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슈이치
1. 개요
무라타 슈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3루수와 우타자로 활약했다.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투수로 활약하며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고, 니혼 대학 진학 후 야수로 전향하여 도토 대학 리그에서 뛰어난 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2002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 입단하여 201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2018년에는 독립 리그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통산 360홈런을 기록했으며, 2007년과 2008년에는 홈런왕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고, 2025년부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코치로 복귀할 예정이다.
| 이름 | 무라타 슈이치 |
|---|---|
| 원어 이름 | 村田 修一일본어 (일본어) |
| 로마자 표기 | Shuichi Murata |
| 출생 | 1980년 12월 28일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가스야군 사사구리정 |
| 신장 | 177cm |
| 체중 | 92kg |
| 포지션 | 3루수, 1루수, 2루수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드래프트 | 2002년 자유 획득 범위 |
| 데뷔 | NPB / 2003년 3월 28일 |
| 최종 출장 | NPB / 2017년 10월 1일 BCL / 2018년 9월 9일 |
| 수상 경력 | 5× NPB 올스타 (2006년, 2008년, 2011년, 2012년, 2014년) 4× Central League 베스트 나인 (2008년, 2012년, 2013년, 2016년) 3×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 (2013년, 2014년, 2016년) 2× 센트럴 리그 홈런왕 (2007년, 2008년) |
| 국가대표 | 일본 |
| 올림픽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통산 타율 | .269 |
| 통산 안타 | 1,865 |
| 통산 홈런 | 360 |
| 통산 타점 | 1,123 |
| 소속 팀 |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03년 ~ 201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2년 ~ 2017년)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 (20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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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년 ~ 2022년) 지바 롯데 마린스 (2023년 ~ 2024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25년 ~ 현재) |
|---|---|
| 역할 |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 (201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야수 종합 코치 (2020년 ~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 보조 겸 수비 코치 (2022년) 지바 롯데 마린스 (2023년 ~ 2024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야수 코치 (2025년 ~ 현재) |
| 메달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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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가토 다이스케
가토 다이스케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주로 구원 투수로 활동하며 2008년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을 획득했던 선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오릭스 버팔로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었고 은퇴 후에는 스포츠 용품점에서 근무한다. -
후쿠오카현 출신 야구 선수 -
오기 아키라
오기 아키라는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하며 니시테쓰 라이온스, 오릭스 등에서 활약했고, 이치로를 발굴하여 오릭스 감독 시절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4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가 2005년 사망했다. -
1980년 출생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1980년 출생 -
저신다 아던
저신다 아던은 뉴질랜드의 제39대 총리로, 노동당 당수로서 2017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취임하여 아동 빈곤 감소,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19 팬데믹 대처 등에 주력하고 다자주의 외교를 추진했으며 2023년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
니혼 대학 동문 -
구상 (시인)
구상(1919-2004)은 서울 출생으로 원산에서 성장하여 니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종군 기자, 언론 운동, 영남일보 편집장 등을 거쳐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시집 《초토의 시》 등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문부성에서 세계 200대 시인으로 선정되었고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니혼 대학 동문 -
미우라 켄타로
미우라 켄타로는 1966년 일본에서 태어나 2021년 사망한 만화가로, 다크 판타지 만화 《베르세르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유작은 모리 코우지의 감수 하에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
2. 프로 입단 전
후쿠오카현 가스야군 사사구리정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팀에서 활약을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보이즈 리그의 소속팀에서 활동했다.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시절에는 투수로서 고시엔 대회에 춘계 대회와 추계 대회를 연속으로 출전했고 그 외에 고교 일본 대표팀 선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고시엔 대회에서는 선발로 등판해 마쓰자카 다이스케(요코하마 고등학교)와의 투수전을 펼쳤지만 팀은 패했고 하계 대회에서는 첫 상대이자 후루키 가쓰아키가 소속된 도요타오타니 고등학교에게 패하면서 고교 통산 30홈런을 기록했다. 무라타 본인은 “투수로서 마쓰자카(다이스케)에게는 이길 수 없다”라고 생각해 니혼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야수로 전향했다. 오노 류지(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는 고교와 대학 시절 모두 동기이며 특히 고교 시절에는 배터리를 함께 짜기도 했다. 대학 시절인 3학년 가을에 이구치 다다히토와 대등한 1시즌 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통산 20홈런(역대 2위 타이 기록)을 기록하는 등 도토 대학 리그에서의 간판 타자로 군림했다. 리그 통산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할 7푼 5리, 20홈런, 70타점을 남겼고 베스트 나인을 4차례나 선정되었다.
2001년, 대학 3학년 때 무라타는 팀을 이끌고 6월에 열린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그 달 말에 열린 제30회 일본-미국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에 출전할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그해 가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전 기록은 이구치 타다히토가 보유)과 같은 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대학 4학년(2002년) 여름에 열린 제31회 일본-미국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에 앞서 2년 연속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또한 8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2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자유 획득범위로 입단했고 그 해에 고교 후배에 해당되는 요시무라 유키도 입단했다.
2.1. 유소년 시절
무라타 슈이치는 후쿠오카현 가스야군 사사구리정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팀인 "세이몬 베어스"에서 활동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보이즈 리그 "카스야 피닉스"에서 에이스이자 3번 또는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야구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배우고 학업에도 열중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에 진학한 무라타는 3학년 때 투수로서 봄, 여름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다. 봄의 센바츠에서는 요코하마 고등학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맞붙어 3회전에서 패했고, 여름 고시엔에서는 고키 가츠아키가 소속된 도요타 오타니 고등학교에 패하여 첫 경기에서 탈락했다. 고교 통산 30 홈런을 기록한 무라타는 제3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최우수 방어율(0.00)을 기록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니혼 대학 진학 후, "투수로는 마쓰자카에게 이길 수 없다. 타자로서 최고가 되자"라고 생각하여 야수로 전향했다. 대학 동기로는 타테야마 쇼헤이, 쓰쓰이 겐, 오노 류지가 있었고, 특히 오노와는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동료였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터리를 이루었다. 대학 시절 3학년 가을에 이구치 타다히토와 함께 시즌 8홈런을 기록했으며, 통산 20홈런을 기록했다. 리그 통산 104 경기 출장, 374타수 103안타 타율.275, 20홈런, 70타점을 기록했고, 베스트 나인에 4회 선정되었다. 또한 2001년과 2002년에는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고, 2001년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02년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3위에 입상했다.
2002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자유 획득枠으로 입단했다.
