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라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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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 나가사키에 위치한 가톨릭 교회로, 1864년에 완공되었다. 프랑스와 일본 간의 우호 통상 조약에 따라 프랑스인 공동체를 위해 건설되었으며, 1597년 순교한 일본 26성인을 기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1865년에는 숨겨진 기독교 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신도 발견'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동방의 기적'으로 불리며 가톨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45년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도 붕괴를 면했다. 2018년에는 '일본의 가톨릭 박해' 관련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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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라 천주당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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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바실리카 일본 26위 성인 순교자 성당 |
다른 이름 | 오우라 천주당 |
국가 | 일본 |
위치 | 나가사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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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 | 일본 26 성인 순교자 |
건축 양식 | 고딕 리바이벌 건축 |
완공일 | 1864년 |
종교 | 가톨릭 교회 |
교구 | 라틴 교회 |
관할 | 나가사키 대교구 |
주보성인 | 성 요한 고토 |
소속 교구 |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 |
관구 | 가톨릭 나가사키 교회 관구 |
주교 | 페트로 나카무라 미치아키 |
수석 사제 | 미카엘 오오미즈 후미타카 |
역사 | |
기공 | 1862년 |
완공 | 1864년 |
개관 | 1865년 2월 19일 |
재건축 | 1875년-1879년 |
지정 | |
문화재 지정 | 국보 |
지정일 | 1933년 1월 23일: 구 국보 (현행법의 중요문화재에 해당) 지정 1953년 3월 31일: 국보 (문화재보호법) 지정 |
세계유산 등재 여부 | 세계유산 |
일본 국보 지정 여부 | 일본의 국보 |
일본 사적 지정 여부 | 일본의 사적 |
추가 정보 | |
특징 | 세계유산 국보 국가 지정 사적 |
설립자 | 베르나르 푸티장 |
2. 역사
1862년(문큐 2년)
- 12월[17] -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이자 일본 교구장인 질라르 신부의 명령에 따라, 요코하마에 있던 프랑스인 사제 퓨레가 나가사키에 부임. 사제관과 교회당 건축 준비에 착수.
- 니시사카의 언덕[18] - 1597년 2월 5일(게이쵸 원년 12월 19일) 순교한 26명(일본 26성인)이 이 해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됨.
- 1863년(문큐 3년) 8월 - 쁘띠장 신부(후에 주교)가 나가사키에 부임. 퓨레를 보조하여 천주당 건설에 전력.
- 1864년(겐지(元治) 원년) 12월 29일, 오우라 천주당 준공.
- 1865년(겐지(元治) 2년)
- * 2월 19일(1월 24일) - 헌당식 거행. '26성인 순교자당'으로 명명. 오우라 천주당은 일불수호통상조약에 기반하여 프랑스인의 예배당으로 건설되었고, 교구장 질라르가 선교사 쁘띠장, 로카뉴를 거느리고 헌당식을 거행함.[19] 헌당식에는 거류 외국인을 포함하여 나가사키 항에 정박 중인 프랑스, 러시아, 영국, 네덜란드의 함장이 각각 가톨릭 신자 수병 수명을 거느리고 참례함.[20] 건축 설계는 퓨레, 쁘띠장 2명에 의한 것. 건축 시공은 아마쿠사 제도 고료섬 출신의 코야마 히데노신(秀)(小山秀之進)이 목수 두목으로 시공함.[21] 건축 양식은 3개의 탑을 가진 고딕풍 구조이지만, 정면 중앙의 벽면은 바로크풍이며, 외벽은 나마코가베라는 특수한 디자인이었다.
- * 3월 17일(2월 12일) - 우라카미의 잠복 기리시탄이 오우라 천주당을 방문하여 쁘띠장 신부에게 은밀히 신자임을 밝힘('''신도 발견''').
- 1868년 7월 26일(게이오(慶応) 4년 6월 7일) - 프랑스인 신부 드 로가 펠루즈호로 당도하여 오우라 천주당에 들어옴. 드 로 신부는 오우라 천주당에서 「교회력」, 「성교일과」를 석판 인쇄함(이는 일본 최초의 석판 인쇄임).
