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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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올리벤사는 스페인 바다호스 주에 위치한 도시로, 과디아나 강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1297년부터 1801년까지 포르투갈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까지 포르투갈은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801년 바다호스 조약으로 스페인에 할양되었으나, 포르투갈은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인구는 약 11,871명이며, 과거 포르투갈어 사용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스페인어가 주로 사용된다. 주요 명소로는 성 마리아 성당,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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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벤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올리벤사 |
다른 이름 | 올리벤사 (포르투갈어: Olivença) |
위치 | 스페인-포르투갈 국경 |
국가 | 스페인 |
자치 공동체 | 에스트레마두라 |
주 | 바다호스 주 |
시장 | 마누엘 호세 곤살레스 안드라데 (PSOE) |
면적 | 430.1 km² |
해발 고도 | 327 m |
인구 (2023년) | 11,512명 |
우편 번호 | 06100 |
시간대 | CET |
UTC 오프셋 | +1 |
여름 시간대 | CEST |
UTC 오프셋 (여름) | +2 |
웹사이트 | 올리벤사 시청 웹사이트 |
행정 구역 | |
자치 공동체 | 에스트레마두라 지방 |
도 | 바다호스 주 |
역사 | |
인구 통계 | |
주민 명칭 | 올리벤티노/-아 |
기타 |
2. 지리
올리벤사는 과디아나 강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바다호스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진 곳에 있다. 야노스 데 올리벤사 (Llanos de Olivenza) 군과 올리벤사 사법 관할구 (Partido judicial de Olivenza)의 중심지이다. 스페인의 바다호스, 발베르데 데 레가네스, 발카로타, 이게라 데 발가스, 알콘체르, 탈리가, 포르투갈의 아란다르, 엘바스와 같은 자치단체와 인접해 있다.
2. 1. 지역
올리벤사는 과디아나 강의 왼쪽(동쪽) 강둑에 위치하며, 포르투갈의 엘바스와 스페인의 바다호스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진 같은 거리에 있다.[1] 이 지역은 삼각형 모양이며, 짧은 변은 과디아나 강에 접하고, 반대쪽 꼭짓점은 남동쪽으로 돌출되어 스페인 영토로 둘러싸여 있다. 올리벤사 시 외에도, 올리벤사 지방 자치구에는 다른 작은 마을들이 포함되어 있다.올리벤사 지역의 유역은 여름에 정기적으로 말라붙는 불규칙적인 하천들로 이루어져 있다.[2] 1956년에 개장하여 16.3hm3의 용량을 가진 피에드라 아구다 저수지에 물이 댐으로 막혀 있는 올리벤사 강은 과디아나 강으로 흘러들어간다.[2] 강은 도시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간다. 아로요 데 라 차르카와 아로요 데 라 이구에라의 작은 개울 사이에 위치한 도시 근처에는 라마팔라스의 인공 연못인 ''차르카''가 있다.[2]
올리벤사는 과디아나 강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바다호스 남쪽 24km 지점에 있다. 야노스 데 올리벤사 (Llanos de Olivenza) 군에 속하며, 그 중심 자치체이기도 하다. 또한 올리벤사 사법 관할구 (Partido judicial de Olivenza)의 중심 자치체이기도 하다. 바다호스, 발베르데 데 레가네스, 발카로타, 이게라 데 발가스, 알콘체르, 탈리가(이상 스페인), 아란다르, 엘바스(이상 포르투갈) 자치체와 인접해 있다.
올리벤사 지방 자치구에 속한 작은 마을들은 다음과 같다.