2.2.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시절
후쿠오카현 가스야군 사사구리정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시절에는 투수로서 고시엔 대회에 춘계 대회와 추계 대회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봄의 센바츠에서는 요코하마 고등학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맞붙어 3회전에서 패배했고, 여름 고시엔에서는 고키 가츠아키를 보유한 도요타 오타니 고등학교에 패하여 첫 경기에서 탈락했다. 고교 통산 30 홈런을 기록했고, 제3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나카무라 준지가 이끄는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최우수 방어율(0.00)을 기록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고교 일본 대표팀 선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오노 류지(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는 고교시절 동기이며, 배터리를 함께 짜기도 했다. 무라타 본인은 "투수로서 마쓰자카(다이스케)에게는 이길 수 없다"라고 생각해 니혼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야수로 전향했다.
2.3. 니혼 대학 시절
오노 류지(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는 고교와 대학 시절 모두 동기였다. 대학 시절에는 3학년 가을에 이구치 다다히토와 대등한 1시즌 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통산 20홈런(역대 2위 타이 기록)을 기록하는 등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서의 간판 타자로 군림했다. 리그 통산 10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할 7푼 5리, 20홈런, 70타점을 남겼고, 베스트 나인을 4차례나 선정되었다. 2002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자유 획득범위로 입단했다. 그 해에 고교 후배에 해당되는 요시무라 유키도 입단했다.
니혼 대학에서는 2001년, 대학 3학년 때 팀을 이끌고 6월에 열린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 달 말에 열린 제30회 일본-미국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에 출전할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다. 그해 가을,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전 기록은 이구치 타다히토가 보유)과 같은 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대학 4학년(2002년) 여름에 열린 제31회 일본-미국 대학 야구 선수권 시리즈에 앞서 2년 연속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또한 8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2003년, 무라타 슈이치는 원래 3루수였지만 후루키 가쓰아키가 있어 2루수로도 도전했다. 6월까지는 후루키가 3루, 무라타가 2루를 맡았고, 후루키가 외야로 전향한 후반에는 주전 3루수가 되었다. 7월에는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지만, 9월에 1군으로 복귀하여 월간 10개의 홈런(신인 최다 기록)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그러나 9월 2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이시도 가쓰토시가 던진 사구에 맞아 오른손 척골이 골절되어 시즌을 마감했다.
2004년에는 5번·3루수로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지만, 수비에서의 실책과 삼진이 많아 다네다 히토시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7번 타자로 출전하며 삼진을 줄이고 출루율을 올렸지만, 홈런은 크게 감소했다. 12월 8일에는 결혼하였다.
2005년에는 주로 7번 타자로 기용되었고, 그 해부터 도입된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 5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2점짜리 역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당시 감독이였던 우시지마 가즈히코는 무라타에게 "9번 다음은 몇 번인지 알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였고 무라타는 1번이라고 대답했지만, 우시지마는 "바보야, 다음은 없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무라타는 이경기에서 9회에 야부타 야스히코를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쳤고, 히어로 인터뷰에서 "생사를 걸고 쳤습니다"라고 발언했다。
2006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12개 구단의 선발 선수로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으로 발탁된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결승타가 되는 3점 홈런을 좌측 관중석을 향해 때려냈다. 개막 초에는 7번 타자였지만 다무라 히토시가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5번으로 기용되었다. 이후 4번 타자를 맡고 있던 사에키 다카히로의 부진으로 6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출전하여 시즌 종료할 때까지 4번 타자 자리를 지켰다. 부상자가 많은 팀 내에서도 타율 2할 6푼 6리, 34홈런, 114타점을 기록했지만, 양대 리그 최다 기록인 153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개최된 2006 일미 야구에서는 일본 선발팀 선수로 발탁되어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4번 타자로서 적시타를 날렸고, 5차전(후쿠오카 돔)에서는 존 래키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2007년, 모든 경기에서 4번·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36홈런으로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0월 4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은퇴 경기였던 스즈키 겐이 요코야마 유키야에게서 때린 13구째가 평범한 3루 파울 플라이였지만, 무라타는 일부러 그 공을 처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스즈키는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대부분 스포츠 신문에서는 “멋진 플레이”, “무라타의 배려”라는 표현으로 무라타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에 “아무리 은퇴 경기라고 해도 그 플레이(플라이를 잡지 않았다)는 너무나 완만한(스즈키에 대한) 실례”라는 야구계 일각에서의 비판도 있었다. 10월 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는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된 사사오카 신지로부터 홈런을 때려냈는데, 무라타는 은퇴식에서 구장을 일주한 사사오카에게 맨 먼저 다가가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했고 경기 종료 후 “그 홈런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사오카는 무라타의 사과에 대해 “진검승부였고, 기분이 좋았다” 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등 무라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했다. 12월에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고 이 때 등번호 25번을 아라이 다카히로에게 양보해 1980년생이기도 한 ‘55(쇼와 55년생)’번을 달고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구단 신기록인 4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홈런왕을 획득했다. 요시무라, 우치카와와 함께 구성된 우타자 클린업은 침체되고 있는 팀 내에 있어서 상대팀의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첫 상대인 중화인민공화국전에서 2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틀 후에 열린 대한민국전에서는 4번·3루수로 출전해 김광현으로부터 2경기 연속이 되는 3점 홈런을 때려냈다. 그 이후에도 상태가 안정돼 쿠바전에서도 타점을 올렸지만, 제2라운드의 순위 결정전인 대한민국전에서 오른쪽 다리부분에 근육 통증을 일으키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 도중에 퇴장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채 귀국했다. 시즌 중에도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25홈런을 기록했다.
2010년,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요코하마에 잔류했다.
2011년,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어 전체 144경기에서 4번·3루수로 출전했다. 시즌 최종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 통산 250홈런과 7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했다. FA를 취득하여 12월 8일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입단 계약을 맺었고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마찬가지로 같은 25번으로 결정했다.
