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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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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 주네(Jean Genet)는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시인, 영화감독, 사회운동가이다.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절도 등 범죄로 여러 차례 감옥에 수감되었다. 1942년 시집 《사형수》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 《도둑 일기》, 희곡 《하녀들》, 《발코니》 등을 통해 동성애, 범죄, 사회적 소외 등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며 논쟁을 일으켰다. 말년에는 사회운동에 참여하여 베트남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지원했으며, 1986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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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주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83년의 제네
1983년의 제네
출생일1910년 12월 19일
출생지파리, 프랑스
사망일1986년 4월 15일
사망지파리, 프랑스
직업소설가
극작가
정치 운동가
시인
철학가
국적프랑스
장르잔혹극
에로틱
연극
부조리
주제범죄
동성애
사디즘/마조히즘
실존주의
사조부조리극
주요 작품꽃들의 성모 (1943)
도둑 일기 (1949)
하녀들 (1947)
발코니 (1956)
서명
영향
영향을 준 인물자크 데리다
장폴 사르트르
오시마 나기사
우노 쿠니이치
스즈키 소시
히지카타 다쓰미
미시마 유키오
시부사와 다쓰히코
나카가미 겐지
기타
로마자 표기Jean Genet

2. 생애

파리에서 태어나 생후 7개월 만에 빈민구제원에 맡겨졌고, 이후 프랑스 중부 알리니앙모르방의 농가에 입양되었다.[9] 어린 시절부터 절도를 반복하여 10살 때 감화원에 수용되었으며, 15세에는 메트레 교정소에 보내졌다.[9] 18세에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했으나 탈영하여 독일,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를 떠돌며 남창, 거지, 절도, 마약 밀수 등 사회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9]

23세부터 여러 차례 절도죄로 프랑스 내 여러 형무소에서 복역했으며, 이 시기에 글쓰기를 시작했다.[9] 1942년 프렌느 감옥에서 시 《사형수》를 썼고, 이듬해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9] 그의 문학적 재능은 장 콕토에게 인정받았으며, 이후 《장미의 기적》, 《브레스트의 폭력자》, 《하녀들》, 《도둑 일기》 등 소설과 희곡을 발표했다.[9]

1949년, 반복된 절도죄로 종신형 위기에 처했으나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장 콕토,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탄원으로 프랑스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았다.[9] 1947년 루이 주베가 《하녀들》을 상연한 것을 계기로 희곡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엄중한 감시》, 《발코니》, 《흑인들》, 《병풍》 등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문제작들을 발표하며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9] 1950년에는 직접 감독을 맡아 무성 영화 《사랑의 찬가》를 제작하기도 했다.[9]

말년에는 정치·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미국의 쿠바 개입과 베트남 전쟁,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68혁명과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9] 특히 흑표당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연대하며 활동했으며, 1982년 레바논에서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고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9]

1986년 4월 15일, 인후암 투병 중 파리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으며,[9] 그의 유해는 모로코 라라슈에 안장되었다.[9]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삶과 문학을 분석한 평전 《성 주네》에서 그의 문학을 "말로 나타낸 고행승 같은 실험"이라고 평했다.[9]

2. 1. 초기 생애

1910년 12월 19일, 파리 6구에서 가정부였던 어머니 카미유 가브리엘 주네 밑에서 태어났다.[9] 아버지의 이름은 프레데릭 브랑으로 기록되어 있다.[9]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에게 버려져[9] 빈민구제원에 맡겨졌다가,[9] 프랑스 중부 니에브르(Nièvrefra) 지역의 작은 마을인 알리니앙모르방(Alligny-en-Morvanfra)의 목수 가정(샤를과 위제니 레니에 부부)에 입양되었다.[9] 전기 작가 에드먼드 화이트에 따르면 양부모는 주네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9]

주네는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9] 어린 시절부터 절도와 가출을 반복했다.[9] 양어머니 위제니가 사망한 후에는 그녀의 딸 베르트 부부에게 다시 맡겨졌지만, 문제 행동은 계속되었다.[9] 결국 15세 때인 1926년 9월 2일부터 1929년 3월 1일까지 반복적인 부랑 행위 등의 문제로 메트레 교정소에 수감되었다.[9]

18세가 되던 1929년, 감화원에서 나온 주네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 입대했으나,[9] 얼마 지나지 않아 탈영했다.[9] 이후 독일,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남창, 거지, 좀도둑, 마약 밀수 등 사회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9] 이러한 방랑과 범죄의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2. 2. 방랑과 범죄

