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무라 유키
1. 개요
요시무라 유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내야수 및 외야수로 활동했다.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하여 2012년까지 활약했다. 이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어 2018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소프트뱅크 시절인 2014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19년 류큐 블루 오션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21년에는 히노쿠니 사라만다즈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TBS チャンネル의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모교와 호크스 주니어 아카데미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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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84년 6월 14일 |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고가시 |
| 포지션 | 외야수 / 1루수 |
| 타석 | 우타 |
| 투구 | 우투 |
| 프로 입단 | 2002년 |
| 드래프트 순위 | 5라운드 |
| 첫 출장 (NPB) | 2003년 10월 3일 |
| 최종 출장 (NPB) | 2017년 10월 31일 |
| NPB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03–201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3–2018) |
|---|---|
| 기타 | 데 글라스코닝 트윈스 (2019) 류큐 블루 오션스 (2020) 히노쿠니 샐러맨더스 (2021) |
| 일본 시리즈 우승 | 3회 (2014년, 2015년, 2017년) |
|---|---|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 | 2014년 PLCS MVP |
| 타율 | 0.253 |
|---|---|
| 홈런 | 131개 |
| 타점 | 419점 |
| 안타 | 759개 |
| 코치 | 히노쿠니 샐러맨더스 (2021)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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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후쿠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가토 다이스케
가토 다이스케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주로 구원 투수로 활동하며 2008년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던 선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오릭스 버팔로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었고 은퇴 후에는 스포츠 용품점에서 근무한다. -
후쿠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오기 아키라
오기 아키라는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하며 니시테쓰 라이온스, 오릭스 등에서 활약했고, 이치로를 발굴하여 오릭스 감독 시절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4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가 2005년 사망했다. -
후쿠오카현 출신 -
타카쿠라 켄
타카쿠라 켄은 1956년 데뷔 후 18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과묵하고 금욕적인 이미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고, 국제적인 인지도 또한 얻었으나 2012년 은퇴 후 2014년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
후쿠오카현 출신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2. 프로 입단 전
후쿠오카현 가스야군 고가정(현 고가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에는 지역 야구팀 "후쿠오카 라이너즈"에 소속되었다.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1학년 여름 현 대회에서 야나가와 고등학교의 카즈키 료타로부터 홈런을 날리는 등 두각을 나타냈고, 가을 공식전에서는 타율 0.505, 7홈런으로 1학년 때부터 강타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2학년 봄에는 4번·1루수로 제73회 선발 대회에 출전하여 8강에 진출했다。3학년 때는 투수를 맡기도 했지만 고시엔 출전은 이루지 못했다. 고교 통산 43홈런을 기록했다. 2002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부터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 드래프트에서는 고등학교 선배인 일본 대학의 무라타 슈이치도 입단했다. 등번호는 "31"이다.
3. 요코하마·DeNA 시절
吉村 裕基일본어는 2003년 1군 데뷔와 동시에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하고, 다음날 경기에서 노구치 시게키를 상대로 첫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04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7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8회 동점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브라이언 코리에게서 결승타를 때려냈다.
2005년에는 2군에서 주전 3루수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1군 승격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6년, 외야수로 전향하여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6월 2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닛폰햄전에서는 하시모토 요시타카와 시미즈 아키오를 상대로 1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규정 타석 미달에도 불구하고 타율 .311, 26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본 에이신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주었다.
2007년, 1루수로 전향하여 전 경기에 출장, 팀 내 2위의 홈런과 타점을 기록했다. 6월 9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나루세 요시히사를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때려냈다. 9월 1일 요미우리전에서는 도요다 기요시를 상대로 6점차를 뒤집는 역전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2008년, 다시 우익수로 전향하여 개인 최고 성적인 34홈런, 91타점을 기록했다. 무라타 슈이치,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함께 강력한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했다.
2009년, 전 경기 출장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타율 .248, 16홈런, 54타점으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6월 17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가네코 지히로를 상대로 홈런을 치면서, 일본 프로 야구 사상 8번째로 "전 타순에서의 홈런"을 달성했다.
2010년,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11년,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이후 부진으로 2군 강등과 복귀를 반복했다. 5월 8일 한신전에서는 구보타 토모유키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치고 덤블링을 하기도 했다.
2012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여 1군 승격 후 5월 5일 주니치전에서 이와타 신지를 상대로 2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다시 부진에 빠지며 2군으로 내려갔다.