- 1875년(메이지 8년) - 1879년(메이지 12년) - 천주당의 대규모 증개축 실시.
- * 외벽을 벽돌조로 바꾸어 완전히 고딕풍 건물이 되는 등, 창건 당시의 외관에서 크게 그 모습을 바꿈.[22][23] 목조였던 창건 당시와 달리, 1879년(메이지 12년) 5월 22일에 헌당된 신교회당은 큐슈 최초의 벽돌조 구조가 됨.[24]
- 1891년(메이지 24년) - 가톨릭 나가사키 교구(현・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
- 1933년(쇼와 8년) 1월 23일 - 당시의 국보보존법에 기반하여 국보(구 국보: 현행법의 중요문화재에 상당)로 지정.[25]
- 1945년(쇼와 20년) 8월 9일 - 나가사키시에 대한 원폭 투하에 의해 파손되었으나, 원폭 투하 지점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붕괴・소실은 면함.
- 1952년(쇼와 27년) - 수리가 완료됨.
- 1953년(쇼와 28년) 3월 31일[26] -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하여 국보로 지정됨(양풍 건축으로서는 최초의 국보 지정).
- 1962년(쇼와 37년)
- * 1월 1일 -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우라카미 교회로 변경됨.
- * 6월 8일 - 일본 26성인 시성 기념 100주년제 미사가 거행됨.
- * 6월 10일 - 니시사카 공원에서 기념식전을 거행. 국내외에서 가톨릭 신자 약 1만 명이 참례.
- 1965년(쇼와 40년)
- * 2월 21일 - 오우라 천주당 창건 100주년 기념식전을 거행.
- * 3월 16일 - 그리스도 신자 발견 100주년 기념제 개최. 신자 발견 기념비 「성모상」의 제막식을 거행.
- * 3월 17일 - 로마 교황 특사 마렐라 추기경이 나가사키를 방문하여 오우라 천주당에서 장엄 미사가 거행됨.
- 1975년(쇼와 50년) 11월 3일 - 신축 가톨릭 오우라 교회 완공.
- * 오우라 천주당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증가함에 따라 미사 도중에 관광객이 구경하는 등 천주당 내에서의 예배 진행에 지장을 초래하게 됨. 그래서 가톨릭 신자 및 관광객 모두를 배려하여 오우라 천주당에 인접한 땅에 새롭게 오우라 교회를 건설. 이로써 관광객이 신자에게 거리낌 없이 오우라 천주당을 구경하기 쉬워짐.
- 2007년(헤이세이 19년) - 건립 당시의 설계도(평면도와 측면도)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고문서국 보관 자료에서 발견됨.[22]
- * 발견자 - 하야시 카즈마(나가사키 종합과학대학 교수)
- * 설계도에서는 지붕은 기와지붕, 창문은 양식이며, 회당이나 복도 등의 열주 위치는 현재와 같았음.[22]
- 2016년(헤이세이 28년) - 교황청 전례성성 장관 로베르 사라 추기경의 4월 26일자 공식 문서에 의해 일본 최초의 소바실리카가 됨.
- 2018년(헤이세이 30년) - 바레인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목록 등재 결정됨.
