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군 (켄터키주)
1. 개요
오언군은 1819년 켄터키주에서 63번째 군으로 설립되었으며,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에서 분리되어 형성되었다. 오언군은 티피카누 전투에서 사망한 에이브러햄 오언 대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오웬턴이 군청 소재지이다. 오언군은 1870년대 윌리스 러셀 부관이 재건 시대 동안 쿠 클럭스 클랜의 폭력을 진압하려 했으며, 1875년 살해되었다. 오언 군의 총 면적은 917 km2이며, 인구는 2010년 기준 10,84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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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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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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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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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켄터키주의 군 -
마셜군 (켄터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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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주의 군 -
크리스천군 (켄터키주)
크리스천군은 켄터키주에 위치하며 윌리엄 크리스천 대령의 이름에서 유래, 남북 전쟁의 요충지였고 캠프벨 육군 기지 확장과 인종차별 시위를 겪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홉킨스빌이다.
2. 역사
오언군 지역에는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분들이 다수 존재했으며, 초기 개척자들은 이곳을 지나는 여러 시내를 따라 정착했다.
1819년 2월 6일, 오언군은 켄터키주의 63번째 군으로 공식 설립되었다. 군의 영역은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마련되었으며, 초기 군청 소재지는 헤슬러(헤슬러빌)였다. 군의 이름은 티피카누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이자 켄터키 주의회 의원이었던 에이브러햄 오언 대령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으며, 그는 이 지역을 측량하고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설립 이후 군의 경계는 일부 조정되었고, 이로 인해 군청 소재지가 군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822년, 군청 소재지는 새로 조성된 마을인 오웬턴으로 이전되었다. 1844년 이후 켄터키강 개발로 프랑크푸르트와 루이빌을 잇는 여객선이 운행되며 몬터레이, 목슬리, 그라츠 등 군내 여러 마을에 정차했다.
1870년대 재건 시대에는 노예 해방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쿠 클럭스 클랜(KKK)의 폭력이 문제되었다. 당시 오언군 부관이었던 윌리스 러셀은 KKK의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875년 신원 미상의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2.1. 초기 역사
오언군 지역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분들이 다수 존재했다. 초기 정착 시기에는 많은 개척자들이 오언군을 지나는 여러 하천을 따라 토지 보조금을 받아 정착했다.
오언군은 1819년 2월 6일, 켄터키주 연방에 의해 63번째 군으로 승인되었다. 이 군은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만들어졌다. 처음 군청 소재지는 헤슬러(헤슬러빌)였다. 군의 이름은 티피카누 전투에서 전사한 인디언 전쟁 영웅이자 켄터키 주의회 의원이었던 에이브러햄 오언 대령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오언 대령은 오언군이 될 지역을 직접 측량하고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1820년 11월 16일, 켄터키 주의회는 1819년 법에 따라 프랭클린군에서 편입했던 지역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프랭클린군으로 반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의회는 1820년 12월 26일 법을 통해 갤러틴군에서 더 많은 토지를 떼어 오언군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행정 구역 조정으로 인해 기존 군청 소재지였던 헤슬러는 더 이상 군의 중심부에 위치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22년 1월 15일, 군 법원은 군청 소재지를 앤드루 파커, 제임스 헤스, 윌리엄 H. 포시가 소유한 토지로 이전하도록 명령했다. 이곳에 오웬턴이라는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었고, 1822년 2월 11일에는 새로운 군청 소재지에서 법원이 처음 열렸다.
1844년, 켄터키주가 켄터키강에 갑문과 댐 건설을 시작한 이후, 프랑크푸르트와 루이빌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여객선이 몬터레이, 목슬리, 그라츠 등의 오언군 내 마을에 정차하게 되었다. 한편, 뉴 리버티는 1800년 이전에 이미 설립된 오래된 정착지 중 하나였으며, 초기 교회 중 하나가 이곳에 세워졌다.