10살 때 절도죄로 감화원에 수용되었다 풀려났다.[9] 15세 때는 반복적인 부랑 행위 등 여러 위반 행위로 인해 1926년 9월 2일부터 1929년 3월 1일까지 메트레 교정소에 수감되었다.[9] 이 수감 생활은 1946년 작품인 『장미의 기적』(Miracle de la Rose프랑스어)에 기록했다.[9]

18세에 메트레 교정소에서 나온 뒤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했지만, 동성애 행위 발각으로 불명예 제대를 당했고 이후 탈영하여 프랑스를 떠났다.[9] 이후 유럽 전역을 부랑자, 소매치기, 남창 등으로 떠돌아다녔다.[9] 이 시기 독일,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네덜란드 등지를 다니며 절도, 구걸, 남창, 마약 밀매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9] 이러한 경험은 1949년 작품인 도둑 일기에 기록되었다.[9]

1930년경 스무 살 무렵, 10년 동안 사랑했던 소녀가 죽자, 그 기일에 "자신이 감동하기 위해" 시를 썼다고 한다.[9] 이 시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9]

1937년 파리로 돌아온 뒤에도 절도, 위조 서류 사용, 부랑, 음란 행위 등 여러 범죄로 인해 수차례 체포되어 감옥을 드나들었다.[9] 23살 때부터 여러 차례 절도 현행범으로 붙잡혀 프랑스 국내의 여러 형무소에서 복역했다.[9] 감옥에서 자신의 비용으로 첫 번째 시인 "사형수"(Le condamné à mort프랑스어)와 소설 꽃의 노트르담(1944)을 썼다.[9]

2. 3. 작가 데뷔와 활동

1942년, 파리 남쪽의 프렌느 감옥에서 복역 중 시 《사형수》(Le Condamné à mort프랑스어)를 썼다. 이 시는 스무 살의 미청년 살인자 모리스 피롤주에게 헌정되었으며, 1945년 다른 시 《죽음의 행진》과 함께 『비밀의 노래』라는 제목의 작은 책으로 출판되었다.[9] 이듬해인 1943년에는 첫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Notre-Dame-des-Fleurs프랑스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2]

파리에서 주네는 작가 장 콕토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었고, 그의 문학적 재능에 감명받은 콕토는 인맥을 동원하여 주네의 소설 출판을 도왔다.[2][9] 1944년, 문예지 '랄바레트'에 《꽃피는 노트르담》의 발췌본이 실리면서 그의 작품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9] 같은 해 소설 《장미의 기적》(Miracle de la rose프랑스어)을 집필했으며,[9] 1947년에는 소설 《브레스트의 폭력자》(Querelle de Brest프랑스어)와 희곡 《하녀들》(Les Bonnes프랑스어)을 발표했다.[9] 《하녀들》은 같은 해 연출가 루이 주베에 의해 상연되면서 주네가 희곡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1944년에 발표했던 희곡 《엄중한 감시》(Haute Surveillance프랑스어)를 시작으로, 이후 《발코니》(Le Balcon프랑스어, 1955), 《흑인들》(Les Nègres프랑스어, 1955), 《병풍》(Les Paravents프랑스어, 1956~61) 등 문제작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49년, 주네는 열 번째 절도죄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장 콕토,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그의 문학적 가치를 역설하며 프랑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고, 결국 특별사면을 받았다.[2][9] 이 사건 이후 주네는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2] 같은 해 자전적 소설 《도둑 일기》(Journal du voleur프랑스어)를 발표하고, 이 작품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 헌정했다.[9] 그의 작품들은 동성애와 범죄를 노골적이고 도발적으로 다루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2]

1950년에는 직접 감독을 맡아 무성 영화 《사랑의 찬가》(Un chant d'amour프랑스어)를 제작했다.[9] 1952년, 장 폴 사르트르는 주네의 삶과 문학 세계를 깊이 분석한 평전 《성 주네: 배우 그리고 순교자》(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프랑스어)를 출간했다. 이 책은 주네 전집의 첫 권으로 익명 출판되었는데, 주네는 사르트르의 분석에 큰 충격을 받고 약 5년 동안 창작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2]

2. 4. 희곡 창작과 논쟁

1947년 루이 주베가 《하녀들》을 상연하면서 본격적으로 희곡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1944년에 희곡 《엄중한 감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발코니》(1955), 《흑인들》(1955), 《병풍》(1956~61)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극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주네의 희곡들은 동성애와 범죄를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다루었으며, 이는 기존의 도덕 관념에 도전하며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들은 상연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 1949년까지 그는 이미 3편의 희곡을 완성한 상태였다.