- San Benito de la Contienda|산 베니토 데 라 콘티엔다es
- San Francisco de Olivenza|산 프란시스코 데 올리벤사es
- San Jorge de Alor|산 호르헤 데 아롤es
- San Rafael de Olivenza|산 라파엘 데 올리벤사es
- Villarreal|비야레알es
- Santo Domingo|산토 도밍고es
2. 2. 수계
올리벤사는 과디아나 강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여름에는 말라붙는 불규칙한 하천들이 이 지역을 흐른다.[1] 1956년에 개장하여 16.3hm3 용량을 가진 피에드라 아구다 저수지에 물이 댐으로 막혀 있는 올리벤사 강은 과디아나 강으로 흘러들어간다.[1] 이 강은 도시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간다. 아로요 데 라 차르카와 아로요 데 라 이구에라의 작은 개울 사이에 위치한 도시 근처에는 라마팔라스의 인공 연못인 ''차르카''가 있다.[1]3. 역사
올리벤사 지역은 1230년 레온의 알폰소 9세가 바다호스와 그 주변 지역을 정복하면서 역사에 등장한다.[6] 템플 기사단은 알포스 바다호스에서 분리된 이 지역을 1258년에 점령했고,[7] 예루살렘 기사단 지휘관이었던 헤레스데로스카바예로스 집행관에 통합된 올리벤사에 엔콤미엔다(encomienda)를 설립했다.[8] 템플 기사단은 성과 교회를 건설하여 마을의 중심지로 삼았다.
1278년, 알폰소 10세는 바다호스 의회와 교구의 올리벤사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면서 템플 기사단의 지배는 종식되었다. 카스티야 왕국에서 산초 4세 사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포르투갈의 디니스 국왕은 1297년 페르디난드 4세에게 알카니세스 조약을 강요하여 올리벤사를 포르투갈 왕국에 할양받았다.[10] 1298년, 디니스 왕은 올리벤사에 엘바스와 유사한 포랄(헌장)을 부여했다.
1510년,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는 도시 헌장을 갱신하고 요새와 과디아나 강 위의 올리벤사 다리(Ponte de Olivenza, 훗날 성모 마리아의 도움 다리 또는 아주다 다리로 불림) 건설을 명했다. 엘바스로 가는 길에 건설된 산타 마리아 마달레나 교회는 수년간 세우타 주교의 거주지가 되었다.
1640년 전쟁 (분리, 즉위, 복고 또는 포르투갈 독립 전쟁) 이후,[11] 올리벤사는 1657년 산 헤르만 공작 프란체스코 투타빌라가 이끄는 스페인 왕국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12] 1668년 리스본 조약으로 올리벤사는 포르투갈에 반환되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아주다 다리는 1709년 라 구디냐 전투에서 패배한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의 후퇴에 사용되었다. 바이 백작이 이끄는 스페인 부르봉 군대는 포르투갈의 재사용을 막기 위해 다리를 파괴했다.[13]
1801년, 포르투갈이 영국에 대항하는 프랑스-스페인 동맹을 거부하자 오렌지 전쟁이 발발했다.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했고, 올리벤사는 고도이가 이끄는 스페인군에 항복했다.[14][15] 1801년 바다호스 조약으로 과디아나 강 왼쪽 도시들을 제외한 점령 도시들이 포르투갈에 반환되었고,[14] 올리벤사 지역은 스페인에 '영구적으로' 할양되었다. 조약은 조항 위반 시 무효화된다고 규정했다.[16]
1801년 이후의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사건 |
---|---|
1801년 | |
1805년 | |
1807년 | |
1808년 | 포르투갈 왕세자 주앙, 전쟁으로 바다호스 조약 무효화 주장.[16] |
1809년 | 7월: 포르투갈, 세비야 최고 중앙 준타에 올리벤사 반환 공식 명령 제출. |
1810년 | |
1811년 | |
1813년 | 5월 19일: 스페인 당국, 포르투갈어 사립학교 폐쇄. |
1814년 | 5월 30일: 프랑스-포르투갈 파리 조약, 1801년 바다호스 조약과 마드리드 조약 무효 선언. 스페인은 불참. |
1815년 | |
1817년 | |
1818년~1819년 | 스페인-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중재로 파리 회의에서 우루과이 반환 협상. 스페인, 합의 조건 수락했지만, 내부 문제와 1820년 자유주의 혁명으로 조치 미이행. |
1820년 | 11월 7일: 스페인 당국, 포르투갈어 사교육 금지. |
1821년 | 포르투갈, 우루과이 병합. 스페인, 올리벤사 협상 철수. |
1840년 | 교회 내부 포함, 올리벤사 지역 포르투갈어 사용 금지. |
1850년 | 타리가 마을 분리, 자체 시정촌 형성. |
1858년 | 스페인의 이사벨 2세, 올리벤사에 도시(Ciudad) 칭호 부여. |