2012년 11월, 다무라 히토시, 간나이 야스시, 요시카와 테루아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야마모토 쇼고, 에지리 신타로와 함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요코하마·DeNA 시절 통산 성적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수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3년 | 요코하마· DeNA | 6 | 22 | 18 | 2 | 4 | 1 | 0 | 1 | 8 | 3 | 0 | 0 | 0 | 0 | 2 | 0 | 2 | 4 | 1 | .222 | .444 | .808 | |
| 2004년 | 10 | 13 | 13 | 1 | 2 | 0 | 0 | 0 | 2 | 1 | 0 | 0 | 0 | 0 | 0 | 0 | 5 | 0 | .154 | .154 | .154 | .308 | ||
| 2006년 | 111 | 416 | 396 | 57 | 123 | 24 | 1 | 26 | 227 | 66 | 5 | 3 | 2 | 2 | 10 | 1 | 6 | 116 | 5 | .311 | .336 | .573 | .909 | |
| 2007년 | 141 | 566 | 519 | 69 | 142 | 21 | 4 | 24 | 243 | 85 | 5 | 3 | 3 | 5 | 30 | 1 | 8 | 95 | 16 | .274 | .320 | .468 | .788 | |
| 2008년 | 143 | 574 | 530 | 69 | 138 | 30 | 4 | 34 | 278 | 91 | 9 | 5 | 2 | 1 | 30 | 1 | 11 | 135 | 9 | .260 | .313 | .525 | .837 | |
| 2009년 | 144 | 588 | 528 | 62 | 131 | 26 | 2 | 16 | 209 | 54 | 13 | 7 | 0 | 4 | 45 | 1 | 11 | 134 | 17 | .248 | .318 | .396 | .714 | |
| 2010년 | 49 | 141 | 132 | 12 | 27 | 4 | 0 | 3 | 40 | 11 | 0 | 2 | 1 | 3 | 5 | 0 | 0 | 41 | 5 | .205 | .229 | .303 | .532 | |
| 2011년 | 81 | 245 | 220 | 25 | 44 | 8 | 1 | 5 | 69 | 11 | 0 | 1 | 2 | 1 | 15 | 0 | 7 | 59 | 3 | .200 | .272 | .314 | .586 | |
| 2012년 | 25 | 72 | 67 | 4 | 14 | 3 | 0 | 2 | 23 | 7 | 0 | 1 | 0 | 0 | 5 | 0 | 7 | 22 | 0 | .209 | .264 | .343 | .607 | |
| 통산: 9년 | 709 | 2637 | 2423 | 301 | 625 | 117 | 12 | 111 | 1099 | 329 | 32 | 22 | 10 | 16 | 142 | 4 | 45 | 611 | 56 | .258 | .309 | .454 | .765 | |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2005년은 1군 출장 없음.
* 요코하마(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2012년에 DeNA(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구단명을 변경.
수비 기록
| 연도 | 1루 | 3루 | 외야 |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2003 | - | 6 | 5 | 7 | 1 | 1 | .923 | - | ||||||||||
| 2004 | 1 | 7 | 0 | 0 | 1 | 1.000 | - | - | ||||||||||
| 2006 | 22 | 174 | 11 | 0 | 9 | 1.000 | - | 85 | 153 | 3 | 4 | 0 | .975 | |||||
| 2007 | 138 | 1270 | 94 | 10 | 103 | .993 | - | - | ||||||||||
| 2008 | - | - | 140 | 251 | 11 | 2 | 4 | .992 | ||||||||||
| 2009 | - | - | 144 | 260 | 6 | 4 | 0 | .985 | ||||||||||
| 2010 | - | - | 42 | 71 | 2 | 1 | 0 | .986 | ||||||||||
| 2011 | 1 | 1 | 0 | 0 | 0 | 1.000 | - | 60 | 102 | 5 | 3 | 0 | .973 | |||||
| 통산 | 162 | 1452 | 105 | 10 | 113 | .994 | 6 | 5 | 7 | 1 | 1 | .923 | 471 | 837 | 27 | 14 | 4 | .984 |
* 2011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4. 소프트뱅크 시절
2013년,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지만 4월 27일에 1군으로 승격되었다. QVC 마린 필드에서 열린 같은 날의 롯데전에서 7번 1루수로 출장한 첫 타석에서, 나루세 요시히사를 상대로 이적 후 첫 솔로 홈런을 날렸다. 5월 3일 세이부전에서는 8회에 역전 솔로 홈런을 날렸는데, 이는 이적 후 홈 구장인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첫 홈런이었다. 5월 5일부터 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교류전에서 부진하며 7월 12일에 2군으로 강등되어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2014년, 5월 28일에 1군으로 승격되어 옛 소속팀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7번 1루수로 선발 출장, 3회에 희생 플라이로 이적 후 첫 옛 소속팀 상대 타점을 기록했다. 8회에는 안타를 기록하며 이적 후 첫 옛 소속팀 상대 안타를 만들어냈다. 5월 29일 경기에서는 대타로 출전해 호르헤 소사를 상대로 동점 2점 홈런을 날려, 이적 후 첫 대타 홈런이자 옛 소속팀 상대 첫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으로 아이카와 료지에 이어 역대 28번째로 전 구단 상대로 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초반에는 주로 대타로 출전했고, 7월 3일 마쓰다 노부히로의 부상 이탈로 3루수로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7월 9일 경기 중 오른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7월 10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8월 14일에 복귀했고, 우치가와 세이이치와 하세가와 하야의 부상 기간 동안 우익수로도 출전했다. 9월 3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는 대타로 나와 역전 2점 적시 2루타를, 8회에는 쐐기 2점 홈런을 날렸다. 9월 4일 경기에서는 6번 우익수로 기용되어 결승타가 되는 선제 적시타를 쳤다. 10월 2일 오릭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도 7번 1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2루타를 기록, 팀 승리에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6경기 모두 선발 출전하여 맹활약했다. 10월 15일 제1전에서는 9회말 역전 끝내기 2루타를 쳤다. 10월 18일 제4전에서는 결승타가 된 역전 적시타를 날렸다. 팀 최다인 6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5경기에 출전했다. 10월 28일 제3전에서는 폭투로 2루에서 홈까지 쇄도하여 득점했는데, 이는 일본 시리즈에서 15년 만에 나온 폭투로 인한 2루 주자의 득점이었다. 10월 30일 제5전에서는 내야 안타를 치고 헤드 슬라이딩을 하다 왼손을 다쳐 2014년 미일 야구 야구 일본 대표팀과의 강화 경기 출전을 사퇴했다.
