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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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모는 유비 휘하의 인물로, 유장의 파군 태수를 거쳐 유비가 익주 자사가 되자 별가가 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소부가 되었고, 220년 유비의 즉위를 간청하는 상주문에 참여했다. 223년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태상을 역임했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 유비 가신단 15위에 올랐으며, 진수로부터 처신과 소행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료 부족으로 열전이 세워지지는 않았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즉위 시에 이름만 등장한다.

왕모
기본 정보
이름: 왕모
한자 표기王謀
로마자 표기Wang Mou
원태
출신지익주한가군
사망지미상
관직 및 작위
작위관내후
관직태상
생애
섬긴 군주유장유비 → 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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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적

왕모는 유장 밑에서 파군 태수를 지내다가 돌아와 주의 치중종사가 되었다. 유비가 익주이 될 때 별가로 임명되었고, 219년에 한중왕이 되자 뇌공태상, 황주광록훈으로 삼으면서 자신은 소부가 되었다.

220년에는 허정, 제갈량 등과 함께 유비에게 황제 즉위를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으며, 223년에는 관내후에 봉해지고 뇌공을 대신하여 태상이 되었다.

이후 왕모는 뇌공, 황주, 등방과 같이 사적이 전해지지 않아 열전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훗날 장완장휴에게 "같은 군 출신 선배로 왕원태(왕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그의 뒤를 잇고 있는가?"라고 묻자, 장휴는 "원태를 이을 사람은 주 안에도 없습니다. 하물며 제 군에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답하여 그가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왕모를 유비 가신단의 15위로 꼽았으며, 진수는 그의 처신과 소행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2.1. 유장 휘하

유장을 섬겨 파군 태수가 되었고, 그 후 치중종사에 임명되었다. 건안 19년(214년) 유비의 익주 평정 후 별가종사로 승진했다.

2.2. 유비 휘하

유비가 익주이 된 후, 왕모는 별가로 임명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왕모는 소부가 되었고, 뇌공태상, 황주광록훈이 되었다.

220년, 왕모는 허정, 제갈량, 미축, 뇌공, 황주 등 120명과 함께 유비에게 황제 즉위를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223년에는 관내후에 봉해지고 뇌공을 대신하여 태상이 되었다.

왕모는 뇌공, 황주, 등방과 같이 사적이 전해지지 않아 열전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훗날 장완이 한가군 출신 장휴에게 "같은 군 출신 선배로 왕원태(왕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그의 뒤를 잇고 있는가?"라고 묻자, 장휴는 "원태를 이을 사람은 주 안에도 없습니다. 하물며 제 군에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답하여 그가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왕모를 유비 가신단의 15위로 꼽았다. 왕모는 몸가짐을 닦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진수 또한 그의 처신과 소행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2.3. 사후

220년 유비가 즉위하도록 허정, 제갈량, 미축, 뇌공, 황주 등 120명과 함께 상주문을 올렸고, 223년 뇌공을 대신해 태상이 되면서 관내후에 봉해졌다.

이후 뇌공, 황주, 등방과 함께 사적이 전하지 않아 열전을 만들지 못했다. 훗날 장완이 한가군 출신 장휴에게 "같은 군 출신 선배로 왕원태(왕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그의 뒤를 잇고 있는가?"라고 묻자, 장휴는 "원태를 이을 사람은 주 안에도 없습니다. 하물며 제 군에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답하여 그가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유비 가신단의 15위에 꼽혔으며, 몸가짐을 닦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수 또한 그의 처신과 소행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할 당시에는 이미 사료가 소실되어 왕모의 열전은 세워지지 못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즉위식에 이름이 등장하는 정도이다.

3. 평가

왕모는 용모가 단정하고 행동거지가 법도에 맞아 아담하고 신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유비 가신단의 15위에 꼽혔으며, 몸가짐을 닦고 신중하다고 평가받았다. 진수 또한 처신과 소행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장완이 한가군 출신 장휴에게 "같은 군 출신 선배로 왕원태(왕모)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그의 뒤를 잇고 있는가?"라고 묻자, 장휴는 "원태를 이을 사람은 주 안에도 없습니다. 하물며 제 군에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정도의 인물이었지만,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할 무렵에는 사료가 소실되었기 때문에 열전이 세워지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즉위식에 이름이 등장하는 정도이다.

4.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황제로 즉위할 때 이름만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