1864년 | 9월 29일: 포르투갈-스페인 리스본 조약 체결. 극북 미뉴 강 어귀부터 올리벤사 북쪽 카야 강과 과디아나 강 합류점까지 국경 표시. 올리벤사 문제로 국경 획정 중단. |
1918년/1919년 |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포르투갈 정부, 파리 평화 회의에 올리벤사 문제 제기 가능성 연구. 스페인 불참으로 국제사회 개입 불가. |
1926년 | 6월 29일: 포르투갈-스페인, 올리벤사 남쪽 과디아나 강과 리베이라 드 쿤코스 합류점부터 극남 과디아나 강 어귀까지 국경 표시 협정(한계 협약) 체결. 카야 강 합류점부터 쿤코스 합류점까지 국경 미표시, 과디아나 강 사실상 국경 유지. |
1936년~1939년 | 스페인 내전 기간, 포르투갈 로드리고 페레이라 보텔호 대령, 올리벤사 점령 자원. 엘바스 주둔 포르투갈 제8연대, 점령 준비했지만 명령 미하달. |
1938년 | 8월 15일: 올리벤사 대의 증진 단체 친올리벤사 협회(Sociedade Pró-Olivença) 설립. |
1954년 | 올리벤사 어린이, 포르투갈 해변 휴양지 "Colónia Balnear Infantil d'O Século" 무료 휴가 중단. |
1967년 | 1월 24일: 포르투갈 정부, 폰테 다 아주다 다리 국가 유산 기념물 선포. |
1968년 | 국경 강 수자원 개발 포르투갈-스페인 협약 체결. 과디아나 강 미표시 구간 포함, 양국 수력 개발 분배. 미표시 구간 수력 개발 포르투갈 할당, "국제적인" 용어 생략.[17] |
1977년 | 스페인-포르투갈 스페인과 포르투갈 간의 우정 및 협력 조약 체결, 양국 영토 완전성, 불가침성 비준.[18] 올리벤사 스페인 통제 사실상 인정. |
1981년 | 포르투갈 전 총리 아제베두 제독, 올리벤사 관련 책 출판, 마을 방문. 스페인, 시민경찰(Guardia Civil) 파견. |
1990년 | |
1994년 | 11월: 1990년 협정, 포르투갈 정부 국경 인정 비판, 이베리아 정상 회의에서 협정 수정. 포르투갈, 새 다리 건설, পুরাতন 다리 보존 전담, 올리벤사 영유권 주장 유지. |
1995년 | 3월: 포르투갈 정부, 스페인 정부에 알케바 댐 건설 영향 연구 전달. 올리벤사 정보 미포함. 이후 "스페인 영토와 올리벤사" 제목, 올리벤사 데이터 포함 추가 정보 전달. |
1999년 | 10월: 스페인 경찰, 과디아나 강 왼쪽(스페인 쪽) 포르투갈 폰테 다 아주다 다리 보존 공사 중단. 포르투갈, 1968년 협약 근거, 스페인 허가 없이 진행. 포르투갈 법원 명령, 스페인 공사 인수 저지. |
2000년 | 11월 11일: 포르투갈-스페인 건설 새 올리벤사 다리 개통. |
2003년 | 포르투갈 정부 항의에도 불구, 스페인 পুরাতন 다리 공사 재개. |
2004년 | |
2007년 | 올리벤사 출신 기예르모 페르난데스 바라, 에스트레마두라 대통령 당선. |
2010년 | 고대 포르투갈식 거리 이름, 올리벤사 역사 시내 중심부 복귀.[21] |
2014년 | 12월: 올리벤사 주민 80명, 포르투갈 국적 취득. 90명 추가 요청. 올리벤사 인구(2021년 11,871명)의 0.75% 미만.[22] |
2018년 | |
2019년 | 올리벤사 포르투갈 시민, 2019년 포르투갈 총선 우편 투표 가능.[24] |
2024년 | 포르투갈 에스트레모스 제3기병연대(RC3) 기념 행사, 포르투갈 국방장관 누누 멜루, 올리벤사 "포르투갈 영토", "포기하지 않을 것" 발언. 이후 X 페이지에서 개인 의견 표명 해명. |
1297년 이래 포르투갈령이었으나, 1801년 바다호스 조약으로 스페인에 할양되어 바다호스 주에 편입되었다. 1815년 빈 회의에서 포르투갈은 바다호스 조약 취소와 올리벤사 반환을 요구했다. 현재 해당 지역을 둘러싼 분쟁은 없지만, 포르투갈 정부는 여전히 올리벤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4. 인구
Populaçãopt
연도 | 1900 | 1910 | 1920 | 1930 | 1940 | 1950 | 1960 | 1970 | 1981 | 1991 | 2000 | 2010 | 2021 |
---|---|---|---|---|---|---|---|---|---|---|---|---|---|
인구 | 9,066 | 12,194 | 11,649 | 11,813 | 12,492 | 13,834 | 12,956 | 9,909 | 9,837 | 10,004 | 10,709 | 11,906 | 11,871 |
2021년 기준 올리벤사의 총 인구는 11,871명이다. 주변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 밀도는 낮아 1km²당 11명이다.
