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기요코
1. 개요
우에스기 기요코는 분에이 7년 (130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어머니이다. 아시카가 사다우지 사후에도 아시카가 가문을 지지했으며, 무로마치 막부 성립 후에는 친정인 우에스기 가문의 융성에 힘썼다. 와카에도 능하여 작품이 『후가와카슈』에 입선하였으며, 법호는 과증원전이고 묘소는 교토 토지인에 있다. TV 드라마 《태평기》에서 후지무라 시호가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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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우에스기 기요코 |
|---|---|
| 본명 | 우에스기 기요코 |
| 생몰년 | ? ~ 고코쿠 5년/에이와 원년 음력 2월 29일 (? ~ 1375년 3월 31일) |
| 신분 | 뇨고 후궁 |
| 아버지 | 우에스기 노리후사 |
|---|---|
| 어머니 | 불명 |
| 남편 | 고다이고 천황 |
| 자녀 | 무네요시 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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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씨 -
간토 관령
간토 관령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간토 지역을 통괄하며 가마쿠라 구보를 보좌하던 직책으로, 우에스기 씨가 세습하다가 센고쿠 시대 혼란을 겪으며 명목상 직위로 남았다. -
우에스기씨 -
나가노 나리마사
나가노 나리마사는 센고쿠 시대 가미쓰케노쿠니 출신의 무장으로, 우에스기 겐신과 협력하여 호조 씨에 맞서 싸웠고, 다케다 신겐의 침공에도 용맹하게 저항했으며, 뛰어난 용병술과 강직한 성품으로 평가받는다. -
난보쿠초 시대의 여성 -
아노 렌시
고다이고 천황의 후궁이자 고무라카미 천황의 생모인 아노 렌시는 가인으로서 『신엽화가집』에 작품이 실렸으며 남조의 국정에도 참여했으나, 대중문화에서는 '악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는 일본 남북조 시대의 인물이다. -
난보쿠초 시대의 여성 -
아카하시 나리코
아카하시 나리코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부인이자 호조 씨 출신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라와 아시카가 모토우지를 낳았으며, 다카우지가 무로마치 막부를 수립한 후 미다이도코로로서 종2위에 서임된 정치적 수완과 모성애를 겸비한 인물이다. -
아시카가씨 -
아시카가 다다요시
아시카가 다다요시는 가마쿠라 막부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활약한 무장으로, 형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함께 막부 창건에 기여했으나 고노 모로나오와의 대립과 형과의 갈등 속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
아시카가씨 -
아시카가 야스우지
아시카가 야스우지는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으로, 호죠 야스토키의 딸을 어머니로 두고 1236년 탄코노카미에 임명되어 쇼군을 섬겼으며, 36세에 출가하여 아시카가씨 세력 확장에 기여했다.
2. 약력
우에스기 시게아키(오우기가야쓰 우에스기가 가조), 우에스기 노리후사(난보쿠초 시대), 니치죠의 형제자매였다. 우에스기 노리아키(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 가조), 우에스기 노리후지(이누가케 우에스기가 가조) 형제와 우에스기 시게요시(타쿠마 우에스기가 가조)는 조카이고, 야마나 토키우지는 사촌이었다.
분에이 7년(1305년) 출생으로 추정된다. 『삼보인 켄슌 승정 일기』의 고코쿠 3년/랴쿠오 5년 (1342년) 2월조에 "오호가타도노 73세 묘유"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역산한 것이다. 가겐 3년 (1305년)에 타카우지를 낳았으며, 키이 분카와 절의 관음에게 기원하였다. 엔겐 원년/겐무 3년 (1336년)에 분카와 절에 호첩을 기부하고, 이듬해에는 영지를 기진하였다.
남편 사다우지 사망 후에도 아시카가 가문을 지지하였고, 타카우지, 타다요시 형제가 막부 토벌을 할 때 시종일관 행동을 함께하였다. 무로마치 막부 성립 후에는 친정인 우에스기가의 융성에 힘썼다.
조묘인전 세츠테이라고 칭하였고, 세상에서는 킨코지도노, 오호가타젠니라고도 불렸다. 와카에도 능숙하여, 작품이 『후가와카슈(風雅集)』에 입선하였다. 법호는 과증원전이며, 묘소는 교토 등지원에 있다.
2.1. 가계
우에스기 시게아키(오우기가야쓰 우에스기가 가조), 우에스기 노리후사(난보쿠초 시대), 니치죠는 형제자매이다. 우에스기 노리아키(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 가조), 우에스기 노리후지(이누가케 우에스기가 가조) 형제, 우에스기 시게요시(타쿠마 우에스기가 가조)는 조카이다. 야마나 토키우지는 사촌이다.
2.2. 생애
분에이 7년(1305년) 출생으로 추정된다. 출생 연도는 『삼보인 켄슌 승정 일기』의 고코쿠 3년/랴쿠오 5년 (1342년) 2월조에 "오호가타도노 73세 묘유"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역산한 것이다. 가겐 3년 (1305년)에 타카우지를 낳았다. 이때 키이 분카와 절의 관음에게 기원하였고, 훗날 엔겐 원년/겐무 3년 (1336년)에 분카와 절에 호첩을 기부하고, 이듬해에는 영지를 기진하였다.
남편 사다우지 사망 후에도 아시카가 가문을 지지하며, 타카우지, 타다요시 형제가 막부 토벌을 할 때 시종일관 행동을 함께하였다. 무로마치 막부 성립 후에는 친정인 우에스기가의 융성에 힘썼다.
조묘인전 세츠테이라고 칭하였고, 세상에서는 킨코지도노라고 불렀다. 또한 오호가타젠니라고도 불렸다. 와카에도 능숙하여, 작품이 『후가와카슈(風雅集)』에 입선하였다. 법호는 과증원전이며, 묘소는 교토 등지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