갓 세워진 천주당은 ‘프랑스 저’라 불리며, 아름다움과 신기함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많이 찾아왔다. 쁘띠장 신부는 “어딘가에 가톨릭 신자들이 몰래 신앙을 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1865년 3월 17일(원치 2년 2월 12일), 우라카미(나가사키시) 주민 10여 명이 천주당을 찾았다. 그중 40~50세 정도의 여성 한 명이 기도하고 있는 쁘띠장에게 다가와 “저희는 신부님과 같은 마음입니다”(종지가 같습니다)라고 속삭이며 자신들이 가톨릭 신자임을 고백했다(이 여성의 이름은 이자벨리나 스기모토 유리[27]라고 전해진다). 그들은 성모상이 있는 것과 신부가 독신인 것을 보고 가톨릭 교회임을 확신하고, 박해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대대로 지켜 온 이른바 숨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밝히며 쁘띠장 신부를 기쁘게 했다.[28]
이후 쁘띠장 신부는 은밀히 우라카미와 고토 등을 방문하며 전교를 겸해 숨어있는 신자들을 찾는 데 힘썼다. 우라카미뿐 아니라 나가사키 주변 각지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신자 발견’ 소식은 당시 교황 비오 9세에게 전해졌다. 교황은 감격하여 이를 “동양의 기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29][30] 이 날은 가톨릭교회에서 임의의 기념일(축일)이 되었고, 신자 발견 150주년을 맞이한 2015년 3월 17일, 일본 교회 특유의 “일본 신자 발견의 성모” 축일이 되었다.[31]
2. 1. 건립 배경
1862년 12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 루이 푸레 신부와 베르나르 쁘띠장 신부가 요코하마에서 나가사키로 파견되었다.[2] 이들의 목적은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순교한 일본 26성인(유럽 사제 8명, 멕시코 사제 1명, 일본 신자 17명)을 기리는 교회를 건립하는 것이었다.[2] 1863년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들은 1864년 교회를 완공하였다.[2]도쿠가와 막부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금지했기에, 이 교회는 프랑스와 일본 간의 우호통상조약에 따라 일본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공동체를 위한 예배당이었다.[3] 봉헌식에는 외국 거주민들과 나가사키 항에 정박한 프랑스, 러시아, 영국, 네덜란드 함선의 선장들과 여러 명의 가톨릭 선원들이 참석했다.[3]
1865년 3월 17일, 쁘띠장 신부는 성당 앞에서 신자임을 밝힌 우라카미 마을 출신의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만나게 되었고,[4] 이 소식은 교황 비오 9세에게 전해져 "동방의 기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4]
1875년부터 1891년까지 대규모 확장 및 개축 공사가 진행되어 외벽이 벽돌로 재건되고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다.[22][23] 1891년 나가사키 가톨릭 교구(현재의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24]
1933년 1월 23일, 오우라 천주당은 당시의 국보보존법에 기반하여 국보(구 국보: 현행법의 중요문화재에 상당)로 지정되었다.[25]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폭심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붕괴되거나 불타는 것을 면했다.[6] 1953년 3월 31일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하여 국보로 재지정되었으며,[26] 이는 일본 최초로 국보로 지정된 서양식 건축물이었다.[5]
2018년 6월 30일,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의 가톨릭 박해와 관련된 다른 11개의 장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9][10]
2. 2. 초기 건축
1862년 12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 루이 푸레와 베르나르 쁘띠장 신부가 일본 26성인 순교자를 기리는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나가사키로 파견되었다.[2] 1863년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들은 1864년 교회를 완공했다.[2] 글로버 정원의 목수 고야마 히데노신이 건축한 이 교회는 원래 세 개의 통로와 세 개의 팔각형 탑을 가진 작은 목조 교회였다.[2]1865년 3월 17일, 쁘띠장 신부는 성당 앞에서 신자임을 밝힌 우라카미 마을의 가쿠레 기리시탄들을 만났다.[4] 이는 '신도 발견'으로 알려졌으며, 교황 비오 9세는 이를 "동방의 기적"이라고 선언했다.