무라타 슈이치는 2011년 12월 8일 3루수 자리에 공백이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로 이적을 발표했고, 12월 13일에는 2년 총액 5억 엔(추정)으로 계약했다.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같은 25를 달았다. 무라타는 거인 이적 이유에 대해 "역시 이기고 싶다는 목표가 있고, 내년부터 우승 경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2012년 5월 1일, 제76대 4번 타자가 되었다. 8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5년 만에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타격 부진으로 9월 7일 야쿠르트전에서 2회에 교체되어 하라 다쓰노리 감독으로부터 "강제 귀가 명령"을 받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252, 12홈런, 58타점에 그쳤다. 한편, 두 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2013년 시즌 초반에는 전년도에 이어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6월 12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8년 만에 9번 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립의 위치를 어깨까지 내리는 타격폼 개조가 효과를 발휘하여, 7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고, 8월 30일 주니치전에서는 당시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인 월간 45안타를 기록했다. 다음 날인 8월 31일에는 월간 46안타로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2개월 연속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막바지까지 최다 안타 타이틀 경쟁을 했지만 아쉽게 놓쳤으나, 개인 최다인 164안타, 3년 만에 25홈런, 5년 만에 두 번째로 타율 3할을 달성했다. 또한, 전년에 이어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고, 처음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우쓰미 테쓰야의 후임 선수 회장으로 임명되어 제18대 선수 회장으로 취임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3년 총액 10억 엔(성과급 포함)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에는 7월 27일 주니치전에서 거인 이적 후 처음으로 결장하며, 2009년 9월 20일부터 이어져 온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 676에서 멈췄다. 8월 1일 히로시마전에서는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양 리그 최다인 22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는 등 타격 면에서는 좋지 않은 한 해였다. 11월 6일, 2년 연속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개막부터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5월과 9월에는 부상으로 선수 등록이 말소되기도 했다. 이적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했고, 홈런과 타점도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타율 3할, 25홈런 81타점으로 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타격 부활을 알렸다. 6월 1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9회에 아오야마 고지에게서 끝내기 안타를 쳤고, 9월 27일 주니치전에서는 10회에 다지마 신지에게서 24호 만루 홈런을 쳤는데, 이는 거인 이적 후 첫 끝내기 홈런이었다. 2년 만에 3번째 골든 글러브, 3년 만에 4번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케이시 매기의 영입으로 대타 기용이 중심이 되었지만, 규정 타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타율 .262, 14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거인 GM 카토리 요시타카는 "팀의 젊은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2월 2일자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2018년 3월 5일, 무라타는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와 계약했다. 7월 말까지 NPB 복귀를 목표로 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등번호는 25번을 계속 사용했다. 도치기 구단을 선택한 이유는 도치기현이 아내의 고향이고, 대학 시절 은사인 스즈키 히로시(鈴木博識)의 출신지라는 점 등 자신과 인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월 7일 개막전부터 출장했지만, 오른쪽 허벅지 뒤쪽 부상으로 4월 중순부터 약 2주간 결장했다.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옛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과의 교류전에서는 "사나이 무라타 축제"라는 특별 기획이 개최되었고, 5월 12일 경기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이자 역전 홈런을 터뜨려 승리에 기여했다. 부상에서 회복 후, 리그의 6월 월간 MVP 야수 부문을 수상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NPB 계약 기한인 7월 31일까지 NPB 구단으로부터의 제안은 없었다.
8월 1일 기자회견에서, 그해 말까지 브레이브스에서 플레이하고, 다음 해 현역 속행은 어렵다고 밝혔다. 9월 9일, 시즌 최종전인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전 종료 후 은퇴를 발표하며, "진심으로 BC 리그에 와서 1년간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저는 현역에서 은퇴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오야 아키히코가 꽃다발을 전달했고, 무라타는 그해 리그 베스트 나인(3루수)에 선정되었다.
3.1.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2003년, 무라타 슈이치는 원래 3루수였지만 후루키 가쓰아키가 있어 2루수로도 도전했다. 6월까지는 후루키가 3루, 무라타가 2루를 맡았고, 후루키가 외야로 전향한 후반에는 주전 3루수가 되었다. 7월에는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지만, 9월에 1군으로 복귀하여 월간 10개의 홈런(신인 최다 기록)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그러나 9월 2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이시도 가쓰토시가 던진 사구에 맞아 오른손 척골이 골절되어 시즌을 마감했다.
2004년에는 5번·3루수로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지만, 수비에서의 실책과 삼진이 많아 다네다 히토시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7번 타자로 출전하며 삼진을 줄이고 출루율을 올렸지만, 홈런은 크게 감소했다. 12월 8일에는 결혼하였다.
2005년에는 주로 7번 타자로 기용되었고, 그 해부터 도입된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 5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2점짜리 역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당시 감독이였던 우시지마 가즈히코는 무라타에게 "9번 다음은 몇 번인지 알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였고 무라타는 1번이라고 대답했지만, 우시지마는 "바보야, 다음은 없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무라타는 이경기에서 9회에 야부타 야스히코를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쳤고, 히어로 인터뷰에서 "생사를 걸고 쳤습니다"라고 발언했다。
2006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12개 구단의 선발 선수로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으로 발탁된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결승타가 되는 3점 홈런을 좌측 관중석을 향해 때려냈다. 개막 초에는 7번 타자였지만 다무라 히토시가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5번으로 기용되었다. 이후 4번 타자를 맡고 있던 사에키 다카히로의 부진으로 6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출전하여 시즌 종료할 때까지 4번 타자 자리를 지켰다. 부상자가 많은 팀 내에서도 타율 2할 6푼 6리, 34홈런, 114타점을 기록했지만, 양대 리그 최다 기록인 153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개최된 2006 일미 야구에서는 일본 선발팀 선수로 발탁되어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4번 타자로서 적시타를 날렸고, 5차전(후쿠오카 돔)에서는 존 래키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2007년, 모든 경기에서 4번·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36홈런으로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0월 4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은퇴 경기였던 스즈키 겐이 요코야마 유키야에게서 때린 13구째가 평범한 3루 파울 플라이였지만, 무라타는 일부러 그 공을 처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스즈키는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대부분 스포츠 신문에서는 “멋진 플레이”, “무라타의 배려”라는 표현으로 무라타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는 반면에 “아무리 은퇴 경기라고 해도 그 플레이(플라이를 잡지 않았다)는 너무나 완만한(스즈키에 대한) 실례”라는 야구계 일각에서의 비판도 있었다. 10월 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는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된 사사오카 신지로부터 홈런을 때려냈는데, 무라타는 은퇴식에서 구장을 일주한 사사오카에게 맨 먼저 다가가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했고 경기 종료 후 “그 홈런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사오카는 무라타의 사과에 대해 “진검승부였고, 기분이 좋았다” 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등 무라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했다. 12월에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했고 이 때 등번호 25번을 아라이 다카히로에게 양보해 1980년생이기도 한 ‘55(쇼와 55년생)’번을 달고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 구단 신기록인 4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홈런왕을 획득했다. 요시무라, 우치카와와 함께 구성된 우타자 클린업은 침체되고 있는 팀 내에 있어서 상대팀의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첫 상대인 중화인민공화국전에서 2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틀 후에 열린 대한민국전에서는 4번·3루수로 출전해 김광현으로부터 2경기 연속이 되는 3점 홈런을 때려냈다. 그 이후에도 상태가 안정돼 쿠바전에서도 타점을 올렸지만, 제2라운드의 순위 결정전인 대한민국전에서 오른쪽 다리부분에 근육 통증을 일으키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 도중에 퇴장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채 귀국했다. 시즌 중에도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25홈런을 기록했다.