1870년대 재건 시대에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자행하는 지역 쿠 클럭스 클랜(KKK) 지부를 진압하기 위해 오언군 부관이었던 윌리스 러셀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러셀은 1875년, 신원을 알 수 없는 암살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2.2. 군의 설립
오언군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분들이 다수 존재했다. 초기 개척자들은 오언군을 지나는 여러 시내를 따라 토지 보조금을 받아 정착했다.
1819년 2월 6일, 켄터키주 연방은 오언군을 63번째 군으로 승인하며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이 군은 기존의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의 일부 지역을 나누어 만들어졌다. 처음 군청 소재지는 헤슬러(헤슬러빌)였다. 군의 이름은 티피카누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이자 켄터키 주의회 의원이었던 에이브러햄 오언 대령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오언 대령은 오언군이 될 지역을 직접 측량하고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설립 이후 군의 경계에 일부 조정이 있었다. 1820년 11월 16일, 주의회는 1819년 법에 따라 프랭클린군에서 편입했던 지역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프랭클린군으로 돌려보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820년 12월 26일에는 갤러틴군에서 더 많은 토지를 가져와 오언군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경계 조정으로 인해 헤슬러는 더 이상 군의 중심지가 아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22년 1월 15일, 군 법원은 군청 소재지를 앤드루 파커, 제임스 헤스, 윌리엄 H. 포시가 소유한 땅으로 옮기도록 결정했다. 이 새로운 지역에 오웬턴이라는 마을이 세워졌고, 1822년 2월 11일에는 새로운 군청 소재지에서 법원이 처음 열렸다.
1844년 이후, 켄터키주가 켄터키강에 락과 댐을 건설하면서 프랑크푸르트와 루이빌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여객선이 생겨났다. 이 배들은 몬터레이, 목슬리, 그라츠 등 오언군의 여러 마을에 정차했다. 한편, 뉴 리버티는 1800년 이전에 이미 설립된 오래된 마을로, 초기 교회 중 하나가 이곳에 있었다.
1870년대 재건 시대에는 노예제 폐지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문제되었다. 당시 오언군 부관이었던 윌리스 러셀은 지역 쿠 클럭스 클랜 지부의 폭력 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1875년 신원 미상의 암살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2.3. 경계 조정
오언군은 1819년 2월 6일 켄터키주에 의해 63번째 군으로 승인되었다. 이 지역은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형성되었다. 1820년 11월 16일, 주의회는 1819년 법에 따라 프랭클린군에서 편입했던 토지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프랭클린군으로 반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주의회는 1820년 12월 26일 법에 따라 갤러틴군으로부터 더 많은 토지를 편입하여 오언군에 포함시켰다.
2.4. 군청 소재지 이전
오언군은 1819년 2월 6일, 켄터키주 연방에 의해 63번째 군으로 승인되며 형성되었다. 초기에는 프랭클린군, 스콧군, 갤러틴군, 펜들턴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만들어졌으며, 헤슬러(헤슬러빌)가 최초의 군청 소재지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820년 11월 16일, 주의회는 법을 개정하여 1819년 프랭클린군에서 편입했던 지역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시 프랭클린군으로 반환했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26일, 갤러틴군으로부터 더 많은 토지를 할양받아 오언군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행정 구역 조정으로 인해 기존 군청 소재지였던 헤슬러는 더 이상 군의 지리적 중심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22년 1월 15일, 군 법원은 군청 소재지를 앤드루 파커, 제임스 헤스, 윌리엄 H. 포시가 소유한 토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위치에 오웬턴이라는 마을이 세워졌으며, 1822년 2월 11일부터 새로운 군청 소재지에서 법원 업무가 시작되었다.
2.5. 19세기 후반
1844년, 켄터키주가 켄터키강에 락과 댐 건설을 시작하면서 프랑크푸르트와 루이빌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여객선이 오언군 내 몬터레이, 목슬리, 그라츠 등의 마을에 정차하게 되었다.