현재의 건물은 1878년경에 지어진 훨씬 더 큰 고딕 양식의 바실리카로, 흰색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지어졌으며, 다섯 개의 통로, 둥근 천장, 그리고 하나의 팔각형 탑을 가지고 있다.[3] 설계는 오사카에 있는 초기 교회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벨기에식 설계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3]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프랑스에서 수입되었다.[3]
1875년부터 1879년까지 대규모 확장 및 개축 공사가 진행되어 외벽이 벽돌로 재건되고 고딕 양식이 부여되었다.[22][23] 1879년 5월 22일에 헌당된 새로운 교회는 규슈에서 처음으로 벽돌로 지어진 교회였다.[24]
2. 3. 신도 발견
1865년 3월 17일, 성당 완공 직후 쁘띠장 신부는 성당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4] 이들은 신부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쁘띠장 신부가 제단에 무릎을 꿇자 한 노파가 다가와 "우리 모두의 마음(신앙)은 당신과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상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했다.[4] 쁘띠장 신부는 이들이 우라카미(나가사키시) 마을 출신으로, 1630년대 시마바라의 난 이후 숨어 지낸 초기 일본 신자들의 후손인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알게 되었다.[4] 이 여성의 이름은 이자벨리나 스기모토 유리라고 전해진다.[27]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몰래 신앙을 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던 쁘띠장은, 이들이 성모상이 있는 것과 신부가 독신인 것을 보고 가톨릭 교회임을 확신하고, 박해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대대로 지켜 온 이른바 숨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밝히며 기뻐했다.[28]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사키 지역에서 수만 명의 지하 신자들이 숨어 지내던 곳에서 나왔다.[4] 쁘띠장 신부는 은밀히 우라카미와 고토 등을 방문하며 전교를 겸해 숨어있는 신자들을 찾는 데 힘썼고, 우라카미뿐 아니라 나가사키 주변 각지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29] 이 소식은 교황 비오 9세에게 전해졌고, 그는 이를 "동양의 기적"이라고 선언했다.[29][30] 이 날은 가톨릭교회에서 임의의 기념일(축일)이 되었고, 신자 발견 150주년을 맞이한 2015년 3월 17일, 일본 교회 특유의 “일본 신자 발견의 성모” 축일이 되었다.[31]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흰색 대리석 성모 마리아상을 들여와 교회에 세웠다. 교회 아래 마당에 있는 청동 부조는 이 기념비적인 발견 장면을 보여준다.[4]
2. 4. 확장 및 재건축
1862년 12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 루이 푸레 신부와 베르나르 쁘띠장 신부가 일본 26성인을 기리는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 나가사키에 파견되었다.[2] 1864년 완공된 교회는 원래 세 개의 통로와 세 개의 팔각형 탑을 가진 작은 목조 교회였으며, 글로버 정원의 목수 고야마 히데노신이 건축하였다.[2]1875년부터 1879년까지 대규모 확장 및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때 외벽이 벽돌로 재건되어 건물에 완전히 고딕 양식이 부여되었고, 외관이 원래 모습과 크게 달라졌다.[22][23] 1879년 5월 22일 봉헌된 새로운 교회는 규슈에서 처음으로 벽돌로 지어진 교회였다.[24] 현재의 건물은 1878년경에 지어진 훨씬 더 큰 고딕 양식의 바실리카로, 흰색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지어졌으며, 다섯 개의 통로, 둥근 천장, 그리고 하나의 팔각형 탑을 가지고 있다. 설계는 아마도 오사카에 있는 초기 교회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벨기에식 설계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3]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프랑스에서 수입되었다.
1891년, 오우라 천주당은 나가사키 가톨릭 교구(현재의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 1933년에는 국보보존법에 기반하여 국보(구 국보: 현행법의 중요문화재에 상당)로 지정되었으며,[25] 1953년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하여 국보로 재지정되었다.[26] 이는 일본 최초로 국보로 지정된 서양식 건축물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폭심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붕괴되거나 불타는 것을 면했다.[6]
2. 5. 근현대
오우라 천주당은 1862년 12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 루이 푸레 신부와 베르나르 쁘띠장 신부가 일본 26성인을 기리기 위해 나가사키에 파견되면서 건립이 시작되었다.[2] 1864년 완공 당시에는 세 개의 통로와 세 개의 팔각형 탑을 가진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2] 1875년부터 1879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확장 및 개축 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흰색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지어진, 다섯 개의 통로, 둥근 천장, 그리고 하나의 팔각형 탑을 가진 고딕 양식의 바실리카가 되었다.[3] 설계는 오사카의 초기 교회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벨기에식 설계를 따른 것으로 보이며,[3]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프랑스에서 수입되었다.1865년 3월 17일, 쁘띠장 신부는 성당 앞에서 신자임을 밝힌 우라카미 마을의 가쿠레 기리시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동방의 기적"이라 불리며 큰 화제가 되었다.[4]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흰색 대리석 성모 마리아상을 들여와 교회에 세웠고, 교회 아래 마당에는 이 장면을 묘사한 청동 부조가 설치되었다.