2010년,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요코하마에 잔류했다.
2011년,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어 전체 144경기에서 4번·3루수로 출전했다. 시즌 최종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 통산 250홈런과 7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했다. FA를 취득하여 12월 8일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입단 계약을 맺었고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마찬가지로 같은 25번으로 결정했다.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무라타 슈이치는 2011년 12월 8일 3루수 자리에 공백이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로 이적을 발표했고, 12월 13일에는 2년 총액 5억 엔(추정)으로 계약했다.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같은 25를 달았다. 무라타는 거인 이적 이유에 대해 "역시 이기고 싶다는 목표가 있고, 내년부터 우승 경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2012년 5월 1일, 제76대 4번 타자가 되었다. 8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5년 만에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타격 부진으로 9월 7일 야쿠르트전에서 2회에 교체되어 하라 다쓰노리 감독으로부터 "강제 귀가 명령"을 받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252, 12홈런, 58타점에 그쳤다. 한편, 두 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
2013년 시즌 초반에는 전년도에 이어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6월 12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8년 만에 9번 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립의 위치를 어깨까지 내리는 타격폼 개조가 효과를 발휘하여, 7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고, 8월 30일 주니치전에서는 당시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인 월간 45안타를 기록했다. 다음 날인 8월 31일에는 월간 46안타로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2개월 연속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막바지까지 최다 안타 타이틀 경쟁을 했지만 아쉽게 놓쳤으나, 개인 최다인 164안타, 3년 만에 25홈런, 5년 만에 두 번째로 타율 3할을 달성했다. 또한, 전년에 이어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고, 처음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우쓰미 테쓰야의 후임 선수 회장으로 임명되어 제18대 선수 회장으로 취임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3년 총액 10억 엔(성과급 포함)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에는 7월 27일 주니치전에서 거인 이적 후 처음으로 결장하며, 2009년 9월 20일부터 이어져 온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 676에서 멈췄다. 8월 1일 히로시마전에서는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양 리그 최다인 22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는 등 타격 면에서는 좋지 않은 한 해였다. 11월 6일, 2년 연속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개막부터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5월과 9월에는 부상으로 선수 등록이 말소되기도 했다. 이적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했고, 홈런과 타점도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타율 3할, 25홈런 81타점으로 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타격 부활을 알렸다. 6월 1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9회에 아오야마 고지에게서 끝내기 안타를 쳤고, 9월 27일 주니치전에서는 10회에 다지마 신지에게서 24호 만루 홈런을 쳤는데, 이는 거인 이적 후 첫 끝내기 홈런이었다. 2년 만에 3번째 골든 글러브, 3년 만에 4번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케이시 매기의 영입으로 대타 기용이 중심이 되었지만, 규정 타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타율 .262, 14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거인 GM 카토리 요시타카는 "팀의 젊은화를 도모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2월 2일자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3.3. 독립 리그(BC 리그)·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시절
2018년 3월 5일, 무라타는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와 계약했다. 7월 말까지 NPB 복귀를 목표로 한다는 방침을 밝히며, 등번호는 25번을 계속 사용했다. 도치기 구단을 선택한 이유는 도치기현이 아내의 고향이고, 대학 시절 은사인 스즈키 히로시(鈴木博識)의 출신지라는 점 등 자신과 인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월 7일 개막전부터 출장했지만, 오른쪽 허벅지 뒤쪽 부상으로 4월 중순부터 약 2주간 결장했다.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옛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과의 교류전에서는 "사나이 무라타 축제"라는 특별 기획이 개최되었고, 5월 12일 경기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이자 역전 홈런을 터뜨려 승리에 기여했다. 부상에서 회복 후, 리그의 6월 월간 MVP 야수 부문을 수상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지만, NPB 계약 기한인 7월 31일까지 NPB 구단으로부터의 제안은 없었다.
8월 1일 기자회견에서, 그해 말까지 브레이브스에서 플레이하고, 다음 해 현역 속행은 어렵다고 밝혔다. 9월 9일, 시즌 최종전인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전 종료 후 은퇴를 발표하며, "진심으로 BC 리그에 와서 1년간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저는 현역에서 은퇴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오야 아키히코가 꽃다발을 전달했고, 무라타는 그해 리그 베스트 나인(3루수)에 선정되었다.
4. 은퇴 후
무라타 슈이치는 2018년 11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타격 코치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75번이었다. 그 후 2군 타격 겸 내야 수비 코치, 1군 타격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20년에는 2군 야수 종합 코치를 담당했다. 모토키 다이스케 1군 헤드 코치가 충수염으로 입원하면서, 아베 신노스케 2군 감독이 1군 헤드 코치 대행을 맡게 되자 2군 감독 대행을 맡았다. 2021년에는 1군 야수 종합 코치, 2022년에는 1군 타격 겸 내야 수비 코치를 맡았으며, 같은 해 10월 6일 퇴임했다.
2023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1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등번호는 71번이었다. 계약 만료로 인해 2024년에 퇴단했다.
2024년 11월 5일, 2025년부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 코치 계약을 맺는 것이 발표되었다. 14년 만의 복귀이며, 팀 총괄 본부장인 하기와라 타츠히로는 무라타를 좋은 코치로서 초빙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1, 2군의 직함이 없는 야수 코치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5. 야구 스타일
타구를 넓게 보내는 타법을 익히고 있어, 오른쪽 방향으로도 홈런을 날리는 기술이 있다。2011년에는 홈런의 35%를 오른쪽 방향으로 날렸다。
타격 자세에서는 머리를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루 수비는 능숙한 글러브 솜씨와 체형에 걸맞지 않은 경쾌한 발놀림, 안정된 송구로 정평이 나 있으며, 명수라고 칭송받았다。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시절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와 다카하시 요시노부 두 사람 모두에게 신뢰를 받았다, 골든 글러브 상을 3번 수상했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시절 말년 4년간은 세이버매트릭스 지표(UZR)상 마이너스 평가를 받았다.