1870년대 재건 시대에는 노예제 폐지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지역 쿠 클럭스 클랜(KKK) 지부의 활동이 나타났다. 당시 오언군의 부관이었던 윌리스 러셀은 이러한 KKK의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1875년 신원 미상의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2.6. 윌리스 러셀과 쿠 클럭스 클랜
1870년대, 미국 남북 전쟁 이후 재건 시대 동안 오언군에서는 부관 윌리스 러셀이 활동했다. 당시 쿠 클럭스 클랜(KKK) 지역 지부는 노예 해방으로 자유를 얻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러셀은 이러한 KKK의 폭력 행위를 진압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875년 안타깝게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3. 지리
(내용 없음)
3.1. 면적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오언군의 총 면적은 917km2(약 916.85km2)이다. 이 중 육지 면적은 912km2(약 911.67km2)이고 수역 면적은 5km2(약 5.18km2)으로, 총 면적의 0.57%가 수역에 해당한다.
4. 인구
오언군의 인구는 202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11,278명이다. 2023년 추정 인구는 11,313명으로 조사되었다. 상세한 인구 통계 및 분석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4.1. 인구 통계
| 인구조사 연도 | 인구 | %± |
|---|---|---|
| 1820 | 2,031 | — |
| 1830 | 5,786 | 184.9% |
| 1840 | 8,232 | 42.3% |
| 1850 | 10,444 | 26.9% |
| 1860 | 12,719 | 21.8% |
| 1870 | 14,309 | 12.5% |
| 1880 | 17,401 | 21.6% |
| 1890 | 17,676 | 1.6% |
| 1900 | 17,553 | −0.7% |
| 1910 | 14,248 | −18.8% |
| 1920 | 12,554 | −11.9% |
| 1930 | 10,710 | −14.7% |
| 1940 | 10,942 | 2.2% |
| 1950 | 9,755 | −10.8% |
| 1960 | 8,237 | −15.6% |
| 1970 | 7,470 | −9.3% |
| 1980 | 8,924 | 19.5% |
| 1990 | 9,035 | 1.2% |
| 2000 | 10,547 | 16.7% |
| 2010 | 10,841 | 2.8% |
| 2020 | 11,278 | 4.0% |
| 2023 (추정) | 11,313 | 0.3% |
2000년 인구 조사
200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오언군에는 인구 10,547명, 4,086가구, 2,995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12/km2 (30/sqmi)였다. 주택 수는 5,345채였으며 평균 밀도는 6/km2 (15/sqmi)였다. 이 도시의 인종 구성은 백인 97.03%, 아프리카계 미국인 1.13%, 아메리카 원주민 0.27%, 아시아인 0.23%, 태평양 제도 출신 0.02%, 기타 인종 0.46%, 혼혈 0.85%이다. 여기 인구의 1.00%는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이다.
이 군의 주민 중 25.50%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18세 이상 24세 이하가 8.40%, 25세 이상 44세 이하가 28.00%, 45세 이상 64세 이하가 24.10%, 65세 이상이 14.00%를 차지한다. 중위 연령은 38세이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100.50명이다. 18세 이상의 여성 100명당 남성은 97.80명이다.
이 군의 가구당 평균 소득은 33310USD이며, 가족당 평균 소득은 38844USD이다. 남성은 29329USD, 여성은 21426USD의 평균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 군의 1인당 소득은 15521USD이다. 인구의 15.50%와 가족의 12.10%가 빈곤선 이하이다. 전체 인구 중 18세 미만의 17.10%와 65세 이상의 19.9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2010년 인구 조사
201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오언군에는 10,841명의 인구, 4,296가구, 3,023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11.9/km2 (30.9/sqmi)였다. 주택 수는 5,634호였으며 평균 밀도는 6.2/km2 (16.05/sqmi)였다. 오언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이 96.6%,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0.8%, 아메리카 원주민이 0.2%, 아시아인이 0.2%, 기타 인종이 1.2%, 둘 이상의 인종이 1.0%였다. 전체 인구의 2.5%는 모든 인종의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였다.