젊은 세대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포르투갈 문화와 언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40년대 초, 스페인 지배하에 약 150년이 지난 후에도 올리벤사는 주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프랑코 독재 시대인 1940년대 이후,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전형적인 포르투갈식 거리 이름이 스페인식으로 바뀌었고, 포르투갈어 사용이 금지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안에서만 비밀리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동 교육이 통제되었고, 포르투갈식 이름이 스페인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초기 독재 정책이 완화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약 1,300명의 주민(마을 인구의 8%)이 이중 국적을 신청했고, 약 92%는 포르투갈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 2018년 기준으로 1,500명의 주민(인구의 약 12%)이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며(대부분 1950년 이전 출생자),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는 수년 동안 이 지역에서 포르투갈어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시간이 지난 후, 올리벤사의 어린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올리벤사 시민들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으로 실시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포르투갈인보다 스페인인으로 더 많이 느끼며, 대부분 스페인에 남기를 원한다고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프랑코 독재 이후인 21세기에도 자신의 유산과 문화를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관계 단절자'로 선언되었고, 포르투갈어를 보호했다는 이유로 "스페인 국기를 모독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25]
5. 언어
젊은 세대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포르투갈어와 포르투갈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40년대 초, 스페인 지배하에 약 150년이 지난 후에도 올리벤사는 주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다. 프랑코 독재 시대인 1940년대 이후,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전형적인 포르투갈식 거리 이름이 스페인식으로 바뀌었고, 포르투갈어 사용이 금지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안에서만 비밀리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동 교육이 통제되었고, 포르투갈식 이름이 스페인식으로 바뀌기도 했다.[25]
1970년대 이후 초기 독재 정책이 완화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1,500명의 주민(인구의 약 12%)이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며(대부분 1950년 이전 출생자),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는 수년 동안 이 지역에서 포르투갈어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시간이 지난 후, 올리벤사의 어린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시작했다.[25]
언어학자 레이테 데 바스콩셀루스에 따르면, 19세기 말 올리벤사 주민들은 이중언어 사용자였다. 시가지에서 떨어진 마을 주민들은 포르투갈어만 사용했지만, 1960년대에는 마을에서도 이중언어 사용 상태가 되었다.[35]
시가지에서도 1940년대까지는 포르투갈어가 우세했지만, 그 이후 세대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21세기 현재 194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 지역의 포르투갈어(Portugués oliventino)는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36]
6. 영유권 분쟁
포르투갈은 1815년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올리벤사 지역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스페인은 1817년 5월 7일 조약을 수락했지만, 올리벤사와 그 주변 지역은 포르투갈의 통제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으며[26] 포르투갈은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26]