우에하라 고지의 공식 YouTube 채널에 2021년 7월에 공개된 영상에서 모리모토 히데키는 마쓰자카 세대 중에서 가장 강한 3루수로 그를 꼽으며, "수비도 잘하고, 홈런 타자이면서 팀 배팅도 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요코하마에서 담당 스카우트였던 나카즈카 마사유키는 무라타에 대해, 원래 타격에 거친 면이 있었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궤도 수정이 가능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5.1. 타격
무라타 슈이치는 넓은 타구 방향과 뛰어난 장타력을 가진 우타자이다. 많은 홈런을 치지만 삼진도 자주 당하는 전형적인 파워 히터 유형이다. 프로 초창기에는 선구안이 좋지 않았지만, 커리어를 거치면서 타율과 출루율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2003년 요코하마에 입단한 무라타는 104경기에 출전하여 .224의 타율과 25홈런, 56타점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116경기에 출전하여 .242의 타율과 15홈런, 38타점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145경기에 출전하여 .266의 타율과 34홈런, 114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46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OPS 1.062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로 성장했다. 특히 우측 방향으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2011년에는 홈런의 35%를 오른쪽 방향으로 날리기도 했다.
201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316의 타율과 25홈런, 8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통산 13년 동안 1692경기에 출전하여 .267의 타율, 321홈런, 984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321홈런은 그의 뛰어난 장타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타격 자세에서는 머리를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3년 | 요코하마 | 104 | 373 | 330 | 48 | 74 | 11 | 0 | 25 | 160 | 56 | 3 | 3 | 3 | 2 | 26 | 0 | 12 | 111 | 6 | .224 | .303 | .485 | .788 |
| 2004년 | 116 | 369 | 326 | 43 | 79 | 17 | 0 | 15 | 141 | 38 | 2 | 3 | 0 | 2 | 30 | 1 | 11 | 84 | 10 | .242 | .325 | .433 | .758 | |
| 2005년 | 136 | 539 | 477 | 60 | 120 | 32 | 2 | 24 | 228 | 82 | 1 | 1 | 3 | 4 | 44 | 6 | 11 | 124 | 15 | .252 | .326 | .478 | .804 | |
| 2006년 | 145 | 611 | 545 | 83 | 145 | 30 | 3 | 34 | 283 | 114 | 1 | 0 | 4 | 10 | 39 | 0 | 13 | 153 | 11 | .266 | .325 | .519 | .844 | |
| 2007년 | 144 | 615 | 526 | 94 | 151 | 30 | 1 | 36 | 291 | 101 | 1 | 1 | 0 | 9 | 65 | 7 | 15 | 117 | 14 | .287 | .376 | .553 | .929 | |
| 2008년 | 132 | 554 | 489 | 89 | 158 | 25 | 2 | 46 | 325 | 114 | 0 | 1 | 0 | 3 | 55 | 2 | 7 | 113 | 10 | .323 | .397 | .665 | 1.062 | |
| 2009년 | 93 | 369 | 343 | 45 | 94 | 16 | 1 | 25 | 187 | 69 | 0 | 1 | 0 | 0 | 21 | 2 | 5 | 80 | 7 | .274 | .325 | .545 | .870 | |
| 2010년 | 144 | 617 | 565 | 75 | 145 | 30 | 0 | 26 | 253 | 88 | 0 | 0 | 0 | 3 | 45 | 3 | 4 | 124 | 19 | .257 | .314 | .448 | .762 | |
| 2011년 | 144 | 592 | 530 | 65 | 134 | 28 | 1 | 20 | 224 | 70 | 0 | 0 | 0 | 6 | 44 | 4 | 12 | 103 | 19 | .253 | .321 | .423 | .744 | |
| 2012년 | 요미우리 | 144 | 575 | 516 | 49 | 130 | 27 | 0 | 12 | 193 | 58 | 1 | 3 | 2 | 6 | 36 | 3 | 15 | 85 | 16 | .252 | .316 | .374 | .690 |
| 2013년 | 144 | 595 | 519 | 76 | 164 | 26 | 0 | 25 | 265 | 87 | 1 | 1 | 6 | 7 | 50 | 1 | 13 | 74 | 11 | .316 | .385 | .511 | .896 | |
| 2014년 | 143 | 575 | 519 | 49 | 133 | 17 | 0 | 21 | 213 | 68 | 2 | 2 | 0 | 4 | 39 | 1 | 13 | 83 | 22 | .256 | .322 | .410 | .732 | |
| 2015년 | 103 | 370 | 330 | 33 | 78 | 9 | 0 | 12 | 123 | 39 | 1 | 1 | 2 | 2 | 28 | 2 | 8 | 65 | 12 | .236 | .310 | .373 | .683 | |
| 통산: 13년 | 1692 | 6754 | 6015 | 809 | 1605 | 298 | 10 | 321 | 2886 | 984 | 13 | 17 | 20 | 58 | 522 | 32 | 139 | 1316 | 172 | .267 | .337 | .480 | .819 | |
* 2015년 시즌 종료 기준.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5.2. 수비
무라타 슈이치는 강한 어깨와 3루 수비에서의 좋은 본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능숙한 글러브 솜씨와 안정된 송구로 정평이 나 있으며, 명수라고 칭송받았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골든 글러브 상을 3번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에서 실책도 잦은 편으로, 2007년과 2008년에는 리그 실책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말년에는 수비 지표에서 마이너스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프로에서 2루와 1루 수비 경험도 있다. 신인 시즌인 2003년에는 2루수로 65경기에 출전했고, 2004년에는 1루수로 1경기에 출전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라운드 시딩 경기에서는 1루수를 맡기도 했다.