1952년 장 폴 사르트르가 주네의 삶과 문학을 분석한 평론 『성자 주네』를 발표하자, 주네는 이에 큰 영향을 받아 약 5년 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기도 했다.[2] 창작 활동을 재개한 1955년부터 1961년 사이에는 《발코니》, 《흑인들》, 《병풍》 등 그의 대표적인 희곡들을 완성했다.[2] 이 시기에는 "네 부분으로 찢어져 변기에 내려간 렘브란트(Le Rembrandt découpé en autant de petits carrés bien réguliers, et foutu aux chiottes|프랑스어)"라는 에세이도 집필했는데, 이 글은 훗날 자크 데리다가 자신의 저서 『글라스(Glas|프랑스어)』에서 주네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2]

2. 5. 정치, 사회 운동 참여

말년에는 정치 및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쿠바 개입과 베트남 전쟁,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으며, 68혁명과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다.

1960년대 후반, 68혁명 이후 다니엘 콘-벤디트에게 헌사하는 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다. 프랑스 내 이민자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1968년에는 미국 방문 중 검열을 당하고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추방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는 법학 교수 에드워드 드 그라지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시카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를 거쳐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3]

1970년, 미국의 흑표당 초청으로 3개월간 미국에 머물며 전역에서 강연 활동을 펼쳤고, 흑표당 지도자 휴이 뉴턴의 재판에 참석했으며, 흑표당 저널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제안으로 요르단으로 건너가 6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며 암만 근처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비밀리에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과 요르단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사후 출판된 회고록 Prisoner of Love|사랑의 포로영어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주네는 앤절라 데이비스와 조지 잭슨 등 흑표당 관련 인물들을 지지했으며, 미셸 푸코와 다니엘 데페르가 결성한 감옥 정보 그룹(GIP)의 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또한 미셸 푸코,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파리에서 알제리인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는 알제리 전쟁 이후에도 센 강에서 구타당한 시신이 발견되는 등 계속되던 문제였다. 1977년에는 르 몽드지에 기고한 "폭력과 잔혹함"이라는 글을 통해 안드레아스 바더울리케 마인호프가 이끌던 독일 적군파(RAF)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1982년 9월, 주네는 레바논베이루트에 머물던 중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학살당한 참사였다. 그는 이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Quatre heures à Chatila|샤틸라에서 네 시간프랑스어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학살의 실상을 고발했다. 1983년 12월 19일에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한스 쾨흘러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국제 진보 기구가 주최한 사브라-샤틸라 학살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여 자신의 글을 낭독했다. 이는 그의 후기 생애에서 드물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였다.[4]

2. 6. 사망

주네는 인후암 투병 중이었으며, 1986년 4월 15일 파리 13구에 위치한 잭스 호텔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9] 당시 그의 사진과 책들은 호텔 방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9] 그의 시신은 모로코 라라슈에 있는 기독교 묘지에 안장되었다.[9]

3. 주요 작품

장 주네는 시, 소설, 희곡, 영화, 예술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초기에는 형무소 복역 중 1942년 시집 《사형수》와 이듬해 소설 《꽃피는 노트르담》을 발표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10]

1947년 루이 주베가 《하녀들》을 상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희곡 창작에 나섰으며, 이후 발표된 《발코니》(1955), 《흑인들》(1955), 《병풍》(1956~61) 등은 상연될 때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장 폴 사르트르는 평전 《성 주네》에서 그의 문학을 "말로 나타낸 고행승(苦行僧) 같은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사형수》, 소설 《도둑일기》, 《꽃피는 노트르담》, 예술 비평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희곡 《하녀들》, 《발코니》, 《엄중한 감시》 등이 있다. 또한 무성 영화 《사랑의 찬가》(1950)를 직접 감독하고 여러 영화 각본을 쓰는 등 영화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3. 1. 소설

장 주네의 초기 다섯 편의 소설은 독자들이 가질 법한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뒤엎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는 악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자신의 특이성을 강조하며, 폭력적인 범죄자들을 상징적인 인물로 격상시킨다. 또한 동성애적 행위, 암호, 배신의 장면 묘사에서 나타나는 특수성을 탐구한다.

