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트뵈시 페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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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외트뵈시 페테르(Eötvös Péter)는 1944년 헝가리 왕국령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나 2024년 사망한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그는 14세에 리스트 프란츠 음악대학교에 입학하여 코다이 졸탄에게 사사받았으며, 1966년 독일 학술 교류처 장학금으로 쾰른으로 유학,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에게 작곡과 지휘를 배웠다. 이후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교류하며 그의 엔지니어, 필사자, 음악가, 지휘자로 활동했고, 1978년 파리 IRCAM의 개막 콘서트를 지휘하며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랭의 음악 감독을 역임했다. 1991년 부다페스트에 국제 외트뵈시 연구소를 설립,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다양한 오페라, 관현악곡, 실내악 등을 작곡했다. 그의 작곡 스타일은 다양한 영향을 받았으며, 여러 상을 수상하고 여러 학술 단체의 회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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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외트뵈시 페테르는 1944년 헝가리 왕국령 세케이우드바르헤이(현재 루마니아령)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와 쾰른에서 작곡을 공부했다.[31] 1962년부터 헝가리에서 영화 음악 작곡을 시작했고,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앙상블과 정기적으로 연주했다.[31] 1978년 피에르 불레즈의 요청으로 파리 IRCAM의 개막 콘서트를 지휘했으며, 이후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랭의 음악 감독 겸 지휘자를 맡아 1991년까지 활동했다.[26][3]
1980년 프롬스에서 처음 공연했고, 1985년부터 1988년까지 BBC 오케스트라의 정기적인 초청을 받았다.[26][18] 1986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세 자매"를 의뢰받았다.[3]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를 역임했고, 2006년 루치아노 베리오의 "Sinfonia"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 "녹음 기술 우수상"을 수상했다.[5] 2014년 타케미쓰 도루 작곡 경연 대회 심사위원이었다.[6]
1991년 부다페스트에 젊은 지휘자와 작곡가들을 위한 국제 외트뵈시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도 힘썼다.[26][32] 2023년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의 소설 "저항의 쓸쓸함"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발루슈카(Valuska)"를 초연했다.[7] 2024년 3월 2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80세로 사망했다.[33] [34]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44-1966)
외트뵈시 페테르(헝가리어: Eötvös Péter|외트뵈시 페테르hu)는 1944년 1월 2일, 당시 헝가리 왕국령이었으나 현재는 루마니아에 속한 트란실바니아의 세케이우드바르헤이(헝가리어: Székelyudvarhely|세케이우드바르헤이hu)에서 태어났다.[10] 그의 가족은 그가 한 살 때 그곳을 떠나야 했지만, 그는 트란실바니아와 그곳의 국제적인 분위기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겼다.[10]어린 시절, 그는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 벨라의 작품을 접하는 등 철저한 음악 교육을 받았다. 외트뵈시는 훗날 바르토크의 음악과 헝가리어 문법 사이의 강력한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며, 바르토크 벨라와 코다이 졸탄의 음악 해석이 헝가리어의 미묘한 억양과 리듬을 통합했다고 주장했다.[10]
외트뵈시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부다페스트의 음악 및 지적 삶에 참여했으며, 아들을 오페라, 오페레타, 극장의 많은 공연과 리허설에 데려갔다. 그는 피아노를 배웠고 연극과 소품도 작곡했다. 열한 살 때 작곡 대회에서 우승하여 헝가리 예술계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자신보다 21살 연상인 헝가리-오스트리아 작곡가 리게티 죄르지를 만났고, 리게티는 그를 리스트 페렌츠 음악원의 코다이 졸탄에게 추천했다. 외트뵈시는 14세에 우등으로 음악대학교에 입학했으며,[10][1] 코다이 졸탄의 조언에 따라 비스키 야노시에게 작곡을 배웠다.[29]
1958년, 그는 피아노와 해먼드 오르간으로 영화 상영에 맞춰 즉흥 연주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후 극장과 영화를 위한 음악 작곡을 의뢰받았다.[13]
2. 2. 쾰른 유학과 슈톡하우젠과의 만남 (1966-1979)
1966년, 외트뵈시는 독일 학술 교류처(DAAD) 장학금을 받아 쿠르타그 죄르지와 리게티 죄르지의 선례를 따라 쾰른으로 유학을 떠났다.[9][1][26] 쾰른 국립음대(Hochschule für Musik Köln)에서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에게 작곡과 지휘를 배웠다.[26] 또한 그는 이미 작품을 알고 있던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만났다.[26] 외트뵈시는 슈톡하우젠의 엔지니어이자 필사자(그가 텔레뮤직의 악보를 필사했다)이자 음악가, 지휘자가 되었다.[26] 1970년에는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 70(Expo '70)에서 슈톡하우젠과 함께 몇 달 동안 공연하기도 했다.[9]쾰른 국립음대와 서독방송(Westdeutscher Rundfunk) 스튜디오는 당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 학생들은 유럽 최고의 스튜디오 중 한 곳에서 첨단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외트뵈시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26]
2. 3.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랭과 지휘 활동 (1979-1991)
1979년, 피에르 불레즈의 뒤를 이어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랭의 음악 감독 겸 지휘자가 되었고, 1991년까지 그 직책을 맡았다.[26][3] 1985년부터 1988년까지 BBC 오케스트라의 정기적인 초청을 받았다.[26][18] 이 시기는 그의 기악곡 "차이니스 오페라"(1986)로 작곡가로서 첫 성공을 거둔 시기이기도 하다.[29] 이 작품은 앙상블 앙테르콩탕포랭 1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되었다.[13]2. 4. 후기 활동과 교육 (1991-2024)
외트뵈시는 1991년 부다페스트에 젊은 지휘자와 작곡가들을 위한 국제 외트뵈시 연구소를 설립했다.[26]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카를스루에 국립음대에서 강의했고, 이후 쾰른 국립음대 교수가 되었다.[26] 2002년 카를스루에로 돌아와 2007년까지 그 직책에 있었다.[26]2004년 헝가리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자 부다페스트로 돌아왔고, 같은 해에 외트뵈시 현대음악재단을 설립했다.[10]
외트뵈시는 심각한 질병을 앓다가 2024년 3월 24일 부다페스트에서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0][11][12][9]
3. 주요 작품
외트뵈시 페테르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