4,296가구 중 28.8%가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55.4%는 함께 사는 부부였으며, 9.2%는 남편 없이 여성 가구주였고, 29.6%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25.3%는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0.50%는 65세 이상인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구당 평균 규모는 2.52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규모는 3.00명이었다.
연령 분포는 18세 미만이 21.9%, 20세에서 24세가 5.0%, 25세에서 44세가 29.4%, 45세에서 64세가 29.0%, 65세 이상이 14.5%였다. 중위 연령은 40.1세였다. 남성의 인구 분포는 49.7%, 여성은 50.3%였다.
오언군 가구의 중위 소득은 41719USD였고 가족의 중위 소득은 59242USD였다. 남성의 중위 소득은 41563USD였고 여성은 31016USD였다. 오언군의 1인당 소득은 22633USD였다. 약 12.8%의 가족과 15.9%의 인구가 빈곤선 이하에 있었으며, 18세 미만의 인구의 22.4%와 65세 이상의 인구의 13.90%가 포함되었다.
4.2. 인종 구성 (2010년 기준)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오언군에는 10,841명의 인구, 4,296가구, 3,023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11.9/km2였다. 주택 수는 5,634호였으며 평균 밀도는 6.2/km2였다. 오언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이 96.6%,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0.8%, 미국 원주민이 0.2%, 아시아인이 0.2%, 기타 인종이 1.2%, 둘 이상의 인종이 1.0%였다. 전체 인구의 2.5%는 모든 인종의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였다.
4.3. 가구 및 소득 (2010년 기준)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오언군에는 10,841명의 인구, 4,296가구, 3,023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30.9/km2였다. 주택 수는 5,634호였으며 평균 밀도는 16.05/km2였다. 오언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이 96.6%,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0.8%, 아메리카 원주민이 0.2%, 아시아인이 0.2%, 기타 인종이 1.2%, 둘 이상의 인종이 1.0%였다. 전체 인구의 2.5%는 모든 인종의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였다.
4,296가구 중 28.8%가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55.4%는 함께 사는 부부였으며, 9.2%는 남편 없이 여성 가구주였고, 29.6%는 비가족이었다. 전체 가구의 25.3%는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0.50%는 65세 이상인 혼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구당 평균 규모는 2.52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규모는 3.00명이었다.
연령 분포는 18세 미만이 21.9%, 20세에서 24세가 5.0%, 25세에서 44세가 29.4%, 45세에서 64세가 29.0%, 65세 이상이 14.5%였다. 중위 연령은 40.1세였다. 남성의 인구 분포는 49.7%, 여성은 50.3%였다.
오언군 가구의 중위 소득은 41719USD였고 가족의 중위 소득은 59242USD였다. 남성의 중위 소득은 41563USD였고 여성은 31016USD였다. 오언군의 1인당 소득은 22633USD였다. 약 12.8%의 가족과 15.9%의 인구가 빈곤선 이하에 있었으며, 18세 미만의 인구의 22.4%와 65세 이상의 인구의 13.90%가 포함되었다.
5. 지역 사회
오언군에는 여러 도시와 비법인 지역사회가 있다.
5.1. 도시
* 글렌코
* 그라츠
* 몬터레이
* 오웬턴 (군청 소재지)
5.2. 비법인 지역사회
* 헤슬러
* 롱 리지
* 러스비스 밀
* 뉴 콜럼버스
* 뉴 리버티
* 페리 파크
* 플레전트 홈
* 스쿼이어스빌
* 위틀리
6. 도서관
오언군 공공 도서관은 1946년 오언군 여성 클럽에 의해 오웬턴 시내에 설립되었다. 이 도서관은 초기에 엘리자베스 홀브룩 토마스의 집 앞 객실에 자리 잡았으며, 1973년에 같은 모퉁이에 현재의 도서관 건물이 지어졌다.
도서관은 25,000개 이상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족보 관련 자료도 포함된다. 또한 인쇄, 팩스 전송, 공증 서비스 및 공공 회의실 이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이 도서관 건물은 오언군이 오웬턴 시 외곽에 새로운 도서관을 건설함에 따라 노인 센터로 용도가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