주요 소설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연도원제한국어 제목비고
1943Notre Dame des Fleurs|노트르담 데 플뢰르프랑스어꽃피는 노트르담첫 소설. 감옥에서 집필 시작.
1946Miracle de la rose|미라클 드 라 로즈프랑스어장미의 기적자전적 소설. 메트레 교정소 경험.
1947Querelle de Brest|케렐 드 브레스트프랑스어브레스트의 싸움브레스트 항구를 배경으로 함.
1949Pompes Funèbres|퐁프 퓌네브르프랑스어장의식연인 장 데카르낭을 위한 작품.
1949Journal du voleur|주르날 뒤 볼뢰르프랑스어도둑일기자전적 소설. 유럽 방랑 경험.
1986Un Captif Amoureux|앵 캅티프 아무뢰프랑스어사랑의 포로사후 출판. 팔레스타인 게릴라, 흑표당과의 만남 회고.


  • '''꽃피는 노트르담'''(Notre Dame des Fleurs|노트르담 데 플뢰르프랑스어, 1943): 감옥 지하 세계를 묘사한 작품으로, 작가의 허구적 자아인 '디바인'(Divine|디빈프랑스어)이 등장한다. 디바인은 주로 여성형으로 지칭되며, 미모사 1세, 미모사 2세, 첫영성체, 루마니아 여왕 등 다채로운 별명을 가진 "이모"들(tantes|탕트프랑스어, '숙모' 또는 '여왕'을 의미)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은 주네가 1942년 시집 《사형수》를 발표한 후 이듬해 내놓은 첫 소설이다.
  • '''장미의 기적'''(Miracle de la rose|미라클 드 라 로즈프랑스어, 1946): 메트레 교정소에서의 수감 생활과 유럽 전역을 방랑하며 매춘부로 살았던 경험을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 '''브레스트의 싸움'''(Querelle de Brest|케렐 드 브레스트프랑스어, 1947): 프랑스 브레스트 항구를 배경으로 하며, 선원들과 바다를 살인과 연관시켜 묘사한다.
  • '''장의식'''(Pompes Funèbres|퐁프 퓌네브르프랑스어, 1949): 제2차 세계 대전독일군에게 살해된 연인 장 데카르낭을 위해 쓴 작품이다. 정치적 분열을 넘어선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다룬다.
  • '''도둑일기'''(Journal du voleur|주르날 뒤 볼뢰르프랑스어, 1949): 유럽을 떠돌며 방랑자와 매춘부로 살았던 경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이다. 《장미의 기적》과 함께 그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 '''사랑의 포로'''(Un Captif Amoureux|앵 캅티프 아무뢰프랑스어, 1986): 주네 사후 출판된 작품으로,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미국 흑표당과의 만남에 대한 회고록이다. 이전 소설들보다 더 사실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3. 2. 희곡

1947년 루이 주베가 《하녀들》을 상연하면서부터 희곡 창작을 시작했다. 그보다 앞서 1944년 발표한 《엄중한 감시》를 비롯해 《발코니》(1955), 《흑인들》(1958), 《병풍》(1956~61) 등이 상연되면서 격렬한 논쟁을 낳았다.

주요 희곡 작품들은 사회의 위선과 권력 구조, 정체성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 《'''엄중한 감시'''》(Haute surveillance프랑스어, 1944년 발표, 1949년 상연): 초기작으로, 감옥을 배경으로 죄수들 간의 권력 관계와 남성성을 탐구한다.
  • 《'''하녀들'''》(Les Bonnes프랑스어, 1947년 상연): 두 하녀가 주인이 부재한 동안 서로 역할을 바꾸거나 주인을 흉내 내는 의식적인 놀이를 통해 계급 사회의 억압과 전복적인 욕망,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역할과 실존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 《'''발코니'''》(Le Balcon프랑스어, 1955년 발표, 1956년 초연): 매음굴을 배경으로, 손님들이 주교, 판사, 장군 등 권력자의 역할을 연기하며 환상을 충족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과 환상, 권력의 본질과 허구성을 탐구한다. 사회 질서와 혁명의 관계를 풍자적으로 그린다.
  • 《'''흑인들'''》(Les Nègres프랑스어, 1955년 발표, 1958년 출판, 1959년 상연): 백인 관객 앞에서 흑인 배우들이 백인 살해 의식을 연기하는 극중극 형식이다. 인종 차별, 식민주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며, 흑인의 시각에서 백인 사회의 위선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가면과 역할극을 통해 고정된 정체성에 도전한다.
  • 《'''병풍'''》(Les Paravents프랑스어, 1956-61년 집필, 1961년 출판, 1964년 상연): 알제리 독립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방대한 서사극이다. 프랑스 식민 지배 하의 알제리 민중의 삶과 죽음, 저항을 그린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병풍을 넘나들며 교류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식민주의의 폭력과 그 속에서의 인간 실존을 다룬다.


