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순식
1. 개요
왕순식은 후삼국시대 명주(강릉)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여 삼한통일에 기여한 인물이다. 원래 이름은 순식이며, 원성왕의 왕위 계승에서 패한 강릉 김씨 김주원의 자손으로 전해진다. 891년 궁예가 명주를 정벌할 당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다가, 918년 왕건에게 복종하지 않았으나 아버지 허월의 설득으로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후 왕건에게 왕씨 성을 하사받고 대광에 임명되었으며, 일리천 전투에서 기병을 통솔하며 삼한통일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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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호족 -
박술희
박술희는 고려 초 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에 기여하고 혜종 옹립을 지지했으며, 혜종의 후견인으로 훈요십조를 전수받아 보좌했으나 정종 즉위 후 유배되어 암살당한 후 태사 삼중대광에 추증되고 혜종의 묘정에 배향된 공신이다. -
고려의 호족 -
오다련
오다련은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인물이지만, KBS1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이일웅이 연기한 배역으로 알려져 있다. -
후삼국 시대의 호족 -
궁예
궁예는 신라 왕족의 서자로 추정되며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태봉으로 국호를 변경한 인물이며, 말년에 폭정을 일삼다 신하들에게 축출되어 사망했다. -
후삼국 시대의 호족 -
태조 (고려)
고려의 초대 국왕인 태조 왕건은 후고구려 장군으로 군사적 공을 세운 후 신하들에 의해 고려를 건국, 후삼국 통일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통일하고 왕권 강화와 호족 통합에 힘썼으며 고구려 계승을 이념으로 북진 정책을 추진, 훈요십조를 남겼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왕순식은 명주 출신으로, 원성왕과의 왕위 계승에서 패한 강릉 김씨 김주원의 자손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궁예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한 고려 태조 왕건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아버지 김허월을 통해 설득한 왕건에 의해 결국 고려에 귀부했다.
2.1. 고려 귀부
왕순식은 후삼국시대의 명주 호족이다. 원래 이름은 순식이며, 그의 성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정식 사서에는 성(姓)이 없이 순식으로 전한다.
891년 궁예가 양길의 명을 받고 강원도 일대를 정벌할 당시, 순식은 명주 장군을 자칭하며 명주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궁예와 오래도록 대치하여 명주에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았다. 918년 궁예가 사망하고 왕건이 고려를 세웠을 때에도 왕건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922년 시랑 권열(權說)이 왕건에게 아뢰기를, 순식의 아비가 개경에서 승려로 있음을 알리며 허월로 하여금 귀부하도록 설득하길 청하였다. 허월의 설득으로 순식은 왕건에게 맏아들 수원을 보냈고, 왕건은 왕씨 성을 하사하였다. 이후 아들 왕장명과 병사 600명을 또 보내 왕건을 숙위하도록 하였다. 견훤의 신라 급습 이후 928년 정식으로 자제들을 이끌고 개경에 내조하고 왕건을 알현하니, 왕건은 매우 기뻐하여 그를 대광(大匡)으로 임명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였다. 또한 아들 왕장명에게 렴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원보(元甫)에 임명하였다.
936년 신검을 토벌하는 일리천 전투에 병사들을 이끌고 중군에서 기병을 통솔하며 삼한통일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