| 연도 | 1루 | 2루 | 3루 |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2003 | - | 65 | 129 | 191 | 8 | 41 | .976 | 41 | 24 | 46 | 6 | 0 | .921 | |||||
| 2004 | 1 | 1 | 0 | 0 | 0 | 1.000 | - | 90 | 50 | 148 | 11 | 11 | .947 | |||||
| 2005 | - | - | 136 | 83 | 245 | 15 | 20 | .956 | ||||||||||
| 2006 | - | - | 145 | 94 | 251 | 15 | 16 | .958 | ||||||||||
| 2007 | - | - | 144 | 80 | 249 | 18 | 10 | .948 | ||||||||||
| 2008 | - | - | 132 | 88 | 267 | 16 | 27 | .957 | ||||||||||
| 2009 | - | - | 92 | 52 | 141 | 10 | 11 | .951 | ||||||||||
| 2010 | - | - | 143 | 85 | 229 | 10 | 11 | .969 | ||||||||||
| 2011 | - | - | 144 | 95 | 248 | 13 | 17 | .963 | ||||||||||
| 2012 | - | - | 139 | 87 | 252 | 13 | 15 | .963 | ||||||||||
| 2013 | - | - | 144 | 88 | 234 | 11 | 19 | .967 | ||||||||||
| 2014 | 1 | 2 | 0 | 0 | 0 | 1.000 | - | 141 | 73 | 229 | 9 | 21 | .971 | |||||
| 2015 | 10 | 36 | 1 | 0 | 1 | 1.000 | - | 97 | 57 | 174 | 13 | 10 | .947 | |||||
| 통산 | 12 | 39 | 1 | 0 | 1 | 1.000 | 65 | 129 | 191 | 8 | 41 | .976 | 1588 | 956 | 2713 | 160 | 188 | .958 |
6. 인물 및 에피소드
무라타 슈이치는 '사나이 무라타'(男気)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에서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섬세한 면도 지니고 있었다. 마쓰자카 세대의 일원으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의 투구 대결이 야수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선수들의 은퇴 경기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아, '미스터 은퇴 경기', '은퇴 경기 크래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사오카 신지의 은퇴 경기에서 홈런을 날렸고, 야노 아키히로의 은퇴 경기에서는 9회에 역전 3점 홈런을 날려 야노의 출전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때 선 TV의 실황을 담당한 유아사 아키히코가 "가지 마! 가지 마! 넘지 마!"라고 절규하여 화제가 되었다. 한편, 스즈키 켄의 은퇴 경기에서는 파울 플라이를 일부러 놓쳐 안타를 만들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부터 등번호 25번을 고집했으며, 요미우리로 이적한 후에는 쓰쓰고 요시토모가 25번을 물려받았다. 요미우리 퇴단 이후에는 오카모토 카즈마가 이 번호를 이어받았다. 무라타는 "다른 선수가 달게 될 때는 '이번에는 너의 번호가 되도록 노력해'라고 말하며 물려주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장남이 미숙아로 태어난 경험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NICU(신생아 집중 치료실)을 갖춘 병원에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입원 중인 아이들을 위문하는 등 신생아 의료 지원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2013년까지는 1타점당 1만 엔을, 이듬해부터는 1안타당 1만 엔을 적립해 기부했다.
2008년에는 팀 선배인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정크 SPORTS』에 출연하여, 야구 게임 내 자신의 캐릭터 수비 능력이 낮아 후배 요시무라 히로키에게 "움직여 뚱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7. 수상 및 기록
* 홈런왕: 2회 (2007년, 2008년)
무라타 슈이치는 베스트 나인에 4회(2008년, 2012년, 2013년, 2016년), 골든 글러브상에 3회(2013년, 2014년, 2016년) 선정되었다. 월간 MVP는 4회(2003년 9월, 2008년 7월, 2013년 7월, 2013년 8월), 우수 JCB·MEP상은 3회(2003년, 2006년, 2007년) 수상했다.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표창(스피드 업상) 1회(2011년), 야나세 자이언츠 MVP상 1회(2013년), 앳홈 클러치 히어로 오브 더 이어 1회(2013년)를 수상하였다. 월간 앳홈 히어로상은 3회(2013년 8월, 2015년 9·10월, 2016년 9·10월) 수상했다. 후쿠오카시 스포츠 영예상(2009년),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 in '프로 야구 부문'(2010년)을 수상했다.
무라타 슈이치는 2003년 3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9회초 3루수로 첫 출장했다. 같은 해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7번·2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2회초 구와타 마스미로부터 좌전 안타를 기록하며 첫 타석과 첫 안타를 동시에 달성했다. 같은 경기 9회초에는 가와하라 준이치에게 삼진을 당하며 첫 삼진을 기록했다. 4월 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5회초 다카하시 히사노리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쳐내며 첫 홈런과 첫 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 4월 1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5회말 이시카와 마사노리로부터 좌월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48번째). 2008년 6월 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5회말 라이언 글린으로부터 우월 2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147번째). 2009년 7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1회초 안도 유야로부터 좌월 선제 3점 홈런을 날려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역대 93번째).
2010년 9월 1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4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역대 437번째). 2011년 5월 18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6회초 이시이 가즈히사로부터 좌전 2루타를 기록하며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264번째). 같은 해 9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4회말 오노 준페이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통산 1000삼진을 기록했다(역대 52번째). 10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2회초 사와무라 히로카즈로부터 우월 선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2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57번째).
2014년 6월 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6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역대 182번째). 같은 해 8월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5회말 마에다 겐타로부터 중월 솔로 홈런을 날려 통산 300홈런을 기록했다(역대 40번째). 8월 27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1회말 이와타 미노루로부터 우월 3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117번째).