장 폴 사르트르는 주네의 문학을 "말로 나타낸 고행승(苦行僧) 같은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 주요 희곡 목록 ===

제목원제집필/발표 연도초연 연도출판 연도
아담 미루아르 (발레)Adam Miroir프랑스어19441990 (Fragments et autres textes)
엄중한 감시Haute surveillance프랑스어194419491949
하녀들Les Bonnes프랑스어194619471947
스플렌디드Splendid's프랑스어19481993
발코니Le Balcon프랑스어195519561957
흑인들Les Nègres프랑스어195519591958
그녀Elle프랑스어19551989
병풍Les Paravents프랑스어1956-6119611964
르 바뉴Le Bagne프랑스어1994 [프랑스어판만][8]



=== 한국어 번역 ===


  • 오세곤 옮김, 《하녀들》, 지만지드라마, 2020년 3월 24일
  • 오세곤 옮김, 《엄중한 감시》, 지만지드라마, 2020년 9월 28일
  • 이선화 옮김, 《발코니》, 지만지드라마, 2021년 12월 28일


=== 영화 각색 ===

주네의 희곡 중 일부는 영화로 각색되었다.

  • 《발코니》(The Balcony, 1963): 조셉 스트릭(Joseph Strick) 감독, 셸리 윈터스, 피터 포크, 리 그랜트, 레너드 니모이 출연.
  • 《하녀들》(The Maids, 1974): 글렌다 잭슨, 수잔나 요크, 비비언 머천트 출연.
  • 《라 본느》(La Bonne, 영문 제목: 《부패》(Corruption), 1986): 이탈리아 감독 살바토레 삼페리(Salvatore Samperi)가 《하녀들》을 바탕으로 각색. 플로렌스 게랭(Florence Guerin), 카트리네 미켈센(Katrine Michelsen) 출연.

3. 3. 시

장 주네는 여러 차례 절도죄로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2년에는 첫 시집 《사형수》(Le Condamné à Mortfra)를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10] 이 작품은 1942년에 집필되었고 1945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주요 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원제 (프랑스어)한국어 제목발표(집필) 연도
Le Condamné à Mort사형 선고받은 자1942년 (집필), 1945년 (초판)
Marche Funèbre장송 행진곡1945년
La Galère갤리선1945년
Un Chant d'Amour사랑의 노래1946년
Le Pêcheur du Suquet수케의 어부1948년
La Parade퍼레이드1948년



이 외에도 갈리마르 출판사의 ''사형 선고받은 자 및 기타 시와 줄타기꾼''에 처음 수록된 "발견된 시들"이 있다.

주네의 시 두 편, "사형 선고받은 자"와 "수케의 어부"는 2011년 마크 알몬드와 마이클 캐시모어가 발매한 앨범 ''팬서들과의 향연''에서 각각 "사형 선고받은 자"와 "도둑과 밤"이라는 제목의 곡으로 만들어졌다. 두 시 모두 제레미 리드가 각색하고 번역했다.

3. 4. 영화

장 주네는 영화 감독과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 '''감독'''
  • 사랑의 찬가》(Un Chant d'Amour프랑스어, 1950): 주네가 감독한 유일한 영화이다. 동성애 남성 수감자와 교도소 간수의 환상을 묘사한 26분짜리 흑백 무성 영화이다.

  • '''각본'''
  • 《고도의 감시》(Haute Surveillance프랑스어, 1944): 빅 모로우 감독의 1965년 미국 영화 《데스워치》(Deathwatch)의 원작이 되었다.
  • 《금단의 꿈》 또는 《꿈의 이면》(Les Rêves interdits, ou L'autre versant du rêve프랑스어, 1952): 토니 리처드슨 감독의 1966년 영화 《마드무아젤》(Mademoiselle)의 각본 기초가 되었다.
  • 《형무소》(Le Bagne프랑스어): 1950년대 작성.
  • 《밤이 오면/눈의 푸름》(La Nuit venue/Le Bleu de L'oeil프랑스어): 1976년-1978년 작성.
  • 《벽의 언어: 백 년째 날마다》(Le Langage de la muraille: cent ans jour après jour프랑스어): 1970년대 작성, 미발표.

