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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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사충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창왕 때 사전을 폐지할 것을 상소하고, 공양왕 즉위 후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이색, 조민수, 이인임을 탄핵하는 등 강직한 면모를 보였다. 조선 개국 후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에 녹훈되고 영성군에 봉해졌으며, 지방관과 중앙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평가받지만, 정몽주 제거에 가담하고 정도전 등 신진 세력과 결탁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오사충
기본 정보
한글오사충
한자呉思忠
로마자 표기O Sa-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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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 시대 활동

1355년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창왕 때 좌사의대부로서 사전(私田)의 폐단을 상소했고, 공양왕 즉위 후 조박 등과 함께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이색, 조민수, 이인임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해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곧 복직하여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392년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려 할 때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된 후 풀려났다.

2.1. 관직 역임

1355년(고려 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 헌납(獻納), 집의(執義)를 역임하고, 창왕 때에는 좌사의대부로서 사전(私田)의 폐단을 상소하였다. 공양왕 즉위 후 사인(舍人) 조박(趙璞) 등과 함께 우왕과 창왕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이색, 조민수, 이인임우왕, 창왕을 옹립한 것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와 같은 과격한 상소로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92년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를 몰아내려 할 때 삭직되어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되자 풀려나와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조선 개국공신 3등으로 호조전서가 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교주강릉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로 있으면서 정도전, 남은 등과 가까운 수령·군인들이 직책을 소홀히 하거나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 등을 엄하게 조사, 처리하였다. 1395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 정당문학(政堂文學)·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04년(태종 4)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로 재직하다가 영성군(寧城君)에 봉군되었다.

2.2. 우왕, 창왕 폐위 상소

1355년(고려 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헌납(獻納)·집의(執義)를 역임하고, 창왕 때에는 좌사의대부로서 사전(私田)의 폐단을 상소하였다. 이해 공양왕이 즉위하자, 사인(舍人) 조박(趙璞) 등과 함께 상소하여 우왕과 창왕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이색, 조민수, 이인임우왕, 창왕을 옹립한 것을 탄핵하였다. 이와 같은 과격한 상소로 인하여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2.3. 복직과 활동

이후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92년 태조 1년에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를 몰아내려 할 때 삭직되어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되자 풀려나와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3. 조선 개국과 이후 활동

1355년(고려 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 헌납(獻納), 집의(執義)를 역임하고, 창왕 때에는 좌사의대부로서 사전(私田)의 폐단을 상소하였다. 같은 해 공양왕이 즉위하자, 사인(舍人) 조박(趙璞) 등과 함께 상소하여 우왕과 창왕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이색, 조민수, 이인임우왕, 창왕을 옹립한 것을 탄핵하였다. 이와 같은 과격한 상소로 인하여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92년(태조 1)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를 몰아내려 할 때 삭직되어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되자 풀려나와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3.1. 개국공신 책록

1392년 음력 7월 17일에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조선 개국공신 3등으로 호조전서가 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교주강릉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로 있으면서 정도전, 남은 등과 가까운 수령·군인들이 직책을 소홀히 하거나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 등을 엄하게 조사, 처리하였다. 1395년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 정당문학(政堂文學)·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04년 (태종 4)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로 재직하다가 다시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3.2. 지방관 활동

1394년 조선의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교주강릉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교주강릉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정도전, 남은 등과 가까운 수령·군인들이 직책을 소홀히 하거나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 등을 엄하게 조사, 처리하였다. 1395년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었고, 이듬해 1396년 정당문학(政堂文學)·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다.

3.3. 중앙 관직 복귀

1395년 상의중추원사가 되었고, 이듬해 정당문학·경기좌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04년(태종 4) 판사평부사로 재직 중 영성군에 봉군되었다.

4. 평가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조선 초의 혼란기에 관리들의 비리를 척결하고 기강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5.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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