오렌지 전쟁 당시 마누엘 데 고도이의 지휘 아래 프랑스와 스페인 군대는 1801년 5월 20일 올리벤사를 점령했다. 바다호스 조약 체결 이후 올리벤사 지역은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강제로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 조약은 무효이며, 국제법상 조약의 유효성에 필요한 고의적인 의도와 "자유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포르투갈이 200년 동안 스페인의 합법적인 영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스페인은 바다호스 조약이 여전히 유효하며 폐지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올리벤사에 대한 사실상(de jure) 주권을 주장하며, 양국 간 경계는 조약에 명시된 대로 구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르투갈은 바다호스 조약이 자체 조항에 의해 폐지되었으므로, 올리벤사에 대한 사실상(de jure) 주권을 주장한다. 조약 조항 중 하나라도 위반되면 조약은 폐지되는데, 1807년 반도 전쟁에서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침공했을 때 조약이 위반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포르투갈은 1815년 빈 조약(스페인은 1817년 서명) 제105조를 근거로 주장하는데, 이 조항은 승전국들이 “올리벤사를 포르투갈 당국에 반환하기 위해 최대한의 화해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올리벤사와 그 영토의 반환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다.[27] 따라서 올리벤사 지역의 양국 간 경계는 1297년 알카니세스 조약에 의해 구획되어야 하며, 스페인이 인정한 이 지역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페인은 제105조가 스페인에게 올리벤사를 포르투갈에 반환하라는 강제 조항이 아니며, 따라서 바다호스 조약을 폐지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포르투갈은 빈 조약 이후 이 지역에 대해 공식적인 주장을 한 적이 없지만, 올리벤사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을 직접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스페인 정부 대신 이 지역과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포르투갈 군사 지도에는 국경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불명확한 것으로 나타난다.[28][29] 또한, 올리벤사와 포르투갈을 연결하는 최신 도로(국제 하천인 과디아나 강 위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포함하여 포르투갈 국가가 전액 지불)[30]에도 포르투갈 국경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역시 불명확한 상태임을 시사한다.
올리벤사 주민들의 지위에 대한 여론 조사는 없다. 스페인 여론은 일반적으로 올리벤사에 대한 포르투갈의 주장을 알지 못한다. 반면 포르투갈에서는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논의될 수 있도록 압력 단체의 노력에 따라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31][32][33]
7. 주요 명소
1964년, 올리벤사는 바다호스 주에서 역사 중심지에 대한 '''역사·예술적 건축물군'''으로 지정받은 최초의 자치구 중 하나가 되었다.[1] 지정 보고서에는 올리벤사 시가 "목초지와 농경지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인상적인 성채의 망루가 지배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이며, "기념비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 여러 건물, 울타리 및 장소를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다.[1]
주요 명소는 다음과 같다.
- 성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stillo|es, Igreja de Santa Maria do Castelo|pt)
- 성령 예배당(Capilla del Espíritu Santo|es, Capela do Espírito Santo|pt)
-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Iglesia de Santa María Magdalena|es, Igreja de Santa Maria Madalena|pt): 포르투갈 마누엘 양식 건축의 걸작으로 여겨진다.