  • '''기타 관련 작품'''
  • 데이비드 보위는 1972년 히트곡 〈장 주네(The Jean Genie)〉를 발표했는데, 제목은 장 주네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이라고 밝혔다.[7] 이 곡의 홍보 영상에는 주네의 영화 《사랑의 찬가》의 장면들이 빠르게 편집되어 사용되었다.
  •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80년 앨범 《Making Movies》에 수록된 곡 〈Les Boys〉에서 장 주네를 언급했다.
  • 토드 헤인즈 감독의 1991년 영화 《포이즌》(Poison)은 장 주네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2023년 프랑스 영화 《리틀 걸 블루》(Little Girl Blue)는 장 주네가 연루된 아동 성 학대 사건의 여파를 다루고 있다.

3. 5. 예술 비평

장 주네는 스위스 조각가이자 예술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eng)의 작품에 관한 에세이 ''L'Atelier d'Alberto Giacometti프랑스어''(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업실, 1957)를 썼다. 이 에세이는 자코메티 본인을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의 주요 예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네는 특유의 비공식적인 문체로 글을 썼으며, 자신과 자코메티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발췌하여 싣기도 했다. 주네의 전기 작가인 에드먼드 화이트(Edmund White)는 주네가 미술사학자의 틀에 박힌 서술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코메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언어를 발명했다"고 평가했다. 화이트에 따르면, 주네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은 죽은 자에게 바쳐져야 하며 묻혀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5] 한국어판은 윤정임 번역으로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열화당, 2019)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주네는 렘브란트에 대한 글도 남겼다. 대표적으로 "렘브란트의 비밀"(Le Secret de Rembrandt프랑스어, 1958)과 "똑같은 크기로 잘게 찢어져 변기에 내려간 렘브란트 그림에서 남은 것"(Ce qui est resté d'un Rembrandt déchiré en petits carrés프랑스어, 1967) 등이 있다. "렘브란트의 비밀"은 1958년 9월 ''렉스프레스''(L'Express) 지에 처음 게재되었고, 후자는 1967년 4월 ''텔켈''(Tel Quel) 지에 처음 실렸다. 이 글들을 묶어 한국어판 《렘브란트》(열화당, 2020)가 윤정임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외에도 장 콕토에 대한 글("Jean Cocteau", 1950), "줄타기꾼"(Le Funambule프랑스어), "조각들"(Fragments프랑스어) 등의 예술 비평 및 에세이를 발표했다.

4. 한국어 번역

wikitext

분류제목번역가출판사출판일
예술 비평《자코메티의 아틀리에》윤정임열화당2019년 1월 10일
《렘브란트》윤정임열화당2020년 9월 10일
소설《도둑 일기》박형섭민음사2008년 8월 25일
《장미의 기적》박형섭문예출판사2024년 12월 16일
《꽃피는 노트르담》성귀수문학동네2024년 8월 26일
희곡《하녀들》오세곤지만지드라마2020년 3월 24일
《엄중한 감시》오세곤지만지드라마2020년 9월 28일
《발코니》이선화지만지드라마2021년 12월 28일


참조

[1] 서적 Contemporary Literary Criticism, Volume 45 Gale 1987
[2] 서적 Unfinished Business: Tracing Incompletion in Jean Genet's Posthumously Published Plays Rodopi 1997
[3] 학술지 An Interview with Jean Genet 1993
[4] 웹사이트 Jean Genet with Hans Köchler -- Hotel Imperial, Vienna, 6 December 1983 http://i-p-o.org/gen[...]
[5] 웹사이트 Edmund White http://bombsite.com/[...] 1994
[6] 문서 Genet's relationship to Artaud's 'Theatre of Cruelty' and Esslin's 'Theatre of the Absurd'
[7] 서적 Moonage Daydream 2005
[8] 서적 The Genet Translations: Poetry and Posthumous Plays www.sptzr.net/genet_[...] Polemic Press 2010
[9] 서적 アルベルト・ジャコメッティのアトリエ 現代企画室 1999
[10] 문서 원제 및 출판 정보
[11] 문서 澁澤龍彦翻訳全集 10 수록 정보 河出書房新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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