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무네후사
1. 개요
우에스기 무네후사는 요네자와 번의 7대 번주이다. 1718년 우에스기 요시노리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 무네노리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양자가 되어 1734년 가독을 이었다. 번 재정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1746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는 동생인 우에스기 시게사다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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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
| 출생 | 교호 3년 6월 17일 (1718년7월 14일) |
| 사망 | 엔쿄 3년 8월 12일 (1746년9월 26일) |
| 개명 | 마사치요 (유명) 가쓰토요 무네후사 |
| 시호 | 영덕원전법인권대승도웅심 |
| 계명 | 영덕원전법인권대승도웅심 |
| 관위 | 종4위하, 민부대보, 시종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 → 이에시게 |
| 번 | 데와요네자와번 번주 |
| 씨족 | 우에스기 씨 |
| 부모 | 아버지: 우에스기 요시노리 어머니: 야마나카 씨 (상수원) 양아버지: 우에스기 무네노리 |
| 형제 | 무네노리 무네후사 하타케야마 요시노리 시게사다 |
| 배우자 | 정실: 도쿠가와 무네하루 양녀・지카히메 (마쓰다이라 요시카타 딸) |
| 자녀 | 양자: 시게사다 |
| 전임 | 우에스기 무네노리 |
|---|---|
| 후임 | 우에스기 시게사다 |
| 직책 | 요네자와번 번주 |
| 대수 | 7 |
| 임기 | 1734년 ~ 174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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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우에스기가 -
우에스기 가게카쓰
우에스기 가게카쓰는 센고쿠 시대 무장으로,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되어 오타테의 난을 겪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하여 아이즈를 다스렸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패배 후 요네자와 번 초대 번주가 되어 에도 시대에 활약하다 사망했다. -
요네자와 우에스기가 -
요네자와번
요네자와번은 센고쿠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다테, 가모, 우에스기 가문이 통치했으며, 우에스기 하루노리의 개혁으로 재정난을 극복하고 교육과 복지에 힘썼으나, 보신 전쟁 패배 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
요네자와번주 -
우에스기 가게카쓰
우에스기 가게카쓰는 센고쿠 시대 무장으로,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되어 오타테의 난을 겪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하여 아이즈를 다스렸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패배 후 요네자와 번 초대 번주가 되어 에도 시대에 활약하다 사망했다. -
요네자와번주 -
우에스기 나리사다
우에스기 나리사다는 1788년에 태어나 1812년 요네자와 번의 11대 번주가 되었으며, 덴포 대기근 당시 구휼 정책을 펼치고 1839년에 사망했다. -
1746년 사망 -
콜린 매클로린
콜린 매클로린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로, 테일러 급수를 활용하고 오일러-매클로린 공식을 발견하는 등 수학 분야에 기여했으며, 저서로 《플럭시온 논문》 등이 있다. -
1746년 사망 -
프랜시스 허치슨
프랜시스 허치슨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글래스고 대학교 윤리철학 교수로, 도덕 감각 이론을 통해 인간 본성의 특징을 규명하고 고전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스코틀랜드 사상에 도입하여 미국 독립혁명과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우에스기 요시노리의 차남으로 1718년 6월 17일에 태어났다. 1734년 형 무네노리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양자로 들어가 가독을 이었다. 1736년 요네자와 번에 처음 입부했고, 1737년에는 오와리 번 번주 도쿠가와 무네하루의 양녀인 긴히메와 혼인했다.
무네후사 시대에는 번 재정이 궁핍했고 연공 미납도 심각했다. 1738년 백성을 상대로 연공 완납을 조건으로 미납분 연납을 허가하는 대책을 강구했다. 1739년에는 번사의 차용분 일부 반환을 조건으로 검약령을 내렸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1742년 오키타마 군과 무라야마 군 일부가 요네자와 번 예지가 되어 진야를 설치했다.
1746년 형처럼 후사 없이 요네자와에서 사망했다. 향년 29세. 묘소는 요네자와시에 있으며, 뒤는 동생 시게사다가 이었다.
2.1. 가독 상속
우에스기 요시노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간세이 정수 제씨보』에서는 쇼토쿠 2년(1712년) 출생이라고 하지만, 유력한 것은 『우에스기가 어년보』의 교호 3년(1718년) 6월 17일 출생이라는 설이다。 교호 19년(1734년) 5월 13일, 형 무네노리가 후사 없이 사망하여 그의 양자로 들어가 같은 해 6월 28일에 가독을 이었다. 같은 해 12월 11일, 종4위하・시종 겸 민부대보에 서임되었다. 번주가 되기 전 처음 이름은 가쓰토요였지만, 취임 후에는 형과 마찬가지로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로부터 편휘를 받아 무네후사로 고쳤다。
2.2. 번정 개혁 시도
우에스기 요시노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간세이 정수 제씨보』에서는 쇼토쿠 2년(1712년) 출생이라고 하지만, 유력한 것은 『우에스기가 어년보』의 교호 3년(1718년) 6월 17일 출생이라는 설이다。 교호 19년(1734년) 5월 13일, 형 무네노리가 후사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그 양자로 들어가 같은 해 6월 28일에 가독을 이었다.
무네후사의 대에 이르러 번 재정의 궁핍뿐만 아니라 연공 미납 등도 심각해지자, 무네후사는 겐분 3년(1738년)에 백성을 상대로 연공의 당해분 완납을 조건으로 7개월분 미납분 연납 허가 등 대책을 강구했다. 또한 겐분 4년(1739년)에는 번사의 차용분 일부 반환을 조건으로 검약령을 내려 번 재건을 하려 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2.3. 영지 변화
간포 2년(1742년), 무네후사는 오키타마 군 3만 6천 889석(34개 촌)과 무라야마 군 1만 4천 948석(13개 촌)을 요네자와 번 예지로 삼고, 다카하타와 우루시야마에 진야를 설치했다.