2017년 6월 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6회말 마쓰바 다카히로로부터 좌월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3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9번째).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3 | 요코하마 | 104 | 373 | 330 | 48 | 74 | 11 | 0 | 25 | 160 | 56 | 3 | 3 | 3 | 2 | 26 | 0 | 12 | 111 | 6 | .224 | .303 | .485 | .788 |
| 2004 | 요코하마 | 116 | 369 | 326 | 43 | 79 | 17 | 0 | 15 | 141 | 38 | 2 | 3 | 0 | 2 | 30 | 1 | 11 | 84 | 10 | .242 | .325 | .433 | .758 |
| 2005 | 요코하마 | 136 | 539 | 477 | 60 | 120 | 32 | 2 | 24 | 228 | 82 | 1 | 1 | 3 | 4 | 44 | 6 | 11 | 124 | 15 | .252 | .326 | .478 | .804 |
| 2006 | 요코하마 | 145 | 611 | 545 | 83 | 145 | 30 | 3 | 34 | 283 | 114 | 1 | 0 | 4 | 10 | 39 | 0 | 13 | 153 | 11 | .266 | .325 | .519 | .844 |
| 2007 | 요코하마 | 144 | 615 | 526 | 94 | 151 | 30 | 1 | 36 | 291 | 101 | 1 | 1 | 0 | 9 | 65 | 7 | 15 | 117 | 14 | .287 | .376 | .553 | .929 |
| 2008 | 요코하마 | 132 | 554 | 489 | 89 | 158 | 25 | 2 | 46 | 325 | 114 | 0 | 1 | 0 | 3 | 55 | 2 | 7 | 113 | 10 | .323 | .397 | .665 | 1.062 |
| 2009 | 요코하마 | 93 | 369 | 343 | 45 | 94 | 16 | 1 | 25 | 187 | 69 | 0 | 1 | 0 | 0 | 21 | 2 | 5 | 80 | 7 | .274 | .325 | .545 | .870 |
| 2010 | 요코하마 | 144 | 617 | 565 | 75 | 145 | 30 | 0 | 26 | 253 | 88 | 0 | 0 | 0 | 3 | 45 | 3 | 4 | 124 | 19 | .257 | .314 | .448 | .762 |
| 2011 | 요코하마 | 144 | 592 | 530 | 65 | 134 | 28 | 1 | 20 | 224 | 70 | 0 | 0 | 0 | 6 | 44 | 4 | 12 | 103 | 19 | .253 | .321 | .423 | .744 |
| 2012 | 요미우리 | 144 | 575 | 516 | 49 | 130 | 27 | 0 | 12 | 193 | 58 | 1 | 3 | 2 | 6 | 36 | 3 | 15 | 85 | 16 | .252 | .316 | .374 | .690 |
| 2013 | 요미우리 | 144 | 595 | 519 | 76 | 164 | 26 | 0 | 25 | 265 | 87 | 1 | 1 | 6 | 7 | 50 | 1 | 13 | 74 | 11 | .316 | .385 | .511 | .896 |
| 2014 | 요미우리 | 143 | 575 | 519 | 49 | 133 | 17 | 0 | 21 | 213 | 68 | 2 | 2 | 0 | 4 | 39 | 1 | 13 | 83 | 22 | .256 | .322 | .410 | .732 |
| 2015 | 요미우리 | 103 | 370 | 330 | 33 | 78 | 9 | 0 | 12 | 123 | 39 | 1 | 1 | 2 | 2 | 28 | 2 | 8 | 65 | 12 | .236 | .310 | .373 | .683 |
| 2016 | 요미우리 | 143 | 576 | 529 | 58 | 160 | 32 | 0 | 25 | 267 | 81 | 1 | 3 | 2 | 2 | 38 | 0 | 5 | 83 | 21 | .302 | .354 | .505 | .859 |
| 2017 | 요미우리 | 118 | 424 | 381 | 41 | 100 | 19 | 0 | 14 | 161 | 58 | 0 | 0 | 1 | 2 | 34 | 0 | 6 | 63 | 15 | .262 | .331 | .423 | .754 |
| 통산:15년 || 1953 || 7754 || 6925 || 908 || 1865 || 349 || 10 || 360 || 3314 || 1123 || 14 || 20 || 23 || 62 || 594 || 32 || 150 || 1462 || 208 || .269 || .337 || .479 || .816 | ||||||||||||||||||||||||
무라타 슈이치는 신인 시절 월간 최다 홈런(2003년 9월, 10개)을 기록했다. 한 이닝에 2개의 삼진을 기록한 적도 있는데, 2004년 8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 전(나고야 돔)에서 센트럴 리그 역대 26번째로 달성했다. 2005년 5월 6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교류전 사상 첫 끝내기 적시타를 고바야시 마사히데로부터 쳐냈다.
2008년에는 두 차례 3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6월 21일과 2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호아시 가즈유키, 앨릭스 그레이먼, 이시이 가즈히사에게서, 9월 13일과 14일 주니치 드래건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사이토 신스케, 야마우치 소마에게서 홈런을 뺏어냈다. 같은 해 7월 15일부터 19일까지는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는데, 15일부터 17일까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18일과 19일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올스타전에는 4회(2006년, 2008년, 2011년, 2012년) 출전했다.
2012년 8월 4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후쿠다 다케히로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날려 역대 24번째로 전 구단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8월에는 월간 최다 안타(46개) 및 최다 득점(32개) 센트럴 리그 기록을 세웠다.
7.1.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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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왕: 2회 (2007년, 2008년)
7.2. 수상
무라타 슈이치는 베스트 나인에 4회(2008년, 2012년, 2013년, 2016년), 골든 글러브상에 3회(2013년, 2014년, 2016년) 선정되었다. 월간 MVP는 4회(2003년 9월, 2008년 7월, 2013년 7월, 2013년 8월), 우수 JCB·MEP상은 3회(2003년, 2006년, 2007년) 수상했다.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표창(스피드 업상) 1회(2011년), 야나세 자이언츠 MVP상 1회(2013년), 앳홈 클러치 히어로 오브 더 이어 1회(2013년)를 수상하였다. 월간 앳홈 히어로상은 3회(2013년 8월, 2015년 9·10월, 2016년 9·10월) 수상했다. 후쿠오카시 스포츠 영예상(2009년),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 in '프로 야구 부문'(2010년)을 수상했다.
7.3. 주요 기록
무라타 슈이치는 2003년 3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9회초 3루수로 첫 출장했다. 같은 해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7번·2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2회초 구와타 마스미로부터 좌전 안타를 기록하며 첫 타석과 첫 안타를 동시에 달성했다. 같은 경기 9회초에는 가와하라 준이치에게 삼진을 당하며 첫 삼진을 기록했다. 4월 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5회초 다카하시 히사노리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쳐내며 첫 홈런과 첫 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 4월 10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5회말 이시카와 마사노리로부터 좌월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48번째). 2008년 6월 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5회말 라이언 글린으로부터 우월 2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147번째). 2009년 7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1회초 안도 유야로부터 좌월 선제 3점 홈런을 날려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역대 93번째).
2010년 9월 1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4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역대 437번째). 2011년 5월 18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6회초 이시이 가즈히사로부터 좌전 2루타를 기록하며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264번째). 같은 해 9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4회말 오노 준페이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통산 1000삼진을 기록했다(역대 52번째). 10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는 2회초 사와무라 히로카즈로부터 우월 선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2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57번째).
2014년 6월 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6번·3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역대 182번째). 같은 해 8월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5회말 마에다 겐타로부터 중월 솔로 홈런을 날려 통산 300홈런을 기록했다(역대 40번째). 8월 27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1회말 이와타 미노루로부터 우월 3점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117번째).