- 성 요한 데 디오스 수도원(Monasterio de San Juan de Dios|es, Mosteiro de São João de Deus|pt)
- 망루(torre del homenaje|es, torre de menagem|pt)
- 구세주 성모교의 폐허(Puente de Nuestra Señora de Ayuda|es, Ponte de Nossa Senhora da Ajuda|pt): 1709년에 파괴되어 재건되지 않았다.
8. 유명 인물
- 기예르모 페르난데스 바라 (1958년생) – 스페인 정치인, 에스트레마두라 주지사.
- 페드루 다 폰세카 (미상 – 1422년) – 포르투갈 추기경.
- 바스쿠 다 가마의 형제 파울루 다 가마 (1465년-1499년) - 인도 항로 발견 당시 상 라파엘 함대의 지휘관.
- 빈센테 루시타누 (약 1461년 – 약 1561년) – 포르투갈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
- 토마스 로메로 데 카스티야 (1833년–1910년) – 스페인 신학자, 바다호스 지방 고고학 박물관 설립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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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desmiente a la CIA y niega que haya un conflicto por Oliv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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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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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s da Cruz Afirma Que a Questão de Olivença "Está Congel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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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cto en la frontera hispano-l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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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região e Declaração de Olivenç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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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I Jornada de fortificaciones abaluartadas y el papel de Olivenza en el sistema luso-españ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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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II Encuentro de Jóvenes Investigadores en Historia Moderna. Líneas recientes de investigación en Historia Moderna
Universidad Rey Juan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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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Del asedio de Badajoz en 1705 al de Campo Maior en 1712
https://www.dip-b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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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Guerra peninsular, 1801–1814
Quidnovi Editora
2007
[15]
논문
La plaza de Olivenza en 1801/02
https://dialnet.unir[...]
[16]
서적
Guerra das Laranjas, 1801
Quidnovi Editora
2008
[17]
간행물
Instrumento de ratificación del Convenio y Protocolo adicional entre España y Portugal para regular el uso y aprovechamiento hidráulico de los tramos internacionales de los ríos Limia, Miño, Tajo, Guadiana y Chanza y sus afluentes, firmado en Madrid el 29 de mayo de 1968.
http://www.boe.es/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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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Instrumento de ratificación de España del tratado de amistad y cooperación entre España y Portugal, hecho en Madrid el día 22 de noviembre de 1977
https://www.boe.e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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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Una cuestión congelada", según Portugal
http://www.abc.es/he[...]
2003-09-15
[20]
웹사이트
Resolución de 6 de septiembre de 2004, de la Consejería de Cultura, por la que se incoa expediente de declaración de bien de interés cultural, para el puente de Ajuda en la localidad de Olivenza (Badajoz)
https://www.boe.es/d[...]
[21]
웹사이트
Ruas de Olivença voltam a ter nomes portugueses
https://dn.sapo.pt/i[...]
2010-06-11
[22]
뉴스
Dezenas de habitantes de Olivença pedem e obtêm nacionalidade portuguesa
https://diariodigita[...]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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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feto cultural e oportunidade de emprego levam oliventinos à dupla nacionalidade
https://www.diariodo[...]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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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livença cada vez mais portuguesa
https://sol.sapo.pt/[...]
Sol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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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livença cada vez mais portuguesa
https://sol.sapo.pt/[...]
Sol Sapo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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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Territorial Disputes and Resource Management: A Global Handbook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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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eoE - Centro de Informação Geoespacial do Exérc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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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eoE - Centro de Informação Geoespacial do Exérc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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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Fronteira invisível. "Se um dia Portugal e Espanha se unirem, a capital será Olivença"
http://www.ionline.p[...]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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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st of Both Wor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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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graph Media Group
200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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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terna disputa de Olivenza-Olivenç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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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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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meira Ibérica: Olivença ainda é questã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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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Capital Mult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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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blación, superficie y densidad por municip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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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volución de las hablas fronterizas lusoextremeñas desde mediados del siglo XX: uso y pervivencia del dialecto
[36]
간행물
Apuntes para la descripción del español hablado en Oliv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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