1891년 나가사키 가톨릭 교구(현재의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대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1933년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해를 입었으나,[6] 붕괴되거나 불타지는 않았다. 1953년 3월 31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로 재지정되었으며,[5] 이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 국보 지정이었다.
2016년 4월 26일 교황청으로부터 소성당의 지위를 부여받았으며,[8] 2018년 6월 30일에는 일본의 가톨릭 박해와 관련된 다른 11개의 장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9][10]
3. 건축 양식
4. 교통
나가사키 전기궤도5호선 「오우라 천주당」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 5분 거리에 있다.[32] 나가사키 버스「마츠가에다 국제터미널」 버스 정류장(2022년 10월 1일 「글래버원 입구」에서 정류장 명칭 변경)에서 하차한 후 도보 5분 거리에 있다.[32] 언덕길을 오른 후, 매표소에서 다시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은 없다.
5. 주변 시설
- 구 나가사키 신학교
- 구 나가사키 대주교관
- 남산손
- 글러버 정원
참조
[1]
웹사이트
Basilica of the Twenty-Six Holy Martyrs of Japan (Oura Church), 長崎 (Nagasaki), 長崎県 (Nagasaki),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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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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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therhil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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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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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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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unka.ni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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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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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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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gets its first minor Basi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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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SCO adds Japanese sites linked to persecution of Christians to World Heritage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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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11]
문서
「天主教」は、かつて使われたカトリック教会の漢字表記で、[[中華人民共和国]]では現在もそう表記される。
[12]
뉴스
長崎、天草の「潜伏キリシタン」が世界文化遺産に決定 22件目
https://www.sankei.c[...]
2018-06-3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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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世界遺産に
https://web.archive.[...]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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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浦天主堂、国内初のバジリカに
http://www.cathoshin[...]
2016-06-10
[15]
웹사이트
拝観のご案内
https://oura-church.[...]
2024-09-06
[16]
문서
とは言え現在も特定日などに限って礼拝を行うこともあるため、拝観の際には脱帽・静粛・(建物内)撮影禁止・禁煙となっており、その旨信徒発見記念の聖母像の下の看板に記載されている
[17]
문서
[[1863年]][[3月11日]]([[文久]]3年[[1月22日 (旧暦)|1月22日]])とも。
[18]
문서
現在、[[日本二十六聖人記念館]]が建てられている場所。
[19]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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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出版社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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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制百年([[1989年]]([[平成]]元年)[[4月1日]]、[[長崎市役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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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ir.nii.a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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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浦天主堂の創建時設計図を仏で発見
http://www.nagasaki-[...]
2007-09-06
[24]
서적
長崎の天主堂と九州・山口の西洋館
理工図書
1982
[25]
문서
[[1933年]](昭和8年)[[1月23日]]文部省告示第14号。
[26]
문서
[[1953年]](昭和28年)[[6月16日]]文化財保護委員会告示第65号。国宝の指定は[[3月31日]]付け。
[27]
웹사이트
杉本ゆり(すぎもと・ゆり)とは? 意味や使い方
https://kotobank.jp/[...]
DIGITALIO
2024-11-24
[28]
서적
浦上切支丹史
全国書房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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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 Pope Pius IX and Japan. The History of an Oriental Miracle
https://www.catholic[...]
2024-11-24
[30]
웹사이트
Laudate {{!}} アレオパゴスの祈り
https://www.pauline.[...]
2024-11-24
[31]
웹사이트
3月17日 日本の信徒発見の聖母記念ミサ {{!}} カトリック長崎大司教区
https://www.nagasaki[...]
2016-03-19
[32]
웹사이트
令和4年10月ダイヤ改正について
https://www.nagasaki[...]
20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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