2017년 6월 3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6회말 마쓰바 다카히로로부터 좌월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3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9번째).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3 | 요코하마 | 104 | 373 | 330 | 48 | 74 | 11 | 0 | 25 | 160 | 56 | 3 | 3 | 3 | 2 | 26 | 0 | 12 | 111 | 6 | .224 | .303 | .485 | .788 |
| 2004 | 요코하마 | 116 | 369 | 326 | 43 | 79 | 17 | 0 | 15 | 141 | 38 | 2 | 3 | 0 | 2 | 30 | 1 | 11 | 84 | 10 | .242 | .325 | .433 | .758 |
| 2005 | 요코하마 | 136 | 539 | 477 | 60 | 120 | 32 | 2 | 24 | 228 | 82 | 1 | 1 | 3 | 4 | 44 | 6 | 11 | 124 | 15 | .252 | .326 | .478 | .804 |
| 2006 | 요코하마 | 145 | 611 | 545 | 83 | 145 | 30 | 3 | 34 | 283 | 114 | 1 | 0 | 4 | 10 | 39 | 0 | 13 | 153 | 11 | .266 | .325 | .519 | .844 |
| 2007 | 요코하마 | 144 | 615 | 526 | 94 | 151 | 30 | 1 | 36 | 291 | 101 | 1 | 1 | 0 | 9 | 65 | 7 | 15 | 117 | 14 | .287 | .376 | .553 | .929 |
| 2008 | 요코하마 | 132 | 554 | 489 | 89 | 158 | 25 | 2 | 46 | 325 | 114 | 0 | 1 | 0 | 3 | 55 | 2 | 7 | 113 | 10 | .323 | .397 | .665 | 1.062 |
| 2009 | 요코하마 | 93 | 369 | 343 | 45 | 94 | 16 | 1 | 25 | 187 | 69 | 0 | 1 | 0 | 0 | 21 | 2 | 5 | 80 | 7 | .274 | .325 | .545 | .870 |
| 2010 | 요코하마 | 144 | 617 | 565 | 75 | 145 | 30 | 0 | 26 | 253 | 88 | 0 | 0 | 0 | 3 | 45 | 3 | 4 | 124 | 19 | .257 | .314 | .448 | .762 |
| 2011 | 요코하마 | 144 | 592 | 530 | 65 | 134 | 28 | 1 | 20 | 224 | 70 | 0 | 0 | 0 | 6 | 44 | 4 | 12 | 103 | 19 | .253 | .321 | .423 | .744 |
| 2012 | 요미우리 | 144 | 575 | 516 | 49 | 130 | 27 | 0 | 12 | 193 | 58 | 1 | 3 | 2 | 6 | 36 | 3 | 15 | 85 | 16 | .252 | .316 | .374 | .690 |
| 2013 | 요미우리 | 144 | 595 | 519 | 76 | 164 | 26 | 0 | 25 | 265 | 87 | 1 | 1 | 6 | 7 | 50 | 1 | 13 | 74 | 11 | .316 | .385 | .511 | .896 |
| 2014 | 요미우리 | 143 | 575 | 519 | 49 | 133 | 17 | 0 | 21 | 213 | 68 | 2 | 2 | 0 | 4 | 39 | 1 | 13 | 83 | 22 | .256 | .322 | .410 | .732 |
| 2015 | 요미우리 | 103 | 370 | 330 | 33 | 78 | 9 | 0 | 12 | 123 | 39 | 1 | 1 | 2 | 2 | 28 | 2 | 8 | 65 | 12 | .236 | .310 | .373 | .683 |
| 2016 | 요미우리 | 143 | 576 | 529 | 58 | 160 | 32 | 0 | 25 | 267 | 81 | 1 | 3 | 2 | 2 | 38 | 0 | 5 | 83 | 21 | .302 | .354 | .505 | .859 |
| 2017 | 요미우리 | 118 | 424 | 381 | 41 | 100 | 19 | 0 | 14 | 161 | 58 | 0 | 0 | 1 | 2 | 34 | 0 | 6 | 63 | 15 | .262 | .331 | .423 | .754 |
| 통산:15년 || 1953 || 7754 || 6925 || 908 || 1865 || 349 || 10 || 360 || 3314 || 1123 || 14 || 20 || 23 || 62 || 594 || 32 || 150 || 1462 || 208 || .269 || .337 || .479 || .816 | ||||||||||||||||||||||||
그 외에도 신인 월간 10홈런(2003년 9월, 신인 역대 최다), 1이닝 2삼진(2004년 8월 21일, 센트럴 리그 역대 26번째), 3타석 연속 홈런(2008년 6월 21일·23일, 2008년 9월 13일·14일), 5경기 연속 홈런(2008년 7월 15일-19일), 전 구단 상대 홈런(2012년 8월 4일, 역대 24번째)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7.4. 기타 기록
무라타 슈이치는 신인 시절 월간 최다 홈런(2003년 9월, 10개)을 기록했다. 한 이닝에 2개의 삼진을 기록한 적도 있는데, 2004년 8월 21일 주니치 드래건스 전(나고야 돔)에서 센트럴 리그 역대 26번째로 달성했다. 2005년 5월 6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교류전 사상 첫 끝내기 적시타를 고바야시 마사히데로부터 쳐냈다.
2008년에는 두 차례 3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6월 21일과 2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호아시 가즈유키, 앨릭스 그레이먼, 이시이 가즈히사에게서, 9월 13일과 14일 주니치 드래건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사이토 신스케, 야마우치 소마에게서 홈런을 뺏어냈다. 같은 해 7월 15일부터 19일까지는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는데, 15일부터 17일까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18일과 19일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 올스타전에는 4회(2006년, 2008년, 2011년, 2012년) 출전했다.
2012년 8월 4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후쿠다 다케히로를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날려 역대 24번째로 전 구단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8월에는 월간 최다 안타(46개) 및 최다 득점(32개) 센트럴 리그 기록을 세웠다.
8. 국가대표 경력
무라타 슈이치는 200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겸함)에 일본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되었다. 타이완 타이중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3경기 9타수 4안타(.444)를 기록하며 일본의 우승과 2008년 하계 올림픽 출전 자격 획득에 기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은 프로 선수들로 구성되어 큰 기대를 받았으나, 무라타는 대회 전 감기로 입원하여 팀 훈련에 불참하는 등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결국 일본은 4위에 그쳤고, 무라타는 8경기 23타수 2안타(.087) 12루타로 부진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무라타는 2009년 대회에 참가하여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했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2점 홈런,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초반 7경기에서 타율 .320, 7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2라운드 대한민국과의 시드 결정전에서 1루를 돌다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일본은 결승 라운드에서 우승했지만, 무라타는 부상으로 조기 귀국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