2015년, 5월 14일 국내 FA 권리를 획득했지만, 시즌 후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팀에 잔류했다. 12월 16일, 500만 엔 인상된 연봉 50(추정)에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 4월 17일 라쿠텐전에서 9회말 대타로 나와 역전 3점 홈런을, 12회말에는 끝내기 2점 홈런을 쳐 2타석 연속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활약으로 3, 4월의 "스카이퍼! 드라마틱・사요나라상"을 수상했다. 8월 14일 롯데전에서는 소프트뱅크 이적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스카이퍼! 드라마틱・사요나라상" 연간 대상을 스즈키 세이야와 함께 수상했다.
2017년,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가 줄었다. 9월 26일 롯데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고, 10월 6일 오릭스전에서는 연장 12회말 대타로 나와 끝내기 홈런을 쳤다. 12월 6일, 1000만 엔 삭감된 연봉 40(추정)에 계약했다.
2018년에는 1군 출전 없이 시즌을 마감했고, 10월 4일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6. 선수로서의 특징
발을 높게 들어 올리는 호쾌한 스윙과 가부키 던지기로 불리는 팔로스루가 특징인 장거리 타자였다. 고교 시절 투수로서 최고 147km를 기록하는 등 강한 어깨를 가졌으며, 외야수가 된 후에는 리그 최고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7. 인물
'하마의 헤라클레스', '하마의 몽치치'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2004년 2월 23일, 오키나와 기노완 시립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 삼성 라이온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2타석 연속 백스크린 홈런을 날린 후, 스스로 '하마의 헤라클레스'라는 애칭을 제안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몽치치 탄생 30주년을 맞아 도쿄 하라주쿠의 유명 완구점에서 여고생 인기 No.1 캐릭터였던 몽치치를 본따, 넉살 좋은 얼굴에 갈색 뾰족 머리라는 외모 때문에 "하마의 몽치치"로 요코하마 구단 프런트가 홍보했다. 같은 해 9월 18일에는 한정 500개의 "하마의 몽치치 인형"이 발매되었고, 그 외 "YB 요시무라 선수 몽치치 키 체인" 등이 발매되었다.
아키야마 고지의 열렬한 팬이다. 요코하마 재적 중이던 2007년, 오야 감독의 의향으로 시즌에는 1루수가 되었지만, 아키야마에 대한 동경으로 다시 외야 도전을 표명했다. 2012년 11월 13일 소프트뱅크 입단 기자회견에서도 "제가 어렸을 때 호크스에서 등번호 1번을 달고 했었다"며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다. 아키야마 감독은 기자회견 다음 날부터 추계 캠프에 합류시켜, 이례적으로 1대1 지도를 했으며, 요시무라 유키는 "오른쪽 팔꿈치 사용법이나, 안쪽 공에 대한 헤드 내는 법, 오른발의 축 회전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MVP가 되어 은혜를 갚았고, "후쿠오카 출신인 저에게, 아키야마 감독은 슈퍼스타입니다. 감독님은 언제나 적절한 조언을 해주십니다. 이제 현역을 은퇴하신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마치 제가 타석에 서 있는 듯한 감각으로 말씀을 해주십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9월 3일과 4일, 오릭스와의 선두 다툼에서 연일 결승타를 날린 후 승리 인터뷰에서, 후쿠오카 바다의 나카미치 대교 음주운전 사고를 언급하며 음주운전 근절을 호소했다. 2006년 8월 25일에 일어난 이 사고로 인해 후쿠오카현에서는 음주운전 근절 조례가 제정되었으며, 요시무라 유키는 "여러분, 경기 후에는 무엇을 드십니까? 저는 우선 단백질 보충제를 마십니다. 여러분은 이제 승리의 미주를 드시겠지요. 부디 술을 마셨으면 운전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영향으로 후쿠오카현 경찰과 일본 자동차 연맹 (JAF)에서 광고 메시지 (텔레비전 광고) 출연을 의뢰받았다.
2016년 11월 22일, 2015년 시즌 오프에 결혼했었다고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